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본인의 입버릇처럼 이치노세 토키야는 언제나 완벽을, 더 위를 목표한다. 그리 말하는 장본인의 외견이나 몸가짐을 보면 그 성정은 더 쉽게 유추할 수 있는 편이었다. 깔끔하고 꼼꼼한 사람이구나, 하고. 단정하게 다듬은 손끝이나, 날렵하게 빠진 턱선이나, 혹은 완벽하게 세팅되어 망가뜨리는 것이 아까울 정도의 머리라든지. 다만, 그의 그 완벽한 모습이 흐트러지는 순간은 약 열흘에 한 번 찾아온다.

한 달에 세 번 즈음, 그에게 사투를 벌이게 하는 존재는 그의 털북숭이 동거인이었다. 개는 정말이지 재미있는 생물이다. 분명 개는 사람의 친구라 불린다. 그만큼 영특하며 기특한 생물인데, 특히 그가 키우는 대형견은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견종이었는데 이런 때에는 정말이지, 지지리도 말을 못 알아듣는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 샤워기로 물을 뿌리기 시작하자 ‘아, 이거 새로운 놀이야?’ 라며 신나서 꼬리를 흔들어 댄 것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목욕하는 것도 아닐 텐데, 신이 나서는 꼬리를 홱 홱 흔들어댄다. 꼬리에 묻은 물이 온 사방에 튀지만 괜찮다. 그는 부러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이 일에 착수하였다.

일명 개빨래를 위해 그는 장모견용 샴푸를 그 긴 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홱 홱, 몸은 앉으라는 토키야의 명령을 따르느라 부르르 떨고만 있으나 꼬리는 흥분한 감정 상태를 나타내듯 좌로 우로 흔들린다. 사방으로 거품이 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정도는 예상한 범위 내이다. 더 흥분해서 술래잡기로 이 놀이가 발전하기 전에 목욕은 끝나야 한다. 굳게 다짐하며 그는 거품을 열심히 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가 생각한 것보다 개의 인내심은 짧았나 보다. 개의 꼬리가 힘차게 흔들리며 다리 근육이 긴장되는 것이 손 아래에서 느껴진다. 아, 이런.

결국, 그의 덩치 큰 동거인은 제발, 얌전히 계세요, 라며 붙잡는 그의 손아귀에서 쏙 빠져나가 온 사방을 헤치고 다닌다. 조금 전까지 저 털에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했는데, 맙소사. 토키야는 식겁하며 일어났지만 이미 늦었다. 물에 흠뻑 젖은 강아지는 소파 위에 우뚝 멈춰서 몸을 푸르르 털어 거품을 털어낸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그는 뒤늦게 개의 이름을 외쳤다. 그의 살짝 미친 강아지의 이름은 아오이다.

 

골든 리트리버였다. 그 순하고 얌전하기로 유명한 골든 리트리버였고, 그는 아크릴로 된 창 너머로 그를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홀렸던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바쁜 스케줄에 동물까지 챙겨가며 생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적도 없어 애완동물을 데리고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 토키야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하는 일들,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과 맞서야만 했고, 그 고민의 더미에 애완동물이란 걸 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료 중 하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회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 무척 흔한 모습의 그 고양이를 그는 애지중지했다. 이름은 뭐였더라. 그는 그것까지 기억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는 않았다. 다만 그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간신히 꺼내는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정도는 기억했다. 이렇게 예쁘고 어리고 작은데.

그 말 뒤로 이어진 건 당연하게도 그 고양이에 대한 찬사였다. 이걸 봐, 톳키! 그루밍하는 것도 예쁘고, 식빵 굽는 것도 예쁘고, 이름 부르면 대답도 해준다고! 토키야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애완동물을 자랑하는 주인의 심리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자식을 자랑하는 부모의 것과 닮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꽤 부담스럽다. 가볍게 네, 네, 그렇습니까, 라고 넘기기에는 금방이라도 우는 척하며 톳키는 비정해! 하고 달라붙어 올 것이 예상되어 그는 새삼 더 진지한 표정을 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힘든 일이다.

