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엄마, 오늘은 같이 자면 안돼?”

 

책을 다 읽어준 뒤, 아이는 긴 속눈썹을 나풀나풀 깜빡이며 아오이의 가디건 자락을 손에 꼭 쥐었다. 그 작은 손에 아오이는 제 손을 쥐여주었다. 곧 잠들 것처럼 눈은 느리게 깜빡이고 있으면서, 잠들고 난 뒤에도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손은 꽉 잡았다. 아버지를 닮아 단정한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넘겨주며 아오이는 세리카의 곁에 다시 앉았다.

 

“엄마랑 세리랑 둘이 같이 잘까?”

“응. 나 혼자 자기 싫어요.”

 

아빠한테도 비밀이야 엄마. 못이기는 척 딸의 곁에 누운 아오이의 귓가에 아이가 속삭였다. 어제, 무서운 꿈을 꿨어. 근데 신이가 놀랄 거 같아서 혼자서 잤어. 나 잘했지? 간질간질, 따뜻한 호흡이 귓가를 스쳤다.

첫째인 세리카는 동생이 생긴 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했다. 본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이기도 했다. 엄마아빠처럼 키가 커지고 싶다면서 우유를 매일매일 마시질 않던가, 하루 종일 까치발로 걸어다니려 하다 어딘가에 걸려 넘어진다던지. 토키야는 그들의 딸이 자신보다는 아오이를 많이 닮았단 사실을 다시 한 번 짚어주었다. 단순히 얼굴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게 똑 닮았다며. 아오이는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신을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코도, 입도, 눈도. 하나하나 뜯어보아 귀엽지 못한 것이 없었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얼굴과 사근사근 인형에게 말을 거는 다정한 말씨. 그 속에서 언뜻 비치는 토키야의 흔적도, 사랑스럽다 못해 아름다웠다. 첫 아이를 낳은 지 10년이 되어가는 이 날까지도, 아오이는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행복한 일은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세리카는 부모님이 슬퍼하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악몽을 꾼 걸 아버지한테 말하면 또 한참 걱정할 걸 아니까. 토키야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과보호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다. 뭐, 언제는 과보호 하지 않았던가 싶지만. 어렸을 적부터 토키야는 아오이를 감싸주려 거진 애를 썼다. 그때에는, 그가 섬세하니까 그런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의 한결같았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오이는, 글쎄. 세리카에게는 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같은 거니까. 그래서인지, 세리카는 토키야보단 아오이에게 비밀 이야기를 조금 더 털어놓고는 했다. 이를 테면 어제 아무도 모르게 뒤뜰에 씨앗을 심었다는 식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였지만.

뒤뜰에는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났다. 아무것도 몰랐던 토키야는 깜짝 놀랐고, 세리카는 서프라이즈! 라고 외치며 와르르 웃었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터뜨린 웃음소리에 따라 까르르, 웃었다. 아오이는 제 딸의 볼에 입맞추었다.

 

“꿈에서 누가 무섭게 했어? 침대 아래의 괴물이야?”

“엄마도. 내 침대 아래에 괴물이 없단 건 나도 잘 알아. 자꾸 그러면 아빠한테 이를 거야?”

“그건 조금만 참아주라. 아빠가 혼내면 무서운 거 세리도 알면서.”

 

그러면 놀리지 마아, 나 이제 열살이야! 말랑한 볼을 동그랗게 부풀리는 모양새가 그저 좋아 아오이는 소리 죽여 웃었다. 동그란 볼에서는 딸기맛 치약의 냄새가 났다.

 

“아호이,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럽니까?”

 

머리 위로 무거운 목소리가 뚝 떨어지자 아오이는 세리카와 함께 덮은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엄마는 여기 없어. 작게 속삭이자 세리카가 키득키득 웃으며 맞아, 엄마는 자러 갔어! 괴물들이랑! 하며 짓궂게 웃었다. 토키야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또 괴물 이야기… 그럴 시간에 읽기로 한 책이나 읽어주세요. 세리카, 아직 졸리지 않나요?”

“으응, 조금 졸려.”

“그러면 어서 자야죠. 저 사람은 왜 아직도 거기 숨어있습니까. 숨 안 막힙니까? 나오세요.”

