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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나.”

“…….”

“그립지 않아.”

“…….”

“하기야 네게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이던가.”

 

붉은 비늘이 오소소 돋은 커다란 꼬리가 은의 옆에 푹 내려앉았다. 제 옆에 무겁게 자리한 꼬리 쪽으로 눈을 굴린다. 저 꼬리에 자주도 맞았었지. 내 몸집만한 꼬리로 몸을 틀어 누워 머리를 기댔다. 뜨끈한 열기가 머리를 타고 전해져오나 두텁고 딱딱한 비늘 탓에 뒤통수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하지 말라는 거지?”

 

그는 말을 않는다. 폴리모프를 할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의 여부조차도 알 수 없다. 오로지 그의 시선과 몸짓에서 그의 뜻을 찾아내야했다. 거의 이십여 년을 함께 살다시피 했으니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이지. 당최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여유작작.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템이 분명함에도 그는 말이 없다. 언제부터 그렇게 조용했다고. 용은 지능이 높다고 들었다. 애초부터 그가 용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사람이지 않았던가. 심술을 부리는 건지 뭐가 하고 싶은 건지.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그런대로 살 수 밖에. 내가 입을 다물면 동굴에는 적막만이 자리할 뿐이다. 푸르륵푸르륵 하는 커다란 짐승의 숨소리가 고작. 죽음으로 물든 이 숲에는 바람에 잎새가 이는 소리마저 들을 수 없다. 아침을 알리는 새의 지저귐도, 동물의 발자국소리도 마찬가지로 이 숲은 고요하다. 이로 말할 수 없으리만큼. 숲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오직 나. 그리고 이 망할 드래곤. 그리고 이따금 말라비틀어진 낙엽과 죽은 시체, 백골 따위를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던가. 숲은 독기가 가득하다. 발을 들인 생명체는 살아 나갈 수 없다. 그의 자의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일이다. 내 꽃들도 그 법칙에 예외란 없었다. 꽃을 피울 수 없는 곳에 꽃을 피우고 잎을 영글게 하는 것이 나의 마법. 피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피어나자마자 시들어버리는 꽃들을 막는 것은 너무나도 부질없는 짓.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죽음을 등에 지고 사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멸룡 마도사였더라면 무언가 달랐을까. 멸룡 마도사였더라면, 적어도. 그의 머리 위에 화관 하나라도, 생명의 꽃 하나라도 얹어줄 수 있었을까. 에릭? 그의 꼬리 끝을 매만지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자리했다.

그가 드래곤이 된 것을, 지금 이 모습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것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따금 그 큰 꼬리로 저를 괴롭히는 괘씸한 행동과 방대한 몸집 탓에 불편한 점은 몇몇 있었어도 기어코 나는 그의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다. 알려는지 모르겠다만.

잡은 꼬리가 꿈틀거렸다. 몸과 머리는 미동이 없다. 그는 늘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곤 했다. 실은, 그가 움직이는 것을 웬만해서 본 적이 없다. 내가 없을 때는 움직이는 지. 슬슬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그의 툭 튀어나온 입을 잡고 물으면, 푹 숨을 뱉어내면서 이마를 맞대어왔다. 안심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아픈 게 아니라면 기운이 없는 건가 싶어, 물어봐도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나름 생각을 고하여 그리운 이라도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싶어 그런 것도 후보에 올려봤으나 큐베리오스를 데려오는 것에는 역시나 무리, 다른 육마장군들을 데려올까 물으면 그때는 또 명백히 싫다는 의사를 표하며 나를 째려봤다.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그리고는 태연스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게 아닌가. 뭐가 충분하다는 건가. 나로 충분하다고? 그의 코를 툭툭 치면 브레스가 훅, 날아오는 탓에 그 뒤로 골골대느라 제대로 묻지도 못한 일이 있기도 했다.

나 원 참, 제멋대로인 것에도 정도가 있지. 잊을 만 할 쯤 다시 물어보면 이제는 여느 때와 같이 시종일관 답이 없다. 그가 끈질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몰라. 나도 이제 슬슬 포기할 차례가 되었다. 아아, 그래. 사실은 알고 있다. 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겠지. 보여줄 수도 없겠지. 그가 이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 주위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나에게만 모습을 허용하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면 나만은 끝까지 그의 옆에 자리할 수 있으니까? 그의 옆에 있더라도 죽지 않으니까? 어느 쪽이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건 그의 사랑과는 별개의 이야기일 테지.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할 일이었다. 그와 나의 관계와 감정 따위는. 그래서, 너는 지금 괜찮은 거냐. 이대로 만족 하는 거야, 에릭? 대답이 오지 않을 걸 알고서, 이미 그가 전하려는 답을 알고서,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속으로 계속 물음을 던진다. 에릭. 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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