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이렌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경찰들은 무전기와 권총을 들고 은행 근처로 모인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인질들을 풀어줘!’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경고의 내용은 분명 단호하고 엄격했지만, 정작 이 소란의 중심에 선 범인들은 전혀 위협을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코왈스키! 언제 끝나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스키퍼. 큰 은행인 만큼 보안이 단단해서 시간이 걸린다고요?”

“음! 알겠다! 그럼 5분 내로 끝내도록!”

 

‘아니, 그건 좀.’ 작게 중얼거린 코왈스키는 항의하려던 마음을 곱게 접어놓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스키퍼에게 항의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을 것이다. 그는 은근히 막무가내인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대장의 명령엔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자신들 아니던가. ‘펭귄 특공대’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대장님, 자꾸 바깥에서 발포할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걱정마라 귀여운 프라이빗. 저 인간들이 먼저 우리에게 발포를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한 번도 없었죠! 인질들 때문이지만….”

“그래, 그래! 인질이란 좋은 거야. 물론 우리는 절대 인질을 다치게 하지 않지만. 이렇게 얌전히 돈만 가져가는 강도가 몇이나 있다고, 안 그런가?”

“맞아요, 대장님!”

 

두 사람의 대화는 인질로 잡아놓은 손님들과 직원들에게도 충분히 들릴 정도로 컸다. 일단 죽지는 않을 테니 안심 한 걸까. 인질들의 무리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역시 인간들도 돈이나 물건보다는 목숨이 제일인 걸까. 그런 것은 정말 ‘자신들’과 똑같다. 코왈스키는 금고 시스템의 마지막 보안을 해제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자신들은 목숨 아까운 것도 모르고 대담하게 강도짓을 하는 중이긴 했지만 말이다.

 

“스키퍼, 다 했어요. 열고 내용물만 털면 끝입니다.”

“오, 좋군! 역시 빨라! 프라이빗! 내용물을 챙겨라! 리코는 아직 뒤쪽에 있나?”

“네. 뭐, 무전에 들리는 내용을 봐선 열심히 잠입하려는 경찰들을 때려눕히는 모양인데요.”

“좋아, 다 챙기면 리코를 불러! 이번에도 완벽한 작전이었다, 제군들!”

 

스키퍼의 말만 들으면 벌써 사건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일은 지금부터다. 코왈스키는 해킹용 노트북을 접어 챙겨들고 돈과 귀중품을 가방에 쓸어 담고 있는 프라이빗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돈 가방 서너 개가 꽉 찰 정도로 가득한 현금다발. 약간의 금괴와, 정품 인증서가 붙은 보석까지. 이 은행의 스케일과 딱 맞는 포상들 속에서 작은 루비가 박힌 반지를 챙긴 그는 무전기로 리코에게 명령했다.

 

“탈출 준비해, 리코. 차 조심해서 몰아. 우리 아가씨가 멀미라도 하면 안 되니까.”

“음!”

 

대답과 함께 들리는 타격음이 불쾌하다. 도대체, 어떻게 때려야 맨손으로 사람을 치는데 저런 소리가 나는 걸까? 누가 보면 무기라도 들고 있는 줄 알겠다. ‘역시 지능과 완력의 분배가 잘못 된 게 분명해.’ 코왈스키는 심히 실례인 생각을 하며 프라이빗의 금품 챙기기를 도왔다.

 

“준비, 완료!”

“오케이. 스키퍼, 도주차량 준비됐습니다!”

“오! 기다렸다! 그럼, 가 볼까!”

 

인질들을 향해 겨눈 총을 거둔 스키퍼는 프라이빗이 정성스럽게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뒷문으로 향했다. 이미 알고 있는 도주로. 앞서나가는 대장을 따르는 프라이빗과 코왈스키의 신속한 움직임. 기절한 경찰들이 널브러진 복도를 지나 뒷문을 열면, 그곳에는 출발 준비가 완료된 대형차가 기다리고 있다.

‘아주 좋아!’ 유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쾌하게 외치며 돈 가방을 던져 넣은 스키퍼는 조수석에 앉은 후, 다른 대원들이 신속하게 탑승하도록 돈 가방을 받아 넣었다.

 

“좋아, 출발이다 리코! 곧 경찰들이 쫒아 올 거다!”

“음, 음!”

