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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리스 드림

*캐해석 주의

*설정 날조 주의

*급전개 급마무리 주의

 

 

 

도시의 이름은 헬사렘즈 로트. 한때는 뉴욕. 하룻밤 만에 붕괴와 재편성을 거쳐 이차원의 경계가 된 이 도시는 지금… 이계와 인접한 경계점. 지구상에서 가장 험악한 긴장 지대로 변했다. 안개로 흐릿해진 도시에 꿈들 대는 기괴 생물, 신비 현상, 마도 범죄, 초상과학. 한걸음 잘못 디디면 인계는 침식당해 거스를 수 없는 혼돈에 삼켜지고 만다.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암약하는 비밀결사 라이브라. 이 이야기는 그 구성원들의 싸움과 일상을

 

“아니, 아니, 아니, 누나 잠깐만! 갑자기?!”

 

기록한 것 중 하루인 어느 날. 평소 누나와의 통화에 언성이 높아지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에 일을 하고 있던 동료들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 지랄 맞은 성격 때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쳐도 누나와의 대화에선 항상 나긋하고 상냥한 동생 역할을 해오던 그가 곧 폭발할 것 같은 표정과 다르게 빠르게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그를 보면 다급해 보이기도 했다.

큰소리를 내서 누나가 놀란 것인지 언성은 낮아지고 다시 상냥한 목소리로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큰 소리를 내려다 자유로운 한 손은 곧 터질 것 같이 주먹을 쥐고 크라우스가 사용하는 책상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친다. 심각한 얼굴로 알겠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고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알 수 없는 단어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 있냐?”

“누나가 여기 왔어.”

“아, 그래?”

 

별일 아니네. 라고 중얼거리며 별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재프 옆으로 그의 얼굴을 본 레오나르도의 표정은 재프를 향해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게임기 화면만을 보고 있는 재프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어디선가 나타난 손은 빠르게 재프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별일이 아니라니! 여기가 어디냐! HL이잖아! 미쳤어? 누나가 이렇게 위험한 곳 제 발로 찾아왔다고 그 바보가!! 게다가 스스로 택시 타고 온다잖아… 택시가 얼마나 위험한데.”

“아, 저기요. 저 지금 매우 어지럽거든.”

“이렇게 위험한 나라에 도시에 왔다는데 걱정이 안 돼? 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에 부하들을 배치해놨어야 했어. 아니지. 캐나다로 보내서 24시간 감시하라고 해야 했어. 아오, 진짜-!!!”

“그럼 지금이라도 마중 가는 게 어때?”

 

언성이 높아지면서 빠르게 흔들리던 재프의 몸은 말이 끝나면서 동시에 멈췄다. 흔들림이 멈췄을 땐 재프의 입에서 뭔가 영혼 같은 것이 빠져나오는 것 같아 옆에 있던 레오나르도가 빠르게 안 된다며 그것을 밀어 입안으로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K.K의 말에 몸을 돌려 역시 누님이야 라며 와락 안았다가 금방 제 옷을 챙겨 보스인 크라우스에게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빠르게 나간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정신을 차린 재프가 짜증을 내며 게임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재프씨, 그러게 왜 그렇게 말해서…….”

“아, 뭐! 그 녀석이 시스콤인게 잘못이지. 나이가 몇인데 누나누나 하면서 말이야.”

“어머, 얘가 급하게 나간다고 폰을 두고 나갔네?”

“알아서 찾으러 오겠죠.”

“그렇겠지.”

 

그래도라는 크라우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금방 들어가는 것 보면 말을 하려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해 넘어가기로 했나 보다. 각자 자기 일을 시작하며 조금 전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평화로움을 느꼈다.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소리와 테라스 문이 살짝 열렸는지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이제 곧 다가올 겨울임에도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조용해진 사무실 안, 분명 조용한데 왠지 모를 불안감도 느껴졌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걸까. 뭔가 잊어버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어디선가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크라우스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폰. 그것은 아까 급하게 나가 본인이 찾으러 올 거라고 했던 그의 것이었다. 화면엔 부하 23이라고 적혀있었고 통화와 이어지는 문자 알람 진동에 게임을 하고 있던 재프는 짜증을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재프찌 어디가?”

“폰 가져다주려고요. 걔네 회사로 가면 되겠죠?”

“처음 보는 모습이군요.”

