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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도 유세이×키즈나

D A W N

Fudo Yusei × Kizuna

 

 

 

 

 

*

서로를 사랑함에 있어, 서로를 떠나 보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우린 정말 같은 하늘, 같은 오존 아래에 있는 거야?

 네가 바라보는 하늘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어?

내가 보는 색처럼, 파란 빛이니? 알려줘.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 색조차 함께 볼 수 없으니까.







*

 늘상 밝아 보였다. 이곳과는 전혀 다른 하늘을 기진 듯한 광채에 눈이 부셔져 얼굴을 찡그리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파란 머리카락과 연하늘 빛의 눈동자를 한 사람. 그녀는 과학의 발전, 이라는 명목에서 ‘만들어졌다’.

 그 많던 인조인간들 중에서 혼자 자아와 감정을 깨닫고 시설을 도망쳐 나와 사람들 사이에 숨고, 섞여 가며 살아간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처럼 생각하지만 그 소녀, 키즈나는 인간으로 분류될 수 없었다. 키즈나의 신체 안에는 심장, 폐, 위, 간, 창자와 같은 장기들 대신 차가운 금속이 들어 있고, 혈관 대신 회로가, 피 대신 전류가 흐른다. 인간과는 너무 다른 그녀. 그녀를 조금 더 인간답게 위장하기 위해, 그녀를 만든 사람들은 금속 위에 사람의 가죽을 입힌 인형 안에 빨간 솜ㅡ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붉은 피를 대신할ㅡ을 넣었다.

 사람 가죽을 뒤집어 쓴 인형 소녀는, 다시는 제가 만들어진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하고 화려히 빛나는 거리 속에 조용히 돌아가는 어느 시계점의 차고를 정리하고 청소해 주는 대신 그 넓고 온기 하나 없이 텅 빈 차고에 혼자 살고 있다. 그녀가 스스로 살 곳으로 이곳을 고른 것은 넓직하고 조용해 공허한 공간이 좋았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그 차고에 살기 시작하면서 흥미의 대상이 바뀌고 말았다. 그것은 그 차고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이미 수리하기 힘들 정도로 낡고, 색이 바래어 고철이 되어 버린 오토바이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살결을 스치는 시원하고 거친 바람, 공기를 가르는 자유로운 쾌감, 그리고 빛이 비추는 밝은 미래를 보여 주었을 오토바이는 인형 소녀에게 기적을, 새벽을 보여 주었다.

 이미 무척 낡고 색은 바래어 알아 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은 장갑(裝甲)은 소녀에게 신기루 마냥 미래인지 과거인지 모를 시간 속, 이 차고에 있었던 듯한 사람들과 그들의 목소리를 선명히 보여 주었다.

 그 여러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비친 것은, 한 남자였다. 흑단 같이 검은 머리카락, 청금을 닮은 바닷빛 눈동자가 선명히 장갑 위로 떠오른다. 손에 든 것은 스패너. 그는 테이블 위에 항상 입던 파란 가죽 자켓을 가지런히 올려둔 채ㅡ우연인 것인지 소녀가 보고 있는 그 오토바이가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ㅡ선홍색 장갑의 오토바이에 시선을 두었다.

 소녀가 있는 차고는, 혼자 바닥에 주저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공허히 느낄 뿐인 빈 공간이다. 그러나 저 남자, 장갑 위에 떠오르는 장면 속에 ‘유세이’라고 불리는 그가 있는 차고는 소녀가 있는 차고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가 있는 차고에는 온기가, 목소리가, 행복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람 냄새가 났다. 맡을 수 없어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짙은 사람 냄새를 풍기고 있다. 분명 어디로 보나 같은 곳인데, 그저 등장인물과 소품이 다를 뿐인 이 연극은 왜 이리도 다른 전개로 흘러 가는지.

 

 “유세이.”

 

 나즈막히 중얼거린 그의 이름. 물론 소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 않는다. 인형에게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잠시 혼자, 라고 느껴도 허락될 것 같았던 당신은, 그렇게나 조용했던 그 짧은 시간이 지나기가 무섭게 타인의 목소리에 답하며 유대를 잇고 온정을 섞어 갔다. 차분하고 어린 여자 아이, 쾌활하고 밝은 남자의 목소리. 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목소리들이 교차해 갔다. 참 행복하고 밝은 풍경이네.

 소녀는 바랄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 쓸쓸한 기분이 들어 바닥에 주저 앉아 올려다 본 천장은, 평소 보다도 더욱 높고, 더욱 답답하며, 공허해 보였다.

