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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Dream
호접(@S2JekielS2)

묘시(卯 時)에 막 들어섰다. 자화원(慈花園)의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새 생명을 맞이 할 준비를 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쁜 이들의 땀을 식혀주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사람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좀 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 모습들과는 너무도 상반되게 오늘 새벽은 고요하기만 했다. 고요함 만큼이나 제키엘은 초조해졌다. 아무리 제 아내가 타고난 건강체질에, 출산 경험이 많다고는 하나(오늘 둘의 여덟번 째 아이가 태어난다.) 전날 오후부터 시작된 진통이 다음 날 새벽까지 길게 이어졌던 적은 없었다. 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많이 아픈 것인지 아내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들리지 않아 그의 불안은 깊어만 갔다. 밤새 문 앞을 서성이며 좀 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곧 그의 불안을 잠재울 반가운 사람이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를 이끌며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제키엘은 반색을 하며 문을 열고 나온 룬데의 표정을 살폈다. 룬데는 비록 클론이지만 그의 아내인 여비가 자신의 보좌관으로 둘 만큼 다방면에서 완벽한 인재였다. 룬데는 다른 이들과 달리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왜 여비가 그녀를 신뢰하고 일을 맡기는지 제키엘은 이해할 수 있었다. 룬데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로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 보라며 문을 붙잡고 기다려 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룬데의 다른 손에 들린 피 묻은 수건들이 가득 담긴 양동이와 눈이 마주쳤다. 양으로 보아 제 아내의 고통이 여실히 느껴질만큼이라 제키엘은 다급한 마음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 명의 시중 드는 여인들이 여비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제키엘은 손짓으로 둘을 물리더니 그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라질 때 쯤에야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제 아내 곁에 다가가 앉았다.

"여비, 흠흠! 힘들진 않았는가."


문 앞에서 여비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던 그의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재빨리 헛기침을 했지만 쇳소리는 그대로였다.
 

"푸흐흐- 제키엘, 나보단 당신이 더 힘들어 보이는 걸요? 다 들었어요. 내 대신 소리 지르는 거. 푸훗- 으윽! 아아..."
 

문 앞에서 마치 자신이 아이를 낳듯 아픈 소릴 내던 제키엘이 떠올라 여비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다 복부의 통증이 느껴지자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하마터면 안고있던 아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제키엘이 재빨리 그녀의 어깨와 아기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갓 태어났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는 힘으로 여전히  어미의 젖을 빠는 작은 아기를 확인 하고 서로를 마주봤다.

 

"그... 무리하지 말거라."
"고마워요. 그런데 좀 자야하지 않겠어요?
당신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이 몸이 힘들다 한들, 내 아내만 하겠는가. 아기의 젖을 다 먹이면 내가 아기를 뉘일 테니 여비야말로 눈 좀 붙이거라." 

 

제키엘은 무거운 눈꺼풀과 눈 밑에 짙게 내려 앉은 다크써클이 시야를 가리는 것 같았지만 고생했을 제 아내를 위해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그녀의 등 뒤에 쿠션과 베개를 잔뜩 쌓아 등을 받칠 수 있게 해주었다. 여비는 푹신한 쿠션 베개에 반쯤 드러눕다시피 했다. 아기는 그 짧은 찰나를 지나는 동안 여전히 입에 젖을 문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때, 문 밖에서 소란스런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키엘은 혹여라도 잠든 아기가 깨면 어쩌나 싶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잔뜩 찡그린 얼굴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우와아악-”
 

그가 문 앞에 다다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이 열리고 제키엘과 여비 사이에서 태어난 7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뒤엉켜 방 안으로 쏟아지듯 밀려 들어왔다. 제 아이들임을 확인한 제키엘은 찡그렸던 표정을 펴고 쓰러진 아이들을 하나 하나 일으켜 세우며 다친 곳은 없는지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검지손가락을 제 입가에 가져다 대고 '쉿'하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며 앞장 서서 여비에게로 이끈다. 아이들은 그를 따라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잇-' 해 보이며 천진한 미소로 따라들어갔다.

큰 소리가 났음에도 잠든 아기는 깨어나지 않았다. 여비는 조심스럽게 아기가 물고있던 제 젖을 떼어내고 아픈 팔을 쉬려 한쪽 팔로 아기의 목만 받친 채 허벅지 위에 아기를 내려 놓았다. 제키엘은 능숙하게 아기의 침자국이 남은 제 아내의 가슴을 닦아주고, 옷매무새까지 가다듬어주었다. 일곱명의 아이들은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와 여비의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들어 잠든 아기를 살폈다. 그 많은 인원을 담고도 좁아보이지 않을만큼 침대는 매우 컸다.

