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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 Night And The Stars

별이 하늘에 잔뜩 비치는 밤이었다. 검은 실크로브를 걸치고 차 한잔을 들고서 소파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다. 배가 불러오는 상태였다. 6개월 반. 남자아이, 라고 했다. 낯선 기분이었다. 주변에 아이는 많았다. 오빠도 아이가 있었고—아이는 당연하게도 래번클로의 신입생이다, 오빠를 똑 닮은 그런 조카다—친척들 사이에도 아이가 많았다. 하지만, 내 아이라니. 조그마한 생명이 내가 만든 것이라니. 조금은 생각 밖의 일처럼도 느껴진다. 첫 아이가 아들이라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의심도 해보았다. 잠시 배를 어루만지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머글 런던이 눈 앞에 보였다. 차가 쌩쌩 지나가고, 아직도 불이 밝게 비춰있는 거리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커서, 우리의 과거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말포이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 아니었고, 말포이란 이름 하나때문에 달라붙는 꼬리표가 한두가지가 아닌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의 추종자’, 배신자’ , ‘위선자’ 등의 단어들은 드레이코를 언제나 괴롭게 했다. 이 아이만은 그것을 피하게 하고싶었고, 이 아이로 인해서 드레이코도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관련이 없는, 우리를 모르는 머글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긴 하지만 이 아이가 11살이 되어 호그와트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직 이런 생각을 드레이코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 중 하나였다. 이미 그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충분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자신은 호그와트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덤블도어가 자신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해왔고, 언제나 그 자신을 질책해왔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시사의 손을 잡고 뛰쳐나간 호그와트 전투때의 기억들이 그를 밤에 괴롭혔고 그런 악몽을 꾸는 날이면 그는 나머지 밤을 울며 지새우곤 했다. 가끔 다이애건 앨리에 나가면 아직도 그를 보며 ‘저거 봐, 말포이야’ 라며 수군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드레이코에게 가장 심한 고통을 주는 것은 루시우스였다. 전투 이후, 패배와 자신의 도망을 인정하지 못한 루시우스는 한동안 성 뭉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미쳐있었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예전의 그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말포이가에 대한 자존감과 긍지는 전처럼 높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와 그를 끝까지 돌보는 어머니 나시사를 방문하는 매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한없이 아픈 표정을 하고 돌아오곤 했다. 자신이 아무리 싫어한 그 아버지의 모습이라도 예전같은 힘있어보이는, 생기가 있어보이는 아버지가 그리울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이 오히려 우리에겐 행복한 날들이다. 입덧을 걱정하고, 아이 방을 꾸미며 자신의 주말을 보내는 드레이코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이기적일 수도있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적 듣기로 갈색 머리가 우성유전자, 라고 하던데, 이 아이는 머리색은 무슨 색일까. 말포이가 대대로의 그 금발일까, 아니면 내 갈색머리일까. 갈색머리이면 루시우스가 극도로 싫어할텐데. 머리가 내 머리색이 아니라면 적어도 눈동자색은 내 눈동자색이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마구 하고 있던 차에 아직까지 아이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부터 엄마자격 실격인건가. 혼자 피식 웃으며 거실의 쇼파에서 일어나 머그컵을 두손에 쥐고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는 아직 불이 켜져있었다. 새벽 3시정도인데. 아직도 업무를 보는건가.

“드레이코, 안 자는거야?”

“산모가 안 자고 뭐하는거야.”

아무런 무늬 없는 하얀 티셔츠와 검은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안경을 쓴 채 책을 뒤지고 있던 드레이코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책상에는 책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몇 권은 그 앞에 펼쳐져있었고, 몇 권은 닫겨있는 채로 널부러져 있었다.

“논문이라도 쓰는거야? 왜 책을 이렇게 어지럽히고~”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나저나. 움직이지 마. 힘들어.”

“한개도 안 힘들어. 그래서, 이게 다 뭐하는… 별자리?”

“루이, 천장을 봐.”

그의 말대로 천장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이 보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밤하늘이 한 천장에. 별자리는 전혀 몰랐지만 별들끼리 아주 얇은 선으로 연결되어있으니 조금씩 모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듯 고개를 들어올리며 저 먼 우주로 향하는 용도 보였다

 “어, 용이다. …설마 그게 드레이코 뜻이야?”

“응, 우리 집은 별자리 이름을 따서 아이들 이름을 지으니까. 물론, 네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지어도 되지만 나는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거든.”

집안 전통인데다 드레이코의 첫 아들이었다. 드레이코도, 나시사도 모두 이렇게 이름을 지으면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별자리 이름이라니, 사실 로맨틱한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적어도 겹치는 이름의 아이는 없을 것이다. 드레이코의 목에 팔을 두르곤 키스했다.

“나야 좋지. 그래서, 이름 생각해 놓은 건 있어?”