 밖은 화려히 빛나는 거리의 불빛으로 잠들지 않았지만, 키즈나. 그녀의 세계는 이미 잠들어 버렸다. 날 때부터 주어진 새장에 영원히 갇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끼이익, 소리를 내는 낡은 요람에 기대어 잠들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형 소녀, 키즈나. 그녀가 잠든 곳에 달빛은 비치지 않았다.






 

*

 “저기, 브루노.”

 “응? 무슨 일이야, 유세이?”

 

 브루노, 라고 불린 키가 큰 사내는 그를 부른 남자, 후도 유세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세이는 말없이 제 디휠 앞에 섰다.

 

 “이걸 좀 봐줄래?”

 

 디휠의 외부를 감싸는 장갑. 선홍빛으로 윤기를 띄는 그 장갑에는, 본래 그 앞에 선 사람이 빛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에 비친 것은, 디휠 앞에 선 유세이가 아니었다. 푸른 색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연하늘빛 눈동자의 소녀였다.

 

 “음… 네 디휠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아니면 안쪽이 문제인 거야? 브루노가 성급하게 덧붙여 물었다. 제 할 말을 마치자 공구를 꺼내려던 브루노를 유세이가 황급히 제지했다.

 

 “사람이 비치고 있어.”

 “뭐?”

 “사람이 비치고 있다고.”

 

 유세이가 평소와 같이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디휠의 선홍빛 장갑을 가리켰다. 일순 흔들린 브루노의 남색 눈동자. 곧 브루노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유세이, 네가 이렇게 농담을 좋아하는지는 처음 알았네.”

 

그러나 여전히 진지한 표정의 유세이. 농담이나 장난을 잘 하지 않는 그가 이 정도까지 열심히 누군가를 속이려 한 적은 없었다. 특히, 그가 ‘동료’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브루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거짓말이 아냐, 브루노. 믿어 줘.”

 

 유세이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하지만 나는 정말 보이지 않는데... 브루노의 시선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브루노는 체념하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알았어. 미안해. 그래서, 그 사람은 누군데?”

 

 유세이의 시선이 향하는 선홍빛 장갑 위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브루노 역시 제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그러나 후도 유세이, 그의 깊은 시선은 마치 그 곳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할 정도의 진정성을 띄고 있었다. 그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의 눈에는 선홍빛 장갑 위에 떠오른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들고, 존재하게 만들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과제였다. 브루노의 시선을 똑바로 올려다 보는 유세이.

 

 "머리카락이 너보다 밝은 파란색이고, 아키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가 있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건 이 정도 뿐이야. 누군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 푸른 눈동자에 비친 것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유세이가 깊이 고민하는 듯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꼭 그 사람이 있는 곳이 우리가 있는 여기, 폽포타임의 차고 같아. 여러가지로 낡고 먼지가 쌓이고, 디휠도 한 대 뿐이 없었지만... 분명해. 그건 분명 폽포타임의 차고였어."

 

 가만히 유세이의 말을 듣고만 있는 브루노. 마법을 믿으란 말 같은 이 이야기를 정말 믿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유세이가 하는 말인데? 거기다 유세이는 자기가 그렇게 아끼는 디휠을 가지고 농담이나 할 그런 성격이 아니잖아? 신뢰와 논리 사이에 저울질을 하고 있다. 참, 어려운 일이지.

 

 "만약 그 사람이 정말 이 폽포타임에 있었다면, 조라가 알고 있지 않을까?"

 

 겨우 힘겹게 말을 꺼낸 브루노. 다행히 브루노가 알맞은 말을 한 것인지, 유세이의 동공이 순간 작아지며 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 고마워, 브루노!"

 

 유세이가 테이블에서 파란 가죽 자켓을 집어 들고 차고를 뛰쳐 나간다. 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빨갛게 새어 들어오는 차고에 홀로 남은 브루노의 시선이 닿는 끝에, 유세이는 없었다. 선홍빛 디휠은 더욱 붉고, 붉게 보였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소녀, 키즈나가 눈을 뜨자 어째서인지 자신이 몸을 대어 잠들었던 그 낡은 오토바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선홍빛 장갑의 오토바이ㅡ디휠이 놓여 있었다.

 

 “넌… 디휠의?”

 

 소녀는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쪽에 시선을 돌렸다.

 

 “유세이?”

 

  불이 모두 꺼져 조용하고 어두운 그 차고 안,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음색, 톤, 빠르기 등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선명히, 분명하게.

 

 "나를 알고 있나?"

 

 알 수밖에 없어, 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마음을 억누르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키즈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하는 말을, 마음에 두었던 말을, 타자기의 키보드로 한 자 한 자 두드려 가듯 천천히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몇 가지, 말해 두고 싶은데. 괜찮아?"

