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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하트 해적단에 비상이 걸렸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찬양하다 못해 사랑하는 해적단의 캡틴 트라팔가 로우의 생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카시오페아는 하트 해적단의 특이한 분위기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돈키호테 패밀리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쳤어도 이렇게까지 극성은 아니었기에 하트 해적단 소속이 되고 며칠동안 카시오페아는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옆으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오기 전까지 배에서 항해사로서 해도를 그리던 베포가 서있었다. 평소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이 그렇게 많지 않던 이 중 하나였기에 카시오페아는 의아했다.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니 분명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말을 꺼내지 못 하는 것이 퍽 답답하게 느껴졌다.

 

 

 

"할 말 있어? 똥 마려운 개처럼 끙끙 거리지 말고 빨리 말 해."

 

"아이아이!!"

 

 

 

송곳처럼 파고드는 카시오페아 특유의 화법 때문에 놀란 것인지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몸이 천장을 뚫을 것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그에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언제 펄쩍 뛰어올랐냐는 듯이 카시오페아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어떻게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는 베포였다.

 

 

 

"저녁에 캡틴 생일을 위한 파티가 있는데.. 카야는 생일 선물 준비했어?"

 

 

 

그리고 돌아온 베포의 물음은 꽤 낯선 것이었다. 생일 선물이라..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해봐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섬에 정박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아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으며, 베포가 그린 엉망이다 못해 알아보기도 어려운 해도를 처음부터 새로 그려야 했기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붙잡고 묻는 것이 겨우 트라팔가 로우의 생일 선물을 준비 했냐는 질문이었기에 카시오페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카시오페아는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준비한 선물 같은 건 없다고 대답을 했다. 준비한 선물이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생일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이들을 뒤로 하고 카시오페아는 자신의 이름 앞으로 배정 받은 방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방은 트라팔가 로우의 방과 맞은 편이었는데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오늘 생일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꽤 단조로운 방 가운데 산처럼 쌓인 양피지 틈에 자리한 책상과 푹신한 의자에 앉은 카시오페아는 손때가 묻은 깃펜을 손가락 위에서 굴리며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아마 선원들은 조커의 정보상으로 일하던 카시오페아니까 자신의 캡틴 생일은 당연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선물을 기대한 것일까? 나참. 다섯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생일 선물을 기대하다니. 한숨이 나왔다. 그것도 생일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 기대를 받으니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 싶다.

 

 

 

애초에 트라팔가 로우와 자신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도 않았기에 서로의 생일을 챙기며 선물을 주는 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도 친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가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의 유일한 연결점이 될 수 있었던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죽은 후로 완전히 등을 돌리고 돌아섰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런 둘 사이의 변환점이 된 것은 트라팔가 로우가 밀짚모자 해적단과 동맹을 맺고 돈키호테 패밀리를 칠무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칠무해였던 그가 밀짚모자 해적단과 동맹이라는 사실이 해군에 발각 되면서 칠무해 자격을 박탈 당하는 손해가 있었으나 애초에 칠무해의 자리는 계획에 더는 필요하지 않았기에 트라팔가 로우에게 더이상의 손해는 아니었다. 손해는 오히려 카시오페아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식처이자 완전한 보호와 울타리였던 돈키호테 패밀리의 몰락 그리고 도플라밍고의 신뢰까지. 카시오페아는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잃고 갈 곳을 잃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자신의 몸을 트라팔가 로우가 선장으로 있는 하트 해적단에 위탁을 해 하트 해적단 소속이 되었다. 둘의 관계는 복잡했다. 쉽게 이렇다 하고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카시오페아는 그것을 선원들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으며 말해서 이해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 카시오페아는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든 트라팔가 로우를 미워한다. 하지만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예전이라면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을텐데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동정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미움와 동정. 자신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감정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감정이 되었다. 아무리 미워하는 대상이라고 하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가만히 있기에는 양심이 찔렸기에 카시오페아는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타이밍 좋게도 어제 저녁 새로운 섬에 정박했기에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쉬웠다.

 

 

 

항구에 정박한 노란 잠수함의 밖으로 나와 마을을 향해 걸었다. 듣기로는 사계절이 있는 섬이라고 들었는데 아마 지금 시기를 생각한다면 섬의 계절은 가을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했다. 항구에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 마을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타일이 잘 깔려있는 도로와 너무 높지 않은 건물들 그리고 북적거리는 사람들까지. 카시오페아가 지내던 드레스 로자와 다른 곳이었으나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카시오페아는 드레스 로자로 다시는 갈 수 없었다. 어쩐지 씁쓸했다.

