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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이렇게 대립해있어야 하는거지.'

 

"알고 있잖아."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적대적이여야만 하는거지?

이 질문은 내겐 참 모순적이다. 히어로와 빌런, 절대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늘. 왜 갑자기 바뀌게 되었느냐, 묻는다면.. 아마도 너 때문이다. 네가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이기 때문이겠지.

넌 사람들을 구해주고 그들에게 응원받는 히어로. 그러나 나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만들고 그들에게 질타받는 빌런.

어울리지 않을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 이 상황을 보고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우리들이 적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히어로인 너는 반드시 빌런인 나와 싸워야할 운명.. 언젠가 꼭 오게 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 누가 알았는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 대립한 히어로와 빌런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알지?"

 

'어디서부터 문제였던가?'

 

"그런데 내가 왜 당신에게 등 돌렸는지, 알아?"

 

'어쩌다가 그랬던가?'

 

"당신이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평소에 하던 말버릇인 '냥'도 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해오는 너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아, 그랬었지. 분명.

얼마 전, 나는 괴인이 되라는 제안 비슷한 것을 받았다. 그것도 같은 마을의 선배였던 녀석들에게.

그 녀석들은 괴인이 된 채로 내게 접근해 괴인이 되라며 제안해왔다. 당시 난 사이타마에게 이길 방도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떠오르지 않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도 그 녀석에게 이길 수 없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왔던지라, 인간으로서의 삶에 미련따위는 없었다.

결국 심적으로도 몰려있었던 나는 끝내 괴인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걸 알게 된 너는 지금 내게 화를 내고있는 거겠지.

하지만 이미 받았던 제안에, 나는 괴인 세포를 먹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다보니 괴인화에는 실패해버렸다고 한다해도, 너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 내게 실망한 게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더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게서 등 돌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너는 그만큼 착하고 상냥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이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히어로를 하고 있는거겠지.

 

 

"실망.. 도 있지만 말야. 나는 당신보다 미운 건.. 당신을 그 선택으로 도망치게 만든 원인이 더 미웠어."

 

".....?"

 

"그렇지만, 그렇게 도망친 당신도 미워. 내가 있는데도 사람의 삶을 포기했단 사실이 분했어. 당신에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어차피, 미래라 한들 똑같이 이렇게 대립할 거였다. 좀 더 일찍 와버린 것 뿐."

 

"그래서... 내가 한 걱정도 보이지 않았구나. 내가 전혀 보이지 않았었던거네."

 

 

아니, 전혀.

사실은 처음엔 너의 얼굴이 어른거렸던 건 사실이다.

네 얼굴이 떠올라서 망설인 건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하게 거절했었다.

너와 같이 강해지면 된다, 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점점 생각할수록, 내가 너와 진전한다 한들, 이 정도 저력으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괴인이 된 녀석들의 스피드가 노력만을 해온 이 몸을 넘어섰기 때문에, 점점 나의 선택지는 그런 쪽으로 좁혀져갔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 나는 너까지 포기하면서까지, 그런 길을 걸었다.

너를 배신하고, 너를 모른척하고, 네가 해 준 말을 잊어버리고, 너를 그대로 버려둔 채로 널 외면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마지막 발버둥일 수도 있었다.

괴인이 된 나를 네가 죽여주길 바랬던 마음이었다. 이런 잘못된 길을 걸어간 나를 죽여서라도 바로잡아주길 바랬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함으로서, 그 결과는 괴물이 되지못한 빌런과 약한 인간을 구해주는 히어로로 여기에 서있다.

원래라면 너랑 싸워야 하는데,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여야만 했는데.

너에게 칼을 들이대는건, 첫만남 이후로 그만둔지 오래다.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게 반대인 입장이 된다면.

그때와 반대라면 넌..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럼, 조금 운명을 바꿔보겠다."

 

"무슨 의미야 그건..?"

 

"과연 첫만남 때의 그 상황이 반대가 된다면 넌.. 어쩔거지?"

 

 

다만, 지금은 관중이 있다는 것과, 내가 죽음으로서 그 관중들이 환호하게 되고, 넌 명예를 얻게 된다는 패널티가 있다는게 다르지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너에게 내 칼을 내밀었다.

그렇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할 수 있다면, 날 죽여라' 라고 말하고 있는거다.

너도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기억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너는 기억이 나는 모양인지 그런 나의 말에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듯 해보이지만, 나만은 알 수 있다. 나만이 알 수 있었다.

묘하게 슬픈 얼굴로 바뀌었다는 것을.