 

 영문을 알 리 없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라진 천장, 깨진 유리창, 부숴진 콘크리트 파편이 낭자해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폐허가 된 차고. 그 안에, 오토바이가 있던 그 자리ㅡ그의 시점에서는 원래 그 자리였지만ㅡ에 선홍색 '디휠'만이 멀쩡히 놓여 있다. 소녀와 그는, 소녀와 남자는 어째서인지 잿빛을 띄는 그 하늘 아래, 이 차고에서 정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최대한 차분하게, 찬찬히. 소녀는 이 때만큼은 자신이 인형임에 감사했다. 진짜 인간이었다면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이러지 못 했을 테니까. 불완전한 감정이기에 가능한 판단. 기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와 수식으로 정렬된 질서적인 대답을. 실질적인 대답을.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녀는 사람 그 이상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아직도 놓지 못한 것이었다.

 

 "첫째,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 당신의 이름 정도 뿐이지만. 둘째, 나는 이 장소를 알고 있어. 나는 여기에 살았고, 나는 당신이 여기에 사는 것을 보았어. 물론, 이렇게 부서져 있지는 않았지. 마지막으로, 나도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최대한 논리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불이 모두 꺼져 조용하고 어두운 그 차고 안,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음색, 톤, 빠르기 등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선명히, 분명하게.

 

 "나를 알고 있나?"

 

 알 수밖에 없어, 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마음을 억누르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키즈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하는 말을, 마음에 두었던 말을, 타자기의 키보드로 한 자 한 자 두드려 가듯 천천히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몇 가지, 말해 두고 싶은데. 괜찮아?"

 

 영문을 알 리 없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라진 천장, 깨진 유리창, 부숴진 콘크리트 파편이 낭자해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폐허가 된 차고. 그 안에, 오토바이가 있던 그 자리ㅡ그의 시점에서는 원래 그 자리였지만ㅡ에 선홍색 '디휠'만이 멀쩡히 놓여 있다. 소녀와 그는, 소녀와 남자는 어째서인지 잿빛을 띄는 그 하늘 아래, 이 차고에서 정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최대한 차분하게, 찬찬히. 소녀는 이 때만큼은 자신이 인형임에 감사했다. 진짜 인간이었다면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이러지 못 했을 테니까. 불완전한 감정이기에 가능한 판단. 기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와 수식으로 정렬된 질서적인 대답을. 실질적인 대답을.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녀는 사람 그 이상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아직도 놓지 못한 것이었다.

 

 "첫째,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 당신의 이름 정도 뿐이지만. 둘째, 나는 이 장소를 알고 있어. 나는 여기에 살았고, 나는 당신이 여기에 사는 것을 보았어. 물론, 이렇게 부서져 있지는 않았지. 마지막으로, 나도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최대한 논리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가, 후도 유세이가 납득해 주기만을 바랄 뿐인 결론. 결국에는 모르겠다는 말을 달리한, 표현을 달리한 것 뿐인, 속이 빈 말들. 애초에 자신은 불가능했던 걸지도. 키즈나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 아, 돌아가고 싶어. 나는 호기심으로 당신을 지켜 본 것 뿐인데, 어째서인지 내 앞에 나타나는 이 광경에 눈을 못 떼었던 것 뿐인데.

 

 "그런가, 고마워."

 

 유세이는 키즈나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유세이의 발걸음이 천천히 깨진 창문을 향했다. 소녀도, 남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기."

 "응?"

 "이름, 알려줄 수 있어?"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가 소녀에게 물은 것은 그저 이름 한 마디였다. 소녀는 세 글자를 말했다.

 

 "키즈나. 그냥 키즈나야."

 "키즈나(絆)? 유대를 뜻하는 그?"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남자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이름이네."

 

 남자는 제가 디휠이라 부른 것에 가까이 다가가 시동을 거는 듯 보였다.

 

 “디휠이라고 했나? 그거.”

 

 키즈나의 말에 유세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 선홍빛 디휠을 빠짐없이 점검하고 체크하더니, 그 위에 올라 탔다.

 

 “뒤에 탈래?”

 

 이런 폐허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잖아. 키즈나는 그 말에 유세이의 뒤에 타 그의 허리를 꼭 끌어 안았다.

 

 "꽉 잡아야 해. 이거, 원래 1인승이니까."

 

 

 

 

 

 

 

 

 

 

*

 거리를 빠져 나가고 있다. 폐허가 된 차고를 지나자 비친 텅 빈 거리는 그저 조용했다. 마치 세상에 그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저기..."

