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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박자박 걸어오는 네 발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윤은 말가니 젖은 얼굴로 저를 향해 물웅덩이를 밟아 다가온 거대한 들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미국은 신기하네, 도시의 골목에 저렇게 커다란 들개도 다 나타나고. 맹수의 황금빛이 언뜻 맴도는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깜박, 깜박, 두어 번 눈꺼풀을 닫았다 떴다. 꼭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있어서 그녀는 조금 웃었다. 너는 어디서 왔니? 배가 고파서 내려온 거니? 그래서 나한테 가까이 온 거야? 내가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수많은 의문들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가 거품처럼 사그라졌다. 대답도 해주지 않을 상대에게 목소리를 내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무 반응도 없이 그녀에게 눈동자만 붙박아 놓던 들개는 늑대를 닮은 얇고 마른 머리통을 수그리며 낮게 그르렁대는 소리를 냈다. 윤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있잖아, 너도 외롭니?"

 

윤은 그렇게 속삭였다. 빗방울이 수도관을 때리는 소리가 안개로 희게 장막이 쳐진 것 같은 공기 중을 따갑게 울렸다. 빗물 젖어 더욱 색이 짙어진 까만 코를 숙인 채 가만히 있던 들개는 천천히 한 발, 한 발을 걸어 그녀의 손바닥 안에 코 끝을 묻었다. 온기 어린 숨이 손바닥 안으로 그득하게 고였다. 거대한 등줄기 위로 흐릿하게 수증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울음으로 따갑게 붉어진 눈 밑이 도도록이 부풀어 오르도록 웃으며 윤은 손가락 끝을 가볍게 구부려 턱 밑을 긁어주었다. 재채기를 하듯 컹,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있지. 그녀는 짤막하게 말을 걸었다.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그것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황금빛을 띄는 호박색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윤은 물었다.

 

"너도 외로운 거라면, 나랑 같이 갈래?"

 

까끌한 혀가 손바닥을 한 번 핥았다. 살그머니 손 안을 훑고 지나가는 감촉에 윤은 어깨를 가볍게 떨며 까르르 웃었다. 간지러워, 하고 말을 걸자 한 번 더 손 안을 핥아와 윤은 몸을 뻗어 두툼한 목을 끌어안았다. 뺨에 닿는 젖은 털에서는 바람과, 나무와, 젖은 흙의 비릿한 냄새가 났다. 너를 외롭게 둬서 미안하다, 내 아가. 스콧은 그렇게 말했다. 너를 또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해. 피도 안 섞인 동양의 계집애에게 제 모든 것들을 남겨놓고는, 피투성이의 병원 침대에서 그렇게 말하던 사람. 털로 뒤덮인 목 근육을 떨며 품 안에 안긴 들개가 다시 컹, 하고 짖었다. 미안하다. 윤은 젖은 털 끝에 코 끝을 묻었다. 미안하다, 윤, 내 보물. 아내를 잃고 딸을 잃고, 그리고 결국 남긴 것은 그녀 뿐이었던 바보 같은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척척하게 젖은 털 끝으로 눈물방울이 섞여 들었다. 들개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꼭 달래듯이, 젖은 코 끝이 그녀의 목덜미를 다정하게 문질렀다.

 

2.

 

카페 '스콧'은 제법 특색 있는 가게였다. 연극을 공부하겠다고 미국으로 왔다가 모종의 이유로 눌러 앉은 젊은 한국 출신의 여주인도 그렇고, 그녀 이전에 카페를 운영한 전 주인의 이름을 딴 가게 이름도 그랬지만 가장 특이한 것은 언제나 카운터의 뒤에서 여주인을 지키듯 길게 앉아있는 거대한 체구의 대형견인 대릴이었다. 언뜻 보면 늑대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가져 카운티의 경찰서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늑대-혹은 늑대 혼혈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전적이 있는 이 거대한 개는 늘 짐승답지 않게 메마른 눈을 한 채 포갠 앞발 위로 머리통을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가끔 제 주인이 대릴,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면 그 눈 안에 있던 무료함이나 메마름을 싹 지운 채로 컹, 하고 다정하게 짖고는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그러니까 동네의 꼬맹이들의 관심이 지겨워질 때마다 카운터에서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켜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누워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오늘은 카운터에 있구나. 안녕, 대릴?"

"으르릉... 컹!"

"어이쿠, 이 녀석 성질 좀 봐."

