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 it real our Destiny?> (10월 20일의 탄생화, 마, ‘운명’ (Destiny))
「어쩌죠, 츠카 씨? 아무래도 오늘은 스튜디오로 못 갈 것 같아요. 야간 연습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 정말 미안해요.」
에이지에게서 온 이 메일을 읽자마자 츠카는 방금까지 공부하고 있던 책을 바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멍하게 앞을 바라보다, 메일을 다시 차근차근 읽은 뒤 힘없이 책상 위에 엎어졌다.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파닥거리자 펼쳐져 있던 프린트 종이들이 팔랑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엄청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인걸. 츠카는 빠르게 납득하고 몸을 일으켜 에이지에게 답장을 보냈다. 일단 자신은 정말 괜찮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무리는 하지 말고, 끝나면 꼭 조금이라도 자는 걸 잊지 말아달라는 말. 여기까지 메시지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자신도 오늘은 차라리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다 자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도 알려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츠카는 문장을 좀 더 적었다.
「저도 오늘은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다 자고 갈게요! 에이지 씨가 열심히 하시는 동안 저도 열심히 할게요. 오늘도 많이 좋아해요♡」
에이지를 혹시 조금이라도 걱정시키거나 미안해하게 만들 수 있는 문장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내용을 다섯 번 정도 꼼꼼하게 점검해본 뒤에야 츠카는 메일을 전송할 수 있었다. 연락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는 츠카 자신의 우울함을 해결해볼 차례였다.
일단, 오늘은 스튜디오에 있는 에이지 씨의 방에서 자는 것으로 할까! 단지 이것만 생각했을 뿐인데 어느새 행복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가 에이지의 방을 써본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실 오히려 자주 사용해본 편이었다. 새벽데이트 도중이나 에이지를 늦게까지 기다리던 중에 피곤해서 잠들어버렸을 때마다 늘 에이지가 츠카를 자신의 방으로 옮겨 재우곤 했으니까. 하지만 보통 먼저 잠들어버렸을 때만이지, 의식이 제대로 있을 때 들어가 본 적은 아직 없어 더 두근거렸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랑하는 연인의 방에서 잠드는 게 그 언제라도 설레지 않을 이는 없을 테니.
“히히, 좋아. 그러면 이제 잠깐 놀고 공부 끝내고 들어가서 자야지!”
데이트가 무산되어버렸으니 잠깐은 놀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츠카는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 사이트 메인에 뜬 몇몇 기사들과 포스트들을 훑는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포스트가 있었다.
“<엔젤들의 분석! HE★VENS 멤버들의 탄생화와 꽃말>?”
며칠 전 스메라기 씨의 생일 특집으로 업데이트된 글로 보이는데, 꽤나 인기를 끌었나 보다. 헤븐즈 멤버 각각의 생일 탄생화와 꽃말을 분석해놓은 건가? 헤븐즈와 에이지의 팬이 막 되었을 무렵 츠카도 이것저것 정보들을 모아 별 거 아닌 것들까지 정리해본 적은 있지만, 탄생화는 조사해본 적이 없었다. 와, 그러면 에이지 씨의 탄생화는 뭘까? 흥미가 생긴 츠카는 링크를 힘차게 누르고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오토리 에이이치 씨는 호랑이꽃, 꽃말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 오오토리 씨의 솔로곡 가사와 예전 인터뷰 자료를 인용해 그럴 듯하게 내용을 묶고 있었다. 스메라기 키라 씨는 은방울꽃, 꽃말은 섬세함. 아, 이건 정말 그와 이미지가 딱 맞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나기 군은 흰색 튤립, 꽃말은 …… 실연?! 이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필사적으로 이 꽃말을 커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흰색 튤립의 꽃말인 Broken Heart는 실연이 아니라, 나기 군의 초강력 귀여움으로 엔젤들의 심장을 부서지게 만드는 거라고.
와, 꽤 논리적이고 훌륭한 커버네. 나기 군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납득해줬으면 좋겠는걸. 자, 그러면 이제 에이지 씨의 탄생화를 알 차례다! 츠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10월 20일의 탄생화, Indian Hemp : 마. 혹은 대마라고도 불린다.]
“에이지 씨 탄생화는 대마초야?!”
이럴 수가, 마약이잖아! 포스팅하신 분께서 이것도 커버하셨을까? 예를 들면 마약 같은 중독성을 가졌다고? 아니다, 이건 좀 위험한 생각이니 철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츠카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중독성이 있다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아무도 에이지의 탄생화에 대해 커버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탄생화는 꽃말이 너무나도 완벽했으니까.
“Destiny.”
