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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 여자는 신출귀몰이었다. 홀연히 나타나서 대뜸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걸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제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기도 했다. 여자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다름아닌, 제가 모시고 있는 신전의 신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제가 하는 모든 행위를 ‘나는 신이니까’라는 한 마디로 뭉뚱그리며 합리화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멜로는 제 눈앞에 나타나는 그 여자가 신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 여자는 어느 쪽이냐 하면, 신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를 부르는 호칭부터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무엇보다도 큰 증거였다.

 

“있지, 달링. 오늘은 저녁기도 끝나면 스케줄 없지?”
“아니, 일정이 있어.”
“오, 없는 거 아는데.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신이라구?”

 

그 여자는 그렇게 당당하게 어깨를 쭉 펴고 말하고 있지만 신이라고 해서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겪었던 일로서 멜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그의 팔에 제 팔을 감아왔다. 그는 당장 그것을 피하면서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란 거, 참 한가한 모양이군.”

 

비아냥거리는 어투가 들려왔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신으로서 있는 시간 중에 달링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
“신인데 차별 같은 걸 해도 되는 거야? 네게 기도하는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게 신의 의무 아니던가?”

 

그 말에 여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주변의 다른 신들’이지. 나는 나만의 신념이 있다고.”

 

아, 그러세요. 그의 말을 털끝만큼도 듣지 않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분명 오지 말라고 해도 그녀는 분명 저를 계속 따라올 것이고, 잠깐 사라져도 다시금 제 앞에 나타나겠지. 저 신이라는 작자는 자신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쫄래쫄래 따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래서야, 누가 신이고 누가 사제인지도 모르겠다.

고아였던 그가 근처의 수도원이었던 이 곳에 주워진 것은 근 10년전의 일이었다. 그 때 그는 상냥하고 친절한 한 젊은 수녀의 손에 의해 수도원에 거둬져 일찍이 사제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릴 때 그를 키워주던 수녀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그가 두 번 그 수녀를 볼 수 없었다.
 

 

멜로는 반쯤 죽어가던 저를 주워다가 키워준 그 수녀에게 깊은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약간의 원망도 안고 있었다. 만일 그 수녀가 저를 여기에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그 수녀가 떠날 때에 저도 같이 데리고 가줬더라면, 이 성가신 신이라는 작자와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힐끗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저를 졸졸 따라오는 여자를 보면서 멜로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따라오지 마.”
“달링은 너무 차가워. 그래도 나, 신인데. 신을 모시는 게 네 직업 아니야?”
“나는 너 같은 녀석을 신이라고 인정하지 않아.”

 

본심을 거침없이 입 밖으로 내보내자, 그 여자는 어느새 저를 쫓아와 그의 팔에 억지로 제 팔을 끼우고서는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신이란 말이야, 언제나 위엄 있고 상냥한 신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매번 말하지만 나는 그나마 얌전한 편이라니까. 다른 녀석들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걸?”
“너보다도 더 한 놈들이 있다니 신이라는 족속들은 굳이 모시고 숭배할 가치도 없는 것 같군.”

 

이 악마와도 같은 여자보다 더하다니. 세상이 말세다. 하필이면 왜 저는 이런 신들을 믿는 사제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일까. 제 신세를 한탄하느라 찡그린 멜로의 표정을 유심히 보던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물어보겠는데 달링, 왜 달링은 내가 신답지 않다고 하는 거야?”

 

여자의 질문에 멜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무뚝뚝한 표정이다. 여자는 고갤 갸웃거리면서 여전한 미소로 그의 답변을 기다린다.

 

“그거야, 너는 어느 쪽이냐면 서큐버스 같은 존재잖아.”
“오, 세상에. 그런 하급 악마랑 나랑 같다고 하지 말아줄래?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이래 보여도 꽤 높은 직함에까지 오른 신인데.”
“…요 며칠 일을 생각하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네가?”

 

어이가 없어서 제 팔에 붙은 여자를 힐끗 쳐다보자, 여자가 아까보다 더욱 밝게 웃었다.

