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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 AU를 위해 비파의 설정을 조금 바꿨습니다.

 

 

 

  빌런의 삶은 고달프다.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히어로들이 앞을 막아선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도 지루할 뿐이라, 처음에는 히어로들과의 전투도 재미있었다. 히어로가 잔뜩 상처 입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것도 한두 번일 때의 이야기다. 나는 눈을 반쯤만 뜬 채로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히어로를 보았다.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니, 실험을 위해서 데려간 게 당연하지 않은가. 마주하는 새로운 히어로들마다 어쩌면 이렇게 대사가 같은지. 사실은 히어로 연합이라는 게 있어서 연합 공통 매뉴얼이라도 존재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차라리 그런 거라도 있으면 이렇게 지루하지도 않을 텐데.
  나는 홍차가 마시고 싶어져서 침을 삼켰다. 티백 홍차를 주로 찾던 시간도 이제는 갔다. 일주일 전에 주문한 티세트와 테이블이 어제 마침 도착했다. 이 전투가 끝나면 거실에 앉아서 마실 차 종류를 고민했다. 어제는 얼 그레이를 마셨으니 오늘은 조금 달달한 향을 맡고 싶기도 했다. 그 때 갑자기 발로 땅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앞을 제대로 보자 이번에는 히어로의 파트너가 소리쳤다.
  “야, B! 사람 말 무시하냐!”

  “갑자기 말이 짧네요?”

  “니가 얘 말 안 들으니까 그런 거잖아!”
  “지루한 걸요.”

  “야, 너만 지루한 줄 아냐? 우린 지겹거든?! 니가 맨날 사람들 납치해갈 때마다 출동해야 하는데 우리 생활이 남아나겠냐?!”
  “그럼 나오질 말든가.”
  “그게 가능하면 여기 있지도 않지!”
  나는 길게 하품을 했다. 그러자 파트너는 내 빌런명을 외치며 더욱 날뛰었다. 원래 나는 박사라는 호칭으로만 불렸다. 딱히 이름을 댈 마음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내 연구를 위해 사람들을 데려오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선 박사라는 직책명으로만 불렸다. B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옆 도시의 빌런, I와 만나고서부터였다. I는 히어로와의 싸움 도중 나타났다. 공격에 의해 일어난 격풍에 날아가서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나를 구해줬다. 그 후부터 종종 히어로들과의 싸움에 I가 끼어드는 일이 생겼다. 주로 나를 도와주거나 방해했는데, 히어로들을 물리친다는 결과는 같았지만 패턴이 너무나 다양했다. 더군다나 히어로들 앞에서 나를 잘 아는 것처럼 B라고 부르는 게 제일 곤란했다. 덕분에 나의 이름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히어로가 총구를 밑으로 향하며 몸을 곧게 세웠다. 드디어 싸우려는 건가 싶어서 나도 자세를 바르게 했다. 히어로는 이제까지 보아온 히어로들과 다르게 차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제 I를 만났어.”
  “옆 도시라도 갔나보지?”

  “아니, 실험 기구를 만들고 있던데?”
  “그래?”

  “도시 외곽에 있는 네 실험실에서.”
  “거기서 왜?”

  “몰라. 다만 오늘도 거기에 있을 거야.”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제 경보가 울렸다거나 침입자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히어로는 발을 뒤로 물리며 말했다.
  “I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히어로가 빌런에게 조언하는 진풍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우리 오랜 시간 싸웠잖아? 그 정도 의리는 있어.”
  “빌런에게서 의리를 찾다니 과연 히어로답네.”

  나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구름 사이로 내리쬔 햇빛을 받고 칼날이 빛을 발하는 순간, 히어로와 파트너에게로 뛰어들었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왼쪽으로 기울인 머리 옆으로 총알이 허공을 뚫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히어로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I는 감추는 것이 많은 자였다.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말하는 점에서 이제까지 만났던 빌런과는 달랐지만 동시에 의심스러웠다. 얼굴마저도 검은 가면으로 완전히 가리고 있다. 푸른 눈과 머리카락만이 그의 몸에서 드러난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지, 왜 그 이니셜을 알고 있는지 어느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I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다지 말하지 않았다. 빌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땐 어떤 일을 하는지 같은 것은 말해줬지만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I만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은 불안한 요소였다. 
  도시 외곽에 있는 실험실은 히어로들에게 많이 노출된 곳이긴 하다. 내 실험 정보를 얻으면 히어로와 경찰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했다. I가 실험실을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무언가를 만들기에 부적합한 곳이었다. 아주 간단한 실험만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기구만 놓아뒀다. 지금 I가 그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실험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물론 중요 정보를 그곳에 두지는 않았지만 단 한 가지는 지하에 묻어두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실험실에 도착하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경비로 세워둔 로봇은 작동이 멈춘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실험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I,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죠?”

  “B, 왔네.”

  I는 실험실 정가운데에 기구를 들고 서있었다. 나는 재빨리 I에게로 다가갔다. I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푸른 눈으로 나를 직시하였다. 특유의 검은 가면이 가까워지는 나를 향해 점점 밑으로 내려왔다.
  “그 기구는 뭐죠?”

  “여기 뚫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여기는 왜 나타난 거죠?”

  “찾을 물건이 있어서 말이야. 그나저나 B, 내 예상보다 2시간 23분 10초 일찍 왔네. 히어로가 나타날 시간 아니었어?”

  “이기고 왔어요.”
  “역시 B야. 이렇게 빨리 끝낼 줄 알았으면 작업 속도를 높일 걸 그랬어.”
  “여길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I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기구를 아래로 향했다. 품에서 바로 단검을 빼어 들어서 그의 얼굴을 노렸다. 뒤로 젖혀지는 가면에 가로로 칼자국이 남았다. 나는 바로 더 깊게 칼을 휘둘렀고 그는 내 속도에 반응하여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목을 향해 찌르는 척 심장을 노리면 그는 마치 예측한 것처럼 피했다. 이를 세게 갈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몇 번을 피하던 그는 곧 반격하려는 듯 팔을 휘둘렀다. 기구가 나를 향해 날아오다가 곧 내 단검에 막혀 땅에 떨어졌다. 다시 칼을 다리로 향했지만 역시 그는 피해버렸다. 머리 위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B.”
  “뭐?”
  그 순간, 기구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구는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자동이라며 I는 웃었다. 나는 바로 기구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I가 나를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말했잖아. 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내 물건이라고? 그건 아이의 것이에요!”
  “그걸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네가 인체실험과 로봇실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이제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가져가야지.”

  I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족쇄처럼 그의 손은 나를 묶었다. 기구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걸 보며 나는 울부짖었다. 버둥거리는 내 힘을 온전히 제압하고 그는 기구가 땅 속 실험관을 들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커다란 실험관 안으로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은 여전히 변하는 것 하나 없었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이 몸 안에는 아이가 키워왔던 ‘감정’의 데이터가 남아있었다. 아이에게는 영혼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의 감정과 기억, 추억을 온전히 남기기 위한 실험을 반복해왔다. 바라는 건 오직 그와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 나는 점점 열리는 실험관을 보며 더욱 세게 발버둥 쳤다.
  “B, 그렇게 움직이면 다쳐.”

  “시끄러워!”
  “…어쩔 수 없네. 되도록 너에게 해를 가하는 일은 없게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뒷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점점 꺼져가는 의식 사이로 나는 고개를 돌려 I를 보았다. 그는 왼팔로 내 몸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가면을 벗었다. 검은 가면 아래로 드러나는 얼굴은 실험관의 그것과 같았다.
  “…아이?”

  “잘 자, 비파. 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온전히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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