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츠카 츠키토×카스미 소우
꽃과 달은 함께 할 수 없다.
꽃은 땅에서 피어나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고, 달은 하늘에서 태어나 아래로 내려갈 수 없으니까. 비극적이라면 비극적이지만, 지극히 자연의 이치에 맞는 일. 당연한 비극은 슬프지 않느냐, 라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
달님은 언제나 꽃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늘에 떠있는 이점을 이용해. 봄이면 피어나고 여름에는 향긋하며, 가을과 겨울에는 땅 속으로 돌아가는 그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태양에 비하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달빛만을 내보내며, 꽃님이 자라나는 것을 돌볼 뿐.
분명 땅에서도 자신의 모습이 보이겠지만, 그것이 전부겠지.
제 목소리도, 온기도 닿지 않을 것이지.
당연한 것은 슬프지 않다는 건 전부 거짓말이었다. 세상에는 당연하니까 더 슬픈 것이 존재했다.
토츠카 츠키토, 달의 신, 츠쿠요미노미코토. 그는 꽃의 정령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신인 그는 모든 것에 전지전능한 편이었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둥그런 구체, 달로만 보는 자신을 처음으로 신의 모습으로 바라봐 준 것이 그녀뿐이라서 그럴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 신의 세계에 나타난 그녀는 환영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한 모습으로 제 앞에 웃고 있었다.
새하얀 원피스, 새하얀 구두, 새하얀 피부.
온 몸으로 자신이 안개꽃의 정령임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머리는 밤보다 검고 비단처럼 곱다. 정령이 아니라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청초한 모습. 츠키토는 텅 비어있던 자신의 내면에서 외로움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빠져나간 외로움은 눈물이 되었고, 사랑이 되어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어째서, 자신들은 만날 수 없는 세계에 각자 태어난 걸까. 그는 차라리 자신이 인간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사명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그는 제가 달님이라는 것을 잊고 싶어 했다.
꽃은 언제나 달님 아래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세상, 만물이 바라볼 수 있게 하늘에 걸린 달. 인간도 정령도 동물들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그 달을 카스미는 처음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말았다. 아아,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자신이 꽃의 정령인 것도 잊고, 달에 비치는 남자의 모습을 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자신의 모습은 저쪽에 보이지 않겠지. 안개꽃의 정령일 뿐인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은 화려하지 않아도, 수수해도, 꽃다발 속에서 빈 존재감을 채워줘 모두의 얼굴에 웃음을 부르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자신은 이토록 작고 평범해, 멀리 있는 달님의 얼굴엔 닿을 수 없는 걸까. 자신이 만리장성만큼 컸다면, 장미처럼 화려했다면, 달님의 눈에도 들 수 있었을 텐데.
카스미 소우, 안개꽃의 정령, 그녀는 감히 달님 속의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카스미는 바라고 바랬다. 자신이 저 달님에 비치는 남자에게 닿게 해달라고. 이 땅에서 뿌리 뽑혀 말라 죽게 된다 해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비합리적이고 불가능한 일을, 너무나도 당연히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 올 일을 바라는 자신은 바보일까.
꽃이 흘리는 눈물은 꽃잎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마치 제가 벚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 몸을 떨며 꽃잎을 떨어뜨리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말라 죽을 것 같은 시든 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지만, 목소리는 통하지 않는다.
온기조차 닿을 수 없다.
땅과 하늘은 그만큼 멀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땅과 하늘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세상에는 여러 번 비가 오고 가뭄이 들었다. 겨울의 어느 날, 인간들이 말하는 1년이 끝나가는 그 날도, 어느 지역에서는 눈이 내리고 어느 지역에서는 물이 부족해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달님은 그날도 하루하루 야위어 가는 카스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닿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꽃은 그날도 찬란하게 빛나는 달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닿고 싶다고, 바라면서.
그러자 세상은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듯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1년이 끝나고,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그 틈에.
인간들의 기준을 초월하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위한 하루를.
“…아”
정신이 든 츠키토는 안개꽃 꽃밭 위에 서있었다. 달의 세계에서는 없는 곳. 그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가장 그를 가슴 뛰게 한 것은 지천에 깔린 안개꽃들 이었다. 제가 사랑하는 그 정령의 꽃. 작고, 행복한, 제게 있어서는 작아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자신도 모르게 꽃밭을 헤집으며, 그녀를 찾던 그는 저 멀리서 휘날리는 원피스의 끝자락을 보았다. 아아, 그녀다. 웃음이라고는 모르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번졌다.
“카스미소우”
그녀의 이름 같은 것은 몰랐다. 자신이 아닌 것은 오직 그녀가 안개꽃의 정령이라는 것 뿐. 그래서 그는 제 눈앞의 그녀를 카스미소우라 명했다. 안개꽃이라고, 불러주었다.
뒤돌아 본 얼굴은 분명 달의 세계에서 봐왔던 그녀였다. 새하얀 얼굴에, 새까만 머리카락. 그 온 몸이 꽃인, 제 사랑스러운 정령.
“아아”
한탄하는 그녀에게서 안개꽃의 냄새가 훅 풍겨왔다.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가,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비틀거렸다. 이것이 꿈이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저 하늘에 뜬 커다란 보름달과 츠키토를 바라보던 그녀가 겨우 힘겹게, 그를 불렀다.
“달님…?”
“만나러 왔습니다. 카스미소우”
“아아, 아아아”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는 행복에 겨워 울었다.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세상은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제 달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루를. 24시간이라는 짧은 기적을.
“울지 마세요. 카스미소우. 저는 당신의 우는 모습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사뿐사뿐. 소리도 없이 다가온 그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고,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그토록 해주고 싶었던 것들. 온기를 직접 전해주는 따스한 행동들. 츠키토는 눈물을 모르는 신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웃어 주세요, 카스미소우”
그렇게 말하면서, 츠키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