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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당을~ 처리 합시다~, 우리는~ 정의의 히어로~!”

 

쓸데없을 정도로 박자와 음정이 정확한 노래는 얼핏 들으면 우습기 그지없었지만, 쫒기고 있는 빌런의 입장에서는 우습기는커녕 장송곡처럼 살벌하게만 느껴졌다. ‘아아. 하필 저 녀석에게 걸리다니!’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전과 13범의 은행 강도는 도저히 멀어지지 않는 노랫소리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히어로 협회 최고의 괴짜. 누가 빌런인지 의심 갈 정도로 자비 없는 공격. 한 번 목표로 삼은 빌런은 체포할 때 까지 쫒아온다는 코드 명 ‘마스터 M’.

자신을 쫒고 있는 여자, 오디빌 마이켈베르크에게 붙은 소문은 대부분 저런 악명에 가까운 것들뿐이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 진짜! 빌어먹을!”

 

소리를 내면 위치가 들킬 테지만, 어차피 오디빌이라면 숨소리를 감춘다 해도 쫒아와 자신을 잡을 테니 빌런은 될 대로 되라는 듯 분노의 감탄사를 내질렀다.

나쁜 짓을 한 놈이 이런 소리를 하면 모두가 비웃겠지만,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저런 인간은 히어로를 못 하게 하거나 차라리 빌런으로 만들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저렇게 정신머리를 놓은 것 같은 히어로가 마을을 지킨다면, 시민들만 불쌍할 뿐이다. 은행 강도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하! 거기구나!”

 

역시 들킨 건가. 빌런은 더 이상 도망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건물 옥상에 멈춰 서서 돈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 진 모르지만, 도망치다가 잡히는 것 보다는 싸우는 쪽이 승산이 있다. 맨 손에 스파크를 만들며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그는 제 빌런 명을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무적의 스파크 맨, 스파크 맨…. 인간은 감전당하면 죽는다, 죽는다….”

 

괜히 자신이 전과 13범이던가. 이번에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악에 상황에는 돈을 두고 튄 후 목숨이라도 보존해야 한다. 입으로는 열심히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론 이후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는 스파크 맨은 그저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건 그의 엄청난 판단미스였다.

 

“흐음, 그거. 자기최면 치고는 너무 촌스럽지 않아?”

“?!”

 

목소리가 들린 것은 제 뒤통수 쪽이었다. ‘아차.’ 다가오는 노랫소리와는 전혀 다른 음성에 온 몸의 털이 쭈뼛 선 그는 손에 전기를 방출하며 팔을 휘둘렀지만, 그 공격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닿지도 못했다.

 

“굿 바이. 스파크 맨?”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며 방아쇠를 당긴 또 다른 히어로는 걸터앉은 난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정확하게 상대방의 미간을 맞춘 그, 코드 명 ‘빌리 더 키드’는 시야에 들어오는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잘 안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익숙한 음색, 사랑스러운 걸음걸이. 쓰러진 빌런 위에 앉아 상대를 기다리는 빌리는 그녀의 뒤에 붙는 수많은 악명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설렘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잡았…, 어머.”

“안녕, 마스터. 오랜만이네.”

 

제 사냥감을 놓친 건데 분하지도 않은 걸까. 오디빌은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빌리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런 수준 낮은 빌런 하나 잡아넣는 것 보단 그와의 만남이 더 소중하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빌리는, 정말로 만나기 힘든 히어로였으니까.

오디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리운 얼굴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빌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 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그 손을 잡고, 가볍게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여전하네. 너도.”

“그거 칭찬이지?”

“물론이야. 아, 타깃을 가로챈 건 사과할게. 어떻게 해서도 널 만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거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손에 입을 맞추는 그는 발뒤꿈치로 빌런을 툭툭 쳤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의식을 잃은 은행 강도는 빌리의 발길질에 신음소리를 냈지만, 정신을 차리진 못했다.

 

“됐어. 난 실적 올리는 건 관심 없거든.”

“역시 여전하구나. 그런 점이 좋은 거지만.”

“그렇게 내가 좋으면 슬슬 협회에 들어오는 게 어때? 무소속은 자유로워서 좋긴 하지만, 사고 후처리도 힘들고 월급도 없잖아? 날 봐서라도 들어오는 게 이득인 거 같은데.”

“하하하. 그건 그래.”

 

입술이 닳을 정도로 오디빌에게 키스한 빌리는 아쉬운 듯 손을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 소속의 그녀가 움직인 거라면 곧 경찰들이 이곳으로 올 거란 뜻이었고, 그렇게 되면 정식으로 히어로 등록을 하지 않은 자신은 방해꾼으로 처리되어 빌런이랑 같이 잡혀갈 게 뻔했다. 아무리 눈앞의 그녀가 좋아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싫다. 아웃로우(outlaw)인 그에겐 정의와는 별개로 법은 언제나 귀찮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가질 수 없어서 더 안달 나는 게 있잖아? 마스터도 그렇지?”

“잘 아는 구나! 어쩐지!”

“하하. 물론 너를 가지고 노는 건 아니야. 알잖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렇게 거처도 소속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내가 유일하게 찾아가는 건 마스터, 너뿐이니까.”

 

이제 정말 가야할 시간이다. 그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오디빌의 얼굴을 가볍게 두 손으로 감싼 후, 땀에 젖은 이마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었다. 재회까지 걸린 시간의 공백에 비하면 시시하기까지 한 작별인사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이상의 것을 하기엔 장소가 부적절했으니까.

 

“다음엔 좀 더 근사한 곳에서 나타날게. 그럼.”

 

제가 앉아있던 난간으로 뒷걸음질해 다가간 빌리는 건물에서 떨어지듯 몸을 던지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나쁜 남자가 따로 없다. 이마를 문지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오디빌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나름대로 협회에선 컨트롤 할 자가 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이, 어쩌다 남자 하나에 코가 꿰여 이렇게 된 걸까. 한탄이 나오는 일이긴 하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뭐, 빌리도 마찬가지인가. 그건.”

 

분명 빌리도 자신 때문에 얽매여 포기해 버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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