운명. 에이지 씨의 탄생화가 운명 ……. 운명이라니. 츠카는 화면에 뜬 마 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10월 20일, 에이지 씨의 탄생일, 그 탄생화는 마, 그리고 그 꽃말은 바로 운명. 별 거 아닌 그 두 음절에 츠카는 엄청난 이끌림을 받고 있었다. ‘운명’ 이라는 단어에는 그녀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중력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츠카를 최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이건 우리의 사랑도 …… 운명이라는 뜻이 아닐까?’
만약 그가 운명 그 자체라고 한다면, 에이지가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분명 운명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사랑하게 된 츠카 자신과의 만남, 그리고 그 둘의 사랑도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에이지 씨와 자신이 정말 운명이라는 뜻이 아닐까― 라며, 츠카는 확대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이런 의문이 스쳤다. 그러면 내 탄생화의 꽃말은 뭐지? 설마, 영원한 사랑이라든가! 츠카는 사이트의 메인 화면으로 황급히 돌아가 검색창에 11월 7일의 탄생화를 검색했다. 자신의 탄생화는 메리골드, 예쁜 주황빛의 꽃이었다. 영원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귀여움에 맞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 않으려나.
[11월 7일의 탄생화, 메리골드의 꽃말은 ‘이별의 슬픔’입니다.]
“…….”
…… 애초에 탄생화의 꽃말 같은 게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아니었으면 좋겠네! 츠카는 웃으며 웹 사이트의 창을 빠르게 모두 닫았다.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방금까지 쓸데없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건가 싶어 츠카는 작은 한숨을 지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 상황, 데자뷰가 느껴지지?
이런 경험이 지금뿐만이 아니라, 여태까지 꽤나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최근에 그녀가 에이지와 함께했던 대화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봄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걸 보고 벚꽃 이야기를 했을 때였을 것이다.
“야마나시 현의 벚꽃도 예뻤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졌네요.”
“야마나시 현이라면, 에이지 씨의 고향이었죠?”
“네, 맞아요. 기억하고 계셨네요.”
“히히, 저도 그 벚꽃 보고 싶어요.”
“그 벚꽃도 예뻐요. 사무소 근처에 피어 있는 벚꽃과는 조금 다른 벚꽃이지만.”
“어, 종이 다른 거예요?”
“네, 마메자쿠라(マメザクラ)라는 종이에요. 괜찮으시다면 이야기해드릴까요?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 우리 츠카 씨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너무 좋아요! 해주세요!”
“같은 벚꽃이긴 한데 꽃이 더 작은 종이에요. 마메자쿠라라고 부르는 이유도 꽃이 콩(마메, マメ)처럼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그리고 사무소 근처의 벚꽃은 분홍빛이 더 강한데, 마메자쿠라는 하얀빛에 더 가까워요.”
“그렇구나. 히히, 저도 보고 싶어졌어요. 이쪽에서는 볼 수 없을까요?”
“후지산과 야마나시 현 근처에서 주로 피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아마 그쪽으로 조금 가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까 아예 야마나시 현의 상징 꽃이 마메자쿠라였네요.”
“헉. 벚꽃이 에이지 씨 고향의 상징화예요?!”
“앗, 네! 뭐, 뭔가 있나요?”
“아뇨, 그냥 왠지 뭔가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헤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마지막 말은 얼버무릴 걸 그랬다. 에이지 씨가 다음에 ‘아, 츠카 씨가 저의 벚꽃이니까요? 정말 운명 같네요.’ 라고 눈치 빠르게 동조해주면서 웃어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엄청나게 부끄러웠을 테니까. 스스로 벚꽃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버린 셈이잖아! 어쨌든, 에이지의 고향의 상징화가 벚꽃이고, 그걸로 자신과 연관시켜서 운명으로 엮어버렸던 시도는 지금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또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있었던 것 같다. 에이지와 자신의 취미가 원예로 일치했다는 것, 서로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 갑자기 에이지가 보고 싶어서 자주 만나는 비밀 장소로 끌리듯 갔는데 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와서 바로 만났다든가, 이렇게 자주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것, 예전 그가 작사했던 노래에 자신의 이름의 철자가 다 들어가 있었다든가.
츠카는 이런 순간들을 회상하며 문득 자신이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작고 사소한 것에서 자신과 에이지의 사랑을 운명과 자꾸 엮으려 하는 버릇이. 자신은 운명적인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왜 운명에 집착하는 것인가? 생각보다 츠카는 꽤 쉽게 답을 말할 수 있었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겠지.
“운명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에이지 씨와 운명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운명의 붉은 실. 태초에 붉은 실이 매여져 자신의 운명의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옛날의 설화. 만약 에이지와 자신 사이에 그런 실이 있다면, 츠카는 그 실의 중간이 마구 엉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쪽의 원래 운명을 끊었다가 자신의 운명과 억지로 얽어놓은 형태로, 너덜너덜하게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츠카가 생각하기에 실을 엉키게 만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에이지의 운명을 바꿨다고 생각했다.
