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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따르는 신이 누구십니까?”

사내의 물음에 노파가 무릎을 꿇고 반쯤 절을 하는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노파는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사내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안심하세요. 그대의 신은 결코 당신을 저버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용서를 구하시면 그 분도 알아주실 거예요.”

“부, 불의 신이시여. 당신의 종이 불민하여 당신의 심기를 어지럽혔사오니 이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노파는 신에게 올리는 제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백정 일을 하고 있었으며, 신에게 자신들이 잡은 양고기를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몇 개월 동안 노파가 게으름을 피워 제대로 재물이 바쳐지지 않은 이후로 그녀 집안 주변에 있는 산에서 자주 화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건 신이 그들에게 진노를 표출하는 일이라고 모두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노파가 몸을 낮춰 용서를 구하는 일은 어쩌면 타인에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신전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대는 내 말이 들리는가?

“시, 신이시여. 부디 저와 제 집안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 아하하, 설마 내가 그대의 제물 때문에 불을 내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무엇 때문에…….”

- 그대는 내가 아끼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신께서 아끼시는 것이라니, 그게 무슨……,”

 

그 말에 살짝 조아리던 고개를 들고 신전 주변을 살폈다. 회색빛의 석전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호랑이가 있었다. 호랑이는 황금으로 조각되었고,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날개 가장자리에는 비취가 작고 섬세하게 붙어 있었다. 그걸 보던 노파가 무엇인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다시 땅으로 박듯이 떨구었다.

 

- 이제 그대가, 그대 집안이 무엇을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은가?

 

그 말에 노파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울부짖듯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신이시여.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에 신은 소리내어 한참을 웃다가 말했다.

 

- 내가 설마하니 가장 귀히 여기는 호랑이를 내 제물로 받게 될 줄은 몰랐네. 더구나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고기를 말이야. 어때, 자네라면 굉장히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화를 참기 위해 신경 쓰며 한껏 빈정거리는 신의 말에 남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그녀는 웃고는 있겠지만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눈빛에 살기가 가득할 게 뻔했다.

 

- 내가 사제를 통해 말하지 않았던가? 그 누구도 호랑이를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고. 호랑이는 내 분신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일세. 아닌가?

 

노파는 제물을 바치지 못했던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갔다. 그녀의 막내아들이 제물로 삼을 양을 잡으려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그 곳에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양 대신 더 큰 호랑이를 잡아가면 되겠다 싶었단다. 노파 다음으로 나이 많은 숙부가 양을 찾아와도 소식이없기에 변고라도 난 줄 알았는데, 어깨에 호랑이 한 마리를 지고 돌아와 무척 놀랐다. 호랑이를 잡았으니 이걸로 제물을 삼자는 아들의 말에 처음에는 말렸다. 신의 저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세요, 어머니. 양질의 고기는 오히려 호랑이가 더 낫다 못해 뛰어나지 않습니까? 산옥님은 호랑이를 귀히 여기시어 고기 한 번 못 먹어 보셨을 테니 특별히 맛보이게 하는 겁니다.”

“그게 될까?”

“되고말고요. 아들이 장담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호랑이고기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부위를 산옥에게 바쳤다, 그리고 막내아들은 갑자기 말을 잃고, 집 주변에는 화재가 빈번히 일어났다. 그가 말을 잃기 전에 꿈을 꾸었다고 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웬 낯선 여인이 길을 물었다고 했다. 여인이 묻는 길이 마침 그도 아는 곳이라 길을 알려주었는데, 여인의 얼굴에 완연했던 미소가 순식간에 가시고 무표정하다 못해 살기를 가득 띤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자리에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 순식간에 나무를 뒤덮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경악에 차 뒷걸음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어리석은 사내여. 그대는 자신이 한 멍청한 짓을 알지 못하겠지.”

 

그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은 실어증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설단현상처럼 자기가 말하고 싶은 단어를 찾지 못해 난감해했다. 노파는 그 정도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친절한 말씨로 정확한 단어를 찾아주려 애썼다. 그러나 아들은 이내 곧 문장 하나를 구성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더니, 결국 완전히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화재는 아들의 실어증을 전후로 이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실어증을 앓던 아들은 결국 사라졌다. 나중에 소문으로 인적이 없는 폐가에 그와 닮은 사내가 들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아마 그는 몹시도 산옥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노파는 모든 기억을 되짚어 보더니 이내 혼절하고 말았다.

 

“언어는 열기와 같아요, 팔계.”

 

산옥은 그녀의 사제 팔계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신전의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파란색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쉽게 대상의 가치를 찾아주기도 하고,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하거든요.”

“당신이 어째서 ‘열기와 언어의 신’으로 불리는지는, 이미 이전에 느낀 적이 있었죠.”

 

모노클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던 팔계가 눈을 반짝였다.

 

허기짐.

그리고 엄청난 학대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채 팔계는 사막 위를 걷고 있었다. 다리는 질질 끌려 신발에 모래가 차오르고 있었다, 갈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타오르는 사막에서 팔계는 조금씩 힘이 빠졌다. 무거워지는 다리를 겨우 지탱해 앞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그 때 팔계가 손을 뻗어 만진 건 식어버린 사막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태양이 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후 두 시라는 시간에 맞게 가장 높은 곳에 존재했다.

