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켓몬스터ORAS 패러디 소설
* 나성호 드림
* 04월 13일의 탄생화: 페르시아 국화(경쟁심)
어젯밤은 유달리 별이 잘 보였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는 별 무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웠기에, 포켓몬 6마리를 모두 꺼내 별을 세다 잠이 들었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고디모아젤만 남아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디모아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졸린 눈을 비비며 묻자 고디모아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찬 바람을 맞은 탓인지 약간은 서늘한 감촉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고디모아젤의 울음소리가 어쩐지 서글프게 들렸지만, 더 고민할 여력도 없어 까무룩 잠에 빠졌다. 미처 도감의 설명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터다.
* * *
아침이 밝았다.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시티는 입구에서부터 '포켓몬 배틀'에 대한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나도 어엿한 트레이너이니 흥미가 돋운 건 당연했다. 데리고 있는 포켓몬 중 한 마리만 등록하여 교체 없이 계속 시합을 이어가는 방식의 토너먼트 경기라는 설명을 찬찬히 읽었다. 랜덤하게 상대를 뽑는다고는 하나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우승은 힘들어 보였다. 포스터의 하단에는 상품 목록이 기재되어 있었다.
"1등 경품은 메가링과 메가스톤 세트, 2등 상품이 마스터 볼, 3등은 금 구슬인가. 3등만 해도 쏠쏠하겠는걸?"
어려운 경기이기는 해도 한 번 시도라도 해보고 싶을 만큼 상품 모두가 하나 같이 탐나는 물건들이었다. 참가할지 말지 고민하며 턱을 쓰다듬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너도 이 시합에 참가하려고?"
윤진이와 함께 박사님으로부터 도감을 받은 동기인 성호였다.
"나는 막 참가 신청서를 내고 오는 길이야. 요즘 메가진화에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는데, 너도 참가한다니 시합에서 만나면 좋겠네."
나성호가 참가한다는 소식은 방금까지의 고민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 보자며 손을 흔들고서 자리를 뜨는 성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홀로 투지를 불태웠다.
'나성호한테는 질 수 없지. 메가진화에는 관심 없지만 이 시합, 무조건 1등이다.'
* * *
결과부터 말하지만 성호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하필이면 첫 대전 상대가 그라에나였던 탓이다. 함께 시합에 나간 고디모아젤은 악 타입의 공격기술 앞에서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시합이 끝난 후에는 앞선 참가자들의 포켓몬이 치료받는 동안 기다리라며 빈방으로 안내받았다. 긴 소파와 일인용 소파 두 개,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낮은 테이블만 있는 응접실을 퍽 휑한 구석이 있었다. 일단 긴 소파 위로 고디모아젤을 꺼내 눕혔다. 시합 전, 혹시라도 상성이 나쁜 상대를 만날까 봐 미리 주었던 기력의 조각은 고디모아젤의 주먹에 꾹 쥐어져 있었다. 상대가 악 타입인 만큼 어떤 공격을 해도 효과가 없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일까, 고디모아젤은 의식을 잃으면서까지 이 조각을 쓰지 않았다. 주먹을 살살 풀며 기력의 조각을 꺼내려는데 다시금 문이 열렸다.
뜻 밖에도 들어온 사람은 성호였다.
"설마 졌어?"
"응. 코터스였는데, 강하더라."
"저런, 챔피언 꿈나무의 체면이 안 서겠는걸."
"뭘, 이번 패배를 통해 한 발짝 성장하는 거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태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 성호는 내 옆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패배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유형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마저 고디모아젤의 주먹을 풀었다. 기력의 조각이 내 손 위로 떨어졌다.
"기력의 조각?"
"응, 고디모아젤이 시합에서 안 썼더라고. 잘 됐지 뭐, 오래 기절하고 있는 것도 보기 안쓰러우니까. 일단 깨워만 두려고."
"너 정말로 포켓몬을 좋아하는구나."
"하하, 너만 할까."
그 사이 기력의 조각이 고디모아젤에게 스며들었다. 반짝, 하고 고디모아젤의 눈이 떠졌다.
"일어났어, 고디모아젤?"
시합은 아쉬웠다며, 고생했다고 이야기하려던 차였다. 고디모아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지시도 없이 사이코키네시스로 냅다 문을 날려버렸다.
"고디모아젤, 이게 무슨 짓이야?"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놀라 몬스터볼을 꺼내는데, 성호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고디모아젤은 미래를 읽는 포켓몬이야. 무슨 이유가 있겠지. 일단 고디모아젤이 하는 대로 두자."
몬스터볼을 들고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고디모아젤은 다급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누가 보더라도 따라오라는 제스처였다. 성호는 벌써 일어나 고디모아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도 몬스터볼을 다시 집어넣고서 고디모아젤을 따라가기로 했다.
나온 복도는 시합이 한창인 경기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다. 고디모아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뒤를 따라 달리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어젯밤의 일이 기억난 탓이었다. '별의 장소나 움직임에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지한다. 트레이너의 수명도 보인다.'라는 도감의 설명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고디모아젤이 멈춘 건 건물 깊숙이 있던 창고 앞에서였다. 다시 한번 사이코키네시스로 문을 날려버린 고디모아젤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철장 가득 포켓몬들이 마구잡이로 집어 넣어진 채로 갇혀 있었다. 시합 전에 등록한 포켓몬을 제외하고 맡겨 놓으라는 말에 접수대에 몬스터볼을 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몬스터볼에서 포켓몬을 꺼내 철장 안에 넣는 작업을 하던 내 대전 상대가 우리를 보았다. 그는 시합 때와 달리 로켓단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시합은 처음부터 조작되어 있었다. 모든 게 포켓몬을 훔치기 위한 로켓단의 함정이었다.
"고디모아젤, 저 컴퓨터를 향해 사이코키네시스를 날려!"
기력의 조각으로 겨우 일어난 고디모아젤로는 저 인원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철장과 연결된 컴퓨터를 부쉈다. 그 사이 로켓단의 조무래기들은 자기 포켓몬을 꺼내 고디모아젤을 공격했다. 그라에나와 코터스였다.
"조금만 버텨줘, 고디모아젤! 저 철장만 부수면 돼!"
그라에나가 고디모아젤의 몸통을 깨무는 것과 동시에 사이코키네시스를 맞은 철장이 부서졌다. 고디모아젤은 쓰러졌지만, 철장 안에 갇혀있던 포켓몬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 중에는 내 포켓몬들과 성호의 포켓몬들이 있었다. 곁에 트레이너가 없더라도 저 조무래기들에게 화가 잔뜩 난 포켓몬들도 있었다.
쓰러지는 고디모아젤을 보며 의기양양하던 조무래기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 * *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태워지는 로켓단 조무래기들을 지켜보다 옆에 있던 성호의 팔뚝을 툭툭 쳤다.
"경기는 물 건너 간 모양인데, 너랑 나랑 둘이서라도 배틀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