“으음, 그다지. 그래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한 시간 정도를 방안에서 책과 함께, 그리고 천장에 띄워져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드레이코는 찌뿌둥한지 스트레칭을 연신해댔고, 나도 하품이 계속해서 나왔다.

“우리, 밖에 나가서 보지 않을래?”

“어째서? 여기서도 볼 수 있잖아.”

“바깥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별자리로 이름 지을 수 있잖아. 어서, 이불 챙겨.”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는 드레이코의 표정을 뒤로하고 로브를 여미며 복도로 향한 루이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런던의 야경이 펼쳐진 발코니의 문을 열고선 뒤에 멍하니 서있는 드레이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 나올거야?”

“그렇게 보면 별이 잘 안 보일텐데..”

드레이코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손을 잡고는 발코니에 나와 깔려있는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았고, 난 그에게 기대앉아 별자리들을 가리키며 일명, 이름 찾기 프로젝트에 임했다.

“케일럼은 어때?”

드레이코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이미 5번째 남자이름이었다. 오, 멀린, 제발 이번만은.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케일럼. 나쁜 이름은 아니었다. 고귀하면서도 나름 평범한 이름. 발음하기도 쉽고, 별명을 붙이기에도 좋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케일럼은 아니야.

“아니. 다른 이름.”

“루이, 이번이 다섯번째 이름이라고.”

“아니야, 케일럼은… 뭔가 아니야.’

“흠. 케일럼도 아니라면, 페르세우스는 어때?”

신화의 영웅. 고귀하고 용맹스러운 남자.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고, 드레이코는 전보다 더 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우리 모두 아이디어가 바닥나고 있었다. 드레이코가 나열한 이름들은 여섯번째 정도면 정하겠지, 하며 별자리를 잘 모르는 나를 위해 미리 생각해둔 이름들이었으리라.

“레오는 어때?”

내가 물었다. 사자자리. 사자자리는 내가 아는 유일한 세 별자리들 중 하나—다른 하나는 카시오페아였다. 카시오페아를 아들이름으로 쓰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방금 알게된 드레이코, 용자리였다.—그의 지쳐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오랜만이었다, 그의 이런 얼굴은. 쿡쿡거리며 나지막히 웃으니 그가 나를 쳐다보며 이게 웃기냐는 메세지를 한껏 담은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아들 이름이 레오? 사자자리? 사, 자? 그리핀도르마냥? 나는 내 아들 이름은 절대 사자자리에서 따오지 않을거야.”

너무나도 그다운 대답이었다. 드레이코의 그리핀도르 혐오는 전투 후에 많이 사그라들었었고—그를 도와준 그리핀도르 출신들이 많아서인데다 드디어 해리와 작게나마 사과를 해서일수도 있다—전처럼 기숙사에 얽매여있는 그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슬리데린 특유의 그리핀도르를 향한 라이벌의식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나도 그와 함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저번 일주일간, 이름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뭐였더라.

“스콜피우스!”

내가 외쳤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조금 특이하지만 뭔가 이 이름이 우리 아들의 이름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냥 그 이름이 계속 일주일동안 생각이 나더라고.”

“스콜피우스. 스콜피우스 말포이. 좋은 이름이야.”

“근데 드레이코는 별자리 이름이길 바랬잖아. 스콜피우스란 이름이어도 괜찮은거야?”

내가 걱정스레 묻자 드레이코는 웃으며 저 멀리 수놓아진 별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별자리 맞아. 스콜피우스. 전갈자리.”

“그러면, 스콜피우스 말포이.”

“좋은 이름이야. 정말. 음, 중간 이름은, 하이페리온으로 하는거야. 토성의 위성이지.”

“좋은 생각이야. 스콜피우스 하이페리온 말포이, 멋있는 이름이야.”

“그 이름만큼 우리 아들도 멋있겠지?”

“물론이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드레이코는 용이란 뜻이었고, 스콜피온은 전갈이란 뜻. 용의 아들, 전갈. 소설의 제목일 듯한 완벽함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나는 드레이코와 눈을 맞추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수많은 감정이 오갔다하는 듯 혼란스러워보였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는 설렘, 기쁨, 그리고 그를 아직도 괴롭히는 죄책감이 마구 섞여있었다.

“괜찮아?”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럴만도 하다. 우리는 아직 회복해야할 것이 많았고 아이는 아직 벅찰 수도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 둘 다 바라던 것이었고, 지금 이 때만큼 기쁘고 설레는 순간은 없었다. 그는 그 표정 그대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도 모르는 기분이었다.

“사랑해.”

그가 어렵사리 입을 떼어 말한 한 마디였다. 그의 눈은 이제 눈물로 글썽여 마치 빛나는 별을 보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내 손과 달리 많이 차가운 그의 손은 언제나 의지가 되었다. 이 차가움은, 내게서 언제나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있기 때문일까. 그는 나를 안아주었고, 우리는 밤새 별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이 세상에 나올 우리만의 작은 별을 상상하며.

Written by Lou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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