 

아오이와 만난 건 그런 레이지를 위한 부탁을 들어주게 된 날이었다. 코토부키 레이지의 스케줄이 길어지다 보니 고양이를 위한 화장실 모래가 부족하다며, 꼭 좀 부탁한다며 토키야를 붙잡게 되었다.

 

“오토야에게 부탁하면 되잖습니까.”

“미안해 톳키, 그치만 오토양은 바쁘다고 했는 걸~? 딱 한 번만 도와주면 정말! 아주 많이! 땡큐베리맛쵸쵸!”

 

땡큐베리맛쵸쵸? 영문도 모를 철 지난 유행어를 입에 담는 레이지를 보며 미간을 찡그리자 레이지가 잡은 손에 압력을 실어왔다.

 

“정말, 정말로, 나 우리 집 미케미한테 미움받기 싫은걸! 그러니까 꼭~ 좀. 응? 응?”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손 좀 놓으세요.”

 

토키야가 뿌리치기도 전에 레이지는 정말?! 이라고 외치며 만세! 만세!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소란스러운 사람이다.

심부름의 요는 펫 전문 샵에서 까다로운 미케를 위한 특수 화장실 모래를 사와 코토부키씨의 숙소로 옮겨다 주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하다고는 해도, 애완동물을 위한 용품을 사러 가본 적이 없던 토키야에게는 아주 낯선 공간이었다. 대형 마트에서 몇 번 그런 물품을 다루는 코너를 지나친 적이야 있었지만, 직접 찾아다니게 된 적은 없었다. 대체 왜 심부름을 해주겠다고 동의한 건지. 다시 솟아오르려는 짜증을 억누르며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과연, 반려동물을 위하는 사람들의 헌신은 그의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벽에 걸려있는 동물들을 위한 색색가지 옷들, 장난감들, 간식거리, 사료, 통조림, 물건들 물건들 그리고 또 물건들. 그는 내심 혀를 내두르며 알록달록한 상품 표를 훑어보았다. 여기 있는 이 통조림에는 고양이의 모질 개선을 선전하고 있다. 모질의 개선이라. 단 한 번도 고양이의 수발을 들 일이 없던 토키야에게는 더더욱 낯설다. 동물은 싫어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평범하게 몇 마리의 금붕어 정도는 키웠다. 그 이후 연예계에 뛰어들어 집에 있는 일이 줄어들고, 아역배우로, 아이돌로 활동하게 되면서 그런 동물을 챙길 시간과 여유 모두 모자라게 되었을 뿐. 그저, 이런 측면의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비어있는 카운터에 모래포대를 올려놓자 뒤늦게 토키야의 존재를 알아챈 점원이 당황하며 계산대로 달려온다. 3980엔입니다. 따끔. 꽤나 높은 가격에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모자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왔을 텐데, 누가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아이돌로 데뷔한 뒤 직업병으로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건 아닌지. 점원이 챙겨주는 포대를 챙겨 들었다. 생각보다는 가벼워서 들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따끔. 포대를 들고 다섯 걸음쯤 문을 향해 발을 옮겼을 때 즈음, 토키야는 그 시선이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자꾸만 제 얼굴에 시선이 꽂히는 것이 따끔따끔하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시선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예상외로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면서 한 번 눈길을 주었던, 주인을 기다리는 반려동물들이 들어가 있는 작은 케이지들. 옷집의 쇼윈도마냥 투명한 재질의 문을 달아 놓은 것이 조금 묘하다 생각했는데. 그중 가장 아래, 가장 커다란 유리문 너머에서 그 아이는 뚫어져라 토키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토키야는 홀린 것처럼 포대를 품에 안고 우리 앞으로 걸어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그마한 황금색 털 덩어리였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꼬리와 짤막하고 두툼한 앞발. 토키야가 제 앞에 다가와 준 게 기뻤는지 촉촉한 코는 유리에 대고 킁킁거린다. 유리에 가로막혀서 아무 냄새도 안 날 텐데. 한 손을 들어 유리창에 툭, 대자 강아지는 몸에 비해 커다란 앞발로 그걸 잡으려 허우적거린다. 손을 거둔 뒤에도 강아지는 그가 너무나도 반갑다는 듯 온몸을 흔들어대며 그를 올려다본다.

