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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한 늦가을의 공기가 토리의 얼굴을 식혔다. 특유의 분홍빛 머리카락은 서늘한 바람결에 날려 흩어지고 있었고, 연둣빛 눈은 지나는 구름조차 애타게 훑었다. 뒤늦게 교실을 나가던 반 친구가 그를 이상한 눈치로 본다. 추위를 유독 싫어하는 그라서, 무슨 이유인지 한 마디 않고 한참을 창가에 서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평소였다면 춥다고 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그였으니까.

 

"창문 닫고 있지. 추운데."

 

 토리의 눈동자가 뒤를 향한다. 이번에야말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를 단번에 꺾어버리는 목소리다. 그게 퍽 얄밉기도 얄밉지만, 아무래도 싫진 않아서 웃어버린다.

 

"너 들어오는 것 좀 보려 했더니, 왜 오늘은 또 문으로 멀쩡하게 들어오는 거야? 정말~"

"네가 보이길래..."

 

 그가 기다리는 걸 봤으면서도 굳이 돌아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토리의 새초롬한 눈매가 뾰쪽해졌다. 영 달갑잖은 일이었다.

 

"넌 웃는 게 더 예쁜데."

 

 토리가 막 불만을 내뱉으려는 찰나다. 센은 항상 그런 타이밍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애정을 내뱉어서 그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토리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녀가 개의치 않을 걸 알기에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아~... 또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고! 너 같은 애랑 어울려주는 나한테 고맙게 여기라구."

 

 키득키득.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센은 웃기만 했다. 토리 역시 어이없는 나머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실없이 웃었다. 텅 빈 1학년 교실의 적막이, 이내 둘의 웃음에 젖어들고 있었다.

 

"토리, 생일 축하해."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토리의 큰 눈이 배는 커졌다. 기억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애초에, 그녀에게 생일을 말한 것도 흘러가듯 한 마지 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어떻게, 아니. 기억하고 있었어? 잠깐 스치듯 말한 걸?"

"공주님 생일을 어떻게 까먹겠어."

 

 기쁜 와중에도 '공주님'이라는 호칭은 거슬렸지만, 토리는 살짝 눈살을 지푸리는 정도로 넘어갔다. 센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물론 기분이 좋은 이유도 있었다.

 

 피네의 노래를 편곡한 노래였다. 방금 전까지 노닥거리던 목소리와는 달리, 기묘한 음색이었다. 마치, 신비로운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사랑을 속삭이기보다, 항상 곁에 있을 것을 약속하는 것이 그녀다웠다. 말하듯 부르는 노랫말 사이에, 신비로움이 섞여 들었다.

 

그가 참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토리는 가끔 생각했다. 중학교 때 잠깐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우연히 같은 꿈을 꾸며, 이렇게 생일이면 노래를 부르며 웃어줄 사람을 만날 확률을.

 

 센 역시 종종 떠올렸다. 같은 미래를 보고, 곁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작지 않은 행운이라고.

 

 둘은 가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토리는, 센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혹시, 서로가 서로에게 '신비'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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