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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심부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 들리는 노크 소리에 방문을 여니 어머니가 뭐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림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니 어째선지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저 머리를 쓰다듬으실 뿐이었다. 가끔 아버지의 속을 전혀 모르겠다고 하시지만 어머니도 만만치 않게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셨다. 그걸 형한테 말했더니 묘한 얼굴로 나를 봤지만.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음…. 코지, 잠시 심부름을 다녀와 줄 수 있을까? 마트에 가서 반찬할 거리만 사오면 되는데.”

조심스레 물어보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긴장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로 바뀌시면서-약간의 불안은 눈에 보였지만-종이와 돈을 쥐어주셨다.

“음, 코지. 엄마가 다녀오라고는 했지만, 혼자서 다녀올 수 있겠어? 코이치나 아빠한테 같이 다녀와 주라고 부탁할까?”

“으응, 괜찮아. 코지는 어른이니까 혼자서 다녀올 수 있어.”

“그래? 그래, 그럼 조심해서 잘 다녀와. 아는 사람 만나도 따라가면 안 된다? 바로 엄마나 아빠한테 전화해야 해? 아니면…….”

“아니면 경찰서나 큰 가게로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거 알고 있어요. 어머니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한숨을 쉬며 말하는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난 이제 어른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잘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으응. 잘 다녀와.”

집을 나와 어머니에게 받은 메모를 보니 마트로 가는 지도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를 보며 마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위에서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춰 올려다봤다. 하품을 길게 하던 고양이는 곧 담벼락 위에 엎드려 잠에 들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선이 느껴져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전봇대 뒤에 아버지가 계셨다. 저건 설마…. 숨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삼촌이 종종 아버지에게 바보라고 말하실 때가 있었는데, 지금 아이삼촌이 왜 아버지에게 바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군다나 저렇게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이라니. 그렇다고 아버지에게로 가서 아는 척하면 분명 또 과한 행동을 하시며 우는 시늉을 하실 게 뻔했다.

“그건 귀찮아. 시끄러워.”

결국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다. 다시 발을 돌려 마트로 가다가 괜스레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조금, 아버지에게 장난을 칠까. 몰래 뒤를 밟은 아버지가 나쁜 거니까! 걸었다가 멈칫하기를 반복하니 뒤에서 당황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걸 보니 저건 분명 어머니께 말하는 걸 거다. 음, 이쯤에서 장난을 멈춰야 할 거 같다. 아무리 둔한 어머니이시지만 이러한 장난에는 금방 눈치를 채시는 분이시니까.

“어머, 코지. 혼자 어디 가니?”

“심부름 가고 있어요.”

이웃에 사시는 히노 할머니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물어오셨다. 대답을 해드리니 해맑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어머, 그렇구나! 대견하네, 코지군. 아직 어린데.”

어머니를 돕는 건 당연한데 왜 대견하다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쓰다듬과 칭찬에 쑥스러워졌다. 네, 저도 이제 어른이니까요. 그래도 대답은 침착하게 했다. 아이삼촌이 예전에 들뜨는 건 한심하다고 했었다. 그 말을 하신 게 주로 아버지가 앞에서 이유 없이 들떠있을 때였지만.

다시 마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홱 등 돌리니 여전히 아버지가 따라오고 계셨다. 나 참, 정말이지 바보 같은 아버지야. 저걸 숨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그대로 내뱉고서 다시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놓여 진 어린이용 카트를 밀며 어머니가 주신 메모지에 적혀 있는 물품들을 하나하나씩 넣어 갔다.

“아.”

너무 높은 곳에 놓여져 있는 간장에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애써 숨었다고 생각한 아버지에게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에 상품을 정리하고 있는 직원이 보여 바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다. 이후로는 뭐. 누워서 떡 먹기지!

“진짜 못 숨는다.”

계산하고 나오니 길가에 심어진 나무에 숨어있는 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수군거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정말 여태 아버지를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아, 좀 있었다. 웬만해선 지금의 아버지에겐 다가가고 싶지 않아. 응. 결심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다 다시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 정말. 결국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버지.”

“ㅋ, 코지짱! 우연이네!”

“…….”

“코지짱?”

“연기인 거 다 티나. 아까부터 그거 숨는다고 숨은 거야? 아버지 바보?”

내 말에 콰쾅을 굳이 말로 하면서 특유의 행동과 함께 충격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역시 조금 부끄럽다.

 

*

 

“어서와, 근데 왜 레이지도 같이 오는 거야? 들켰어?”

“아버지 숨은 거 다 보였어.”

초인종 소리에 서둘러 문을 열어주고 현관에서 기다리던 호아는 함께 들어오는 레이지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던지는 질문에 답한 건 코지였다. 아들이 건네는 봉투를 건네받은 호아가 그 대답에 그럼 올 때 같이 온 거야? 웃음을 터트리며 다른 질문으로 넘겼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에 호아는 레이지를 보며 입모양으로만 ‘들키지 않을 자신 있다며?’ 놀리듯 움직이곤 다시 시선을 내렸다.

“그럼 봉지는 아빠한테 부탁하지 힘들게 들고 왔어?”

“내 심부름이니까 내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지.”

어깨를 피며 당당하게 말하곤 자신의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는 코지의 뒤를 바라보며 호아는 물론, 레이지까지 벙찐 얼굴로 바라보다 서로를 바라봤다.

“코지…. 분명 내가 낳았는데 말이지. 대체 누굴 닮은 걸까.”

“흐흥, 나를 닮은 거 아닐까?!”

아까 호아가 한 말에 상처라고 말하며 우는 시늉은 어디로 갔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레이지를 보던 호아가 단호하게 대답하곤 부엌으로 들었다.

“응, 그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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