“뭐야?”

“역시 재프찌네.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왜 이쪽을 보는 거야, K.K.”

 

제드에게 한마디 하려다 됐다고 폰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울려대는 폰에 만약 그가 네 누나와 만나지 못했다면 그 화살이 자신에게 넘어올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리고 늘 그가 말했던 짜증이 날 정도로 착하고 눈치도 없고 운도 없지만 제 눈에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누나의 얼굴도 궁금하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자신에게만 사진을 안 보여줘서 상상으로만 그려야 했던 그 얼굴이. 그 이후로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히죽히죽하던 그는 골목길 끝에 있을 목적지를 향해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몸을 꺾다 골목길에서 나오던 사람과 부딪힌다.

작은 탄성과 뒤로 넘어가려는 몸에 허우적거리는 팔을 보고 붙잡았다. 동양적인 외모와 골목에서 나온 것이 어울리지 않는 밝은색의 긴 원피스. 높게 묶은 머리카락은 갑자기 눈앞에서 머리끈이 풀어진 것인지 끊어진 것인지 묶은 타래가 풀려 살랑이며 내려와 어깨와 등 뒤로 안착했다. 놀란 얼굴을 한 그녀가 자신을 붙잡은 재프의 손위에 제 손을 얹었다.

손을 떼어내려는 것인지 재프의 손을 꽉 잡은 순간 이질적인 냄새에 재프는 그녀를 잡아 당긴 뒤 손을 놓고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그대로 안아 들었다. 상체가 앞으로 숙어지고 다리가 들려 몸이 기우뚱하자 놀라 소릴 낸 그녀보다 눈앞에서 날카로운 뭔가를 들고 다가오는 이계인이 들어 왔다. 누굴까. 처음 보는 이계인이었다. 골목을 통해서 온 그녀를 뒤쫓아온 걸까. 상황파악을 못 하고 물음표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씩 웃었다. 다른 한 손엔 오일라이터를 쥐고 꽉 눌렀다. 피가 솟구쳐 나와 어느새 하나의 붉은색 검이 만들어졌다.

 

“이봐, 거기. 여자만 넘기면 살려줄 테니까 두고 그냥 가라.”

“두고 가면 어쩔건데?”

“넌 상관없는 일이니까 신경끄시지!”

“어떡할래, 너. 저 녀석들이랑 갈래?”

 

그녀는 자신을 들고 있는 재프와 맞은편에 있던 이계인을 번갈아 가며 보다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그녀의 눈엔 둘 다 위험해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재프쪽이 그나마 안정하다고 느껴진 모양이었다. 눈치 없이 내려달라고 중얼거리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놔주면 얼마 못 가 붙잡힐 수도 있다. 동료들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고. 재프는 그녀를 더 꽉 들어 잡았다. 등을 보이는 건 그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이 골목 안쪽으로만 들어간다면 그의 목적지도 있고 혹시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색의 검을 힘을 주어 잡았다.

짐처럼 들려진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그녀는 여러 감정이 섞여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시선은 이계인들을 향해있었다. 재프는 칼을 휘두르며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다. 머리 타래가 움직이면서 제 팔을 때렸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계인쪽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쇠파이프에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했다. 말과는 다르게 행동이 처음 싸워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재프에겐 그런 이유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연속으로 휘두른 붉은 검에 제 눈앞에서 쓰러지는 이계인들을 보고 그녀는 재프의 팔을 붙잡았다. 히어로님. 어째서 저런 식으로 부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덜덜 떨며 바닥에 엎어진 이계인들을 보고 괜찮겠지 싶어 내려주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뒤로 메고 있던 오래되어 보이는 토끼 인형의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이계인쪽으로 다가가자 재프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짓이야!”

“괜찮아요, 히어로님. 잠깐이면 되요.”

“아까부터 뭐냐 그 호칭은.”

 

중얼거린 재프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그녀가 내민 것은 응급키트였다. 본인을 다치게 하려던 이계인을 치료라도 해주려는 건지 응급키트에서 치료용 약품을 꺼내기 시작했다. 졸지어 히어로에서 나쁜 놈이 되어버린 것 같아 짜증을 내면서도 그녀가 이러는 이유가 있겠지. 재프는 가만히 서 있었다.

