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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의뢰가 또 들어왔다. 요즘은 장기 의뢰는 받지 않고 있으며, 장거리 의뢰도 받지 않고 있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서, 빨리 끝내고 너와 하루를 계속 보낸다. 사실은 하루종일 너와 같이 있고 싶고, 너를 보살펴주고 싶었는데.

오랜 짝사랑의 끝에 난 너와 연애를 했고, 연애의 끝은 결혼으로 이어져 우리들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맞이하였다. 특히,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맞이했을땐 너무나도 기뻤고, 이젠 아이까지 먹여살려야 하는 책임이 늘었다. 남편의 역할에 아빠의 역할이 늘어났지만, 마냥 기뻤다. 그렇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단기 의뢰라도 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홀몸이 아닌 너는 부쩍 먹고싶은게 늘었고, 배도 불러와서 함부로 움직이는 걸 자제해야 하는데.. 마냥 걱정이다. 원래는 닌자라는 직업때문에 세상에 섞이지 않기 위해 전자기기 사용은 자제하고 있으나, 너에게 전화올까봐 전화기를 자주 쳐다보고 있게 되었다.

 

 

"저기, 소닉 씨 전화 오는데요?"

 

"아아, 그렇군. 늦을뻔했네, 여보세요?"

 

"으응, 소닉, 나야."

 

"어, 여보. 무슨 일이야"

 

 

요즘은 여보라는 호칭도 익숙해지도록 노력중이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의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나, 네 전화였다. 사실 이 몸의 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도 너 하나였고, 이 몸의 전화번호를 아는것도 너 뿐이니까. 늦어서 미안하다고 계속 전화로 사과를 했다. 너는 괜찮다지만, 우리 아기는 괜찮지 않을테니까. 단기 의뢰따위 때려치우고 집으로 가고싶었다. 혹시 먹고싶은건 없나 하고 물어보니, 요즘 새큼한 과일이 그렇게 먹고싶다더니, 오늘은 오렌지랑 딸기가 먹고싶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눈에 뵈는것도 없다더니, 당장 달려가서 태동을 느끼고 싶었다.

 

 

"병원은 다녀왔겠지? 건강하대냐? 우리 아이'들'"

 

"응. 건강하대. 나도 건강하고. 왜인지 딸이 그렇게 활발하네."

 

"다행이다. 금방 갈게. 오렌지랑 딸기도 금방 사갈테니까, 마중 나오진 말고. 밖에 추우니까, 일어나지도 말고 쉬어라?"

 

"알았어, 알았어-"

 

 

"....의뢰는 이걸로 끝이다."

 

"아내가 있었던 겁니까? 아이까지 있다니, 행복하시겠네요."

 

"아아. 그럼.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의뢰인이 생각보다 오지랖.. 배려가 깊어서 금방 나올 수 있었다. 늦어진 시간에 대한 추가금까지 받고 바로 널 위한 오렌지와 딸기를 사러갔다. 사실 숲속의 과일을 직접 땄지, 사는건 익숙치 않았다. 피곤한 하루가 계속되지만,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사실 임신 초기에는 불안함이 컸다. 그렇게 입덧이 심할 줄 몰랐다. 뭘 먹지도 못해서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렇게 건강하게 아이도 자라고 태동도 잘 느껴진다. 태동이 느껴질 때 마다 안심한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 왔어, 소라. 기다렸어? 나오지 말라니까.."

 

"우리 아이가 보고싶었대."

 

"그걸 핑계로 그냥 내가 보고싶었지?"

 

"들켰네-"

 

 

꽤나 불러온 몸을 이끌고 문앞까지 마중나온 널 안아들고 눕혔다. 그리고 갓 사온 오렌지랑 딸기를 씻었다. 오렌지를 까서 입에 넣어주니 그렇게 잘먹을 수가 없었다. 행복하게 미소짓는 너를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그리고 사실은 조금 바보같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가끔 아기 옷이나 신발을 보곤 했다. 아기 옷과 신발을 보면 항상 놀라곤 한다. 한두 손가락 들어갈만한 크기의 신발을 보면 이렇게 작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중에 그 아이들이 다치면 어쩌나, 하는 훗날의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건 원하진 않는다. 닌자의 길을 걸으며 누구보다 혹독하고 힘들게 훈련하고 노력해야 하며, 상처는 일상이고 사람 목숨을 뺏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물론 이 몸은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시작해서 숨쉬듯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쉿, 아이들이 놀고 있어."

 

"아, 그래?"

 

 

조용히,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소라의 배에 잠시 살짝 귀를 대었다. 아이들이 마치 나 여기있다는 듯이 움직거렸다. 그리고 두드렸다. 발로 차는건지.. 딸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활발히 움직였다. 아들은 조금 소심하게 톡톡, 건드리듯이 느껴졌다. 이런 면에서 아이들의 성격까지 추리해 볼 수 있다니. 아빠가 된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네가 내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행복했다. 너는 그런 날 보며 조용히 웃었다. 가끔 아플때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하면, 아픔을 나눠주지 못하면 괜히 나도 아픈 것 같았다. 나중에 출산할 때에는 얼마나 힘들까, 그저 보면서 응원해 줘야 한다는 것도 죄책감이 들기에, 너의 옆에서 이렇게라도 돌봐주는 게, 아빠로서, 그리고 너의 남편으로서의 역할이니까.

 

 

"여보, 소라."

 

"응?"

 

"날 아빠가 되게 해줘서 고맙고, 날 남편으로 맞이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가족이 있는 행복을 알려주어서 고맙다."

 

"그런건 나도... 나도 그래."

 

 

너와 결혼했을때, 사이타마녀석 앞에서 하찮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었다. 슬퍼서도, 아파서도 아닌 기쁨의 눈물. 그리고 네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에도. 아마, 아이들이 태어나면 같이 울 수 있겠지. 넌 나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었고, 지금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평생을 너와 함께하게 되는 운명을 지게 되었으니, 그에 걸맞게 더 정진해야 하겠군. 너에게 더욱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아, 또 움직였다."

 

"아빠를 알아보나 봐."

 

 

오늘도 아내와 아이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꿈에서는, 우리 가족들의 행복한 미래를 볼 수 있길 바라며.

Written by 아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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