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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주취를 잘 부탁해.”

은청발인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보다 큰 남자를 올려보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청연님”  


청연이라고 불린 여자의 말에 대답하는 남자는 그녀의 양아들 자원이다. 양아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듯이 그의 외모도 평범하지는 않다. 

그 모습을 한 여자가 보고 있다. 그녀는 청연과 같이 아름답지만 머리색도 분위기도 정반대이다. 그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청연이 자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청연을 배웅한 자원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이마에 손을 얹는 자원의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였고 그런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다. 

“자원”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이 듣고 자원의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아현이가 있었다. 자원은 아현이를 보며 자신의 몸을 아현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현님.”
“청연은 어디 간 거지?” 
“청연님은 며칠 전에 홍명님이 부르셔서 황제국에 갔습니다.”

아현이는 자원의 말을 듣고 자원이 얼굴에서 피곤함을 발견하였다. 

“너 괜찮냐? 피곤해 보이는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현님” 

자원의 대답이 못마땅한지 아현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그러고 보니 청연이 너한테 뭘 부탁했지 내가 해줄 테니까 넌 좀 쉬어라.” 
"아니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현님이야말로 몸도 약하신데 쉬시는 게 낫지 않으십니까?"

자원의 대답이 아까보다 더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현이 얼굴에 불쾌함이 비쳤다. 자세도 삐딱해지고 팔짱을 끼면서 온몸으로 불쾌함을 표현하게 된다. 

“거 말 되게 많네. 그냥 내 말 듣지? 너 피곤해 보이니까 배려해주겠다는 거잖아.”
“아니요. 저는 괜찮…”

아현이는 자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원을 방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자원이 어깨를 붙잡는다. 아현이가 자원의 몸을 돌려 방으로 들여보내려 하지만 힘이 약한 아현이 자원의 힘을 이기지 못해서 자원의 몸을 못 돌린다. 기력이 빠진 아현은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천천히 자원이 어깨에 얹었던 손을 내린다. 

“피곤하다는 자식이 왜 이렇게 세?”
“그런가요?”
“알았어. 그러니까 나한테 청연이 부탁한 거 맡겨.”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니 나한테 맡겨”

아현이의 끈질김에 질린 자원이가 항복을 선언한다. 평소라면 안 된다고 했을 자원이지만 피곤함에 지쳐 승낙해버린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에 들어가려는 자원이를 다시 아현이가 불러세운다.

“자원, 근데 청연이 부탁한 것은 뭐야?”
“아, 청연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주취를 돌봐야 하는데…오늘만 가능하실까요?”
“…주취를? 내가?”
“네.”

아현은 자비 없이 대답하는 자원을 바라보다 눈을 굴렸다.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 자원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말하자 오기로 대답하고 말았다.

“괜찮아. 할 수 있을걸. 아마도…”

아마도 라는 말을 붙이는 건 마지막 양심이였을까. 걱정하는 듯한 자원은 차마 반대를 하지 못하고 인사를 하며 자신의 방문을 닫는다. 아현이는 자원이의 방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2년 전에 유배지에 온 아현이는 유배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홍염, 자원, 홍패 등 황제국에서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서 낯선 얼굴이 있었다. 청연이 딸이라는 2살짜리 여자아이 주취였다. 은적발이 부드럽게 굽이치면서 목언저리까지 내려왔고 투명하게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주취는 청연에게 안겨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4년 전, 청연이 내전을 막으려 혼자서 백룡을 만나러 갔을 때 청연은 홑몸이 아니었다. 청연이 돌아왔을 때는 그녀는 아이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청연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아현이는 죄책감을 느꼈다. 치유력이 있는 자신이 청연을 더 빨리 찾았다면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런 죄책감을 느낀 아현이에게는 유산 후 태어난 아이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런 생각을 한 아현은 주취를 보러 자원이 옆방인 청연의 방에 들어간다. 주취는 자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될 정도로 귀엽게 자고 있었지만 아현이는 상관없다는 듯이 주취를 깨워버린다. 일어난 주취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자신을 깨운 상대를 쳐다본다. 원래라면 그곳에는 자원이 있어야 하는데 아현이 있어 내심 놀란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고 아현을 보며 활짝 웃는다. 

 

“이…이모님? 작은 어머님?”
“그냥 아현이라고 불러”. 
“그럼 아현, 왜 여기에 있으세요?”

그 질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아현은 당황한다. 하지만 대답을 바라는 듯이 주취는 아현을 계속 쳐다본다. 주취가 침대 위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아현이의 키가 커서 고개를 들어 아현을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불편해 보여 주취 앞에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 주취의 시선이 따가워서 앞뒤를 다 잘라버린 설명을 한다

“오늘 나랑 놀게 될 거야.”
“네?”

주취는 아현의 맥락 없는 설명에 당황해서 되물어본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홍패가 들어온다. 홍패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옆에 있어야 하는 아현이가 없어 찾으러 다녔다. 아현이 있지 않을 같은 곳에 아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그 방문을 연다.

“아현, 여기 있어?”
“어? 홍패”
“응?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아현이 있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있자 홍패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아현이는 대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할 것 같아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처음부터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봐”
“음… 그러니까..”

아현은 천천히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네가 주취를 돌봐주기로 했다고? 오늘만?”
“응 근데 아이는 어떻게 돌보는 거지?”
“그것도 모르면서 아이를 돌보겠다고 했어?”
“응 자원이가 힘들어 보이길래….”
“착하네.”

