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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거 봐요! 진짜 살아있는 곰이야!”

“3마리나 있어! 우와!!”

“잠깐, 코마츠! 타이마츠! 뛰면 안 돼!!”

 

하아. 깊은 한숨을 내뱉은 쵸로마츠는 제 손을 놓고 앞으로 질주하는 쌍둥이 자식들을 쫒아갔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떻게 통제라도 됐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론 도저히 제어가 안 된다. 육아란 이렇게 힘든 거였나. 새삼 여섯 쌍둥이를 키운 부모님이 존경스러워 졌다.

 

“잡았다! 이 녀석들, 아빠를 놓고 가면 안 된다고 했지?”

“우왓!”

 

제 양팔에 잡힌 아이들은 혼내는 아버지의 모습마저도 즐거운지 깔깔 웃으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지금 술래잡기 놀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늘 잔소리를 하는 아빠지만 자신들에겐 다정한 것을 알기 때문일까. 쌍둥이들은 쵸로마츠를 친구처럼 좋아했고, 누구보다도 편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쵸로마츠, 애들은? 아, 다 잡았구나.”

“아아. 왔어?”

 

발버둥치는 아이들을 더 이상 잡고 있기 힘들 때 쯤, 마치 구세주가 강림하듯 제 아내가 나타났다. 이제 됐다. 혼자서 둘을 보는 건 힘들지만 둘이서 둘을 보는 건 쉬우니까. 안심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놓은 쵸로마츠는 메구미가 들고 온 도시락 가방과 비닐봉투를 받아들었다.

 

“응. 미안해, 조금 늦었지? 매점에 사람이 많더라고. 물 하나 사는데 뭘 이렇게 기다려야 하나 싶었어.”

“뭐 주말이니까. 수고했어. 자, 밥 먹자.”

“와아!”

 

밥 이야기에 아이들은 근처 테이블로 달려가 얌전히 앉았다. 그렇게 뛰어 놀았으니 배가 고플 법도 하지. 피식 웃은 쵸로마츠는 메구미가 준비한 도시락을 하나씩 풀어보았다. 샌드위치에 주먹밥, 닭튀김에 계란말이까지. 꽤나 신경 쓴 티가 나는 도시락에선 맛있는 냄새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마, 새우튀김은?”

 

딸인 코마츠는 포크질을 하다 말고 메구미에게 물었다. 이 많은 반찬 중 굳이 좋아하는 게 없다고 투정부리는 것은 귀엽지만, 그렇다고 당장 만들어 줄 수도 없으니 곤란하기 그지없다. 어색하게 웃은 메구미는 닭튀김을 딸 앞으로 내밀었다.

 

“미안. 새우는 없어. 대신 이거라도 먹자.”

“다음엔 꼭 만들어주세요!”

“그래. 그래. 아, 타이마츠도 먹으렴.”

 

어느 한 쪽만 챙겨주면 아이는 쉽게 상처받는다. 아니. 사실 아이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 중 한 쪽에게만 관심을 보인다면 다른 한 쪽이 상처받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지. 아들에게도 닭튀김과 계란말이를 권한 메구미는 알아서 잘 챙겨먹고 있는 남편 옆에 앉아 물을 들이켰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야. 간만의 소풍인데 비라도 오면 어쩌나 했어.”

“너무 좋아서 탈이지. 늦봄인데 더울 지경이니까. 뭐…, 애들이 즐거워 하니 됐나?”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자식들을 보고 있다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절로 배가 불러온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육아는 고된 일이라,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아이들을 기를 수 없다. 기묘한 모순 속에서 식사를 하는 부부는 아이들이 먹는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빠, 나 오렌지 주스 줘.”

“응? 아. 그래 이거 너 먹어.”

“와아!”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쵸로마츠였다.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 형제들과 옥신각신하며 큰 그는 제 자식들이 사이가 좋은 남매인 게 무엇보다 다행이라 느껴졌다. 만약 사이까지 나빴다면 정말 몸이 남아나지 않았겠지. 다시 한 번, 친가에 있을 부모님이 존경스러워졌다.

 

“조만간 찾아뵈어야 하려나….”

“응? 왜 그래, 쵸로마츠?”

“아아. 아냐. 그냥 부모님 생각이 나서.”

“아하….”

 

메구미는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둘 만으로도 고역인데, 여섯은 무슨 지옥일까.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다. 팔을 가볍게 한번 문지른 그녀는 벌써 도시락을 비우고 과자를 까먹고 있는 자식들을 눈으로 훑었다.

 

“몸이 고된 것도 고된 거지만, 식비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아, 그건 그랬지. 우리 형제는 다 남자니까 다들 많이 먹기도 하고. 특히 쥬시마츠가.”

“오….”

 

겨우 한 마디 탄식일 뿐인데 그 안에는 108가지의 감정이 들어있다. 아내의 탄식에 영혼이 빠진 얼굴로 웃은 쵸로마츠는 핸드폰을 켜 바탕화면을 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어플들 아래 보이는 배경에는 얼마 전 찍은 가족사진이 깔려있다.

입학식 기념이라고 간만에 다 같이 찍은 사진 속, 아이들과 아내의 표정엔 행복이 가득하다. 물론 제 얼굴도 마찬가지다. 좀 쑥스럽긴 하지만,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은 정말로 행복해 보여서 육아의 고통 같은 건 읽기 힘들었으니까.

 

“둘이라서 힘들 긴 하지만, 역시 쌍둥이라 다행이야.”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뭐, 나도 동의하지만.”

“뭐 이렇게 말해도 제일 고생한 건 너지만. 둘이나 낳아줘서 고마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아아.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연애시절 때 자주 보던 부끄러워하는 표정에 쵸로마츠는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그녀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 아내인데다가 아이까지 있는 엄마라니. 세월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아마 조금 더 있으면 초등학교 1학년인 제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고, 자신들도 더 이상 ‘젊은 부부’라고는 불리지 못할 나이가 되겠지.

 

“그냥 좋아서.”

“좋아서는 무슨…! 이 아저씨가 점점 능글맞아지네?”

“메구미는 여전히 귀엽지만.”

“…….”

 

‘너무 놀렸나?’ 귀까지 붉게 물든 아내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는 제게 불똥이 튀기 전 재빨리 일어나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우리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갈까?”

“앗! 네, 네!”

“나는 딸기 맛!!”

“그래, 그래. 엄마 것도 사오자. 알겠지?”

 

절대 자신은 도망가는 게 아니다. 아니, 후퇴하는 건 맞지만 작전 상 후퇴일 뿐이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세뇌를 건 쵸로마츠는 메구미가 좋아하는 맛이 무엇이었나를 떠올리며 남매를 아이스크림 가판대로 이끌었다.

Written by Esor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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