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의 얼굴을 보아서도, 보려고 해서도 안 된다.
카와시타는사당의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몇 번이나 받았던 주의를 다시 떠올렸다. 꿇고 앉은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을의 노인들이 꽥꽥 질러대는 소음을 듣는 것보다는 나았다. 머리가 다 벗겨진 촌장의 고성을 떠올리며 카와시타는 작게 혀를 내밀었다. 뭐가 신성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말이 좋아 사제지, 실상은 마을 안의 골칫덩이들을 내쫓는 것 아닌가.애초에 신앙심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그는 자신이 사제라는 이름으로 사당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실제로 신이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지만.
“아, 다리 저려. 얼마나 앉아있어야 하는 거야?”
쥐가 난 다리를 풀어주려 앉은 채로 다리를 뻗었다. 마을의 어른들이 보았다면 놀라 잔소리를 퍼부었을 테지만 지금 사당에는 자신 혼자밖에 없으니 괜찮겠지. 피가 통하면서 드는 찌릿찌릿한 느낌에 카와시타는 작은 손으로 열심히 제 다리를 주물렀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하얀 옷자락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졌지만, 그는 저릿한 제 다리를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촌장은 분명 이러고 앉아있으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그랬는데. 웩. 신의 목소리는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게 왜 말이 안 되나?”
“…“
…여기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마을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사당에는 여전히 저 하나만이 덩그러니 앉아있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한 카와시타가 도로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자신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응? 그림자?
문득 드는 섬뜩한 느낌에 카와시타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 위를 덮는 커다란 손에 시야가 가로막혔다. 이건 뭐지.
“신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 알고 있지?”
역시나 처음 듣는 목소리. 눈을 깜박일 때마다 자신의 속눈썹이 손바닥에 닿아 간지러웠다. 저거, 그러니까 지금 하는 말은..
“당신이 여기 사는 신님?”
“일단은 그렇다만. 왜 항상 어린 인간이 사제로 들어오는 거지?”
“그건 항상 촌장 마음대로인데… 아니 그것보다 손 좀 치워줄래? 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칭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제 앞에 있는 자신의 마을을 다스리는 신이 아닌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카와시타는 신 같은 건 노인들의 헛된 망상이고 실제로 존재할 리 없다고 믿었지만, 막상 제 앞에 나타나니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앞에 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손이 닿아있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지.’
음. 카와시타는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신님이니까 제대로 높여줘야지. 혼나기도 싫고. 혼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머리 위에서 신의 것으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내려앉았다. 그가 왜 웃는지이유를 모르는 카와시타는 멀뚱멀뚱 가려진 시야 속에서 눈을 깜박였고 한참을 웃던 신은 카와시타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아직 어리고 무지해서 그런가, 신을 앞에 두고 너만큼 당돌한 인간은 본 적이 없군.”
“좋아. 마음에 들었다. 너는 오늘부터 여기서 살면 된다.”
신이 손을 치운 덕에 드러나는 신의 얼굴을 마주한 카와시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 노인네들이 왜 신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아.
02.
“신님 이것 봐!”
멍하니 제단에 앉아 있던 그는 짧은 다리가 열심히 움직이는 아이의 발소리에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내리눌렀다. 타박타박 자신에게서는 나지 않는 저 작은 소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제단까지 뛰어올라온 카와시타는그 위에 대뜸 화려하고 값비싸 보이는 것들을 올려놓았다. 신인 그의 입장에서는 신기할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아직 어린 인간에게는 퍽 신기한 것들이었는지 카와시타는 연신 눈을 빛내며 비단을 들춰보았다. 마을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이 아이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나? 문득 느껴지는 의아함에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촌장이 이거 여기다 올려놓으래.”
제 손으로 제단을 탁탁 친 카와시타는‘잘했지?’하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촌장이라는 인간은 제단에 제물을 올리고 자신에게 기도를 올리라는 뜻이었을 테지만, 아이는 그 뜻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리니까 당연한 거지만, 왜 항상 어린아이를 사제로 올리느냔 말이야. 칭찬의 의미로 카와시타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는 흥미 없다는 눈으로 아이가 들고 있는 천을 내려다보았다. 제물을 바치는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을 텐데...
“그 인간이 다른 말은 안 하던가?”
“응? 아아. 요즘 마을에 비가 안 내린다고 말했어. 그것 때문에 곤란하대!”
역시나. 이 제물은 마을에 비를 내려달라는 뜻이군.
귀찮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던 그는 끙끙거리는 소리에 또 무엇을 하나, 싶은 마음으로 제단에 매달리다시피 붙어있는 카와시타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어린 탓에 카와시타에게제단은혼자 오르기 힘든 하나의 산과 같았다. 아직은 짧은 다리로 낑낑대며 제단에 매달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그는 일부러 제단 위에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이 어린 사제는 그의 어디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쫄래쫄래 따라오곤 했으니까.