 

 키즈나가 유세이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말을 꺼냈다. 불안으로 떨리는 눈빛이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침착해? 무섭지 않아?"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듣지 못하고, 그저 도망치고만 싶은 감각. 텅 빈 화려한 거리를 걷는 감각. 인형이지만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 차가움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으니까."

 

 그 역시도 유경험자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지상화가 거리의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갈 뻔 했던 기억. 홀로 남은 거리의 차가움을. 그리고,

 

 "그리고, 지금은 네가 옆에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

 

 그의 곁을 지켜 주었던 유대(絆)로 이어진 동료들. 유대로 이어진 동료가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소녀는 기계로 만들어진 인형에, 그와는 이름 뿐이 모르는 사람이었음에도.

 

 "왜 우리가 지금 이런 곳에 있고, 우리가 만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이렇게 너와 내가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건 알 것 같아."

 

 분명 이것도 유대의 일종이겠지. 살결을 스치는 바람. 그 위에, 그의 말이 올려진 채 함께 흘러 들어 왔다. 그런데 무언가, 익숙하단 느낌이 들었다.

 

 "유세이."

 

 소녀는 그의 이름을 살짝 불러 내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

 

 

 

 

 

 

 

 

 

 

 

 

 

*

 "애초에 나는 사람도 아니야. 이제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

 

 슬픈 듯이 미소지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너무나도 짙고 희미해서, 그는 그저 나를 일직선으로 바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네가 좋아. 하지만... 네가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새파란 머리카락과 연하늘 눈동자.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 인형 키즈나, 나는 언젠가 너를 위협할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 사랑하기에 전하는, 이별에의 메세지.

 

 "너는 나보다 몇 배는 빛나고, 가치 있는 사람이야. 나는 네게 어울리지 않아. 자, 이걸 봐."

 

 팔에 손톱을 갖다 대자 가죽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피를 모방한 붉은 액체가 흘러 내리고, 그 자리에 차가운 금속이 보였다.

 차가운 금속이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사랑의 메세지.

 

 "이제... 안녕이야. 정말로. 미안해."

 

 서로가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하지 않는 지도 모르는 채 보내는 사랑하는 사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를 괴롭게 만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나는 강하지 않았다.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네게 이렇게 갑자기 안녕을 말한 것 자체부터 이미 나는 잔인한 걸지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너를 조금 더 덜 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바보 같이.

 디휠에 올라 탔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닮은, 파란 색의 디휠. 헬멧을 머리에 쓰고 시동을 걸고 곁눈질로 너를 살짝 엿보았다.

 

 아, 보는 것이 아니었는데.

 

"기다릴게, 키즈나."

 

 나는 도망치듯이 달려 그 '세계'를 벗어났다. 멀리, 더 멀리로. 다시는 네게 닿지 못할 먼 곳으로.

 

 

 

 

 

 

 

 

 

 

 

 

 

 

*

 이 거리는 빠져 나가고 빠져 나가 보았자 끝이 없었다. 광활하다. 광활해. 원래 이렇게 넓은 거리였나? 알 길이 없다. 그저 그의 뒷모습만이 소녀가 의지할 길이었다.

 

 "있잖아, 유세이."

 

디휠을 운전하는 유세이는 극도로 말이 없었다. 소녀는 안전한 주행을 하기 위해서 그러려나, 했다.

 

 "언젠가 내가 너를 데리러 네가 있는 곳에 가면, 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줄거니?"

 

 소녀의 눈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햇빛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새파란 빛.

 

 "당연하지. 넌 내 동료니까."

 

 아아, 다행이다. 아아, 다행이야.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갔으나 남자는 보지 못했다. 빨갛게 물든 저녁놀을 바라보며 소녀는 남자에게 이대로 계속 출구를 찾아 보자고 제안했다.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소녀의 애원에 남자는 수락했고, 소녀는 그 허리를 더욱 꽉 감싸 안았다.

 

 "이대로, 계속 찾아 보자."

 

 이대로, 계속 헤매어 보자. 표현이 다를 뿐인, 같은 말.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유세이."

 

 이제서야,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으니까. 내가 데리러 갈게. 나를 기다려 줘. 다시는, 떠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겠어. 더는, 사랑으로 이별을 말하지 않으리라.

 

 

 

 

 

 

*

  "만나고 싶었어."

 

 무슨…?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남자, 후도 유세이.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파란 머리카락의 소녀.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유세이. 하지만…”

 

 이젠 두 번 다시, 너를 두고 떠나지 않아.

 두 번 다시, 나를 밝혀줄 새벽을 놓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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