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박혀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셔츠에 매달고 스즈키는 오늘도 카운터에 섰다. 손목시계에 뜬 숫자는 23:58. 바깥은 깜깜하고 불이 켜진 매장은 환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야간 파트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새벽까지 하는 거라 피곤하긴 했지만 그만큼 돈을 더 주다 보니 계속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자신더러 정말 야행성이 됐냐고 물을 만큼 생활 리듬이 뒤로 미뤄지고, 꾸준히 밤에 편의점을 찾는 적은 수의 사람들의 얼굴을 대부분 외웠을 때 새로운 손님이 나타났다. 츠키시마라는 성씨를 가진 옆집 부부였는데, 한 달 전쯤 이 동네로 이사 온 사람들이었다.
해가 떠 있을 때 몇 번 마주치기만 해서 어색했던 그들도 익숙해졌지만 조금 특이하게 편의점을 들리곤 했다. 안경을 쓴 남자가 오면 아내가 없고, 여자가 오면 남편 쪽이 오지 않았다. 한 두 번 그런 거라면 모를까 밤에 이렇게 번갈아 나올 필요가 있었나? 사가는 물건도 계란말이, 몽블랑 푸딩, 돈가스가 올라간 도시락,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체리바닐라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과일우유 등등 제각각이었다. 어느 날은 안경을 쓴 남자(남편 쪽)가 딸기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다 나갔냐고 속닥거리면서 물어서 없다고 하니, 한숨을 쉬며 딸기 주스와 딸기우유와 딸기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사 간 적도 있었다.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으음, 이것도 저것도...근데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모르겠어. 아깐 막 생각났는데?"
"천천히 골라. 어차피 바쁜 시간대도 어니고."
처음부터 따로따로 왔던 게 아니고, 둘이 손 잡고 와서 저런 대화를 하며 한 봉지씩 사간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니 속으로는 궁금한 마음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남의 집 일이고….'
짐작이 가는 점이 0.001%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일도 아니고, 사적인 부분일 뿐이니까 스즈키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모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피곤함에 적당히 머리를 기댄 바코드 머신이 되어 계산 처리에 어색함이 많이 없어진 날이었다. 스즈키는 삼각김밥 세개의 금액을 말하다가 혀를 살짝 깨물 뻔 했다.
"호박 맛 슈크림이 들어있는 롤케이크는 없나요?"
"네?"
"살구 셔벗 맛 하겐다즈는요?"
"네?"
"없어요?"
"그건 좀 더 있어야 나와요. 아마 호박 맛 디저트는 10월 근처는 되어야…."
"밀크초콜릿 찐빵은요?"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전부 리콜을…."
"그럼 세○러문 스페셜 콜라보로 하던 복숭아 크림 치즈케이크는요?"
"이벤트 기간이 끝나서 없는…데요…."
스즈키의 대답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점점 울상이 되던 여자는 말끝이 흐려지는 스즈키의 마지막 대답에 울먹울먹했다. 그냥 식품 재고 상태를 말한 것뿐인데 스즈키는 괜히 찔려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자는 카운터에 서서 그대로 소리를 내서 울기 시작했다.
"정말 먹고 싶었는데에에에…."
"저, 손님?"
"케이 군이 바빠서 그것만 사고 가려고 했는데 왜 없어요? "
"사쿠라!"
잡지 칸에 있던 손님 한 명, 빵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던 손님 한 명,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노려보듯이 고르는 손님 둘의 시선이 모조리 자기에게 꽂혔다. 휴지라도 내밀어야 하나 어디서 뭘 만들어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문을 박찰 기세로 손님 한 명이 급하게 들어왔다. (물론 편의점 문은 자동문이라 박차는 것은 불가능했다. 깨지니까.)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하라고 했잖아. 왜 혼자 나와서 이러고 있어."
"그렇지만 밖에서 종일 바빴던 걸 아는데 어떻게 맨날 시켜."
"갑자기 없어지니까 놀랬잖아."
"맨날 뭐가 갑자기 먹고 싶은 걸 어떡해."
"아니면 같이 가자고 얘기를 하지."
"집에 없는 것만 먹고 싶어진단 말이야. 민망해."
둘의 대화는 점점 동문서답 수준으로 흘러갔다. 스즈키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치즈 리조또 위의 파슬리처럼 뿌려진 시선을 의식하고 나서야, 남편 쪽인 츠키시마 씨가 부인을 데리고 편의점을 나갔다. 나가는 부인의 손에는 삼각김밥이 들어있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겨우 갔네…."
빵 네다섯 개를 들고 온 손님이 오자 스즈키는 다시 바코드를 찍었다. 834엔입니다. 새 손님은 동전을 찾다가 귀찮아졌는지 천 엔짜리 뻣뻣한 지폐를 내밀었다.
* * *
"오랜만이네요?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어휴."
그 둘을 다시 만난 것은 두 달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추가했다가, 편의점 야간파트를 그만두고, 오후 시간에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만난 츠키시마 부부의 부인 쪽, 사쿠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배 부분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애가 생기면 먹고 싶은 게 갑자기 생각난다고 하잖아요. 밤에 엄청 뜬금없는 게 먹고 싶어져서…."
"아…,지금은 괜찮으세요?"
"식욕 쪽은 괜찮아요. 대신 다른 쪽이 좀…."
"사쿠라. 병원 가봐야 한다며."
안경을 쓴 츠키시마 씨가 헛기침했다. 오늘의 다른 쪽 츠키시마(그러니까 부인인 사람)씨는 표정이 밝았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치즈케이크 등등이 없어서 울던 얼굴과는 딴판이어서 스즈키는 저도 모르게 한구석이 안심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네,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부부가 내리막길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그 뒤로는 시험 기간이니 학교축제니 뭐니 하는 다른 일로 또 바빠져서, 한동안 마주치지 못하는 일이 이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옆집 사는 츠키시마 부부는 두 칸이 붙어있는 유모차를 끌고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잇는 구름은 아기 주먹만 한 솜사탕처럼 작고 둥글둥글했고, 햇빛은 새소리처럼 반짝였다.
"오랜만이네요. 날씨가 좋죠?."
"그러게요."
인사를 하는 방식은 똑같았고, 네 사람의 표정은 둘 다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