 

“왜? 그저께 밤은 좀 맘에 안 들었어? 좀 더 부드러운 쪽이 좋을까?”
“…네 거짓말에는 더 이상 안 놀아날 테니까.”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오, 언제 그랬을까. 달링과 함께 하면 내 힘이 되는 건 거짓말이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게 싱글싱글 웃는 모양새가 밉상이다. 더 이상 말해봤자 여자를 더욱 신나게 할 뿐이다. 멜로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복도를 나아간다. 그의 곁을 다른 신자들이나 사제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곤 했지만 그들은 그의 팔에 꼭 달라붙은 그 흑발의 여자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했다.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풍경도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나자, 멜로는 문득 그 이유를 여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자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해주었지만, 혹시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

 

“그러고 보니 왜 너는 나만 볼 수 있는 거지?”
“그거야, 달링이 나에게 선택 받은 사람이니까?”
“너 같은 거에게 선택 받아도 기쁘지 않은데.”

 

멜로의 무덤덤한 대답에 여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상황이 유쾌하기 짝이 없다는 식이다. 여자가 더 그의 팔에 붙어오자 천 너머로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이 기분 나빴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입을 열었다.

 

“기뻐해, 달링. 신에게 간택 받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라고? 달링의 말을 기다리는 가엾고 딱한 신도들을 생각해봐. 달링은 유일하게, 내 말을 듣고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다른 사제들이 고대하는 바로 그 자리라니까?”

 

신의 간택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신이 제 말을 옮겨줄 인간, 즉 예언자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전해져 오는 교리에 의하면 신에게 간택 받은 자는 사후에 신의 곁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말하자면 신과 같은 영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죽고 나서 그런 걸 가져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멜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멋대로 나를 선택해서 그런 거잖아. 나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 시키면 되는 걸 가지고.”

 

멜로의 말에 여자는 고갤 내저었다.

 

“아니, 안돼. 달링이어야만 했다고. 달링을 보자마자 느꼈는걸. 오, 이 사람이다, 라고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세상에, 차가워라. 달링이 처음 날 봤을 때가 떠오르네.”

 

여자는 회상에 잠긴 듯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올려 허공을 주시한다.

 

“그 때 정말 귀여웠는데. 신이냐고 놀라서 물어보는 그 모습이라던가,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모양새라던가, 신을 감히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하던 그 신난 목소리라던가. 정말 귀여웠는데.”

 

그 때를 언급하자 멜로는 여태까지 보였던 얼굴 중에서 가장 심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리라. 여자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쿡쿡 대며 웃더니 이번엔 고갤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렇게 귀엽기 짝이 없던 사람이 지금은 어쩜 이렇게 차가워질 수가 있을까? 안 그래, 달링?”
“네가 이상한 거짓말을 치거나 험한 짓을 하지만 않았어도 내 태도는 변하지 않았을 거야. 간택 받은 자라면 신에게 몸을 바치는 게 당연하다니. 그 말이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때 네가 거짓말을 친다는 걸 빨리 깨달았어야 했어. …당시의 내가 멍청했어.”

 

몇 달 동안이나 속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그였기에 굴욕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으나 그 신이 하필이면 ‘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는 쉬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여자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답했다.

 

“달링은 모르겠지만, 신들에게도 이런저런 개성이 있다고. 나는 그냥 다른 행성들을 다스리는 신들보다 즐겁고 재밌는 걸 더 좋아할 뿐이야. 그 외에는 다른 게 없다니까? 나도 할 때는 하는 신이라고.”
“그런 말을 할 거면 네 은총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나 도와줘.”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사람들은 알아서 살아가니까.”
“…무능하네.”

