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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토키 오토야×에이사카 요루미
눈 앞에서 소녀가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오토야의 시선도 손을 향했다.하얗고 작아보이는 손에서 얇은 손목으로,손목에서 팔을타고 올라가 곧게 고개를 든 목으로. 소녀가 고개를 숙이자 한 개로 묶은 머리가 풀려져 내려왔다.소녀는 머리끈을 잡아당기며 입을 삐죽이곤 모습을 감췄다.소녀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 오토야는 들고있던 대본으로 눈을 올렸지만,대본의 내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평소와는 달랐던 소녀의 모습에 넋을 놓았었다.차분하고 부드럽던 몸짓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고개를 숙이면 몇 가닥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목선이....
"오토야 !!"
"?! 까,깜짝이야!"
"뭘 그렇게 멍 때리는 거야! 이제 슬슬 나가봐야하는데."
"버,벌써?큰일났다.... 이거 아직 다 못 봤는데!"
" 으이구, 뭐 한다고 다 못 읽은거야? 가는 길에 어떤 내용인지 대충은 알려줄 테니까 일단 나가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쇼 덕분에 오토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쇼는 오토야를 의아하게 쳐다봤다.쟤 왜저래?아까처럼 대본을 펴놓고 멍을 때리다가 이름을 부르면 깜짝 놀라는 것도 있고,같은 방을 쓰는 레이지나 토키야도 그런말을 하곤했다.
'확실히,멍을 때리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긴했습니다.'
'뭔가 고민같은 게 있는게 아닐까?예를 들면 ~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거나!그런거!'
여자 아이는 아니겠지.사무소의 사항도 있지만 오토야가 여자아이를 만날 기회가 얼마나 된다고... 쇼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토야와 함께 걸어나갔다.
기타를 치는 소년은 행복한 듯 미소짓고있었다.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좋은 소리가 날 것 같다고 요루미는 생각했다.누군가가 부른 듯 고개를 돌린 소년은 기타를 내려놓고 자리를 비웠다.덩그러니 기타만 남겨져 요루미와 마주하였다.꽤 오래동안 연주를 한 것인지 기타에는 흠집이 많았다.현은 최근에 갈아 끼웠는지 광택이 났다. 손을 뻗어 기타를 만지려고 하자 벽이라도 있는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아직도 그쪽으로는 못 가는구나.
"나도 기타...... 칠 줄 아는데."
조금이지만.
방 한쪽에 세워진 기타를 보며 요루미가 중얼거렸다.소년만큼 자유롭게 손을 움직이며 연주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쉬운 곡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었다.소년은 시간이 지나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요루미는 기타를 천천히 훝어보다가 영어로 뭔가가 적혀진 걸 발견하였다.
"? ....오..토....야....맞나?"
아마도 소년의 이름인 듯 했다.오토야구나.오토야.요루미는 몇 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좋은 울림이야.오토야.
연말이라고는 해도 요루미에게는 연말이 아니었다.쉴 새 없이 연습,연습,계속 연습.1월 말에 있는 발레 콩쿨에 요루미는 거의 학원에서 살다시피 생활했다.학교를 마치면 바로 학원으로 가서 연습.그리고 집.주말에는 일어나자마자 학원으로 향하곤했다.저 생활을 시작하고 집에 돌아올쯔음엔 거리가 어두웠는데 지금 거리는 밝은 빛으로 물들였다.새삼 연말인게 느껴졌다.크리스마스도 연습실에서 보냈던 요루미에게 연말 또한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
"요즘 바쁜가보다..."
뭐 때문에보이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요루미는 대충 오토야가 바빠서 보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예전에는 오토야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뭐 하고 있는걸까.새삼 궁금해졌다.냉장고에서 우유 한 팩을 꺼내와 천천히 마시며 오토야를 떠올렸다.잘 생겼기도 잘 생겼지만 요루미에겐 귀여운얼굴의 인상을 주었다.그리고 생각나는 건..... 새빨간 머리와 눈이였다.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과 새빨간 머리색의 조화는 의외로 잘 어울렸다.보니까 하는 행동도 어린애 같았는데...귀여웠어.
다 먹은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버리러가며 요루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평소라면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시간이었다.밖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요루미는 엄마를 마중나가기로 마음먹고 겉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요루미가 밖으로 나간 시간은 꽤 늦은시간이었다.늦은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천천히 걸어가며 거리를 살폈다.거리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장식한 트리의 꼬마전구와 나무를 둘러싼 꼬마전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와아......"
요루미는 어린아이라도 되는 듯 거리를 보며 감탄했다.항상 바쁘게 오가서 그런건지 거리가 장식된 건 오랜만에 보았다.요루미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 사람이 없어...."
거리에도 사람이 없고,상가에도 사람이 없었다.상가에는 불만 켜진채로 남아있었다.요루미는 주변 상가에 모두 다 들어가보았지만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요루미는 상가에서 나와 다시 거리로 나왔다.거리에도 역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당황한 요루미는 큰 길을 향해서 뛰어갔다.
뛰어간 큰 길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찾아 볼 수가 없었다.상가 역시 불이 켜진채로 남아있었다.요루미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사람이 없는 길은 불이 환하게 켜져있어도 무서웠다.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남겨져 무섭고 불안했다.어느 새 요루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혼자만 남겨진 게 너무 무서워.끅끅거리며 거리를 배회했다.
"어....어,저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휙 돌렸다.눈물 때문에 흐릿해진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누...누구세요?"
"아,난 ...... 오토야,라고 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
".....오토야요?"
요루미는 양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내었다.그래도 앞은 뿌옇게 흐려서 눈가를 세게 비볐다.
"그렇게하면 눈 나빠져."
오토야가 조심스럽게 요루미의 손을 잡아 내렸다.요루미는 그제서야 제대로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보이지않는 벽 너머로 그동안 봐왔던 그 소년이였다.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그런 곳에 있던 소년이 지금 제 손을 잡고 있었다.
"나,너 많이 봤어.근데 이름.....은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이름,가르쳐 줄 수 있어?"
"요루미....요."
"요루미,구나.음....혹시 밤(夜)의 바다(海)란 의미야?"
"네."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오토야는 생글 웃으며 말했다.ㅇ,와...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인데 웃으니까 너무 귀여워!!! 요루미는 얼굴을 붉혔다.
"참,내 이름을 안 알려줬네.요루...라고 불러도 괜찮지? 내 이름은 오..."
"알고있어요!! 오토야 맞죠?"
"어,어떻게 알았어?,가 아니고 아까 말했구나!"
"그것도 있지만 오토야 기타에 이름이 써져 있는거 봤어요!!"
"그럼 내가 기타 연주할 때마다 봤단거야?"
"할 때마다는 아니고... 그냥 몇 번?"
이번엔 오토야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거기 중엔 요루미를 생각하면서 연주한 것도 있었는데!오토야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그,그러니까아....아!말 놓아도 괜찮아!"
"으응....그럼 놓을게. ....근데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어?어어....뭐였더라아....? 아,저기,밖에서 이렇게 말 하고있으면 추우니까 어디라도 들어가자! 응?"
오토야가 요루미의 손을 슬며시 잡고는 앞으로 이끌었다.얼떨떨해진 요루미는 오토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건데?"
"어....그러게!따뜻한 곳?"
그게 어딘데! 툴툴거리는 요루미와 머쓱한 듯 웃는 오토야가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