“어머, 소라쨩이 이렇게 신이 난 건 처음 봤네. 안 그래도 놀이 시간인데. 잠깐 안아 보시겠어요?”

창 너머의 강아지, 소라쨩은 다가온 점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멍! 하고 한 번 짖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토키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은 익숙하게 미소 지으며 열쇠로 문을 열었다.

너무나 토키야를 반가워한 나머지 강아지가 총알같이 튀어나올까 걱정한 것과는 달리 소라는 얌전히 앉아서 순하게 점원과 토키야를 번갈아 올려다보았다. 점원이 들어 올려 품에 안겨주는 동안 소라는 아무런 투정 없이, 헥헥거리며 바보 같은 미소만 지었다.

두 손에 가득 차는 따뜻한 몸은 정말이지 작았고, 그를 꾸준히 올려다보는 푸른색 눈을 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소라에게 새 이름을 지어줬다. 돌아가는 길에는 늘어난 짐을 옮기기 위해 택시를 불러야 했다.

 

새롭게 아오이라 이름 지어진 강아지는 며칠 동안 열심히 토키야의 집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가 생활하는 펜션은 작지는 않은 편이라 어린 강아지가 탐험하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였다. 말도 잘 듣고 순한 강아지는 아오이, 라고 한 번 이름을 부르면 짖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치에 금방 도착했다.

토키야가 어쩐 일로 동물을 기르게 되었냐고 물어보던 동료들도 아오이가 그 짧은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반기는 모습을 보고는 금방 미소 지었다. 주인을 물지도 않아, 짖지도 않아, 공격적이지도 않고 순하고 다정한 그의 강아지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인 토키야는 그야말로 만족스러웠다. 가끔 물건을 물어뜯고 심심하면 두루마리 휴지의 끄트머리를 물고 달려가는 정도는 훈련으로 고칠 수 있었고, 그의 눈에는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그 작은 몸집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아오이가 자라면서였다. 골든 리트리버, 대형견의 명성에 걸맞게 아오이는 쑥쑥 자랐다. 두툼한 앞발은 더 두꺼워지고 강력해졌고, 짧은 꼬리는 더 길어졌다. 양치할 때 실수로 물려도 자국조차 안 남던 이빨은 점점 길어졌고 송곳니가 자라났다. 이 모든 변화에 불구하고, 아오이는 여전히 귀여운 강아지였다. 점점 체구가 커지고 소형견의 크기는 벌써 벗어난 지 오래였지만, 토키야의 눈에는 작고 약하던 시절만큼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오이의 털을 신중하게 빗겨주는 그의 모습을 본 친우들이 눈빛이 딴판이라며 애인에게도 저렇게 잘 해주지는 않을 거라 말한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시간이 약간 더 지나, 아오이에게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아오이의 견종을 검색창에 써넣은 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앞에 ‘말썽부리는’을 덧붙였다. 잠시간 더 고민하던 손끝은 톡 톡 책상을 두드리다 ‘길들이는 법’을 뒤에 써넣었다. 엔터키를 누르자, 예상외로 검색결과는 여러 가지 나타났다. 스크롤을 내리며 파악한 글의 내용은 무난했다. 말썽부리는 개의 경우 다루는 법. 대형견이라면 그 강한 힘 때문에 다루기 힘든 편이지만, 주인의 끈기와 노력이 있다면 그 어떠한 말썽꾸러기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끈기와 노력이라. 어린아이를 위한 교양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말을 곱씹어보며 토키야는 페이지에서 나와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애견가들의 커뮤니티, 그중에서도 대형견만을 다루는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게시판. 검색창에 골든, 단어의 일부분만을 쳤는데도 자동완성 창에는 금방 ‘골든 리트리버’가 나타났다. 그는 엔터키를 눌렀다. ‘우리 강아지가 테니스공을 씹어 먹었어요!’