너는 내 칼을 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죽일 절호의 찬스인데, 왜 받지 않는거냐고 비웃듯이 물으면 넌 그저 나를 노려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무서운 건, 네가 노려본다는 사실이 아니라 너의 그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눈물이 자칫하다가는 떨어질까봐.

 

 

"결국 최종 선택은 이런 거였어?"

 

"애초에 싸우지도 못할거였다. 게다가 처음과 끝이 같으면서도 정 반대라니. 재밌지 않나?"

 

"재미없어!!!! 농담 하지마!!!!!"

 

"그렇게 되면, 처음에 네가 내게 부탁했던 건 단순한 농담이었나?"

 

"......."

 

 

너는 그 말에 내 칼을 받아들였다.

네가 그때 내게 부탁했던 건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진심으로 너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이런 나를 죽여서라도 그 잘못된 길에서 구해달라고.

너는 그 대답이라도 하듯 나를 넘어뜨려 칼을 들이대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 칼을 들이미는 너의 손에는 죽일 의지가 없는 것이 느껴졌다.

날 죽이기 위한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꾸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위장한 부탁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힘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처음의 나와 똑같잖냐, 지금 네 모습.

단 하나 다르다고 한다면, 네가 흘리는 눈물이 내 얼굴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는 끝내 나를 죽이지 못하고 나의 칼을 내 얼굴 옆에 떨어트리고는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어떻게 하라고, 이런 걸.. 나는 못해..."

 

"어째서지? 나는 빌런이고, 너의 적이다. 죽일 이유라면 충분할 터."

 

"그치만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건데...?"

 

"난 이미 너와 함께하는 삶을 버리려고 했던 놈이다. 그런 놈을 용서하겠다는 말이냐."

 

 

너는 나의 힘없는 말에 내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그 소리가 크게 주변에 울려온다. 그리고 너는 다른 내 뺨을 또 때린다.

그래, 많이 화났었군. 슬펐겠지. 내 잘못이다. 왜 난 그걸 자각하지 않았었을까.

내 마음의 상처가 더 클까, 네 마음의 상처가 더 클까, 이런걸 생각하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더 알아줬어야 하는건데. 나는 너의 상처조차 보지않고 너에게 다른 상처를 줘버렸다.

너의 얼굴을 마주할 내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런 얼굴을 너에게 보이는 건.

너무 힘들어.

 

 

"만약 내가 좀 더 알아줬더라면, 당신의 미래를, 우리의 미래를 구할 수 있었을텐데."

 

'아니, 지금으로도 충분히 늦지 않았다.'

 

 

너의 행동이 멈추자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너는 명예따위 바라지도 않고, 나를 선택해주었다.

이럴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거지?

너에게 미안해서 너를 포기한 나는 대체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은거냐.

모르겠다.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넌 나를 위해서 내게 도망치라고 말해왔다.

민중들에게 들려올 온갖 질타를 견딜 자신을 하고, 너는 내게 다시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등은 전과 달랐다.

너는 그 등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도망갔다!!!!!"

 

"왜 안잡는거야!!!"

 

"나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로 죽일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대립하게 된다면 나... 그때는....'

 

 

 

.

 

 

 

.

 

 

 

.

 

 

 

그 일이 있던 지 한 달이 남짓 지났다.

웃기게도 그 후로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싶었지만 내 얼굴을 너에게 보일 수 없었다.

그 때, 너의 얼굴을 봤더라면 이 음속의 소닉조차도 울 것만 같았으니까.

그 날 너의 도망치라던 결의가 담긴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너에게 상처만 주고 마는 존재다. 그런 나를 사랑하는 너에게 고맙고 미안한 게 오늘도 많아진다.

그 생각이 들자 힘들 때마다 언제나 올려다보았던 하늘을 다시 우러러 보았다.

빛나며 파랬던 하늘이, 해가 져가면서 붉은 빛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든다.. 마치 너 같이..."

 

 

지금이라면 다시 너에게 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히어로든 빌런이든 상관없다고.

비록 이런 나라도..

 

정말 사랑한다고.

 

 

 

"뭐?! 네로 네가 졌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정말이야. 졌다니까."

 

"거-짓말이야!!!"

 

"진짜라니까 그러네, 냥-"

 

 

이 승부의 끝은 정해져있었다.

어떻게 하든간에 나의 패배로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미래에도 정해져있다.

나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승부를.

몇번이나 반복해도 같아, 소닉.

그러니까, 계속 전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줬으면 해.

그래야만 평화로이 끝나는 우리들의 싸움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는 것만큼, 편한 죽음은 없을테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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