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죠 키루미. 처음으로 그녀를 본 것은 입학식 날이었다. 수석 입학생으로서 대표로 연설을 하고 내려오는 모습. 그 모습은 어딘가 동경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었다. 짧게 자른 회색빛 머리카락이나 훤칠하게 큰 키, 기품 어린 발걸음은 유독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마노가와 학원은 소위 아가씨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다. 명문가 자녀가 많이 다니며 초등부부터 대학교까지 에스컬레이터처럼 운영되는 곳. 뒤늦은 사업 성공의 덕을 본 벼락부자 집안의 딸인 나는 그곳의 고등부에 편입했고, 반면에 초등부부터 쭉 아마노가와 학원에 다닌 그녀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학년이라고는 해도 부활동도 배경도 다른 그녀와 별 접점은 없었지만, 가끔 쉬는 시간의 복도나 등하굣길 먼발치에서 그녀의 모습이 시야 한구석에 잡히면 그쪽에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교복의 긴 치맛단과 검은 스타킹이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자태. 동급생이지만 선배처럼 생각하게 되는 어른스럽고도 성숙한 분위기. 명문가에서 오랜 기간 교육받은 사람 고유의 예의범절. 말투나 몸짓에 묻어나오는 섬세하고도 침착한 성격. 나는 토죠 키루미라는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을 부러워했고, 진심으로 동경했다. 그런 그녀는 내게 벼랑 위에 핀 꽃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골든 위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의 방과 후. 나는 부실에서 원예용품을 챙겨 학교 연못가로 가고 있었다. 그곳을 원예부에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으니 무언가 심어두려고 했던 참이었다.
"음, 그러니까 여기를…."
"저기, 잠깐 괜찮을까?"
"네?"
한창 열중하고 있을 때, 나는 이쪽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마냥 지켜보고 동경하기만 했던 수석 입학생인 그녀가 서 있었다. 그때 거울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 표정이 무척 얼빠지고 바보 같았으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심 말을 나눠보고 싶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지금 나는 완전히 흙투성이잖아. 이런 몰골로 마주치는 걸 원하던 건 아니었는데! 물론 원예 활동을 하다 보면 흙이 좀 묻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잔뜩 긴장한 채였다.
"잠시 실례할게. 학생회에서 예산 측정 문제가 있어서 알려주러 왔어."
"으, 응…."
그녀는 내게 서류를 내밀며 몇몇 부분을 짚어 설명해 주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반쯤은 흘려듣고 있었다. 온 감각이 그 목소리의 높낮이며 문자의 나열을 가리키는 손가락 따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이야. 무언가 묻고 싶은 사항은 있어?"
"아니, 괜찮아. 그…. 토죠 양, 이라고 부르면 될까? 일부러 찾아와 알려줘서 고마워."
"천만에,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런 대답과 함께 그녀가 짓는 작은 미소. 언제나 차분한 무표정만 보아왔는데, 어딘가 귀중하게 느껴지는 그 미소짓는 얼굴은 저런 표정이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괜찮다면, 네가 심고 있는 식물의 종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아, 꽃창포라고 해."
"꽃창포…. 확실히, 습지에 심기 좋은 종이네."
그녀는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하고 다시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그 긴 속눈썹 밑의 녹안은 정말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어서, 괜히 가슴 속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 볼게. 만약 곤란한 일이 있다면 사양하지 말고 언제든 말해줘."
그렇게 말하며 멀어지는, 여느 때처럼 기품 있는 발걸음. 나는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멍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설렘이었디.
"꽃창포…. 피어나면 보러 와달라고 부탁할걸."
꽃창포, 그 꽃말은 우아한 마음.
그녀에게 덧없이 어울리는 꽃말이 화사하게 피어난 것만 같아서, 기분 좋은 고동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