토키야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물과의 전쟁을 치른 아오이는 결국 이 놀이에도 질렸다는 듯 토키야가 수건으로 제 몸을 닦을 때는 하품을 하더니 이제는 제 지정석인 쿠션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아직 테니스공은 먹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먹고 있지 않다.

그렇게 위안하며 그는 첫 글을 넘겼다. 다음 글. ‘키우는 개의 배변훈련이 여전히 말썽이에요.’ 그의 필사적인 노력과 짧고 강렬한 전쟁 끝에 아오이는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더는 없다. 어린 강아지였을 때면 모르겠지만 장성해가고 있는 청년기인 지금은 문제없음. 토키야는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강아지 사춘기.

누군가가 자신의 머릿속을 본 뒤 그 단어를 끄집어내 쓴 듯한 언어 선택이었다. 우리 강아지에게 사춘기가 온 것 같아요. 말도 안 듣고, 자꾸만 물건을 망가뜨려요. 댓글까지 이어서 읽던 토키야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강아지던 아오이는 어느 시점부터 말썽의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자기 쿠션을 물어뜯는 정도에서 멈추던 것이 벽지를, 가구를 물어뜯는 것으로. 또 어느 날부터는 특이한 것들에 관심, 혹은 식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가 걸어 놓았던 가디건을, 어느 날은 휴지를. 또 어느 날은 그가 저녁 식사로 준비한 샐러드를 홀랑 삼켜 토키야가 아오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가장 잊을 수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에피소드는 중요한 서류를 아오이가 먹으려는 현장을 토키야가 발견했던 날이었다.

책상 위에 놔두었던 악보를 아오이가 발견했는지, 의자 위에 올라가 그걸 그 큰 입으로 조심스레 물어가려는 것을 커피를 들고 돌아오던 토키야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날 발발한 필사의 추격전, 혹은-아오이의 입장에서는-술래잡기는 간신히 토키야의 승리로 끝났다.

거하게 혼나고 벌까지 받은 뒤 아오이에게 종이는 먹으면 안 되는 금단의 선악과라도 되었는지, 토키야는 아오이가 그의 앞에서 눈치를 슬슬 보는 것을 몇 번 보았다. 하지만 다시 그의 악보를 집어먹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으니 그는 그걸로 되었다 생각했다.

허나 여전히 아오이의 식욕은 멈추지 않았고, 문제는 이것만이 아녔다.

토키야는 책상에 가볍게 자기 머리를 박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된 건지.

자신의 꽤나 거대한 덩치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달려 다니다 물건을 엎는 것은 예사요, 밖에서 놀고 들어올 때면 그가 말리기도 전에 흙투성이 발로 온 집을 한 바퀴 돌고서는 자랑스럽게 그의 앞에 멈춰 선다. 그는 가끔 그의 강아지가 미친 게 아닐까 고민한다.

누군가가 예민하다 칭한 그의 성격에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강아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오이가 엉망으로 만든 집안을 치우는 건 토키야의 몫이었고, 그는 엄연히 아이돌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아오이는 착한 그의 강아지이다.

곤히 잠든 아오이를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보다 그는 손을 밑으로 뻗어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토키야와 떨어지기 싫다는 듯 쿠션을 이리로 끌고 와서 잠들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아오이에게 금방 닿을 수 있었다. 잠꼬대라도 하는지 꼬리가 살랑, 움직였다.

