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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검은색의 어깨 위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황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신기한 듯 요리조리 둘러보며 눈을 깜빡이다 내 인기척에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리안이에요. 7살의 듬직한 남자 아이이고, 에레브에서 살고 있답니다!

 

저 같은 기사단도 아닌 어린아이가 왜 에레브에서 살고 있냐고요? 그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시그너스 여제님의 기사니까 그렇죠. 네? 그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냐고요? 그건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1.

저희 아버지는 어둠의 기사 나이트워커의 기사단장 이카르트님이세요! 에레브 기사 분들 중에서도 가장 멋있으시고, 잘생긴 분을 찾으시면 아마 그게 저희 아버지이실 거예요! 거기다가 무척 강하기까지 하시죠! 자랑 같다고요? 자랑 맞는 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인걸요! 다만 검은 마법사… 라는 적을 물리치고 나서도 기사단장을 하고 계시는 탓에 바빠서 오래 같이 있어주시지 못하는 건 너무 아쉬워요. 좀 더 저랑 수련도 같이 해주시면 좋을 텐데!

 

아버지 성격이요? 음…, 제가 보기에는 무척 다정하신 분이세요. 다른 분들 앞에서는 항상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에, 말하는 거나 성격도 그런 편이시라는데, 저나 어머니한테는 무척 잘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한삼촌이나 미하일님, 호크아이님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저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세차게 젓는답니다. …, 근데 왜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웃으시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걸까요? 엑, 어린 아이는 몰라도 된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니, 유치해요! 재미도 없어!

 

(아이, 리안은 툴툴대며 입술을 비죽였다. 여지없이 삐진 표정이다. 미안, 미안. 한참을 사과하고 나서야 아이는 다시 소개를 해줄 듯 입을 열었다.)

 

2.

저희 어머니요? 저희 어머니는요, 휘, 휘하… 이게 맞나요? 맞다고요? 다행이다. 음, 그럼 다시 소개드릴게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휘하에 계신 유린님이세요. 같은 나이트워커에 계시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아래에 계시는 셈이죠. 하긴, 아버지보다 더 높은 분은 시그너스 여제님과, 나인하트님 뿐이고, 같은 기사단장은 미하일님과 이리나님, 호크아이님, 오즈님이시니까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낮은 곳에 계시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요. 그렇다고 저희 어머니가 약하냐고요? 전혀 아니에요! 저희 어머니는 직책만 아래일 뿐, 힘은 아버지만큼, 아니 아버지보다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고 한삼촌이 그랬어요! 만약 어머니가 먼저 오셨더라면 어머니가 기사단장이 되셨을 거라나? 그런데 어머니는 원래 소울마스터 지원이셨잖아요, 삼촌, 하니까 가장 웃긴 표정을 했던 게 생각나네요. 푸흡.

 

앗,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길어져 버렸잖아. 미안해요. … 괜찮으니까 어머니에 대해서 더 알려달라고요? 싫은데…. 어머니에 관해서는 나와 아버지만 알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비밀로 하면 안돼요? 안된다고요? 힝….

 

…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다정한 분이세요. 저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께 친절하고 희생적이신 성격이라서, 아버지와 제가 다른 분들께 종종 질투를 하고는 해요. 저희 입장에서는 저희들만 봐줬으면 좋겠거든요. 그렇지만 어머니가 이러시길 바라니까 아버지도 저도 참고 있는 것 뿐 이에요. 언젠가 에레브를 나가서 우리 가족끼리만 살게 되면 분명 저희들만 봐주실 거라고,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는 걸로 할래요.

 

3.

그런 다른 성격의 두 분이 어떻게 사귀시게 된 거냐고요? 음…, 아주 오래 전부터 어머니가 아버지를 짝사랑 했고, 아버지도 그걸 알고 계셨대요. 그런데 아버지에겐 이미 사랑하던 사람이 있어서 어머니를 사랑하실 수 없으셨다나.

 

그랬는데 어느 샌가부터 어머니가 오시는 시간만을 기다리게 되고, 어떤 것을 하시더라도 그 사랑하던 분보다 어머니 생각이 먼저 나셨다고 하셨어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신 거라고. 그렇지만 여태까지 해왔던 게 미안해서 고백하기가 무서우셨다고.

 

… 그랬던 아버지가 고백하신 것은 마지막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요. 그 때도 역시 선봉장이 됐던 탓에 많이 다친 어머니가 곧 죽을 것 같았대요. 그래서 다급하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널 좋아하니까, 제발 죽지 말고 내 옆으로 돌아와 줘’ 라고 하셨다나. 아버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는 것도, 그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처음 봐서, 그 주변에 있어서 함께 들었던 기사 분들도 다들 놀란 표정을 하셨대요. 쓰러지는 사람 옆에서 고백이라니 웃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머니를 잃는 공포가 더 크셨을 거라고 삼촌이 그랬어요.

 

아버지의 고백과 정성 탓인지 어머니의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해서인지, 며칠 만에 어머니는 깨어나셨고, 아버지의 고백을 받아들이셨고요. 몇 달 후에는 기사단을 포함한 많은 분들의 축복 아래 결혼했대요. (이전에 있던 일 때문에 아버지는 레지스탕스 분들에게 조금 욕을 들으셨다는 건 비밀이에요?) 그리고 1년 정도 후에 제가 태어났고, 지금의 저는 많은 분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답니다, 히히!

 

4.

저는 누구를 더 닮았냐고요? 글쎄요…. 외모는 눈 모양을 빼면 아버지 판박이랬어요. 저희 아버지도 검은색 머리랑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계시거든요. 눈 모양은 어머니를 더 닮았고요.

 

근데 외모랑 다르게 성격은 아버지랑 어머니를 전혀 안 닮았어요. 그래서 혹시 아버지를 닮은 아이를 주워온 게 아닐까 하며 엄청나게 울었던 적이 있답니다. …, 결론은 어머니와 피를 나눈 삼촌의 성격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요. 그때만큼 운 적이 없어서 엄청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 갑자기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대충 들어보면 ‘식사하러 오렴, 리안.’ 인 것 같다.)

 

…, 아.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어머니가 부르시는 것 같아요.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인가 봐요. 부를 때 가지 않으면 아무리 착한 어머니라도 혼을 내시거든요. 그럼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이야기 할 때에는 반드시 나이트워커가 되어 있을 테니까 기대하고 오셔도 좋아요!

 

(아이는 내게 윙크 한번을 하고는 방을 뛰어 나갔다. 아이의 표정은 무척 해맑아 보여서, 나도 살짝 웃으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Written by 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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