 

“와- 너무 예뻐요. 엄마. 벌써 기호 8번이 태어났네요!”
 

장녀인 로사가 감탄사를 늘어놓으며 말을 시작했다.
 

“언니, 예쁘다고 하면 안 돼! 어휴, 쭈글쭈글하니 못생겼네.”
 

뒤 이어 차녀인 아란쵸네가 말을 이었다. 로사는 '아차차!'하고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아란쵸네의 말에 수긍하듯 잠든 아기를 사랑스럽게 내려다 보면서 못생겼다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장남인 쟐로와 넷째 베르데, 다섯째인 블루는 그저 말 없이 아기의 들썩이는 배를 따라 똑같이 복식 호흡을 했다. 여섯째인 마로네와 얼마전까지 막내였지만 아기가 태어남으로서 막내 자리를 내 놓게 된 일곱째 비올라는 의아한 듯 제키엘과 여비를 번갈아 보며 동시에 말을 꺼냈다.
 

“이렇게 예쁜데 왜 아기에게 못생겼다고 해요?”
 

제키엘은 침대 끝에 걸터 앉아 어린 두 딸을 제 가까이 끌어당겨 머릴 쓰다듬어주며 세상 그 누구보다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양에는 삼신할머니라는 신이 있다는구나. 비록 우린 안타리우스를 통해 그 분을 모시지만 네 어미의 고향에는 그런 신도 있었단다. 그는 부부에게 아기를 점지해준다지? 허나, 갓 태어난 아기가 너무 예쁘면 그가 질투를 하여 아기를 데리고 가버린다지, 뭐냐. 참으로 이상도 한 신이도다. 한 번 준 것을 빼앗아 가다니, 치사...”
“쓰읍!”

 

여비는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그를 향해 살벌한 시선을 쏘아대며 아기의 목을 받치지 않은 왼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비틀어 꼬집었다. 제키엘은 '악!' 소리가 튀어나올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자식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눈가에 고이려는 눈물도 힘겹게 참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그러니까... 후우..... 아무튼, 그런 게 있도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주 며칠간만 동생에게 못생겼다 하면 되노라.”
“어라? 근데 아빠 울어요?”
“맞아, 아버지 눈에 물이 생겼어요!”

 

어린아이 특유의 눈치없음인지, 일부러 제 아비를 놀리려는 것인지 그냥 지나쳐도 됐을 일 임에도 마로네와 비올라는 절대 넘기지 않고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제키엘에게 향했다. 여비는 입모양으로 '말 똑바로 해요.'라며 검은 오라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를 뿜어내 그를 압박했다. 로사와 아란쵸네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둘을 지켜봤고, 사내 아이들은 여비과 그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마로네와 비올라는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으로 당황한 제 아비를 어떻게든 더 놀릴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크흠! 그게 무, 무슨 소리인가. 마로네, 비올라. 아비를 놀려서야 되겠느냐.  그만두거라.”
“그치만, 비올라는 아버지가 걱정이 되서 그런건데..”
“마로네도요...”

 

둘은 불리해 질 때면 이렇 듯 제 어미를 쏙 빼닮아 타고난 연기력(?)으로 토라진 시늉을 하며 그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아버지는 비올라와 마로네 언니가 아버지를 걱정하는게 싫은 걸까요? 그렇다면 비올라가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겠어요.”
“아빠, 마로네도 잘못했어요.”
“아, 아니 괜찮다. 그만, 그만... 허어... 제 어미를 닮아서 이렇 듯 이 몸을 곤란하게 한단 말이야. 아비가 졌노라. 그, 너희들 그만 자야 하지 않겠느냐.”

 

제키엘은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말을 돌렸다.

 

“저흰 다 자고 온 걸요? 아침 일찍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 어제 일찍 잤다고요! 아버지는 밤 새셨는데 주무셔야죠.”
 

장남 쟐로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제키엘은 울상을 지으며 여비에게 구조신호를 보냈고. 마침 피곤했던 여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들아.'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되서는 여비가 말을 잇길 기다린다.

 

“너희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기도 잠들었고.. 어미도, 또 아버지도 몹시 곤하니 우리는 이만 쉬어야겠다. 그만 방으로 물러들 가거라. 아기도 태어나자마자 형제들의 사랑을 느껴서 기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소란에도 곤히 자고 있는 거겠지?”
 

그제야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히 주무세요!”
 