그래도, 차라리 테니스공에 관련된 말썽만 부린다면 좋을 텐데.

 

이별은, 예상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찾아왔다. 적어도 토키야에게는 이별까지는 아녔지만, 아오이에게는 이별이었나 보다.

 

“그러면 코토부키씨, 오토야. 잘 부탁드립니다.”

“네네~ 걱정하지 말라구 잇치!”

“맞아맞아, 맡겨만 달라고!”

 

못 미덥다는 감상이 표정에서 티 났는지 레이지와 오토야가 토키야는 너무하다며 아우성을 친다. 레이지의 손에 목줄이 잡힌 아오이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다.

 

“아오이.”

 

본디 아래로 쳐진 귀가 쫑긋, 제 이름에 반응한다. 토키야가 몸을 숙여 아오이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추자 힐끔, 보고는 다시 땅을 내려다본다.

 

“저는 금방 다녀올 겁니다. 우리 아오이, 착하죠? 딱 다섯 밤만 지나면 돌아올 겁니다.”

 

귀 뒤를 긁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어르자 아오이는 끼잉, 작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보다도 더 서러워하는 모습에 옆에 있던 오토야가 더 당황한다.

 

“맞아, 토키야 말대로 딱 다섯 밤만 삼촌들이랑 지내면 된다니까? 분명 재미있을 거야!”

“맞아맞아, 오토양 말대로, 가 아니라 언제부터 삼촌이 된 거야?!”

 

나는 오빠가 더 좋아! 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레이지는 무시한 채 토키야는 아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르고 달래도 헤어지는 거란 걸 알고 있는지 계속 속상한 티를 내던 강아지는 결국 토키야의 소매를 살짝 물어 당기는 것으로 제 의사를 표현했다.

 

“어허. 이러면 옷이 상하잖습니까.”

 

코 위를 톡, 건드리자 더더욱 우울한 기색으로 물었던 소매를 놓아준다. 손목시계를 확인해 시간을 확인한다. 출발시각까지 얼마 안 남았다. 토키야는 강아지의 목 둘레에 팔을 둘러 꼬옥 안아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틈틈이 연락할 테니 꼭 상황보고 부탁드립니다.”

“네~ 잘 다녀와 토키야!”

 

여전히 좀 슬퍼 보이는 아오이를 뒤로 하고 토키야는 기다리는 차를 향해 발을 옮겼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있는 지인이 주변에 있어 다행이었다. 급하게 잡힌 로케라 이번에는 평소에 부탁하는 펫시터에게 아오이를 맡길 수 없어 처음으로 다른 집으로 아오이를 보내게 되었다. 비록 레이지의 경우에는 고양이 미케였지만, 그 까다로운 고양이를 키우는 레이지라면 더더욱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하여 그는 아오이를 그에게 맡기고 장기 로케를 위해 떠날 수 있었다. 혹시나 시간이 안 맞는다면 오토야도 합세하여 함께 돌보기로 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 떠나기 전에 강아지를 돌볼 때의 주의사항도 상세히,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적고 또 요약본도 만들어서 주고 왔으니 괜찮을 것이다. 긴급 시의 매뉴얼도 건넸고, 수의사의 번호도 남겼다. 모든 자료를 모은 파일을 받은 오토야의 안색이 조금 파리하게 변했지만 뭐, 아오이를 마음 놓고 맡기기 위해서는 그쪽이 더 나았다. 제대로 읽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아오이가 사고를 치기 시작한다면 어쩔 수 없이 참고하게 되겠지.

