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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모두 회사나 학교라는 곳으로 향하는 시간이 지나고 집에 남은 사람들이 점심을 준비할 때가 되면, 키리시마는 늘 은신처를 빠져나와 어느 가정집의 담 위로 올라갔다.

‘오늘도 있나?’ 어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집고양이니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창가에 없으면 확인 할 수가 없으니 조금은 불안해지기도 한다. 기웃기웃 제 보금자리가 아닌 곳을 살피던 그는 마루의 볕이 잘 드는 곳에 누워있는 새까만 고양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있구나’ 그걸 확인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키리시마의 꼬리가 가볍게 살랑거렸다.

야옹. 작은 목소리로 부르면 상대의 귀도 쫑긋거린다. 키리시마가 온 것을 눈치 챈 에노키는 기지개를 펴며 일어서더니, 마루 밖으로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키리시마! 어서 와요!”

“아아. 자고 있었나? 깨워버려서 미안하군”

“괜찮아요! 할 게 없어서 자고 있었던 거니까!”

 

과연 집고양이는 한가하군. 키리시마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오늘도 잘 정리된 집안을 살폈다. 그녀의 주인도 ‘회사’라는 곳에 매일 나가는 탓에, 이 시간엔 늘 집이 빈다. 덕분에 자신은 이 시간마다 여기 놀러올 수 있지만, 만약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잘은 모르지만 인간들은 자신과 함께 사는 고양이가 바깥의 주인 없는 고양이를 만나는 것을 싫어하곤 했으니, 어쩌면 쫓겨날지도.

 

“아침은 먹었어요?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 없었나요?”

 

‘재밌는 일’이라. 과연 집고양이가 생각하는 길고양이의 삶은 어떤 걸까. 딱히 그녀를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녀에게 바깥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키리시마는 가끔 이렇게 악의 없는 질문을 하는 에노키를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쉽게도 바깥은 그녀가 기대하는 만큼 즐거운 곳이 아니었고, 오히려 위험과 위협이 가득한 치열한 곳이었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는 자유로운 정도일까.

 

“재밌는 일이라고 해도 별거 없다”

“그런가요…”

 

시큰둥한 대답에 실망한 걸까. 쫑긋거리던 귀가 축 처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바깥 이야기를 들을 방법은 오직 자신과의 대화뿐이니 무리도 아니겠지. 후우. 길게 한숨을 내뱉은 키리시마는 억지로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제게는 매일 같은 일상이라도, 그녀에겐 신기한 일이라면,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굳이 있다면, 공원의 나무들이 새빨갛게 물든 정도인가”

“나무가요?! 그거 어떻게 된 거에요?”

“단풍이라고 하는 거다. 한 번도 본 적 없나?”

“없어요! 나는 늘 집 아니면 병원밖에 안 다니니까!”

 

역시 집고양이는 할 짓이 못된다. 키리시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먹을 것을 못 구하면 굶어야 하고, 언제 자동차에 부딪힐지 모르며,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한다 해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연분홍색 꽃비도,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도 볼 수 없다면. 안전하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쁘겠다… 새빨간 나무…”

“정확하게는 잎이 빨갛게 되는 거지만”

“잎이요?! 더 보고 싶어요!”

“흐음…”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학교나 회사에 간 인간은 적어도 노을이 질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있으니. 잠깐 데리고 나가도 좋지 않을까.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만 되돌아오면, 그녀가 혼나는 일도 없겠지.

 

“보러 갈까?”

“응? 정말?”

“그래. 공원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잠깐이라면”

“갈래요 갈래!”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작 권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키리시마는 어린 고양이마냥 신이 나 발을 구르는 그녀에게 간단하게 주의할 점을 이야기 해줬다.

 

“다만, 명심해 줘야 할 게 있다. 첫 번째. 모르는 고양이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 것. 두 번째. 새나 곤충을 함부로 쫒아가지 마라. 세 번째는…”

“세 번째는?”

“나에게서 떨어지지 마라. 위험하니까. 내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와라. 알겠나?”

“…응! 명심할게요!”

 

그래. 이렇게 일러뒀으니 별 문제 없겠지. 키리시마는 제가 들어왔던 담벼락 쪽으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영광스러운 첫 외출이 자신과의 외출이라니. 꽤나 으쓱해져도 좋은 일 아닌가. 그는 처음 치고는 능숙하게 담 위로 뛰어오른 에노키를 보고 앞장서 나갔다.

 

“와아! 사람이 가득해!”

 

뒤따라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기차다. 이 시간의 거리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저런 말을 하다니. 집 안에서만 자랐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키리시마는 그녀의 갑갑한 생활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아무나 쫒아가선 안 된다. 만지려고 하면 도망가야 해”

“네, 네. 낮선 사람은 늘 조심한다고요. 사이토 씨가 친구를 데려와도, 늘 조심하는 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역시 불안하다. 골목을 건너며 몇 번이고 에노키를 확인하느라 제대로 앞서나가지도 못하던 키리시마는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그녀가 제 옆으로 올 때 까지 기다렸다. ‘키리시마?’ 길거리 구경을 하며 오던 그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두커니 서있는 그를 보고 저절로 따라 멈췄다.

 

“왜 그래요? 혹시 길 까먹었어?”

“아니다. 역시 나란히 걷는 게 덜 불안해서”

“아하! 그럼 같이 가요! 나도 그게 더 좋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사뿐사뿐 그녀와 함께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 키리시마는 공원으로 에노키를 안내하는 도중 수많은 목소리들을 들었다. ‘어머, 저것 봐’ ‘고양이가 둘이서 나란히 걷네, 귀여워라!’ ‘둘 다 검은 고양이인데, 눈 색이 조금 다르네’ ‘귀여워~!’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산책을 나온 연인들, 수많은 인간들의 대화가 귀를 간질인다. 그녀는 몰라도 제가 귀엽다니, 인간의 미적 감각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키리시마였다.

 

“키리시마”

“응?”

“저기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찍고 있는데, 괜찮은 거예요?”

“……”

 

고양이 두 마리가 딱 붙어 걷는 게, 사진까지 찍을 일인가. 떨떠름한 얼굴로 멈춰 선 키리시마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신경 쓰지 말고 가도록 하지”

“응!”

 

그렇게 두 고양이가 공원에 도착하기 까지, 그 작은 몸뚱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던가. 안타깝게도 키리시마도 에노키도, 그날 외출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평생 알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생이 중요하지, 인간들의 시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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