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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그렇지 하루야?"
"엄마 추워?"
"응, 엄마 추워."
"엄마 따뜻하게 해줄래."

늦가을의 이른 아침 침실의 발코니로 나온 리하가 무릎 위에 앉아 즐거운 듯 다리를 흔들며 자신을 꼭 껴안아주는 하나뿐인 딸의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우리 하루 감기 걸리겠다, 들어갈까?"
"움... 좋아!"

아직은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감촉이 좋은 리하의 풀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방긋방긋 웃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따님."

"소중한 내 보물, 우리 아가."

내 보물. 자기 아빠의 선명한 하늘같은 파란 눈동자와 묘하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암녹색 머리카락을 꼭 닮은 아이였다. 아이의 정수리에 짧은 키스를 하며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하암..."
"일어난 거야?"

하품 소리만 들어도 알만큼 익숙하고 따뜻한 온기가 뒤에서 다가와 어깨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이마를 대고 숨을 가다듬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 아이를 바라봤다.

"하루도 좋은 아침."
"아빠!"

료가의 아침인사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까르르 웃으며 잡고 있던 리하의 머리카락을 놓은 손으로 눈앞에 보이는  료가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밥 먹을 거야?"
"먹어야지."

료가는 하루를 안아 들고 닫혀있는 발코니 문을 열었다.

"감기 걸려."

불과 몇 주 전까지 감기로 고생했던 리하였기에, 아주 조금은 걱정을 담아 말하는 료가였다.

"나 괜찮거든?"
"약 먹고 몇 날 며칠을 누워있었으면서 말이 많네. 피곤하면 더 자."

아직 갓난아기인 아키를 재우느라 잠도 못 잤던 리하가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았다.

"엄마 졸려?"

손가락을 입에 넣는 습관으로 료가와 옥신각신하던 하루가 리하를 불렀다.

"아빠랑 놀고 있어, 우리 딸."
"응!"

늘 옆에 있는 자신보다 어딘가 불쑥 사라졌다 돌아오는 아빠랑 같이 있는 걸 더 좋아하는 딸이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는 딸의 대답에 안도했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상처받았다고 해야 할는지. 그렇다고 이미 내성이 생겼다고 말하기엔 하루는 이제 고작해야 24개월 된 어린 아기였다.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해."
"걱정 말고, 들어가서 자."

자기에게 꼭 붙어있으려는 어린 딸을 잠시 앉히고 소파에 붙어있는 아내를 안아들어 안방 침대로 옮겼다.

"지금은 편히 자."

한없이 다정하게 들리는 료가의 목소리와 그의 손에서 느껴진 자상한 온기에 리하는 안심한 
듯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

 

"잘 잤어?"
"응."

리하는 베개에 등을 기대고 피곤한 듯 팔로 눈을 가리고 있는 료가의 허리 위로 팔을 두르며 작게 하품했다.

"하암… 고생 많았어. 혼자서 아기 둘 상대하느라 힘들었지?"
"글쎄, 나보다는 아줌마가?"
"설마 당신 또 도망쳤어?"
"그럴 리가 없잖아."

전적이 있어서 의심하는 거잖아.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는 리하를 본 료가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둘 다 자는 거야?"
"어, 어떡할래? 밥 먹어야지. 아줌마가 차려놨는데 먹을래?"
"아니, 지금은 그냥 이대로 더 자고 싶어. 피곤해."

조금은 딱딱한 배 위에 얼굴을 파묻은 리하의 숨이 간지러울 만도 했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이 왼손으로 그저 리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쓰다듬었다.

"많이 피곤해?"

그대로 다시 잠에 들어버린 듯 리하는 묵묵부답이었다.
베개 베고 자.라는 말이 나오려던 그때, 리하가 꿈틀거리며 본래 자던 자세로 돌아갔다.

"정말로... 고생 많았어..."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며 잠꼬대처럼 말했다.
작은 미소를 지은 료가가 리하의 감긴 눈과 시선을 맞추어 돌아누웠다.
조심히 앞으로 흘러내린 리하의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넘긴 료가가 리하의 보드라운 뺨에 손을 올렸다.

"리하 네가 더."

가냘픈 듯 끊어지지 않는 숨소리를 들으며, 료가 역시 눈을 감았다.
열린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눈을 뜬 료가의 눈에 비친 건 자신과 똑같은 암녹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진 리하를 꼭 빼다 박은 어린 여자아이가 눈을 맞추며 배시시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빠 일어났다!"

배 위에 올라타있던 딸이 그 위에 콩콩 뛰자 숨을 헐떡이며 하루의 팔을 살며시 잡으며 일어났다.

"여기서 뛰면 아빠 힘들어."
"아빠 힘들어? 많이?"

울먹일 것 같은 눈을 보며 난감하던 차에 방문이 열리며 아키를 안고 들어오는 리하가 보였다.

"와, 하루가 아빠 깨운 거야?"
"언제 일어났어?"
"하루가 당신 위에서 '아빠!'하고 노래 부르고 있을 때?"
"왜 안 깨웠어?"
"하루가 자기가 아빠 깨우고 싶다고 해서."

배시시 웃는 모양새가 딸인 하루나 엄마인 리하나 똑같았다.

"모녀가 똑같이 웃네?"
"그럼, 우리 하루가 누구 딸인데."
"엄마랑 아빠!"

해맑은 대답에 리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키도 아빠한테 인사할까요?"

리하의 품에 안겨 입만 뻐끔뻐끔 벌리며 손을 휘졌던 아키가 '아부부' 하며 옹알이를 했다.

"아키가 아빠 했어!"

하루를 무릎 위로 돌려앉힌 료가가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빠아! 방금 아키 아빠 했어!"

나름 진지한 듯 입술을 쭉 내밀며 말하는 하루를 리하는 긍정했다.

"우리 하루 천재네? 아키 말도 알아듣고."
"하루 아키 말 알아!"

리하에게 안겨있는 아키를 잠시 보던 하루가 료가를 향해 칭얼거렸다.

"나두."
"음?"
"안아줘. 아빠, 하루 안아줘."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료가가 웃음을 터뜨리며 하루를 끌어안았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즐거운 듯 아키도 생긋생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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