 

잔뜩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리코는 세 사람이 안전벨트를 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난폭하게 운전을 시작했다. 급발진에 급회전, 그리고 신호위반까지. 여기저기 긁히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가는 차량은 그야말로 ‘난폭’ 그 자체였지만, 거기에 불만을 내뱉는 건 코왈스키 하나뿐이었다.

 

“리코!! 핸들 좀 살살 꺾어!!”

“응?”

“뭐가 ‘응?’이야?! 맨 뒤엔 아가씨가 있다고!! 거긴 안전벨트도 없잖아?!”

“음음!”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리코는 또 다시 핸들을 과감하게 돌렸다. 우당탕. 돈가방과 대원들이 일제히 한 쪽으로 몸이 쏠렸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내뱉진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들 뒤를 바짝 따라오는 경찰차들이 있다는 걸 방금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음, 역시 쫒아오나! 무섭군. 악당같은 놈들!”

“스키퍼, 냉정하게 생각하면 저희가 빌런인데요?”

“코왈스키! 악이나 선 같은 건 언제나 유동적인 거라네! 그것보다 이제 ‘아가씨’가 활약해 줄 시간이군! 그렇지?!”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작전 지시를 내리는 건 스키퍼 본인이었으니까.

 

“더체스! 요격!”

“―네에!!”

 

무전으로 명령을 전하자, 굳게 닫혀있던 자동차의 트렁크가 활짝 열렸다.

실수로 열린 것인가. 쫒아가는 경찰차들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트렁크 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를 본 후에는 그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딜 쫒아오려고!”

 

두 손에 든 것은 성능 좋은 샷건. 아직은 어린 티를 못 벗은 자그마한 얼굴과 맑은 목소리.

트렁크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의 정체는, 단단히 무장한 성인 여성이었다.

‘에잇! 에잇!’ 제가 든 무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기합을 넣으며 방아쇠를 당기는 몸동작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난폭한 운전에도 용케 튕겨져 나가지 않는 더체스는 쫒아오는 경찰차들의 바퀴를 모두 터뜨리고 나서야 여유롭게 트렁크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좋아, 제군들! 이번에도 수고했어!”

 

자동차가 멈춘 곳은 도시외곽에 위치한 대형 동물원의 뒤쪽 공터였다. 쫒아오는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프라이빗은 그들만이 아는 비밀장소에 돈가방을 챙기고 스키퍼는 오늘 작전에 대한 감탄과 피드백을 연설한다. 아아, 평소와 똑같은 한탕 후 풍경이다. 코왈스키는 안심하고 트렁크에서 막 나오는 더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더체스! 오늘도 훌륭했어, 너를 위해 내가 아까 금고에서….”

“앗, 리코~!”

 

제 손을 잡기도 전, 스프링이 달린 인형처럼 튀어나간 더체스는 운전석에서 내린 리코의 품에 덥석 안겼다. 아니, 안기기만 한 거면 다행이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껴안자마자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은 꼭 10년 쯤 떨어져있다 상봉한 연인처럼 보였다.

 

“운전 완전 멋있었어요! 그 속도감! 드리프트 감각!”

“음! 음!”

“역시 리코는 정말 터프해요~!”

 

‘아아, 우리 아가씨의 취향은 왜 저런 걸까.’ 짜게 식은 눈으로 두 사람을 보던 코왈스키는 얌전히 준비한 반지를 집어넣었다. 이건 나중에 ‘아지트’로 돌아가면 줘야겠다. 그때라면 리코는 배를 채우러 가서 그녀 곁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좋아, 펭귄 특공대 제군들. 슬슬 돌아가지!”

“네!”

 

자아, 드디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은행 강도 집단, 펭귄 특공대의 은밀한 귀환 시간이다. 과격하게 몬 차를 우거진 수풀들 속에 버려둔 다섯은 동물원과 통해있는 하수로를 향해 몸을 던졌다.

엉망진창인 도주, 얼굴을 다 노출하는 대담한 수법. 그럼에도 그들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세상에 누가, 펭귄이 인간으로 변해서 강도짓을 한다고 생각하겠어?’

 

지느러미로 변한 제 팔을 보며 더없이 안정감을 느낀 코왈스키는 가볍게 발을 굴러 앞서나가는 동료들을 쫒아갔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