운명을 바꿨다니.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 표현이 자신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았다.
오오토리 에이지는 원래 아오이 나츠카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레이징 엔터테인먼트의 차남이자, 많은 대중들 앞에 서는 아이돌이면서 노래와 춤뿐만이 아닌 다양한 방면에서도 재능을 보이는, 너무 대단한 사람. 에이지에 비해서 츠카는 천재도 아니었고, 원래 예능계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도 아니었으며, 엄청난 집안의 사람도 아니었다.
이는 딱히 에이지와 비교해서 자신을 깎아내리려 한 것은 아니고 …… 한 마디로, 그녀의 노력이 없었다면 에이지와 자신은 아예 만나지 못했을 사이였을 것이라 인정하기 위해 한 생각이었다. 레이징 사무소에 입사하지도 않았더라면 스쳐지나갈 일조차 없었겠지. 에이지와 이렇게 만나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죽을 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다. 에이지의 팬이 된 후 그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를 위한 곡을 쓰겠다며 평생 한 번도 공부하지 않았던 작곡 이론을 공부했다. 재능이 없었던 대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해서 곡을 만들었다.
결국 피나는 노력으로 완성한 곡이 사장의 눈에 드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자신의 곡은 처음 기획과는 다르게 에이지에게 가지 못했다. 간절한 꿈이 바로 눈앞에서 절망적으로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츠카는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사장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다. 여태까지 레이징이 시키는 모든 일들을 거의 순종적으로 따라왔던 그녀가 항의를 시도했다. 결국 노력으로도 이어지지 못할 것만 같았던 만남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게 됐다.
“와, 정말 인위적이다.”
이걸 어떻게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 에이지 씨도 내가 그랬었던 거 이젠 다 알고 있는데. 자신의 사랑은 끝까지 억지를 부렸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운명도 이미 그녀의 노력을 한 번 무너뜨린 시점에서 오오토리 에이지와 아오이 나츠카가 이뤄질 운명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이지 씨 …….”
츠카는 가방에서 한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고, 안에 있던 분홍색 비단 리본을 꺼냈다. 에이지가 자신에게 줬었던 첫 생일 선물. 원래는 머리를 땋을 때 묶거나 블라우스에 묶는 리본을 츠카는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묶어보았다. 리본이 서툴게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묶여 흔들거렸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겨우 이루어진 것도 과연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
“통화 중이었나요?”
“하아. 이제는 환상까지 보이고 …….”
“음, 환상이 아니에요. 츠카 씨의 오오토리 에이지잖아요.”
“?”
츠카는 손을 뻗어 자신의 뒤에 있는 형체를 살짝 만져보았다. 아, 만져진다.
…… 에이지 씨가 왔어?!
“에, 에이지 씨! 늦는다면서요! 못 온다면서요!”
“츠카 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 안 되겠다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더니, 츠카 씨한테 메일 보내자마자 바로 통과됐어요! 그래서 메일 다시 드리고 얼른 왔는데.”
“앗, 정말 메일도 왔었네요 ……. 깜짝 놀랐어요. 에이지 씨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어서.”
“츠카 씨가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못 들으셨나 봐요. 아, 혹시 지금은 츠카 씨가 더 바쁜가요? 그러면 옆에서 그냥 조용히 있을게요.”
“아니요! 에이지 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당장 데이트해요!”
그러면 소파로 자리를 옮길까요? 라고 말하며 에이지는 츠카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츠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에이지에게 이끌려 거실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츠카 씨가 안 주무시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만약 자고 계셨으면 이불만 덮어주고 나오려고 했거든요.”
“헤헤, 그렇게 일찍 잘 리 없잖아요.”
“…… 저번에 저랑 일찍 잘 자기로 약속하셨던 것 같은데!”
“아, 앗. 물론 너무 늦게 자지는 않는걸요! 에이지 씨랑 약속했으니까.”
“정말이죠? 저는 츠카 씨 믿어요. 자, 여기 앉으세요.”
츠카가 소파에 앉자, 에이지도 바로 그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잡았던 손을 여전히 꼭 잡은 채 놓지 않아주는 것이 츠카는 너무 좋았다.
“아까는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음, 혼자 잠시 놀고 있었어요!”
“그렇구나. 저는 츠카 씨가 혼자 얘기하고 있어서 통화하는 줄 알았어요. …… 어, 츠카 씨 왼쪽 손가락에.”
“앗!”
리본을 새끼손가락에 묶어둔 채로 그냥 와버렸다! 츠카는 에이지의 손을 잡고 있었던 오른손을 살짝 놓고 자신의 손가락에 있는 리본을 풀었다.
