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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들썩이자 머그 안의 커피도 요동쳤다. 이크. 놀란 표정으로 휘청거리는 머그를 잡은 코왈스키는 반쯤 쏟아진 액체와 테이블 아래를 나뒹구는 연장을 보곤 인상을 팍 찌푸렸다.

 

“리코! 수리는 나가서 해!!”

 

평소라면 아지트 안에서 뭘 하던 상관없지만, 지금은 위대한 발명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데 이런 훼방을 놓다니. 아무리 특공대의 일원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 애초에 자기 쪽이 더 상관이니, 이 정도 잔소리는 괜찮지 않은가. 코왈스키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 점점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다다다. 멀리서 발소리가 다가온다. 아마도 날아간 공구를 주우러 오는 거겠지. 이 기회를 통해 얼굴을 마주보고 충고를 해두려던 그는 아직은 흐릿하게 보이는 그림자가 제 코앞까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죄송해요, 코왈스키!”

 

하지만 공구를 수거하러 온 건 리코가 아니었다. 가벼운 발걸음, 또각또각 낮은 힐 소리와 함께 다가온 그녀는 미안함을 가득 담은 얼굴로 코왈스키를 바라보았다.

 

“다치진 않았나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리코를 도와주려고 하다가 제가 손이 미끄러져서…”

“아, 아냐! 난 멀쩡해! 아무 걱정하지 마, 더체스!”

“정말요…?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을 정말 무해하다는 말 외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악의라고는 없는 언행. 사랑스러운 말투. 이 특공대의 유일한 여성인 더체스는 마치 상대방의 전투력을 상실시키는 것들로만 똘똘 뭉쳐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존재였다.

 

“그럼, 그럼. 애초에 직접 맞은 것도 아니고… 테이블에 맞은 거니까”

“으음, 하지만 코왈스키의 일을 방해해 버린 거 아닌가요…?”

“아니 뭐 그거야… 작업물은 멀쩡하니 괜찮아! 음음!”

 

물론 그녀가 아니라 다른 대원이었다면 안 괜찮았겠지만. 솔직한 대답은 오직 코왈스키의 마음속에서만 머물렀다.

 

“…그런데 뭘 만들고 있었어요? 구경해도 되나요?”

 

미안해하는 것도 잠시. 그 사이 또 호기심이 든 걸까. 더체스는 두 눈을 반짝이며 코왈스키의 책상을 살폈다. 언제나 제 발명에 관심을 가져주는 건 환영인 코왈스키는 그녀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설계도를 들었고, 마치 선생이라도 된 것 마냥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좋은 질문이야, 더체스! 이건 말이지, 무한동력을 이용한 에스프레소 머신인데 이게 완성되면 더 이상 전기료를 걱정하지 않고 커피를…”

 

과학자란 원래 남 앞에서만 말이 많은 법이라 하던가. 방금 전 혼자서 연구할 때는 입을 꾹 다물고 가끔 한숨만 쉬던 그가, 지금은 누구보다 신나 보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 제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코왈스키를 가만히 보고 있던 더체스는 소리죽여 웃었다.

 

“응? 왜 웃어 더체스?”

“아무것도 아니에요! 코왈스키는 정말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싶어서요!”

“흠흠, 그거야 이 우수한 두뇌를 사용해 인류에 도움이 될 물건을 만드는 건 대단히 보람찬 일이니까! 알아주니 기뻐 더체스”

 

‘도움이 되던가?’ 더체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말로 내뱉진 않았다. 굉장히 씁쓸한 사실이지만 코왈스키의 발명품은 대부분 사고를 친 후 부서지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의 손으로 소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녀석이 만든 것 치고 우리 특공대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은 게 있었나?’ 스키퍼가 언젠가 한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는 것만 떠올려도, 이 사실은 외면하기 힘들었지.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동력원을 축소화 시킬 방법만 떠올리면 완성을…”

“꺄악!”

“더체스?”

 

한창 설명하는 중인데, 그녀의 비명이 코왈스키의 말을 끊어버렸다. 불쾌함 반 놀람 반으로 더체스를 본 코왈스키는 왜 그녀가 비명을 지른 건지 눈치 채고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

 

“…언제 온 거야 리코?”

 

도대체 어떻게 소리도 없이 다가온 건진 모르겠지만, 리코는 더체스를 뒤에서 꼭 껴안은 채 제 턱을 그녀의 머리위에 올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갑자기 저렇게 하면 놀라겠지. 더체스를 백번 이해한다는 얼굴로 머리를 헝클인 코왈스키는 속이 타서 다 식은 커피를 원샷했다.

 

“리코, 저 찾으러 온 거에요?”

 

끄덕끄덕. 고개를 기운차게 끄덕인 리코가 웃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같이 의자 수리하고 있었죠! 내 정신 좀 봐! 연장도 찾았으니 갈까요?”

“에? 아, 잠깐 더체스? 설명은…?”

“죄송해요! 다음에 마저 들을게요!”

 

‘가요, 리코!’ 여전히 악의 없는 미소로 자신의 설명을 거부한 그녀는 그렇게 리코와 함께 가버렸다. ‘리코만 오지 않았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또 혈압이 올라 냉수를 들이키고 싶어지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녀는 가버렸는데.

‘이번에 연장이 날아오면 리코를 향해 던져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코왈스키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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