어설픈 치료를 마치고 그녀는 이계인들의 말을 들으면서 걱정하고 손까지 잡아주는 상황을 끝내고 나서야 이계인들에게 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계인들도 머리카락을 얻는다면 그렇다고 하면 됐을 것을.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행동을 한 것에 책임이 있다고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계인들에게 인사를 받고 손 인사로 답하는 그녀를 보니 이젠 더는 별일이 없을 거라고 말도 없이 원래 목적지를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짜증이 날 정도로 눈치고 없고 착할 수가 있다니.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던 것도 같은데 생각나지 않아 넘겼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재프는 화면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뭐냐, 사냥개.”

[잘 죽길 빌어주려고.]

“뭔 소리야?”

[아 참, 그리고 네 뒤에 있는 여자가 죽어도 넌 죽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럼.]

 

상대 쪽에서 먼저 끊긴 통화에 제 위를 덮쳐오는 큰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설마. 고개를 돌렸다. 큰 그림자의 주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이계인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 하루는 짜증이 나는 일투성이다. 아니 짜증, 그 자체다. 재프는 다시 오일라이터를 꺼내면서 혀를 찼다. 몸을 돌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 뒤로의 일은 정신없고 내용이 점점 길어지니 정리해본다면 거대한 이계인이 그녀를 공격하려 하는걸 구해줘서 첫 만남 때와 같은 자세로 한 시간을 피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를 반복했다. 눈치가 없는 그녀는 그 와중에 계속 재프를 히어로님이라며 불렀고 가만히만 있어도 반은 도움이 되는 건데 말을 걸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려 해 평소에 임무를 나가는 것보다 힘들었다. 쓰러진 거대한 이계인 쪽으로 다가오는 경찰을 보고 빠르게 몸을 숨겼다. 많은 일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괜히 스마트폰을 챙겨 나온 게 문제였던 걸까. 동료의 말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던 걸까. 제 등 뒤로 숨어 자신을 따라 상황을 지켜보는 그녀에게 오늘 하루의 일들을 보상받고 싶었다. 돈으로든 물건이든, 식사든 술이던 뭐든지 상관없었다. 어떤 보상을 해줄지 몰라도 그것으로 기분이 좋아질지도 알 수 없었다.

 

“야.”

“호.”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가 획 돌아갔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에게 재프는 한숨을 쉬며 몸을 바로 세웠다.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 이 여자한테 한 말이니까.”

“우리 누나한테?”

“어. 너네 누나한테.”

“히어로님을 알아요?”

“누나 얘가 내가 말했던 걔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고 했던 애.”

 

웃으면서 독설을 날리는 그는 이어서 제 누나에게 왜 히어로라고 부르는지에 관해 물었고 대답을 하면서 재프는 둘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둘이 닮았던가. 아닌데. 머리카락 색도 다르고. 분위기가 조금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재프는 평소 그가 제 누나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짜증 날 정도로 착하고 눈치도 없고 운도 없지만 제 눈에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예쁜 건 제 눈에 이쁘다고 했으니 그건 넘어가고 다른 말엔 본인이 직접 겪어봤으니 충분히 공감되었다.

평소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누나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 역할을 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자신이 그동안 당했던 것들이 생각났는지 재프는 그의 누나에게로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조금 전 어떤 보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 보상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님, 나 동생 친군데 잘해줄 거지?”

“당연하죠. 아 참. 우리 지금부터 뭐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아니, 누나 거기는 내가 누나랑 둘이서 먹으려고 예약한 곳인데.”

“절 구해준 히어로님이고 네 친군데 같이 해도 괜찮잖아요.”

“그래. 우리 친구잖아.”

 

재프가 씩 웃을수록 남동생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그녀 몰래 재프에게 턱짓을 했지만 재프는 못 본 척 일부러 그녀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면서도 같은 이곳의 일상은 다른 곳에선 비일상이었기에 하나하나 따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한숨 소리와 웃음소리, 그 뒤에 등을 꼬집어 고통을 참는 소리가 시끄러운 HL에 녹아들었다. 재프는 조금 전까지 듣기 싫었던 자신을 히어로라고 부르는 그녀의 호칭이 점점 늘어날수록 마음에 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친해지는 것도 괜찮겠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게임도 보면 원하는 아이템이나 동료를 얻기 위한 퀘스트가 힘들지 않은가. 오늘 있었던 일도 그런 퀘스트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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