 

 

 

씁쓸한 감정을 뒤로 하고 카시오페아는 자신이 마을을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기며 가판대를 꼼꼼히 살펴보지만 역시 생일 선물로는 뭐가 좋을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사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으며, 그 누군가가 트라팔가 로우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생일 선물을 사는 행위가 카시오페아로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선물이라는게 받는 사람이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 물건으로 선물하는 것이 제격이라는 건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과연 트라팔가 로우가 좋아하는게 뭔지, 필요로 하는 물건이 뭔지 카시오페아는 알 수 없었다. 옛날 조커의 정보상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선물을 사러 나왔을 때는 분명 해가 중천에 떴는데,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카시오페아는 아직까지도 빈 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트라팔가 로우에게 선물할 만한 건 찾을 수가 없었다. 의학에 관련된 책은 이미 거의 다 가지고 있을 거고 다른 책을 사주자니 무슨 책을 좋아할지 몰랐다. 그렇다고해서 옷을 사주자니 사이즈를 몰라서 패스였다. 이래저래 쳐내고 보니 선물할 물건이 마땅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정처없이 계속 걷다보니 구두를 신고있던 발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해 마을 광장에 자리하고 있는 분수대에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처럼 쉬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체력이 아무리 예전보다 좋아졌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걷는 것은 아직 카시오페아에게 무리였다. 잠수함으로 돌아가면 발바닥이 아마 퉁퉁 붓지 않을까 싶어 손을 내려 다리를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하게 된 건 전부 트라팔가 로우 때문이다. 왜 하필 오늘이 생일이어서. 이제 어느정도 편해진 것 같아 다리를 주무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올리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꽃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스르륵-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자연스럽게 꽃가게로 들어왔다.

 

 

 

꽃가게는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안으로 들어오자 카시오페아의 생각보다 더 많은 꽃과 화분을 가지고 있었다. 꽃가게는 난생 처음 들어온 것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이고 있자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뭐 찾는 거 있어요?"

 

"아. 제가 꽃가게는 처음이라서요."

 

"그래요? 누구한테 선물하려고?"

 

"네."

 

"누구? 애인?"

 

"아뇨. 애인은 아니고 그냥 어렸을때부터 알던 남자애요."

 

 

 

애인이냐는 주인의 물음에 카시오페아는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트라팔가 로우가 자신의 애인이라니. 말도 안 된다. 차라리 친구라던가 가족이라는 말이 나을 뻔 했다. 정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다 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래서 꽃다발 선물하려고 왔어요?"

 

"그건 아니고. 오늘이 생일이라는데 뭘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 오늘이 생일이에요?"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어째 자신보다 더 좋아하며 꽃을 이것저것 가져와 보여주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가게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묘목이 자라고 있는 화분이 카시오페아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신나서 설명하던 주인은 카시오페아가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 하자 카시오페아의 시선을 따라 갔는데 그 시선의 끝에 자리 하고 있는 화분을 발견 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가씨가 뭘 보고 있나 했더니- 저 묘목이 오늘 아침에 막 들어왔는데 개암나무 묘목이에요."

 

"개암나무요?"

 

"네. 10월 6일이 생일이면 개암나무가 탄생화인데 꽃이 싫으면 저 묘목은 어때요?"

 

 

 

그리고 잠시뒤 가게를 나온 카시오페아의 손에는 붉은 리본이 묶여있는 개암나무 묘목이 자리하고 있는 화분이 들려있었다. 꽃보다 좋을 것 같아서 샀는데 막상 사고 나니 후회가 되었다. 지금이야 작은 묘목이지만 자라면 분명 큰 나무가 될텐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묘목을 샀는지 모르겠다. 결국 선물로 보기 어려운 화분을 들고 항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지다 못 해 저녁이 되서 달이 떴다. 아마 지금이라면 생일 파티도 시작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트 해적단의 선원들은 좀처럼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했으나 카시오페아는 그들이 껄끄러웠다. 친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잠수함으로 들어와 자신의 방으로 걸어 갈때도 되도록이면 선원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파티를 하고 있는 식당과 먼 길을 걸어서 자신의 방이 있는 복도로 돌아온 카시오페아는 자신의 방이 아닌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트라팔가 로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방과 크기는 똑같았지만 구조가 다른 방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해도를 그리기 위해 양피지가 가득 들어찬 자신의 방과 다르게 깔끔한 방은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묘한 소독약 냄새도 나는 듯 했다. 홀린 듯이 방구경을 하던 카시오페아는 이내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온 목적을 상기해내고 손에 들린 화분을 조심스럽게 방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책상에 올려두고 주머니를 뒤적여 적어 둔 편지를 함께 올려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트라팔가 로우가 저 화분을 어떻게 하든 이제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편지를 읽는 것도 그의 선택이고 자신은 더이상 관여 할 부분이 아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눕자 꽃가게에서 주인이 해주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개암나무의 뜻은 화해라고 하던데 혹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사과해봐요. 아가씨-'

 

 

 

화해라.

 

 

 

트라팔가 로우에게 사과를 해도 그와의 관계는 화해 할 수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홀린 듯이 화분을 사게 된 이유를 카시오페아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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