푸흐흐 소리 내서 웃은 그는 아직도 낑낑거리고 있는 카와시타의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가볍게 들어올렸다. 오. 눈을 동그랗게 뜬 카와시타를 제 무릎에 앉혔다. 그것이 만족스러웠는지 카와시타의 얼굴이 노곤하게 풀어지는데 그 모습이 제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아, 그는 또다시 애써 웃음을 삼켜야 했다. 건방지게도 이 어린 것은 그의 무릎 위에서 편한 자세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하려나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으니, 제단 위에 얹어진 작은 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대뜸 그의 머리 위에 얹는 것이 아닌가.
“…카와시타, 뭐 하는 거지?”
“앗, 신님 그러면 안 돼!”
눈 아래까지 내려온 천 때문에 시야가 불편해졌다. 아주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건 싫었기 때문에 그는 한숨을 쉬며 머리 위의 천을 끌어내리려 했다. 카와시타의 양손이 그의 손을 붙들지 않았다면, 천은 팔랑팔랑 제단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미약한 힘이었지만, 언제나 카와시타에게 관대한 그는 천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멈춰주었다.
“? 이걸 굳이 머리에 얹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
“당연하지! 이걸로 신님 얼굴을 가릴 거야!”
제 딴에는 중요한 것인지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얼씨구. 어린 것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그나저나 신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어긴 지가 언젠데, 인제야 자신의 얼굴을 가리겠다고 저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변하기 쉽다지만, 왜 굳이 지금에서야.
“내 얼굴이 보기 싫은 건가?”
“아냐!! 신님 얼굴 좋아!”
“그런데 왜 굳이 가리려 하는 거지?”
“신님은 무지무지 멋있으니까, 나만 볼 거야!”
아. 이번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당 안이 울리도록 크게 소리를 내서 웃은 그는 볼을 부풀린 카와시타를 끌어다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어차피 이 사당에는 자신과 아이밖에 없는데 자신의 얼굴을 누구로부터 가린다는 것인지. 카와시타는나름대로 벗어나 보겠다고 열심히 버둥거리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린 카와시타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이 어린아이의, 그것도 보통 아이가 아닌, 자신을 모시는 아이의 부탁 하나 못 들어주랴.
“그래. 네가 원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기분 풀어라.”
03.
카와시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 위의 천을 바닥에 팽개쳤다. 찰그랑 비녀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며곱게 틀어 올려져 있던 백발이 아래로 쏟아졌다. 카와시타는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쿵쿵 소리를 내며 제단으로 향했다. 사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어릴 적과 달리,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단에 걸터앉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왜 그렇게 성이 난 거지?”
처음 만났던 그날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그의 웃음에 카와시타는 투정부리듯 제단에 몸을 뉘였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의 허벅지에 머리를 댄 카와시타는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전염병때문에 피해가 크대.”
“제물은?”
“사당 앞에 멧돼지를 죽여놨어.”
“이런, 네가 동물을 죽이는 걸 싫어하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나?”
정말 유감이라는 듯한 그의 말투에 카와시타는 제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물론 그가 손을 뻗어 물고 있던 입술을 놓아주었지만. 그러지마. 상처 난다.
“…말했는데도 듣질 않아. 순 자기들 마음대로야.”
“인간들은 그렇지. 항상 저 좋을 대로 듣는 이들이 아닌가.”
이전에는 사슴. 그 이전에는 소와 토끼였나. 언제부턴가 값비싼 물품들 대신 산짐승을 잡아다 바치는 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특별히 뭔가를 먹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신이 살생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건가.카와시타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던 그는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특별히 뭔가를 죽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카와시타는 조금 빨개진 눈으로 한참 생각에 빠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릴 적, 그를 독점하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 씌워두었던 천 아래로 그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고맙게도 그는 자신이 둘러놓은 천을 정말 단 하루도 끌어내리지 않았고, 무슨 조치를 해놓은 것인지 실수로도 천이 떨어진 적은 없었다. 카와시타가 벗겨내지 않는다면야.
카와시타는 느리게 그의 머리 위의 천을 잡아당겼다. 스르륵 천이 맞닿는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응?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반가웠다. 얼굴, 얼마 만에 보더라.카와시타의 입에서 토라진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님. 어떻게 할거야?”
“무엇을?”
“전염병 말이야. 벌써 대여섯 명, 죽었다던데.”
고쳐줄 거야? 그렇게 묻는 눈빛을 마주하며 그는 언제나와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