녹화를 위해 의상으로 갈아입으면서도 생각은 아오이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사고를 쳤을까, 코토부키씨가 만든 도시락에서 고기반찬만 빼먹고 줄행랑쳤을까? 아니면 화분이라도 하나 엎고 소파 뒤에 숨어서 떨고 있을까? 새로운 집으로 옮겨서 어디 이상한 곳에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고양이도 아니고. 그렇게 틈새에 끼어서 헥헥 웃는 얼굴을 토키야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오이는 뭘 하고 있을까. 스태프의 손짓에 따라 토키야는 대기실로 정해 둔 방에서 나왔다. 계곡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의 녹화였다. 가을이라 그런지, 바깥 공기가 더 서늘하게 다가온다. 아오이는 바람이 서늘해도 선천적인 털옷 덕분인지 쌩쌩하게 돌아다녔다. 산책하러 나가면 목줄이 너무 팽팽해지기 전까지 잡아당기며 토키야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함께 달리는 것도, 좋아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평소의 숨소리가 아니라 무겁게 헉헉 소리를 내며 그의 뒤에서 졸졸 쫓아오는 것도 토키야는 좋아했다.

하필 지금 이 생각이 떠오를 것은 뭔지. 토키야는 카메라 앞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이돌이 짓는 영업용 미소.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겁니다, 이치노세 토키야. 색색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은 마치…마치 코토부키 씨가 보여준 미케의 털 같았다. 삼색 고양이 미케, 까다로운 미케. 특별한 모래와 사료가 아니면 안되는 미케. 아오이와 함께 5일을 보내야 하는 미케.

손끝에서 핏기가 싸아아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레이지도 오토야도 집에 없는 동안 아오이와 미케는 같은 집에 있어야 한다. 계속 가둬둘 수 없는 일이고, 집 안에 풀어둬야 할 텐데. 언젠가는 마주치겠지? 마주치면, 마주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토키야의 머릿속에서는 톰과 제리의 에피소드가 자꾸만 떠오른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를 싫어해. 톰의 꾀로 얻어맞는 스파이크. 아니,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자꾸만 머릿속에서 대본이 새어 나간다. 작가가 써준 대본은 익숙해지다 못해 외울 정도로 보았는데 집중력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착하고 순해 빠진 제 강아지. 물기는커녕 짖지도 않는 아이가 까다로운 고양이의 눈에 들 수 있을까? 반격은? 아니, 눈치만 보다가 밥도 못 먹고 지내는 건 아닐까?

평소의 자신이라면 이야기하기만 했어도 코웃음 쳤을 만한 상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집중하기 힘들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그쳐도 떠오르는 건 망치로 스파이크를 때리는 미케, 아니 톰.

 

“토키야군, 상태 안 좋아?”

 

함께 걷던 탤런트가 웃는 얼굴로 묻는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듣기에도 못 미더운 목소리가 나온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고 촬영 뒤에 코토부키씨나 오토야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조금 풀린다. 아오이는 소고기랑 육포를 좋아하는데, 돌아가는 길에 선물로 사 가자. 그러면 강아지는 기뻐하겠지.

 

 

걱정했던 것이 허탈해질 정도로, 전화로 전해 들은 아오이의 근황은 평범했다. 미케와는 몇 번 킁킁거리더니 금방 친해져서 붙어 다니며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고 오토야가 답지 않게 힘 빠진 목소리로 보고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발견한 건 망가진 신발이 두 짝이라고. 토키야는 오히려 유쾌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아오이, 말을 잘 듣는 편인데? 하지 말라 그러면 금방 멈추고.”

“멈추지만,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응. 무서웠어. 개는 대단하구나…”

 

개를 닮은 당신에게 듣기엔 조금 웃긴 발언입니다만. 그런 감상을 대충 넘기며 토키야는 다시 물었다.

 

“식사도 잘 챙겨줬습니까? 브러슁도 필요하니 시간이 날 때 해주세요. 목욕이라면 제가 가기 전에 했으니 놔둬도 괜찮습니다.”

“응, 맛있게 한 그릇 다 해치웠어! 브러슁이라..재미있어 보여. 조금 두근두근해졌을지도!”