 

그럼 못 써, 대릴! 하는 소리가 주방에서 날아왔다. 릭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카운터 너머 주방에서 나타나는 윤과, 윤의 잔소리에 모르는 척 고개를 푸르르 터는 대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전대 카페 주인이었던 스콧이 있었던 때부터 윤이 간판을 바꾸어 단 채 다시 카페를 운영하는 이 때까지 줄곧 카페를 드나들었어도 대릴에게 붙임성 있는 인사를 받는 것은 멀고 먼 훗날인 듯 했다. 어쩌면 늑대로 오해 받았을 때 릭이 저를 윤과 떨어뜨려 놓으려 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거 뒤끝 한 번 긴 녀석일세,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릭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대릴에게서 눈길을 떼고 카운터로 가까이 다가온 윤을 향해 웃었다. 긴 머리를 묶어 내린 윤이 민망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 미안해요, 릭. 얘가 영 사람들하고 정을 못 붙이네요."

"뭐, 그래도 사람을 아예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아? 주디스하고는 잘 놀아줘서 그럴 때마다 고마운걸."

"하긴, 그래도 아기들은 자기 나름대로 예뻐하는 것 같더라구요. 오늘도 라떼 세 잔이죠?"

 

셰인이 마실 라떼에는 우유 적게, 릭이 마실 거에는 우유를 좀 더 많이, 아브라함이 마실 라떼에는 시럽 조금! 막힘 없이 나오는 카운티 보안관과 보안관보들의 취향을 들으며 릭은 눈썹을 한 번 찡긋 치켜 올렸다. 몇 년 동안이나 같은 카페를 들락거렸으니 입맛이 외워질 만도 하지. 윤은 그런 릭을 보며 가볍게 웃곤 허리를 굽혀 여전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같은 표정을 한 대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릭한테 자꾸 못되게 굴면 안돼, 알았지? 하는 말에 대릴은 곧게 뻗은 귀를 한 번 쫑긋 세우더니 풍, 하고 크게 콧바람 소리를 내며 다시 겹친 앞발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덩치 값을 하는지 고집을 부리는 태도에 윤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웃곤 찌글찌글 뭉개진 긴 콧등 위로 입술을 한 번 내려준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애완견과 주인의 모습이라고 치기엔 너무 인간적인 그 광경을 쓴 웃음으로 지켜보던 릭은 윤이 주방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둘레둘레 주위를 둘러보곤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대릴. 짤막한 부름에 늑대를 닮은 홀쭉한 얼굴이 뭐냐는 듯 눈동자만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거 녀석 참, 이제 너 안 데려가니까 좀 붙임성 있게 굴면 안 되니?"

"컹!"

"...아이고 그래, 내가 너한테 또 뭘 바라냐."

 

오래도록 총을 잡고 건달들과 드잡이 질을 했던 손에는 군데군데 굳은살이 가득했다. 머뭇머뭇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대릴은 콧등을 다시 잔뜩 주름잡다가 곧 멋대로 하라는 듯 뚱하니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성질 한 번 무시무시하지. 릭은 능숙한 손길로 짙은 바탕에 검은 얼룩이 번져있는 털가죽으로 덮인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마사지 하듯 세워 귀 뒤를 긁어주던 손가락 끝으로 목소리가 똑, 똑 소리를 내며 고였다. 그래도 네가 윤의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스콧이 죽었을 때... 그 때 우린 정말 다들 윤을 걱정했었거든. 다들 윤이 스콧을 따라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어."

 

그런데 윤이 널 데려오더니... 릭은 말을 잇지 못하고 피식 옅게 웃었다. 사흘 내도록 오던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 커피 원두를 사 들고 오던 스콧을 트럭이 들이받은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대체 언제 써놓은 유언장인지 본인의 전 재산과 카페를 윤에게 상속하겠다는 그의 자필 유언장을 피투성이의 응급실 침대 앞에서 읽게 된 윤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의식을 잃었다가, 응급실 침대에 눕혀놓은 지 세 시간도 안 되어서 병원에서 사라졌다. 휴대전화도 지갑도 들고 나가지 않고 그저 환자복을 입은 맨 몸으로 폭우 속으로 사라진 윤을 찾아 보안관보들과 윤의 오빠 노릇을 하던 글렌이 빗속을 헤매야 했다. 그렇게 이 조그만 카운티의 경찰서 인력의 반절을 기겁시키고 나서야, 윤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환자복 옷자락을 맨발로 질질 끌며 경찰서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로는, 늑대마냥 황금빛 눈을 번뜩이며 젖은 털을 푸르르 떨던 대릴이 있었다. 마치 윤을 지키듯 그녀의 옆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섬뜩하게 이를 드러내던 그 때의 대릴이.