 

그의 말에 여자는 방긋 웃었다. 어딘가 꾸며진 것 같이 부서지듯 웃는 모습이 어딘가 수상했지만 그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 여자가 저런 헛소리를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인간들은 내 은총을 바라지 않아. 그들은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니까. 내 손이 굳이 필요하지 않지.”
“원하지도 않은데 네가 지나치게 손을 대고 있는 나는?”
“달링은 특별케이스지. 내가 간택한 사람이니까. 일반적인 인간들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돼.”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들어다가 남자의 입술을 쿡쿡 찔렀다. 짜증이 섞인 눈빛으로 고갤 홱 돌려버리자,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달링이 말한 대로 나는 독특한 편이긴 해. 주변 녀석들은 자신이 선택한 이를 예언자로 뽑아다가 정말 공적인 관계로만 취하는 놈들도 많거든. 왜냐면 인간은 금방 죽어버리잖아. 우린 영생을 살지만, 인간은 그게 아니니까. 말하자면,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래 봤자 우리들만 힘들 뿐이거든. 그러니까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는 안돼. 정확한 판단력도 흐릴 뿐만 아니라, 신이라는 자리 자체를 잊을 수도 있으니까. 인간 역시 신에게 종교 이상의 감정을 가져서는 안되고. 신과 인간이 함께 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으니까.”

 

간만에 여자는 술술 길게 답해주었다. 멜로는 그런 여자를 힐끗 보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그걸 알고 있으면서 너는 왜 그들과 같은 공적인 관계를 취하지 않는 거야?”
“항상 말하잖아, 달링. 나는 달링을 사랑하니까 그런 거라고.”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건 금칙이라고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자는 후후, 하고 소리 내면서 웃더니 이번에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손가락을 깍지 끼면서 쥐는 손에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정말 이렇게 보고만 있으면 인간 같은데. 이 여자는 정말 신이 맞기는 할까? 멜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의 답을 기다렸다.

 

“내가 내가 만든 피조물을 사랑한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이 감정은 어머니와 같은 것이라니까?”
“네 행동들의 대부분을 보면 전혀 나를 단순한 너의 피조물로서 봐주지 않는 것 같은데. 너는 정말 신으로서 괜찮은 건가?”

 

어련할까. 여자는 그에게 과도할 만큼의 애정을 퍼부어주고 있었다. 몸에 관한 거야 그가 깜빡 속아넘어갔더라고 쳐도, 그게 아닌 다른 것들—가령 예를 들자면 시도 때도 없이 노리는 입맞춤이나 와락 안겨오는 포옹이나 그런 지극히 ‘연인’과 같은 스킨십들—을 보면 그것이 정상적인 것임이 아니라는 건 제3자가 봐도 확연한 것이었다. 여자는 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괜찮아. 상관없어.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 내가 뭐 하러 그런 걸 지키겠어? 여긴 내 세계인데. 그리고, 난 달링이 그렇게 쉽게 죽게 하진 않을 거고 말이야.”
“…아, 그래?”
“내 최고 관심사거든, 달링은. 몇 번이나 말하지만 달링은 내가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니까. 그런 존재를 내가 쉽게 죽게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해?”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잡고 있던 손을 빼내더니 그의 앞길을 막아 섰다. 여자의 얼굴이 제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빛에 생글생글 웃음이 가득하다. 그녀가 눈웃음을 한껏 짓자 오른쪽 눈 밑에 자리잡은 점이 도드라져 보였다. 여자의 동공에 비춰진 금발의 남자는 한껏 미소 지은 여자와는 정반대로 딱딱하고 무표정하기만 하다. 여자는 팔을 뻗어다가 멜로의 목을 끌어안았다. 평소에 느껴지던 익숙하고 진한 꽃 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여자는 그걸 쉬이 용서해주지 않았다.

 

“있지.”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름 불러줘.”

 

응? 보채기라도 하듯 여자는 그의 시선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고갤 갸웃거렸다. 말을 하지 않으면 이걸 놓아주지도 않겠지. 멜로는 한숨을 내쉬고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티에라.”
“오, 훌륭해. 아주 맘에 들어. 난 달링이 내 이름 불러줄 때가 제일 행복하더라.”

 

그렇게 말한 여자, 티에라는 그의 흉터 진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서 그를 안고 있던 팔을 그제야 풀어 내렸다. 멜로는 그 부드러운 물체가 닿은 제 볼을 손등으로 쓸고서는 여태껏 의문이었던 것을 겨우 입 밖으로 내뱉어본다.

