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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시는 신은, 일본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인 삼귀자(三貴子) 중 하나이자 달의 신인 츠쿠요미노미코토입니다.

삼귀자란 이 일본에서는 신화 토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세 명의 신을 이야기 하는 것이므로, 제가 모시는 분의 신격은 높다고 할 수 있겠지요. 비록 삼귀자의 신들 중에서는 가장 전승도 적고 활약도 적지만, 이 세상에는 성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었으니까요. 달이라는 것도 본디 그렇지 않던가요. 이 세상을 다 덮을 만큼 환하게 빛나는 태양, 요란하게 하늘을 수놓는 별, 그리고 그 둘과는 다르게 은은하게 밤을 비추고 때로는 저 너머의 어둠으로 모습을 감추기도 하는 달. 츠쿠요미도 그런 것이지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이 신화에, 세상에 꼭 필요한 신. 그것이 저의 신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달의 신을 모시는 이 신사에서 일하는 저는 제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다른 무녀들도 분명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있겠지만, 저의 자랑은 그분들의 자랑스러움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신을 모시는 몸이라 긍지를 가진다. 대부분의 무녀는 그리 생각하지만 저는 그 신이 츠쿠요미 님이기에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아마도 다른 신을 모셨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신사. 저를 포함하여 10명도 되지 않는 무녀들. 들리는 신자도 다른 신사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지만, 그것은 모두 외적인 요인일 뿐이지요. 저는 언제나, 오직 저의 신만을 생각한답니다. 그러니 제게 외적인 요인을 들먹이며 저와 제 신을 낮추려 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리고 전, 제가 모욕당해도 제 신이 모욕당하지 않으면 그걸로 족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달님,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분을, 저의 신을 만나러 오는 신자들 중에서는 그런 이들도 있었습니다. 간절한 소망을 품고, 신사에 와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신자들. 그들의 소원은 대부분 애처로웠지만, 저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무녀일 뿐. 신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뜻을 간절한 이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신은 그저 모든 것을 보살필 뿐이라고, 소원을 들어주는 만능의 존재는 아니라고 말하면, 그들은 분명 슬픔에 잠겨 서럽게 울어버리고 말테니까요. 저는 나약해서, 그저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향기로운 꽃을 전해주고 부적을 만들어주는 일 외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위로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한 무녀겠지요.

 

 

“카스미 소우”

 

 

그리고 저의 행복. 저의 자긍심. 그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당신의 목소리.

이 신사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일까요. 저의 기도가, 저의 신앙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 츠쿠요미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저는 언제나 이 목숨을 바쳐 당신의 뜻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답니다.

 

 

“네, 츠키토 님”

 

 

그것은 또 오직 저만이 부를 수 있는 호칭. 토츠카 츠키토. 고귀한 신인 당신께서 이 땅에 나타나실 때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만드신 이름. 본명만큼이나 아름다운 그 이름엔, 언제나 달빛과 같은 기품이 흘러넘쳐 이 목으로 소리를 낼 때 마다 당신의 것임을 실감하는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까?”

“네, 모두 츠키토 님을 위하여 기도하고 공물을 바쳤어요”

“카스미 소우는, 제대로 쉬었습니까?”

“그럼요. 제 걱정은 마세요. 츠키토 님. 이 몸은 오직 츠키토 님을 위해 일하는 무녀. 츠키토 님께서는 걱정하실 게 아니에요”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삶이 유한하니까”

 

 

다정하기도 하지. 오늘도 당신은 저에게 따뜻한 말을 해줍니다. 영생을 사는 신인 당신에게, 나는 그저 잠깐 피어나는 꽃과 같은 생명일 텐데. 자신보다 보잘 것 없는 것을 돌보는 것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이던가요. 저는 가끔 제가 전생에 무언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거나, 신에게 바쳐지거나. 그렇지 않은 이상, 어떻게 당신의 가호를 받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오늘도 츠키토 님은 다정하네요”

“다정합니까? 제가?”

“네. 늘 말씀드리잖아요. 다정하신 분이라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동생과 형님은 늘 제게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니까요. 사명밖에 모르는 신이라는 소리도 들어보았습니다. 카스미 소우가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까?”

 

 

사명밖에 모르는. 그 말이 칼날처럼 차갑게 다가왔다 하면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신의 말이라면 뭐든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 말만큼은 너무나도 아프게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확실히 저의 신, 당신은, 너무나도 성실하고 올곧은 존재입니다. 투명한 달빛과 같은 의지는 사명을 다하려는 그 마음가짐을 더 빛나게 해주고, 욕심이 없는 성품은 신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당신이 방종하지 않게 해주었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누군가 당신을 비난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요?

당신의 그 성품이 장점인 것은 이곳의 무녀와 신관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오는 수많은 신자들도 알고 있지요. 그럼,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저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요. 당신의 뜻을 알리러 떠나기엔 제 신분이 문제고, 저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도 않은데.

 

 

“저는 츠키토 님의 그런 면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습니까. 그럼 그걸로 됐습니다”

“하지만 그건 굳이 제가 아니라, 이 신사에 일하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니까요. 찾아오는 신자들도 그렇고…”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네?”

 

 

아아. 나는 고개를 들었을 때 그만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다정한 눈동자.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저의 신. 츠쿠요미 토츠카 츠키토님.

 

 

“저는 당신만 좋게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마치 저만이 당신의 유일한 신자라는 듯, 츠키토 님은 그리 말하며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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