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떡볶이요정2.png

꽃말합작_사랑의 싹

 

진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향기로 유혹을 하고 있는 꽃의 주위에는 벌들이, 나비들이 가득하다.

연한 보라색의 라일락 나무는 있는 힘껏 자신을 뽐내기 위해 모두를 유혹하여 매료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도 발길을 멈춰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그 증거이리라.

“꽤 오랫동안 보고 있네.”

“예. 라일락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입니다. 어릴 때 한번 보고 그 매력에 사로잡혔지요.”

“그런 거야? 신기하네. 나도 이 꽃의 선율은 꽤 좋아해.”

“후후, 니오 공께선 꽃의 선율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까?”

“정확히는 꽃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대단해요!!”

자신의 머리카락이 마치 라일락 꽃송이 같다는 것을 그녀는 과연 알까? 비올레타는 자신의 연보랏빛 머리를 바람에 흩트리며 니오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니오는 그녀의 그런 반응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녀다움이라고 생각하며 늘 웃으며 바라봐주었다.

“이제, 그만 가자. 시간이 많이 흘렀어.”

“네! 기공 선의 모두도 슬슬 저희를 걱정할 시간 이내요!”

“그건 저 꽃이야?”

니오는 비올레타의 손에 들려진 꽃다발을 보며 말했다.

“네! 다른 꽃들도 섞여 있지만요.”

“받는 사람도 좋아할 거야 분명.”

“에헤헤….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올레타와 니오는 사이가 좋았다. 니오는 비올레타의 선율을 좋아했고 비올레타는 니오의 연주를 좋아했다. 연주 이외에도 인간으로서의 면도 좋아하고 있겠지만.

손을 잡으며 걸어가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올레타는 ‘별 무리’ 마을에서의 일, 니오는 신천중에 관한 재밌는 일화들이었다. 니오는 경청해주었고 비올레타도 여러 가지 반응들로 니오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벌써 도착했네.”

“역시 니오 공이랑 있으면 즐거운 거 같아요!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 들으면 나도 기쁘네. 누군가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거든.”

기공선, 그랑사이퍼에 오르자 루리아와 뷔가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비올레타는 큰소리로 인사했다. 언제나 생기 넘치네. 비올레타는 이 말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엔 그러지 못했으므로.

“어서 와 비올레타. 니오.”

“응, 돌아왔어. 예정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엣셀 공도 좋은 밤입니다! 아, 카토르는 어디 있나요?!”

“카토르는 방에 있을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비올레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니오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선율이, 곧 바뀔 것 같아.”

 

 

“카토르~!”

노크는 늘 그렇듯 없었다. 획하고 열어버린 방문 앞엔 카토르가 이미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당장 욕을 뱉지 않은 것이 그가 많이 참고 있다는 뜻이리라.

“...무슨 일?”

“선물을 가져왔어.”

“선물?”

“짠! 예쁘지.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라일락꽃을 보여주겠다고 이게 그거야.”

비올레타가 카토르의 얼굴 가까이 내민 것은 아까 본 것과 같은 색과 향기를 지닌, 라일락 꽃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도 카토르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진한 향기가 코로 바로 전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냄새네. 카토르의 감상평이었다. 짧지만 비올레타는 마음에 드는 반응이었다.

“좋아해 줘서 다행이야!”

“딱히? 좋다고는 안 했는데.”

“싫지도 않잖아? 그 정도면 카토르에겐 좋다는 표시나 똑같다구.”

“하아? 멋대로 해석하는 짓은 그만둘래? 뭐, 색은 마음에 드네.”

“그치? 나도 라일락의 보라색이 제일 좋아. 내 머리카락 색이랑도 비슷하고!”

비올레타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굵게 웨이브 져 있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었다. 풍성한 머리카락은 쓰다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준다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한 보랏빛 색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머리카락 색은 순전히 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라일락을 처음 보았을 때 누구보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있지, 카토르 다음엔 같이 보러 가자.”

“...그래.”

“웬일로 바로 오케이 해주네?! 아무튼, 약속한 거야~”

원하는 대답을 들은 비올레타는 갑자기 찾아온 것에 대한 뒤늦은 사과를 뒤로하며 제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으므로 그것들을 어서 빨리 일기장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루리아와 만나고 생긴 하나의 일과 같은 것이었다.

비올레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랑사이퍼의 아침은 조금 일찍 찾아왔다. 단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맞추기라도 한 듯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또는 아침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각자 나름의 일을 하며 아침을 맞을 즈음,

“아, 시에테 님! 일찍 일어나셨군요!”

“오오, 레타 쨩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것 같은데?”

“네! 아침 산책을 다녀오려구요!”

“헤에, 부지런하네.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어라, 상관은 없지만, 저랑 가면 지루할지도 몰라요?”

“아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레타 쨩 전혀 그런 부류의 사람 아니니까안~?”