 

릭은 다시 한 번 능숙하게 대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릴, 하고 짤막하게 부르자 늑대를 닮은 거대한 개가 주둥이를 위쪽으로 들어올렸다. 늑대 혼혈인지 알아보기 위해 불렀던 수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녀석, 들개로 자란 것 같아요. 게다가 온 몸이 상처 투성이고, 영양상태도 안 좋고... 하지만 사람 손 한 번 닿은 적 없는 녀석 같은데 윤한테는 유독 순하네요. 운명이라도 느낀 건가. 수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대체 어디에 있었고 어디서 저 큰 개를 데려온 거냐며 닦달하던 글렌에게서 몸을 돌린 윤이 팔을 벌려 대릴, 하고 대체 언제 지은 건지 모를 이름을 불렀다. 다른 이들에게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굴던 대릴은 꼭 어미를 좇는 새끼처럼 양순하게 그 품 안으로 스며 들었었다.

 

"어쩌면 너랑 윤은 정말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윤이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윤을 잘 부탁할게."

"컹, 컹!"

 

시큰둥한 태도를 버리고 다부지게 짖는 소리에 릭은 피식 웃었다. 이럴 때마다 정말 대릴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똑똑해 봐야 고작 개일 뿐인데도.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릴이 미간을 쭈글쭈글 구기고 다시 그에게 이를 드러내려는 찰나, 주방 안에서 라떼 세 잔을 종이 트레이 안에 담아온 윤이 릭! 하고 그에게 트레이를 내밀었다. 순서대로 아브라함의 것, 셰인의 것, 그리고 릭의 것이라며 짚는 손가락 끝이 햇살 아래서 하얗게 빛났다. 릭은 라떼들의 순서를 주억거리는 척 하며 윤의 발치에 누운 대릴을 향해 흘끗 시선을 돌렸다. 뚱한 표정으로 릭을 바라보던 대릴은 풍, 하고 코를 울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올리곤 윤의 종아리 쯤에 얼굴을 문질러댔다. 저걸 인간의 행동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대충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꺼져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 건방진 애완견이로고. 릭은 대릴이 늘 그를 보면서 짓는 표정을 따라 하며 대릴을 향해 한 쪽 눈을 찡긋거리곤 부러 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잘 마실게. 역시 이 카페의 라떼가 최고라니까."

"아하하, 별 것도 아닌걸요. 다른 두 사람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 그렇게 하고 말고. 흘끗 아래를 내려다보자 늑대를 닮은 길고 마른 얼굴이 차마 개의 그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릭은 언제나 타이밍을 잘 맞추는 사람이었고, 그의 본능은 이번에도 충실하게 도망쳐라! 하는 위험 경보를 보냈다. 그는 얌전하게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가, 한 번 더 윤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른 문 밖으로 나섰다.

 

닫히는 문 사이로 대릴이 크르릉, 컹! 컹컹! 하고 요란스럽게 짖기 시작했다. 그 위로 대릴, 너 또! 하고 핀잔을 주는 윤의 외침이 뒤섞이는 소리를 들으며, 릭은 소리를 죽여 킬킬 웃을 수 밖에 없었다.

 

3.

 

"대-릴."

 

어린 주인은 삐졌어? 같은 물음을 던지며 대릴의 곁에 앉았다. 대릴은 오늘 낮에 저에게 자꾸 싫은 소리를 하던 주인의 모습을 떠올려 콧방귀나 한 번 뀌어줄까 하다가, 제 얼굴 앞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다시, 대릴, 하고 부르는 주인의 모습에 컹, 하고 나직하게 짖으며 쭉 뻗은 주인의 무릎 위로 턱을 얹었다. 툭 튀어나온 뼈 끝이 뺨에 짓눌리긴 해도 그건 대릴이 가장 좋아하는 자세 중 하나였다. 그렇게 쭉 고개를 얹고 엎어져 있으면, 주인이 작은 손으로 귀 뒤와 목덜미가 이어지는 부분을 가만가만 쓸어주기 때문이었다. 반바지를 입어 툭 튀어나온 무릎 뼈를 혀 끝으로 삭삭 핥자 주인은 대릴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꺄르르 웃었다. 간지러워,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햇빛 쨍쨍한 날 마시는 물보다 더 달았다. 

 

"미안해. 그렇지만 너,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자꾸 퉁명스럽게 굴면 못 써,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컹! 으르르릉.... 컹, 컹!"

"으악, 미안미안!"

