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무라 하나에. 幸村花愛. 하나에의 이름은 유키무라가 지었었다. 너라는 꽃을 사랑해서 나온 아이니까, 하나에야. 유키무라는 하나자와의 뱃 속에 있는 아이가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안 후부터 계속 혼자 무엇인가를 고민하더니 TV를 보는 하나자와의 곁에 다가와 그렇게 말했더랬다. 하나에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던 날, 유키무라는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하나자와의 출산을 축하할 겸, 아이를 볼 겸 병실에 놀라왔던 前 릿카이 레귤러들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제 팔뚝만한 아이를 안고 그렇게 울었더랬다.
“하나에.”
어느 정도 자란 하나에는 이제 유키무라나 하나자와가 곧잘 입 밖으로 내는 ‘하나에’라는 단어가 저를 부르는 말임을 알았다. 유키무라의 저를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바닥에 누워 모빌을 한없이 바라보던 하나에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유키무라를 보곤 꺄르르, 웃었다. 그 웃음이 어느 날 전국 중학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며 온 몸으로 맞았던 여름 햇살 마냥 따스해서 유키무라는 입가에 부드러운미소를 머금곤 하나에를 들어 올렸다.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하나에의 머리 색은 제 것을 꼭 닮았다. 다른 사람도 자신의 머리를 바라볼 때면 넓은 바다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를까. 하나에의 반짝거리는 초록 눈은 1학년 때의 하나자와를 연상 시켰다.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씩씩한 여전사처럼 빛나던 눈. 유키무라는 하나에의 눈가에 쪽쪽, 사탕 같은 뽀뽀를 떨어뜨렸다. 닿는 숨결이 간지러워 하나에는 옹알이를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유키무라의 얼굴을 밀어냈다.
“선배, 하나에랑 뭐해요?”
“아무것도.”
그보다 언제까지 선배라고 부를거야? 이제 세이이치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유키무라는 익숙하게 자신의 옆에 다가와 선 하나자와의 입술에 입 맞췄다. 으음, 그치만 선배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선배만 보면 선배라는 말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예전에는 유키무라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굴이 사과마냥 붉어져선 도망가버리던 하나자와는 이제 곧잘 유키무라의 입술에 새털 마냥 가벼운 키스를 선사하곤 했다. 꺄아. 하나에는 제 엄마가 옆으로 오자 반갑다는 듯 짧은 팔과 다리를 바둥거렸고, 하나자와는 익숙하게 유키무라에게서 하나에를 받아 안았다.
처음 하나에를 품에 안았을 때는 폼이 너무 어정쩡해서 옆에 있던 부모님한테 쯧쯧, 하는 혀 차는 소리를 듣고 애를 낳아보지도 않은 키리하라에게 넌 진짜 뭘 해도 어설프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 물론 그렇게 말한 키리하라의 등짝을 때려주는 것은 잊지 않았었다 - 지금은 하나에와 자기는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는 것 마냥 편안하게 하나자와의 엉덩이와 등을 받쳐 안을 줄 알았다.
“헤헤, 하나에는 역시 제가 더 좋나봐요.”
“…음, 그거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조금 서운한데.”
유키무라는 부러 어깨를 축 내리곤 우는 상을 만들어냈고, 하나자와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하나에 봐봐, 아빠 운다. 얼른 달래줘, 하나에. 하나에는 하나자와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했으면서 울지 말라는 듯 유키무라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성인이 되고, 프로로 데뷔한 유키무라는 언제나 바빴다. 해외에서의 전지 훈련, 또 다른 해외에서의 대회, 대회가 끝나고 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전지 훈련, 또 대회. 이러한 일정이 반복되다 보니 하나자와는 유키무라와 결혼을 했음에도 하나에와 단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유키무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쓸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전화나 메일,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서 영상 통화까지 가능하니 그것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이제는 하나에까지 있으니까. 하나에의
자라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이나 혼자 웃으며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게 마치 어렸을 적의 유키무라를 보는 것 같아 하나자와는 하나에와 함께 있는 것이 언제나 즐거웠고, 정말 가끔씩은 유키무라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에는 아직 아빠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한 어린 아이였다. 유키무라가 들으면 삐질까봐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근래 가끔 '마마'라는 말을 옹알이처럼 하는 하나에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파파'라는 말을, 하다못해 그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라는 말을 들을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걸까, 아빠를 자주 만나지 못해서 그런걸까. 이러다 나중에 유키무라를 낯설어 하면 어떡하지, 언젠가 말을, 하게 된다면 오랜만에 집에 온 선배한테 '파파'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불러 버리면 어쩌지, 하나자와는 혼자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도 하나에가 똑똑한 탓인지 낯을 크게 가리지 않는 탓인지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지만. 나중에 하나에가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온다면 그 때 선배의 사진을 들고 ‘파파’라고 부르라고 교육을 시켜야겠다. 선배는 만약 하나에한테 ‘아저씨’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정말 충격 받을 지도 몰라. 하나자와는 하나에가 작은 손으로 제 손가락을 잡자 감격하며 사진을 찍는 유키무라를 바라 보며 - 이제 저 사진들은 키리하라에게 최소 열번씩 보내지겠지.
하나자와는 생각했다 - 속으로 다짐했다.
"아, 날씨도 좋은데 간만에 하나에랑 근처 공원으로 산책 나갈까?"
"좋아요!"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오자. 응! 아빠가 놀러가자네, 우리 하나에 좋겠네ㅡ. 하나에에게 얼마 전에 사둔 예쁜 원피스를 입혀주겠다며 안방으로 얼른 들어가는 하나자와의 뒷모습을 보며 유키무라는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