 

나한테만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한숨을 폭 쉬며 아오이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슬슬 너무 따뜻하다 싶기도 했다. 토키야는 품에 둘째 아이를 안은 채 차분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둘째, 신이가 토키야의 품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아들을 향해 아오이도 손을 흔들었다. 말수가 적은 신이는 아직 잠은 안 오는 건지, 아빠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다. 신이를 발견한 세리카가 얼른 자, 하고 손을 뻗자 토키야가 허리를 숙여주었다. 세리카는 동생의 포동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

 

“내가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 그랬는데, 아빠, 오늘만 같이 자면 안돼?”

“안 될 게 있겠습니까? 그러면 신이는 제가 재우도록 하죠. 내일 아침 당번은 아오이 당신인 거, 잊지 말고.”

“응, 안 잊어버렸어. 잘 자, 토키야.”

“잘 자요, 아오이. 세리카. 신이도, 인사해야지.”

“응. 잘 자요, 엄마, 누나.”

 

토키야가 허리를 숙여 딸의 이마에 입맞추고, 아오이의 볼에 입맞추고는 문 밖으로 다시 나갔다. 신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토키야에게 무언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엄마, 아기새가 소리를 내는 것처럼 세리카가 목소리를 내었다.

 

“엄마도 악몽을 꿔요?”

“그럼, 누구나 악몽은 꾸지.”

“그렇구나. 그러면 나, 겁쟁이인걸까?”

“아니, 세리카는 겁쟁이가 아니야.”

 

물끄러미, 세리카가 아오이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아빠는 악몽 꿔도 겁을 안 먹어서 좋겠다. 한숨이 나풀거리며 흩어졌다.

 

“왜, 꿈에 무서운 괴물이 나왔니?”

 

짓궂게 묻자 엄마도 참, 하면서 어깨를 아프지 않게 이마로 눌렀다. 아오이는 세리카를 가깝게 끌어안았다. 자그마한 심장박동소리가 자신의 가슴까지 울리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옷장 안에 있는 괴물이 제일 무섭다고 엉엉 울던 아이는 제법 몸집이 커졌다. 응석부리며 머리를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는 건 똑같았지만.

 

“괴물 같은 거 아녔어.”

“그러면, 뭐가 그렇게 무서웠니? 엄마가 아빠한테는 비밀로 할게. 응?”

 

한참을 생각하며 동그란 눈을 찌푸리다가, 눈썹 사이가 파였다. 토키야랑 똑같은 얼굴을 하는구나. 아오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눈썹 사이의 작은 골을 살살 펴주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이가 눈을 여러 차례 눈을 깜빡였다.

 

“아냐, 역시 비밀로 할거야. 잘 자, 엄마.”

 

그래, 잘 자렴. 고개를 숙여 마지막으로 이마 위에 입맞추자 아이가 새가 쪼듯, 아오이의 볼에도 입맞췄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턱 밑까지 이불을 덮은 아이의 가슴이 느릿하게 오르락 내리락 움직였다. 평소보다 더 오래 버티더니, 무슨 일이었을까. 꿈을 꾸기가 무서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가장 두려웠던 건 뭘까? 머리칼을 천천히 뒤로 쓸어 넘겨주며 조용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길을 잃는 꿈일까? 아니면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꿈일까? 어둠속에 홀로 남겨진 꿈일까? 평생 무서워하는 게 없는 아이였는데. 무엇이 너를 괴롭히는 걸까. 손을 뻗어 전등의 불을 껐다. 방 안에는 잔잔한 어둠이 깔렸다. 엄마가 여기 있어. 세리, 세리카. 품에 파고든 아이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길을 잃으면 찾으러 갈게. 어둠이 무서우면 등불을 들고 가면 되겠지. 잃어버린 건 다시 찾자. 아니면, 더 소중한 걸 안겨줄게. 예전, 연인이 속삭였던 언약과 닮은 말을 여자는 아이의 귓가에 흘렸다.

있지, 너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아직은 알지 못해도 괜찮아, 내 작은 아가야.

비밀을 말해주듯, 아이와 똑 닮은 푸른 눈으로 어머니가 속삭였다.

너를 만날 수 있어서 내 세상은 축복 받았어.

잠든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어머니는 기도를 올렸다. 누구를 향한 기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누군가에게는 닿기만을 빌며, 아오이는 아이를 따라 눈을 감았다.

Written by 에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