 

“그런데 너, 왜 자꾸 나한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는 거야?”
“그거야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간택 받은 인간인 달링 한 사람뿐이니까. 이름이란 건 말이야, 불리지 않으면 금방 잊혀져 버리는 거거든. 어떤 존재의 이름이 사라지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니까. 내 이름을 아는 유일한 존재인 달링이 내 이름을 안 불러주면 나도 사라지고 말걸?”

 

이전의 일도 있어서 이 여자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멜로는 다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그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다가 팔짱을 끼고서 그의 앞에 섰다.

 

“대강 그런 이유인 거야. 그러니까 내 이름 많이 불러줘, 알겠지, 달링?”
“역시 네가 하는 말은 다 헛소리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 그렇게 말하자 제 눈앞의 신은 낮게 웃었다.

 

“오, 신의 말을 안 듣는 사제라니, 정말이지 달링 같은 사람이 있다고 다른 신들에게 말을 하면 다들 인간 주제에 나댄다고 할걸?”
“그걸로 됐어. 나는 내가 되고 싶어서 사제가 된 것도 아니니까.”
“알고 있어. 달링은 수도원의 수녀가 주워온 아이잖아? 그러니까 따로 선택할 기회는 없었겠지.”

 

과거의 일을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티에라는 전부 알고 있었다. 멜로는 인상을 찡그린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야, 다 알고 있지. 달링이 여태까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어쩌다가 사제가 된 것인지, 달링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나는, 신이니까.”
“…….”

 

그는 입을 다물었다. 전혀 신처럼 보이지 않는 이 여자였지만 이럴 때에만 꼭 본인이 신이라는 걸 티 내고 있었다. 멜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뜸 티에라에게 물었다.

 

“그럼 너, 그 수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수녀? 달링을 주워온 그 젊은 수녀 말이야?”
“그래. 그 여자.”

 

제아무리 냉정한 사제로 불리는 멜로였더라도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해서의 일말의 감사함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이 여자가 정녕 신이라면, 그 수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않을까? 티에라는 빙긋 웃었다.

 

“아아, 그 수녀라면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할 필요 없어.”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만나게 해줘.”
“만나면 뭐라고 하려고? 고맙다고 하려고?”

 

막상 그렇게 물으면 딱히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가 자라날 때에는 아직 어려서 별다른 감사의 말도, 선물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으니까. 멜로가 고갤 끄덕이자 티에라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래? 그 수녀, 의외로 달링과 가까운 곳에 있어.”
“그렇다면 이 수도원 주변에 있는 수도원에 간 건가. 한 번 주변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군.”

 

그의 신중한 말에 티에라는 픽, 하고 가볍게 웃었다.

 

“아니. 여기 있어.”
“어디에?”

 

멜로는 티에라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수도원에서 그 수녀를 두 번 다시 본 적은 없다. 애초에 이 곳에는 그 수녀가 유일한 수녀였고, 그녀가 떠나고 나서 다른 수녀가 온 적도 없다. 단 한 명의 수녀도 없는 이 수도원에 그녀가 있다고 하니, 말이 되지 않는다. 티에라는 아까처럼 가볍게 웃어 넘기더니 손가락을 들어 저를 가리켰다.

 

“나야. 그거.”
“…뭐?”
“달링을 구한 그 수녀, 나라니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수녀가 티에라라고? 제 눈앞의 신은 저를 놀리고 싶어하는 것일까. 티에라는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었지,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 라고 정했다고.”

 

티에라의 팔이 뻗어와 그의 볼을 매만졌다. 따뜻한 손끝이 그의 흉터를 부드럽게 쓸어 내린다. 올록볼록하게 돋아 오른 화상자국이 그녀의 손끝에 닿는다.

 

“내가 달링을 처음 봤을 때, 정말이지 그건 가엾기 짝이 없었지. 심한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고아가 화상투성이로 배를 주리면서 죽어가는 꼴이 너무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고 말았지 뭐야. 본래 그런 거, 신은 해서는 안되거든.”

