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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의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쿠루스 마코토는 귀를 틀어막았다. 레이와 갈색 머리의 여성이 서로를 마주보며 여봐라는 듯 기타 현을 피크로 열심히 뜯고 있었다. 서로의 화음은 연못 속의 상을 마주한 것처럼 닮은 것 같으면서도, 수면 아래와 하늘 위에 품은 것이 다른 것처럼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 몹시 잘 어울렸다. 그 점은 램페이저와 오시리스의 합동공연 티켓이 언제나 매진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 흥행비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 파트너는 한 발 먼저 도착해 있을는지. 마코토는 조금 더 연습실 깊숙한 곳으로 똑바르게 걸어간다. 사실 빈말로라도 그녀를 요즘 그리 자주 만났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코토는 졸업을 이제 막 치렀고, 자쿠로는, 일이 있든 없든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다. 연습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녀는 언제나 소파에 앉아 유리 테이블에 무언가를 내려다놓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의 원문이거나, 월간 잡지거나, 한 번은 퀼트천과 솜이 담긴 종이가방이었던가.
 그리고 자쿠로는 마코토의 예외를 깨뜨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머.”
 안녕, 이라는 인사의 대체어였으나,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장모종의 고양이를 무릎 위에 올리고 쓰다듬는 부잣집 아가씨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었다. 실지로는 꽤나 그와 거리감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을 것이 틀림없는데도. 자쿠로가 쥔 것을 본 마코토는 살짝 고개를 틀어보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제가 사용하는 기타가 새겨진 아이다 천이 아니었던가? 아니, 십자수와 비슷한 양상의 행위이기는 했다. 형상을 그리는 의미에서는. 4B연필로 명암을 표현을 한 탓에 그녀의 새끼손가락께의 모서리는 새까맣게 변해 엉망이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베이스 케이스를 맞은편의 소파에 기대듯 세우며 마코토는 그녀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인다. 끝부분이 둥글게 도드라진 선이 예닐곱 개에, 매끄럽게 이지러진 타원형……. 저것이 술을 보호하는 꽃잎이라는 것쯤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쿠루스 마코토는 원예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 그의 시각에서 이 꽃은, 어린아이들이 가느다랗고 긴 종이를 둘둘 말아 만든 별접기 결과물의 아종같아 보였다.
 “십자수는 이제 다 파악했고, 이제는 그림이 구미가 당길 때인가요?”
 “사람은 원래 죽을 때까지 학생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독학을 취미로 두는 여자다운 좌우명, 답다고 할까. 마코토는 웃음을 푸스스 흘리며 자쿠로의 그림에 시선을 고정했다. 반사광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녀가 음영이 진 부분을 지우개 끝으로 살며시 긁었다. 쿠루스 마코토는 어느덧 그녀 앞에 마주앉아 그녀의 서툰 그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림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김새와 명암, 그리고 사물을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필요한 묘사에 어떤 것이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스케치는 완벽하나, 명암 묘사가 마구잡이로 긁은 듯 투박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지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쿠로는 아직 그림을 미완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가는 그녀가 이 첫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그 쪽을 더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있고. 다만, 소재의 선정 자체만이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게 제 마음을 뿌듯이 채우는 결과물을 내고싶어서든, 대상을 열광하는 마음을 뚜렷하게 가시화하고 싶어서든, 밴드 플레이어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녀의 소재 선정은 대부분이 음악에 맞춰지고 있었다. 콕 집어 비유를 하자면, 그녀는 은근히 쿄를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해야할까. 발렌타인데이에 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든 커다란 음표 모양 초콜릿이 생각났다. 그저 그 음표 모양을 베이스로 바꾸면 자쿠로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아직 그녀는 베이킹이나 디저트 만들기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사실 이것에 흥미를 가지게 될지는, 마코토조차도 감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그림 외의 그녀가 도전한 부문 모두가 그러했다. 실지로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금 그녀의 베이스 케이스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지 않은가. 새빨간 베이스 기타를 손에 쥔 채 어딘가 화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의 모습. 그리고 우연히 리허설 사진에 저 인형이 찍히자마자 굿즈화를 요구하는 그녀의 팬들의 멘션이 트위터에 쭈르르 달린 것은, 근황보고를 위하여 새벽에 잠깐 접속한 타임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신선한 방향전환의 근원이란……?
