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둘이나 모시는 사원은 흔하지 않았다.
형제의 신도 부부의 신도 아닌데 한 사원에 두 명이나 주인이 있다니. 사이비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특이한 일이었지만, 다행이도 이 사원은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정교(正敎)의 사원이었다.
두 명의 신을 모시는 만큼, 사원 안에는 수많은 사제들이 배움과 진리를 위해 머무르고 있다. 어떤 사제는 전쟁의 신을 모시고, 어떤 신은 평화의 신을 위해 기도한다. 공존 할 수 없지만 결국에는 함께 해야 하는 전쟁과 평화. 반대되는 두 신을 섬기는 그 커다란 사원은 마치 세계의 축약판 같았다.
“로시스 님, 경전을 정리중인데 잠깐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평화의 신을 모시는 대사제였다. 정중한 존댓말, 조심스러운 행동, 제가 모시는 신의 자세를 온 몸으로 실천하는 것 같은 대사제의 태도는 온건했지만, 전쟁의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그에게 불평을 한마디씩 늘어놓았다.
“쳇, 꼭 중요한 의식 전에만 로시스 님을 데려가는 군”
“식이 늦어지면 자신들이 보상해 줄 것도 아니면서”
“중요한 전쟁을 두고 나라님이 부탁한 의식인데.”
새하얀 옷을 입은 평화의 사제들과는 달리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의 말투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대놓고 도발하는 말투였지만, 대사제는 이 비난 또한 익숙한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래 걸립니까?”
뒤늦게 입을 연 전쟁의 신 쪽 대사제는 나름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대사제씩이나 되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짓은 하지 않는 다는 걸까. 그는 말투와 몸짓은 정중 하지만, 눈빛으로는 확실하게 불편한 티를 내고 있었다.
“삼십분이면 됩니다. 그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돌려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쁜 건 이 사원의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가시죠’ 평화의 대사제는 이 사원에서 유일하게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요, 다녀올게요”
“다녀오십시오, 사제님”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자신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꾸벅인다. ‘꼭 새까만 파도 같네’ 루엔은 자신에게 예의를 표하는 형제들에게 똑같이 허리 굽혀 인사하고 평화의 대사제를 따라갔다.
흑도 백도 아닌 그녀는, 유일하게 이 사원에서 두 신을 다 모시고 있는 사제였다.
‘일반 신도도 아니고, 사제라는 자가 어떻게 두 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처음 이 사원에 와 그녀의 존재를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놀라곤 했다. 다신교가 국교인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이 여러 신을 믿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일이었다. 각 신마다 주관하는 것이 다르니, 모두에게 예를 갖추고 공경을 표해 골고루 은총을 받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사제라는 것은 달랐다. 사제는 신의 심부름꾼 이었으니까. 단순히 공경하고 예를 갖추는 것뿐만이 아니라, 한명의 신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자. 그것이 종교인, 사제였다.
“죄송합니다. 식을 앞두고 다들 상태가 날카롭죠? 신탁을 받을 수 있는 게 저뿐이다 보니…”
“괜찮습니다. 이 모든 것은 두 신의 뜻. 조금 불편하다고 저희들이 불평할 수는 없죠”
“역시 대사제님은 상냥하네요”
그녀가 이 신전에서 하는 일은, 두 신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신탁을 받고, 계시를 받고, 제사가 있는 날에는 맨 처음 앞에 나서 신에게 자신들이 왔음을 알린다. 신의 말을 가장 먼저 듣고, 그걸 모두에게 전하는 역할이니 대사제들도 모두 존칭을 쓸 수밖에 없지. 물론 그녀는 자신의 이런 특별한 위치에 언제나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가 제게 고개를 숙이는 걸 불편해 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 하던가. 이 사원에서 5년을 넘게 지내온 후로는 달관한 것인지 익숙해진 것인지 자신도 모두를 존중하며 편하게 의사소통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도와줄 일이라는 건…?”
“아아. 전에 그 의식 때.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에 대해서 물으려고… 다들 다르게 기억하고 있어, 그냥 본인을 부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말입니다”
“아아”
이런 거라면 자신을 부를 수밖에 없지. 루엔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전을 만드는 건 중요하죠, 말이라는 건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거나 변하지만 책 안에서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경전은 중요하죠. 딱히 저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저들’이란 물론 전쟁의 신 쪽 사제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승리와 투쟁만을 위해 기도하고 쟁취의 중요성을 알리기 바쁜 그들에겐 경전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기록문서일 뿐. 어느 전쟁에서 이겼다. 어느 전쟁에서 졌다. 어디에서 누가 내란을 일으켰고 그것이 끝났다는 내용으로 점철된 전쟁의 신의 경전은 사실 종교문서라기 보단 나라의 역사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들은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직접 기사를 보내고, 개개인의 투쟁에 현명한 조언을 하는 일을 하고 난 뒤엔 제대로 기록도 한답니다”
“…늘 생각하지만, 로시스 님은 이해심이 넓은 분이군요”
“그래야지 두 신을 다 모실 수 있으니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루엔은 좋아서 두 신의 사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사제가 된 것도, 모두 선택받아서일 뿐. 본래 그녀는 평범하게 살며 농장일이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신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땐 그냥 죽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 세상에 갑자기 신이,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눈앞에 나타나 각자 자신을 섬기라고 하면 안 놀랠 인간이 몇이나 될까. 루엔은 차라리 그게 꿈이길 바랐지만, 잔인하게도 현실은 그녀의 대답을 재촉할 뿐이었다.
“내가 먼저 눈여겨 봐 둔 인간이다, 방해하지 마 제너럴”
“여기 내려와서 까지 싸움으로 해결하려고 합니까? 당사자에게 묻자고 한 제 의견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지금 묻고 있잖아? 독촉 좀 했다고 아주 잡아먹을 기세군. 이게 그렇게 평소에 중요하게 여기던 평화인가?”
게다가 왜 자신을 두고 싸우고 있냐는 말이다. 루엔은 그걸 지적할 용기도 없어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 수많은 인간들 중, 왜 하필 자신을 두고 이러는 걸까. 제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던가, 엄청나게 비상한 두뇌가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신 둘이서 싸워서 인간세계가 난장판이 되는걸 보느니, ‘둘 다 내가 모시겠다’는 파격적인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다.
‘정말이지, 고집불통이라니까. 두 분 다’
경전 제작소에 들어가기 전, 신전 가운데 나란히 놓여있는 석상을 본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 신전도 다 자기 때문에 만들어 진 걸 생각하면, 그때 제가 둘 중 누구 하나를 선택했을 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도 되지 않았다. 진짜 마을 하나라도 태워 먹었을까? 제너럴, 아니 평화의 신이라면 그러진 않을 테지만 전쟁의 신 쪽은 확실히 그럴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로시스 님?”
“아, 별거 아니에요. 가요”
조금 있으면 만나겠구나. ‘데스페라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전쟁의 신 조각상을 빤히 본 그녀는 희미하게 웃더니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