 

그는 교리를 통해서, 그리고 신 본인인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은 얘기로 잘 알고 있다. 신은 함부로 인간의 삶에 관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있다는 걸.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사후세계를 관리하는 신과의 거래로 인해 지어진 것으로, 제아무리 지상을 다스리는 신이라도 그들의 운명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의 손이 닿은 인간은 한없이 불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닿는 존재, 즉 신이 간택한 인간이 아닌 이상, 함부로 그들의 운명을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제야 멜로는 왜 그녀가 ‘이 사람이다’라고 정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저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가 아주 어릴 때 이미 자신을 간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인해 그가 불행해질 테니까. 말하자면,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왜 나를 구했어?”
“눈빛 때문이려나.”

 

티에라는 애매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손끝이 그의 머리칼 끝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석양빛을 받아 그의 금발은 반짝이고 있었다. 여자는 입가를 휘면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잔잔하게 이어나갔다.

 

“눈빛이 맘에 들었거든. 다 죽어가는데도 있지, 눈만큼은 반짝반짝 빛나더라고. 아직 어린 꼬마인데 어쩜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죽을 게 분명했는데, 그 꼬마는 살고자 하는 의지에 가득 차있었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티에라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생긋 웃었다.

 

“약간의 흥미 덕분일지도 몰라.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하는 녀석은 처음 봤거든. 그래서 키우고 나면 재밌을까, 했지. 장래에 무얼 하려고 하길래 그렇게 강한 눈빛을 지닌 걸까, 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날 도와줬다는 거야?”
“맞아, 달링. 아직 어린아이니까 처음부터 내가 신이라고 하면 분명 혼란스러워할 테니까, 나는 수녀로 변장해서 달링에게 다가갔지. 달링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나는 달링이 어느 정도 자립할 때까지 키웠어. 그리고 훌륭하게 성장한 걸 보고서 내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서 떠났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뭐, 그 때 해줬던 얘기라도 다시 들려줄까? 그럼 기억나서 달링도 그게 나였다는 걸 알겠지?”

 

티에라는 낮게 웃었다.

 

“그 때 봤던 어린 달링이 정말 귀여웠는데 말이야. 수녀님, 수녀님, 하면서 정말 잘 따라주었어. 실질적으로 나는 수녀가 아니었으니까 그 명칭은 틀린 것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 지금 원망스럽기 그지 없는 제가 모시는 신이었다니, 멜로는 충격에 빠져 입을 섣불리 열지 못했다. 그럼 이 여자는 그걸 여태까지 쭉 숨기고 왔던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티에라는 그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야, 달링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
“알잖아, 달링도. 신이 함부로 인간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 인간을 간택해야만 한다고. 나는 달링이 ‘내가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달링을 선택했다’라고 생각하는 걸 피하고 싶었어. 가능하면.”
“그 이유 역시 묻고 싶은데.”

 

티에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그야, 하고 입을 떼내었다.

 

“그럼 달링이 나에게 일말의 애정도 안 느낄 게 분명하잖아?”
“…애정?”
“그래, 항상 말하지만 나는 달링을 사랑하니까. 내 사랑을 달링이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거든. 지금은 들켜버렸으니 이제 뭐, 내 노력은 헛수고가 되어버렸지만.”

 

티에라는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하면서 평소처럼 밝게 웃었다. 참으로 가볍기 짝이 없는 여자다. 저런 여자가 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녀가 진정한 신이었고, 자신을 예전에 구해줬던 그 수녀라는 것은 맞는 말인 듯 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너는 자꾸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대체 그 이유가 뭐야?”
“내가 말했지, 달링. 달링의 눈빛을 보고서 장래에 뭘 하려고 그런지 궁금했다고. 달링을 간택한 뒤에 키우면서도 느꼈지만 좀 대단한 일을 하겠거니, 했지.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티에라는 무얼 말할지 한참을 망설이는 듯 했다. 멜로는 조용히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이 여자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또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털어놓는 것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나서야, 티에라는 겨우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있지, 달링. 달링은 세상에 신을 홀리게 하는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자마자 티에라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한 것이라곤 그저 그 수녀가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일 뿐이다.