“그 리본, 제가 선물로 드렸던 리본이네요.”
“히히, 맞아요.”
“잘 써주시는 것 같아서 기뻐요. 그런데 왜 손가락에 묶고 있었어요?”
“그냥 …… 운명의 리본처럼 묶어봤어요.”
“운명의 리본?”
“운명의 붉은 실 설화요. 왼쪽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다고 많이 들었던 것 같아서.”
츠카는 손가락에서 푼 리본을 몇 번 접은 뒤 자신의 손 안에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예쁜 분홍빛의 리본을 잠시 바라보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이지 씨는 저와 운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혼자만 하는 이상한 고민이지만 …… 그래도.
“저요, 가끔 자꾸 사소한 걸로 에이지 씨와 저는 운명이라고 묶곤 하거든요. 그래서 에이지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궁금해졌어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에이지 씨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지? 말을 잘못 내뱉은 것은 아닐까 하고 츠카가 조금 후회한 순간, 에이지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츠카 씨와 저는 운명이에요.”
“정말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에이지는 미소 지으며 아까 리본을 푸느라 츠카가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맞잡아 주었다. 츠카는 에이지가 너무 쉽게 이를 인정해주어서 좀 놀랐지만, 기쁜 마음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살짝 에이지의 쪽으로 고개를 기대자, 그도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붙어 주었다.
“…… 엄청 기뻐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츠카 씨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으, 으음. 조금?”
“왜요?”
“제가 잠깐이라도 행동을 멈췄거나 항의하지 않았다면, 에이지 씨와 만나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적어도 아주 처음부터 운명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에이지는 조용히 츠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몇 번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가 그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츠카 씨.”
“네? ……!”
쪽,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며 츠카의 뺨에 에이지의 입술이 스쳐지나갔다. 뺨이 붉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동그랗게 떠진 츠카의 밤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며 에이지는 그녀에게 다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를 찾아와줘서.”
“아 …….”
“츠카 씨를 만나 당신을 사랑할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에이지는 츠카의 손 안에서 분홍색 리본을 꺼내 츠카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다시 리본 모양으로 묶어주었다. 저도 츠카 씨가 똑같이 묶어 줄래요? 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의 왼손을 츠카에게 내밀었다. 츠카는 리본의 한쪽 끝 부분을 들어 에이지의 손가락에 똑같이 리본을 묶었다. 운명의 리본처럼 서로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묶인 분홍색 리본. 에이지는 츠카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것을 걸었다. 마치 자주 하는 그들의 손가락 약속 때처럼.
“사랑해요, 츠카 씨.”
츠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운명이, 설령 지금 서로에게 묶어버린 리본처럼 후에 만들어진 것이었더라도. 아니면 에이지의 말처럼 정말 처음부터 운명이었다고 해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느꼈다.
지금 이 순간 에이지의 사랑을, 그의 운명을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한 거였다고 …….
‘그 어떤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거야.’
지켜낼 것이다. 에이지의 사랑을, 에이지가 믿고 있는 그와의 운명을 꼭 쥔 채 영원히 놓지 않을 것이다. 그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걸고 있는 에이지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며, 츠카는 속으로 약속을 했다. 에이지에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만 하는 것인지 모를 약속을.
“저도 에이지 씨를 너무너무 사랑해요!”
*
에이지는 자신에게 기대어 잠든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츠카에게 살짝 안겨 있는 자신의 왼쪽 팔에서부터 그녀의 온기가 느껴져 왔다.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눕혀둘까 싶었지만 그 온기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에 에이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 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운명에 대한 이야기. 아직도 자신을 위해 썼었던 그녀의 첫 번째 곡이, 정작 나에게 오지 못했던 것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는 예전에 이미 잘 해결된 문제였지만 그녀에게는 아직도 꽤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와 했던 기획의 방향을 멋대로 돌린 것은 아버지였으니 츠카는 잘못이 없는데. 그 좌절했던 경험 때문에 이런 걱정을 했던 건 아니려나. 나와 만나는 걸 운명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그래도, 운명이 아니어도 어떤가요.”
애초에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세요, 츠카 씨.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여기 존재하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약 정말 제 운명을 츠카 씨가 바꿨다고 한다면 그게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당신에게는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는 거니까.
“그러면 츠카 씨는 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저를 사랑한 사람이군요.”
아, 내 생각에는 그게 더 멋진 것 같은데. 에이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츠카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었다.
“저는요, 츠카 씨.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과 제가 운명이라고 믿어요.”
그는 츠카를 부드럽게 안아들어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 뒤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제 나의 벚꽃 공주님은 예쁜 꿈을 꾸면서 잠들 시간이에요.
오늘도 잘 자요, 언제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