 

기분이 좋은 아오이는 온몸을 비틀며 꿈틀거린다는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매뉴얼에 적혀 있으니 괜찮겠지 싶어 그는 입을 닫았다. 맞아, 아오이랑 인사할래? 오토야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수화기에 대고 외친다. 잠시만 기다려봐! 아오이 데려올게!

당황한 채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자 곧 거친 숨으로 오토야가 돌아왔다. 자, 아오이, 아빠한테 인사하자!

강아지가 웡! 하고 큰 소리로 짖어 토키야는 잠깐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강아지에게 전화하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을 꺼내본다.

“아오이.”

멍!

“잘 지내고 있습니까?”

끄으으응…멍!

“그렇군요. 안심했습니다. 앞으로 4일만 지나면 돌아갈 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그리고 코토부키 씨의 집을 망가뜨리는 건 자제해주세요.”

멍멍!

어쩐지 상쾌해진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 바보 같은 전화로 앞으로 나흘 동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은 4일간은 평탄하게 흘러갔다. 전화로 아오이가 뭔가 위험한 걸 먹었단 이야기도 안 들려왔고, 녹화 중이던 방송도 함께하는 일행과 무난히 해나갈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결과를 얻는다. 아주 완벽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꽤나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 일례로 방송이 끝나자 녹화를 총괄한 프로듀서가 수고했다며 토키야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남겼다. 이제 남은 건 무사히 아오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강아지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으려나, 고작 5일이었는데도 그런 이상한 기대감이 들었다. 레이지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면서도, 어쩐지 장성해버린 아오이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톳키~ 왔어?”

“어서 와!”

 

문을 열며 인사를 한 건 오토야와 레이지였고 금색 무언가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토키야의 몸에 충돌했다. 허윽, 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려 하자 발아래에서 아오이가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정말, 기운 넘치는 개이다.

 

“으와…토키야 괜찮아? 아오이, 생각보다 힘이 엄청 세던데…”

“지금 이 상태가 괜찮아 보입니까…”

 

아오이는 사람이라면 헤죽헤죽 웃고 있다는 표현이 걸맞을 표정을 지으며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강아지, 이놈의 강아지. 앞으로 오는 걸 기다려서 꽉 끌어안자 아오이는 정신없이 꼬리를 흔든다. 힘도 넘치지, 뭘 많이 먹었길래 이렇게 힘이 셉니까? 구박이라도 하듯 인사하자 아오이는 끙끙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토키야의 얼굴에 가까이하려 든다.

개와 사람이 엉거주춤 끌어안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레이지가 새삼스럽다는 듯 말한다. 아오이는 정말 토키야가 좋은가 봐.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 눈길을 던지자 레이지가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니, 그야 당연하지만! 옆에서 오토야도 한마디 거든다.

 

“아오이, 계속 기분 좋긴 했지만 토키야를 본 지금이 가장 신나 보이는걸? 아, 물론 토키야도 기뻐 보이네.”

“그야 저도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리 말하며 제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눈은 무척 다정해서, 오토야나 레이지도, 뜻밖에 솔직하네, 라고 말하며 놀리려던 마음은 접었다.

 

“그래도, 폭풍 같은 5일간이었어, 정말. 하하.”

 

조금 기운 없이 말하는 레이지를 보며 토키야는 입매를 조금 굳혔다.

 

“얼마나 망가뜨렸습니까?”

“일단 쿠션 세 개랑 의자 다리를 하나 통째로 뜯어버렸어.”

“….미케가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미케미라도 의자 다리는 못 뜯거든?!”

 

토키야 나름의 회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명료하다. 물론 범인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주인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만. 웬수 같은 강아지의 귀를 몇 번 주무르곤 피해비용은 나중에 청구해달라고 말하는 토키야의 표정은 이제 초연하다. 그래도 인터넷에서는 악마 같은 1년만 지나면 된다고 했으니까.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오이는 그의 강아지이다. 그는 그 사실을 바꿀 마음은 추호도 없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