 

“나는 이 세계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내 손으로 만들긴 했지만 어수룩하기 짝이 없지. 인간들은 욕심이 가득하여 죄를 저지르고, 세상은 쾌락을 좇는 이들로 가득해.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한편, 부모 잃은 아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지. 그들은 모두 죽기를 원해. 언젠가 죽더라도 그것이 본인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나는 그것들이 내 관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들의 죄를 솎아내기 위해 자연재해를 일으켜봤지만 그들은 그로 인한 죽음이 운명이라고 믿고,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생명들조차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회의주의적이니까, 이 곳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순종적이지.”

 

멜로가 대꾸하자 티에라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서 여러모로 실망했거든. 생명체가 생명을 갈구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가 기껏 해서 만든 생명체인데 말이야. 가장 나를 닮은 존재라고 해서 만든 것들이 다 살고자 하는 의지 없이 자포자기하는데, 내가 애정이 갈 리가 있겠어? 그래서 나는 달링의 눈빛에 주목했던 거야. 내가 봤던 인간들 중에서 제일, 생명을 향한 의지가 가득 찼으니까.”

 

그제야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티에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서 반했다고 하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아, 이 사람이다, 라고 보자마자 느꼈다고.”

 

아무래도 제가 방금 전까지 이해하고 있던 것이 다른 모양이었다. 티에라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정말 그의 눈빛을 보고서 그를 간택한 것이었다. 순전히, 그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 아니라. 티에라는 후우,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때, 좀 궁금증이 풀렸어?”
“…덕분에.”

 

짧은 그의 대답에 티에라는 방긋 웃었다. 두 팔을 벌린 채 그녀가 안겨왔다. 딱한 여자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멜로는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있지, 달링이 살아있는 동안 내게 그 강한 의지를 더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어. 그 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을, 달링의 눈에서 다 보여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도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애착이 갈 것 같거든. 달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분명 이런 세계 따위 부숴버렸을 거야. 뭐,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지금 네게 이 세계는 어떤 의미를 지니지?”

 

멜로의 질문에 티에라는 단칼에 대답했다.

 

“내게 이 세계는 달링이 전부야. 달링이 없는 세계 같은 거, 필요 없어. 이 세계의 가치는 달링이 다 가지고 있는걸.”

 

부드러운 미소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꼴이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이런 신이 이 세계를 맡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티에라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우선은 제가 살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멜로는 어딘가 걱정이 피어 오르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하면 이 세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일까. 어딘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티에라는 짝, 하고 박수를 한 번 치더니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달링. 어두운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은 그래서 어딜 갈까? 달링은 혹시 이 주변에서 제일 예쁜 경관이 어디인지 알아? 내가 열심히 만든 거야. 밤에 오로라가 뜨거든. 몰랐지? 같이 보러 가줄래?”
“…오늘은 가줄게.”
“정말? 오, 기뻐라. 그럼 있지, 일단 방으로 가서 두꺼운 외투를 들고 오자. 난 괜찮은데 달링이 감기에 걸리면 안되잖아?”

 

티에라가 제멋대로 재잘거리기 시작하면서 앞서서 걸어나간다. 그녀의 뒷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문득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망설이면서 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티에라.”
“응?”

 

제 이름을 불러준 것이 기쁜 것인지, 티에라는 아까보다 더 밝게 웃으면서 고갤 돌렸다. 저보다 두어 살 정도 어려 보여 그저 젊은 아가씨로만 보이는 이 신은, 그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말을 가만히 기다린다.

 

“고마워.”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티에라는 고갤 갸웃거렸다. 멜로는 멈춰선 그녀를 지나쳐가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날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이야. 네가 그 수녀라고 했으니까. 여러모로 감사하고 있어. 나를 살려준 것도, 나를 키워준 것도.”
“…천만에 말씀. 나야말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걸.”

 

티에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만히 그의 뒤로 가서 그를 껴안았다. 제 허리를 감싸는 두 팔을 떼놓을까 손을 뻗었지만, 티에라가 무언가를 덧붙여 말하는 것을 알고서는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내게 이 쓰레기 같은 실패작의 세계에 가치를 가져다 줘서, 정말 고마워.”

 

제 등 뒤로부터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고, 멜로는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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