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가는 꽃잎을 손끝으로 만지면, 꽃잎들이 부딪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원래 큰 소리인지 아님 홀로 남겨진 방이 조용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햇빛에 색이 바랜 꽃잎은 처음과는 다른 모습다. 요루미는 이 꽃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꽃고비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현관문을 노크한 손길은 바로 옆에서 살고있는 애인이었다. 평소처럼 그녀의 집으로 돌어선 오토야가, 그 날은 더 환하게 웃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연보라빛의 꽃이 하얀색 포장지에 곱게 싸여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잽싸게 입을 열었다.
"꽃고비라는 꽃이야. 이게.... 오늘, 어쩌다가 내 탄생화를 알게 되었는데 예쁘길래... 요루에게도, 보, 보여주고 싶었어."
부끄러운 건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꽃을 내민 손이 어색하게 건내졌다. 그 모습에 요루미는 웃으며 꽃을 받았다.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은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어릴 적에는 발레 콩쿠르에 나가 상을 타왔을 때ー아빠는 이런 자리에 나가게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상을 타지 않아도 꽃을 사오곤 했다.ー, 학교를 졸업할 때, 가끔은 입학할 때도 꽃을 받곤 했었다. 축하를 위함이 아니라 다른 목적, 더구나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네게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받은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이야기였다. 간질간질해진 마음을 들키고 싶진 않아 고맙다는 말로 겨우 진정했지만,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꽃고비, 그러니까 이 꽃의 꽃말이 어떤 건지 알아?"
"음...... 뭔데?"
고민이라도 하는 건지 꽃을 한참 보던 그녀가 그에게로 동그란 눈을 맞췄다.
"와주세요, 라는 뜻이야."
"와주세요? ..... 탄생화라서 그런지 그렇게 막, 거창하고 큰 뜻은 없네."
"그래? 나는 마음에 드는데 ...."
요루미는 내심 기대한 것인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뭘 기대한 것일까. 좋아한다는 말을 기대했나?
"요루미가 나에게 좀 더 다가와주면 좋겠어."
"어? 이렇게?"
그녀는 그에게 한발 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치도 못한 행동이었다. 그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아,아니! 이게 아니라...!"
"미안, 이게 아니구나.... 그럼 뭔데?"
머쓱해하며 요루미는 다시 한발 짝 멀어졌다.그는 멀어진 거리가 아쉬워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오토야의 아쉬움이 표정으로 드러났지만, 그녀는 못본 척 했다. 무슨 의미야? 그녀가 다시 질문을 던졌을 때야 아쉬운 표정이 지워졌다.
"슬플 때나 쓸쓸할 때, 힘이 들 때에도 나에게로 와달라는 의미었어."
"그건 실례잖아."
"실례가 아니야! 이건 ..... 그 ....."
칼같은 요루미의 대답에 오토야는 한참 동안이나 머리를 굴려야 했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 특히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요루미가 그닥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억이 있는 한, 의지를 할 바에는 혼자 앓는 편이 훨씬 나았다. 저도 모르게 오토야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할 때면 다시 스스로 두발 짝 뒤로 물러났다. 한번 빠져버리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연인이잖아. 그래서 나는 요루미가 나에게로 와서 조금이라도 의지해줬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인데...."
중얼거리는 말에는 물기가 뭍어 있었다. 언제인지 모르게 그에게 잡힌 두 손이 뜨겁다. 내가 무서워서 그런거야. 미안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말은 쉽게 뱉어지지가 않았다. 입 안을 맴돌던 그 말은 결국, 다시 삼켜졌다.
"그럼, 그럼.... 네가 천천히 와서 기댈 수 있게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 이건 허락해 줄 거지? 응?"
요루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야의 애절한 눈빛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는, 먼 미래일 지라도 오토야에게 먼저 기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옅게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