 

아이고오, 이 성질을 어떻게 하면 좋아아. 고개를 번쩍 들고 짜증스럽게 짖어대자 주인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날 만큼 환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끔 주인은 대릴을 약간씩 기분 나쁘게 해놓고 대릴이 짜증을 낼 때마다 대체 뭐가 좋은지 기분 좋게 까르르 웃어서, 대릴은 그런 주인을 볼 때마다 늘 인간이란 이상한 족속들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뭐, 그래도 웃는 게 싫은 건 아니니까 봐준다. 대릴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주인의 허벅지 위로 머리를 눕혔다. 작은 손이 다시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 내렸다.

 

밤공기는 찼다. 대릴은 따뜻한 피부와 체온이 잔뜩 묻은 치맛자락 덕에 따끈따끈하게 열이 오르는 턱으로 길게 하품을 했다. 주인을 만나기 전에는 언제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인간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이 덕지덕지 쌓여 있는 구석이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고 어둡고 좁은 동굴 같은 곳에서. 근방의 들개들과의 싸움에서 형이 목을 물려 죽은 이후로 대릴은 늘 외롭게 여기저기를 맴돌았다. 아무도 대릴을 무리에 넣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릴은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나는 통을 뒤지고(주인은 그것을 쓰레기 통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무리들이 먹다 남긴 것들을 뜯어 연명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늑대가 아니냐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제게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릴."

"그륵?"

 

주인은 이름을 불러놓고 대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언제나의 버릇이었다. 대릴은 제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꼭 그것이 빗방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 그것은 혀를 내어 핥아보면 혀 끝에 물비린내를 남기고 녹아 내릴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속에 담아두는 것이 많은 주인을 위해 대릴은 재촉 없이 나직하게 목 안 쪽으로 그르릉, 그릉, 하고 울음소리를 울리며 기다렸다. 아무 말 없이 대릴을 바라보던 주인은 곧 다정한 손으로 대릴의 귀 뒤를 손 끝으로 긁어주었다. 그 감촉이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대릴은 저도 모르게 멀뚱하게 뜨고 있던 눈을 감고 길게 숨 소리를 냈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주인은 그렇게 속삭이며 대릴의 미간으로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문질렀다. 바람에 실려 뺨 위로 달라 붙었던 꽃잎처럼 부드러운 감촉에 대릴은 혀 끝을 내어 주인의 목덜미를 슬그머니 핥았다. 오늘 왔었던, 전에 주인과 대릴을 떨어뜨리려고 했으면서 근래 들어 친한 척을 했던 수컷 인간(대릴은 그를 정말 싫어했다. 언젠간 다리를 물어뜯어주겠다고도 생각했다.)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네가 윤의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주인은 대릴의 미간에 다시 한 번 입술을 내렸다. 휘어진 목덜미에서는 잔뜩 단 꽃잎 향기가 났다. 다정한, 다정하고 따뜻한 인간. 대릴은 고개를 들어 주인의 목덜미에 까아만 제 코 끝을 묻었다.

 

바보 같은 어린 인간. 대릴은 그런 생각을 했다. 주인은 아마 모를 것이다. 사실 곁에 있어줘서 다행인 건 대릴에게 있어서의 주인이라는 걸. 길거리를 돌면서 인간에게는 돌팔매질을 당하고 동족들에게는 위협받던 대릴을 향해 처음으로 품을 내어준 사람이 주인이라는 걸. 주인이 없었다면 제가 어떤 끝을 맞이했을지 대릴은 가끔 어렴풋하게 생각해보곤 했다. 인간이 던진 돌에 맞아 죽거나, 그게 아니면 같은 들개들의 이빨에 물어 뜯겨 천천히 죽어가거나... 지금처럼 안아주는 품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도 없는 곳에서 죽어갔겠지. 다정한 입맞춤도 가득하게 채워주는 체온도 없는 곳에서. 대릴은 가끔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이 다정하고 상냥한 주인에게 고맙다고, 함께 있어 주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나랑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대릴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인의 뺨을 핥았다. 웃음기를 가득하게 머금은 반짝이는 눈동자가 대릴과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꼭 입 안에서 살살 녹아 내리는 커다란 고깃덩이를 물었던 때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대릴은 주인이 웃는 것이 좋았다. 주인이 웃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것 같았고 아무 것도 없는데 온 몸이 따뜻해졌다. 대릴은 다시 나직하게 컹, 컹, 하고 짖으며 주인의 목덜미에 코 끝을, 혀 끝을 문질렀다. 날이 따뜻해지고 노오란 가루들이 허공에 떠다닐 때마다 피어 오르는 꽃 향기가 났다. 주인이 소곤소곤, 귓가에 쪽쪽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앞으로도 쭉 함께 있어줄래?"

"컹!"

 

응, 같이 있을게. 너랑 같이, 계속.

어린 주인의 꽃처럼 예쁜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대릴은 재채기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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