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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이 공간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어야 할 신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호위도 허락되지 않는 곳. 그녀는 기도를 올리는 듯 싶더니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아, 들켰네."

 

 

허허실실,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남자가 편안한 자세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엘, 오늘도 열심이구나."

 

"...저의 신께 올리는 기도를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호오, 그래서 지금 당장 옆에 있는 너의 신을 무시하겠다?"

 

"...업무에 소홀하신 저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였습니다만. 제 이야기를 안 듣고 계신가보군요."

 

"...음?"

 

"그러고보니 제 기도는 들어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지요."

 

"......"

 

"송구스럽습니다만, 저에게는 신의 강림보다 신의 자비가 더 은혜롭습니다."

 

"......"

 

"응답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큼, 큼! 헛기침을 한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더니 다시금 웃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보이는 여인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면사 아래로 숨긴 얼굴은 걸치고있는 천만큼이나 새하얗다. 까만 속눈썹이 눈꺼풀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붉은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꽃처럼 여물어있었다. 굳이 앞에서 마주 보지 않아도 충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에 그는 싱글벙글 웃음을 지우질 못했다.

 

 

"그러지말고-"

 

"하늘에 올라갈 생각은 이만큼도 없으니 묻지 말아주세요."

 

 

단호한 녀석. 속으로 중얼거렸는지 입밖으로 꺼냈는지 스스로는 모를 일이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는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응? 엘. 눈 떠봐."

 

"안됩니다."

 

"엘리아."

 

 

묵직한 음성에 결국 하얀 면사 아래에서 눈을 뜬 그녀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언제 다가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단위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그가 시원스레 웃었다.

 

 

"오늘도 참으로 아름답구나."

 

"신께서 자비를 베푸신 덕입니다."

 

"음? 아니, 아니지. 너는 원래도 예뻤어."

 

 

이번에는 침묵인가.

 

큭큭거리며 웃은 그가 훌쩍 재단에서 뛰어내렸다. 앞으로 한 걸음. 너에게 다가가는 길. 손을 뻗어 하얗고 보드라운 뺨을 톡,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아아, 귀여운 아이. 사랑스럽구나.

 

 

"...신."

 

"아- 이제야 불러주는거냐. 끈질긴 녀석!"

 

"자꾸 이렇게 찾아오시면 곤란합니다..."

 

 

한숨을 쉬며 꿇고있던 무릎을 펴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벌꿀 색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아름다운 보석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마저 들려왔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받기도 벅찬 애정이 흘러넘첬다.

 

 

"엘."

 

"...네."

 

 

다정한 목소리.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자면 제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손이 느릿하게 뒷목을 감싸 당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간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늘에 올 수 없다면."

 

"......"

 

"세계를 주마."

 

"...예?"

 

 

나의 이 세계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놀란 얼굴마저 사랑스러운, 내 사랑에게.

 

 

"내 세계를, 너에게."

 

"......"

 

"나의 모든 것을."

 

 

내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화사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그녀가 살면서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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