장녀인 로사의 인솔하에 아이들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아기를 낳는 순간보다 더 기력을 빼앗긴 둘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제키엘은 가까스로 힘을 내어 여비 허벅지 위에 놓여있던 아기를 안아들고 뺨에 얼굴을 비비다 방 한 쪽에 마련 된 아기 침대에 뉘여주고 몇 차례 다독여 주었다. 아기는 제 아비의 손길에 반응하듯 꼼지락 거렸다. 순간, 그는 아기가 깼을까봐 작은 생명의 눈치를 보느라 아기 침대 앞에서 한 참을 굳어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조금 찡그리며 꼼지락 거릴 뿐,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안도한 제키엘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여비가 누워있는 커다란 침대로 파고들어 제 아내를 껴안았다.

 

“고생많았노라. 언제나 고맙구나, 여비. 나의 아내여...”
“대답할 힘도 없어요.. 그냥 자요...”

 

달콤한 대화를 이어가기엔 둘은 너무 많이 지쳐버렸다. 곧,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고 서로의 체온, 숨소리와 아늑한 품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졌다. 그 날 둘을 여러 마리의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서로 같은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여비의 몸은 타고난 건강체질 답게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여덟명의 자식을 둔 엄마로는 보이지 않게 산후조리 또한 조금의 붓기도 남김 없이 잘 된 것이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자신들의 동생을 보러 부부의 방을 드나들었다. 평소 땐 부모의 잔소리를 피하려 잘 찾아오지 않던 사내 아이들까지 드나들어서 제키엘은 내내 아이들을 서운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제키엘은 제치고 여비와 어린 동생에게만 관심이 있었으니 더더욱 그럴만했다. 오늘은 여비가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물렸다. 피곤한가보다 생각하고 그녀가 쉴 수 있게 제키엘은 자리를 비켜주려는데, 여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여보.”
“응? 왜 그러는가.”
“산책 갈까요? 아기도 데리고. 자화원(慈花園) 내부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제키엘은 산책을 가자는 제 아내의 제안에  방을 나가려다 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아내의 외출 준비를 도왔다. 여비가 룬데를 통해 마지막 치장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는 방 밖에서 유모차에 뉘인 아기를 향해 딸랑이를 흔들며 아내를 기다렸다. 곧, 여비는 귀부인 같은 고아한 자태를 뽐내며 걸어 나왔다. 손에는 그녀의 분홍 꽃잎색 드레스과 비슷하게 맞춘 색의 양산이 들려있었다. 제키엘은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에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끼며 크게 심호흡 했다. 자꾸만 시선이 가는 눈부신 자태에 제키엘은 애써 아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딸랑이만 흔들었다. 여비는 천천히 걸으며 누가 보아도 자상한 아버지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참, 아기 이름 말인데요.”
 

제키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 안에서 아기 이름 후보들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고 천천히 읊으려 했다.

 

“네로.”
 

말을 꺼내려던 그의 말을 가로 챈 여비가 먼저 이름을 말 했다.
 

“네로?”
“아기의 이름은 네로예요.”
“흐음.. 그래. 이 번 사내 아이의 이름은 그대가 지었으니, 나도 기왕 준비한 거, 다음 번엔 딸 아이 이름으로 해볼까?”
“낳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요?”

 

제키엘은 멋쩍게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귀여운 파파게노 다음엔, 예쁜 파파게나.. 라고 그대가 그랬었지.”
“칫-”

 

부루퉁해져서 입술을 비죽이는 여비의 뺨에 제키엘은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댔다. 여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에게서 떨어졌다. 마치 어느 오페라의 한 장면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니 낳아 줄 것인가?”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요.”
“파파게나.”
“파파게노.”

 

마주친 시선에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즐겨 부르던 오페라의 한 장면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자비로운 신의 축복 우리 위에 내리시어 예쁜 아기 생겨나면, 우리의 예쁜 아들 딸 생기면.. 아기가 생기면, 귀여운 아기 생기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첫 아들, 아들 파파게노! 그 담엔 예쁜 파파게나! 그 담엔 다시 파파게노! 그 담엔 예쁜 파파게나! ♬
- 모차르트 : `마술피리` 中 파파게나! 파파게노!

 

둘이 화음을 이루며 노래를 시작하자 유모차에 있던 네로는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함께 기뻐했다. 뒤 이어, 다른 일곱 아이들도 몰려 나와 '엄마랑 아빠 뽀뽀했대요!'하고 놀리더니 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지난 번 꿈에서 본 듯한 나비떼들이 자화원 위를 날기 시작했다.
 

“나비 떼가 날아드는 꿈은 집안의 경사를 상징한다는데.. 지난 번에 이 꿈을 꿨어요.”
“그런가? 이 몸도 꿨노라. 이리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것이 경사 아니겠는가. 그대도, 나에게도...”

 

둘은 서로를 껴안고 춤추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비가 이끌어 준 꿈처럼 오늘과 같은 날이 계속 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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