시에테는 특유의 장난기 섞은 말로 대꾸해주며 비올레타의 옆에 섰다. 여기에서의 생활은 어때? 간단한 물음이었다. 비올레타는 좋아요! 정말 간단하고 짧은 한마디로 대답해 주었다. 시에테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비올레타가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라니까~”

“응??? 그런가요???”

“뭐, 이쯤 해두고…. 이제 갈까?”

“네!”

나란히 걸음을 맞추며 한 발짝, 두 발짝…. 아직 그랑사이퍼도 채 벗어나지 못했을 때 두 사람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시에테는 묘하게 웃고 있었고 비올레타는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어딜 가는 거죠.”

“어라라? 카토르네~? 그냥 평범하게 단둘이서. 같이 산책이라도 갈까 하고?”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나는 상관없지만. 별일이네.”

“됐으니까. 어서 가기나 해.”

카토르를 보고 있던 시에테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말로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서로 눈치를 못 채고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할 정도였다.

“아, 맞다! 사실 나 따로 볼일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네?”

“아, 아무튼! 이 시에테 형은 이만 빠져줄 테니까 둘이서 잘 하고 와!”

시에테는 그러면서 카토르의 등을 살짝 밀었다. 카토르는 짜증이났지만 그저 얼굴을 구기는 것으로 끝냈다. 비올레타가 자신의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가자!”

“아, 어... 야, 너무 그렇게 잡아 끌지 마!”

 

“오늘은 신기하네. 카토르 맨날 같이 산책가자고 하면 혼자 가라고 짜증 냈잖아.”

“어. ……그러게 나도 날 모르겠다.”

카토르는 고개를 비올레타가 있는 반대쪽으로 돌렸다. 자신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상황을 인지했을 땐 말을 뱉고 난 뒤였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저 그 망할 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흥, 잠자코 걷기나 해. 그래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는데?”

“이제 곧이야. 어제 니오 공이랑 같이 왔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하아…. 그래.”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부터 꽃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꽃향기가 흐릿하게 퍼져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에 놓아두고 온 꽃다발에서 나던 것과 같은 향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이었다.

“짜잔~!”

나무 앞에선 비올레타는 양팔을 벌리며 카토르를 향해 웃어주었다. 두 눈을 접어 그를 향해서만 웃어주었다. 햇빛의 빛이 그녀의 미소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꽃의 향기는 매력적임을 더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꽃이 질투할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카토르는 그 미소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뺏겼다. 사로잡힌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겠지. 라일락 나무가 바로 뒤에 있었지만 단순한 배경에 불과했다. 카토르에겐 그 순간 비올레타의 모습이 그 자체로 꽃으로 보였다.

“...”

“카토르?”

“...핫.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확실히 예쁜 곳이네. 기대이상이야.”

“그렇지? 너랑 같이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카토르는 비올레타의 옆에 섰다. 꽃에서 나는 향기였겠지만 지금은 그녀에서 나는 향기같이 느껴졌다.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그 미소를 본 순간 어딘가…. 어딘가가 이상했다. 고장이라도 난 듯이.

카토르는 홀리듯 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낮게 뻗어있는 가지에서 꽃을 꺾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연보랏빛 눈동자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걸음을 옮겨 어느새 바로 가까이 갔었다. 카토르? 궁금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였다.

“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봐.”

“으응?!”

카토르는 손을 뻗어 비올레타의 머리카락 사이에 꽃을 찔러 넣었다. 그녀의 귀는 머리색과 다르게 보라색이 아닌 갈색이었지만 귀 옆의 머리카락에 꽂혀진 꽃과 묘하게 어울렸다. 흘러내리지 않고 머리카락에 제대로 꽂힌 모습에 카토르도 만족한 듯 그녀와 조금 거리를 두며 뒤로 걸음을 움직였다.

비올레타는 손을 올렸다. 꽃이 만져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행동에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왜. 별로야?”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 데….”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됐어. 이제 가자.”

카토르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도 충분히 붉어져 있었다. 이 얼굴을 그녀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자신이 하고도 왜 그랬는지 의문이 드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딱히 후회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안 오면 버리고 그냥 간다.”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비올레타는 자신의 바로 뒤에 있었다. 옷깃을 살짝 잡은 채로.

“가, 갈게…. 그, 근데 내 쪽은 보지 말아주라!”

“하아?”

“아무튼, 빨리 가….”

팡.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귀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아아, 이 소리는 또 뭐람! 한쪽 손으론 옷깃을 한쪽 손으로는 제 볼에 손을 올린 채 비올레타는 제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선율이 바뀌었어. 후후, 재밌는 선율이네. 두 사람 다.”

“니오~?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신경 쓸 것 없어 시에테.”

“에~ 너무하네. 나 말이야 나름 보호자라구~~”

“...”

“무시?!”

바람을 타고오는 선율엔 향기가 가득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