 “틀림없이 베이스를 그리시지 않을까 했는데요.”
 “학원에서 가르치는 이상 기본적으로는 커리큘럼에 따라야 법이거든. 그럴만한 능력이 되면 다른 것도 시도를 알아서 해보겠지만, 보시다시피.”
 “커리큘럼, 말입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꽃을 그려보라길래.”
 그러면서 한 번 참고해보라며 이런 것도 빌려주더라고. 옆에 팽개치듯 놓아두었던 두꺼운 서적을 팔랑거리며 자쿠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꽃이 그려진 표지를 보아서는 원예도감일거라 생각했으나, 막상 페이지를 넘긴 마코토의 눈매가 둥글게 부풀며 예기를 잠깐 누그러뜨렸다. 아마도, 원예도감이 맞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목차 항목에 기재된 글자가 일반적인 화훼를 분류하는 기준과는 굉장한 거리감이 있었다. 1월에서 12월. 페이지를 한 차례 넘겨보면, 다시 1일에서 30일, 내지는 31일까지의 세세한 항목으로 나뉘어 있었다. 마코토는 가장 첫 항목, 다시 말해 1월 1일의 페이지를 펼쳐보였다. 하얀 날개 한 쌍을 가진 반딧불을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꽃의 사진이 오른편에 깔끔한 색채로 서너 장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마 이 책을 구입한 사람들의 제1차적인 목적은, 아마도 왼편에 기재된 빼곡한 글씨들이 아닐는지. 꽃말은 희망과 위안. 그러나 이것을 타인에게 선물할 때는 나는 당신의 죽음을 바랍니-……. 마코토는 더 읽지 않고 책장을 덮었다. 자쿠로가 알 만하다는 듯 4B연필을 손가락에서 떼고 웃음지었다. 그리고 티슈를 찾아 새까맣게 변한 그녀의 손을 닦기 시작했다.
 “뭐, 문학 작품이나 가사에도 더러 있긴 하니까요……. 복선이나 연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꽃말을 빌려다 쓰는 소재는 거의 클리셰에 가까우니, 이런 책자가 출간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네요.”
 “뭐어, 그렇지. 그런 식으로 꽃말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꽃말이 거기서 거기인 것도 있고, 물망초나 카모밀레 같은 것들 외엔 다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
 아마 이어지는 뒷문장을 듣지 못했다면, 쿠루스 마코토는 그녀의 의도가 모래사막에서 어렵사리 고개를 디민 화초에 물방울 대신 모래를 먹여 죽이듯 힐난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지로 그녀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긴 기일동안 싱싱함을 유지하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질 꽃을 그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라이브 회장에 걸린 화환을 보면서도 그녀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조금 아까운데-. 라며.
 “뭐, 가끔은 이런 잡학 공부도 나쁘진 않다 싶었지만.”
 “……?”
 그 뜻을 바로 해석하지 못한 마코토가 눈썹을 살며시 치켜올려 의문을 표시했다. 이제 손바닥 대신 새까맣게 변해버린 티슈를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자쿠로는 턱짓으로 제 그림을 가리키며 도발하듯 중얼거렸다. 찾아보지 그래?
 “가장 맘에 드는 사람을 그릴 수가 없다면, 무얼 그리면 될지는 뻔한 거 아닌가?”
 그리고 마코토는 이런 부분에서는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몇월의 며칠의 탄생화를 설명한 페이지로 넘어가면 될 지를 대번에 짐작한 그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며 어수룩한 연기를 하듯, 맑은 빛이 투과되는 것 같은 미소를 희미하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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