홍패는 아현이가 기특한 건지 아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현이는 그 손길이 기분 좋은지 눈을 감으며 그 손을 즐겼다. 주취는 그 모습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주취의 시선을 느낀 아현은 홍패의 손을 잡으면서 주취가 보고 있다고 말한다. 주취를 까먹고 있었던 홍패는 창피해져서 밖으로 나간다. 홍패가 나가자 아현은 주취를 돌아보면서 묻는다.

“그럼 뭐 하고 놀고 싶어, 주취?”

주취는 그 말에 태양처럼 활짝 웃으면서 아무거나 괜찮다고 밝게 대답한다. 주취의 웃음이 너무나 밝아서 아현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주취를 놀아주려는 아현은 방을 둘러보는데 아현이 눈에 인형이 눈에 뜨였다. 인형을 가져와서는 놀려고 하는데 어릴 때 갇혀 있었기에 또래친구가 없는 아현이는 인형을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몰랐다. 주취는 아현이가 인형을 가져오니 뭔가 하려는지 알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보고만 있었다. 그 눈빛에 더 당황한 아현은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주취은 그냥 보고 있었다. 아현은 이게 아닌가 싶어 다르게 해보지만 주취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인형을 포기한 아현은 다른 놀이를 해보지만 주취는 그냥 그런 아현이를 보고만 있었다.

아현이는 전부 다 포기한 마음으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어린애를 돌봐는 주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도 했고 많이 움직이다 보니 체력이 바닥이 난 아현은 지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의 따뜻함과 자신이 읽은 동화책 내용으로 잠들게 된다. 그 앞에서 아현을 보고만 있었던 주취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현이 품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주취도 잠이 든다. 
 

 


아현이랑 주취가 잠들고 1시간 뒤에 상황을 보기 위해서 홍패가 방에 들어온다. 홍패는 방안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아현이랑 주취가 사이 좋게 자고 있고 그 위로 햇빛이 내려온 모습이 모녀지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홍패는 담요를 가져와서 이 둘을 덮어주고 햇빛에 찡그리고 있는 아현이를 위해서 창도 닫아주었다. 그리고 아현이 옆에 와서 뺨에 입을 맞추며

“수고했어, 아현”

4시간 후 일어난 아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이 닫혀있었기에 시간을 알 수 없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홍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응. 지금 몇 시야, 홍패?”
“6시”
“밥 먹을 시간이네”

아현은 자신의 몸을 일으키는데 옆에서 자고 있는 주취를 발견한다. 옆에서 자고 있는 주취 때문에 자신이 주취를 돌봐주어야 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주취를 흔들어서 깨우는데 좀처럼 안 일어나는 주취를 안고 부엌으로 옮긴다. 의자에 주취를 앉히지만 주취는 잠에 아직 깨지 않아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식사를 한다. 그 때문에 밥이 계속 떨어뜨린다. 답답해진 아현이는 주취 손에서 숟가락을 뺐어 직접 먹여준다. 

“저.. 혼자서.. 하…할 수 있어요”

주취는 잠이 덜 깨서 발음이 전부 꼬인 상태지만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아현은 그런 주취의 말 따위는 안 듣고 계속 주취 입으로 음식을 나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홍패는 재미있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는다. 

부엌으로 누군가 들어온다. 주취는 들어온 사람을 엄청 반긴다. 

“원 오라버니!! 이제 괜찮으세요?”
“이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
“오,자원. 이제 괜찮은 거야?”

홍패도 자원을 반기면서 안부를 묻는다. 이에 자원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괜찮다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주취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현님, 홍패님. 이제 제가 돌볼 테니 두 분은 들어가서 쉬시지요”


자원은 주취 손을 잡고 주취를 데리고 나간다. 근데 주취가 갑자기 자원의 손을 놓고 아현에게로 돌아온다. 나가고 있었던 주취가 자신에게 다가오니 아현은 당황한다. 주취는 아현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는다.

“오늘 놀아줘서 고마워요. 아현!!”

아현도 주취의 웃음에 보답하여 활짝 웃어주었다. 주취에게 잡혀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주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도”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잘 웃어주지 않는 아현이 타인에게 웃어주니 홍패는 잠시 당황한다. 하지만 흐뭇한 웃음으로 둘을 쳐다본다. 그 뒤로 아현을 보며 주취가 엄청나게 못 논다고 노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현은 주취의 설명을 하나라도 빼먹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듣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잠 잘 시간이 되자 자원은 주취를 데리고 간다. 

그에 따라 부엌에서 나온 아현이랑 홍패는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앉는다. 지친 아현이 침대에 자신의 체중을 실는다. 그 옆에서 홍패는 웃기 시작하는데 아현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웃는 홍패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뭐냐고 얼굴로 묻어보지만 홍패는 자신의 입을 막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 웃고난 뒤 숨을 가다듬은 홍패는 아현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홍패 자신과 아현의 거리를 좁히고는 얼굴을 가까이한다. 

2년 전 아현이 돌아왔을 때 낯선 얼굴은 주취 이외에도 있었다. 그건 홍패였다. 자신보다 반 뼘 이상 작아 홍패를 언제나 내려봤던 아현은 갑자기 자신보다 더 커진 홍패가 낯설었다. 사실 2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보다 큰 홍패가 가끔가다 낯설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때가 홍패가 가까이서 자신을 내려볼 때이며 아현은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현, 아이 잘 돌보더라. 꼭 모녀지간 같았어. 그래서 말인데…”

홍패는 아현에게 더 가까이 갔다. 위험을 느낀 아현은 홍패를 밀어낸다. 하지만 약한 아현의 팔 힘에 밀려날 홍패가 아니기에 점점 거리를 놀 수가 없었다.

“나도 우리 아이 보고 싶어”

다음날 주취는 아현이랑 또 놀고 싶어 찾아오지만 아현은 허리가 아파서 놀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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