 

“이 쪽이예요.”

 

파란색 머리카락에 창백한 피부를 한 여인이 사막의 모래를 더듬고 있었다. 여인은 다른 손으로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한 번 모래를 다시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여인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받아요.”

 

떨리는 손으로 팔계는 봉투를 쥐었다. 그 봉투에는 먹을 것과 물통이 담겨 있었다. 팔계는 그걸 보자마자 곧장 음식을 입에 넣으려 했지만, 여인의 호의가 진심인지, 혹은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파악하려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챈 듯, 그녀가 웃었다.

 

“기운 없는 모습으로 이것저것 알아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양 말아요.”

 

여유로운 웃음에 어쩔 수 없이 팔계는 봉투를 받아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팔계는 그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던 여인이 물통의 뚜껑을 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가 건네주는 물통을 받아 들고 물을 마셨다. 여인은 주변을 살펴보고 말했다.

 

“어두워지겠군요.”

“사막은 밤이 되면 몹시 추워지는데, 옷이 너무 얇은 것 같아요.”

“걱정할 것 없어요. 곧 따뜻해질테니.”

 

“불쏘시개라도 가지고 있나요?”

 

그의 물음에, 여인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사막의 모래에 가져다 대었다. 팔계는 순간 자신의 발바닥과 엉덩이에 닿는 온기에 흠칫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은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로 가나요?”

“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인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손바닥 위에 불꽃을 피워내 그를 앞질러 걸었다.

 

“갈 곳이 없다면 나를 따라오겠어요? 보아하니, 체술도 쓸 줄 아는 것 같던데.”

“그걸 어떻게 알았죠?”

“당신의 몸에 있는 흉터, 백안이 냈지요?”

 

여인은 그렇게 반문했다. 팔계는 그녀의 물음에 자신의 흉터를 살폈다, 여기저기 찢긴 상처들은 유별날 게 없어 보였다. 여인은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건드렸다. 상처에 낯선 이물감이 느껴지자, 팔계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긴장하지 말아요. 내가 옆에 있는 한 아무도 그대를 해치지 못할 테니.”

 

그녀의 말에, 팔계는 마치 무엇인가 홀린 것처럼 천천히 여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게 되자, 그는 곧장 바닥에 고두하고 말했다.

 

“시, 신께 무례를 호랑이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 팔계를 물끄러미 보던 산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온전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면 내가 미안하잖아요.”

“당치 않으십니다. 제가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백안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예?”

“생각 있으면 다시 찾아와요.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여인처럼 온전히 당하고만 있는 성격은 못 되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얼굴로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몸 주변으로 큰 원을 그렸다. 여인의 주변으로 붉은 불길이 일었다.

 

“자, 그러면 나는 이만 실례할게요. 팔계.”

 

그녀는 불길을 완전히 몸 전체에 끼얹다시피 하더니 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게 팔계와 산옥의 첫만남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팔계는 그녀를 찾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관장하는 신전을 찾았다. 산옥은 그가 감히 다다를 수 없는 하늘에서 팔계를 내려다보았다.

 

- 정말로 찾아왔네요?

“신께 큰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신께 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목숨이라.

 

산옥은 여전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신 팔계에게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구름 위에 엎드려 느긋하게 손을 턱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말했다.

 

- 그것보다는 그냥, 일종의 책임감을 내게 가져주는 건 어때요?

“무슨 말씀이신지.

- 내 신전에서 생활하며 내 목소리를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거예요. 어때요?

“어떻게 제가 감히!”

-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은걸요. 내가 그대에게 명령을 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부탁으로 만드려는 거예요? 이거 실망이네.

“아, 아닙니다. 그저 신께서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부탁을 하신다니 당혹스러워서.”

- 괴수 백안을 꺾는 게 신의 명령이라고 말한다면.

 

그녀의 말에, 팔계가 엎드려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산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팔계는 백안에게 희생당한 제 누이를 생각했다. 죽어가며 고통을 호소하던 누이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가 주먹을 쥐었다. 그것을 산옥은 놓치지 않았다.

 

- 신의 명령이라 말한다면, 그대가 꺾어버리면 되지 않겠어요? 물론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면 동료라도 붙여서 무너뜨려도 좋고.

“혼자, 하겠습니다.”

 

팔계의 말에 산옥이 웃었다.

 

-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그렇게 팔계는 산옥의 사제가 되었다. 인간들이 신전에 찾아와 신탁을 들을 때를 제외하고 그는 수련했다. 백안을 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 팔계를 전적으로 도운 게 산옥이었다.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그가 수련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신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있었다. 간혹 신전 너머 꽃길을 걷는 그들을 본 사람들은 연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 오는 날, 꽃밭을 걸었던 둘은 정말 연인이 되어 있었다. 백안을 물리치기 위해 길렀던 힘은 이제 산옥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왜 내가 당신에게 사제가 되어 달라고 했는지 알아요?”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언어를 잘 소화하는 사람이거든요.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옥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마음, 그리고 그 뒤에도 늘 조심스러웠던 그의 언어에는 극단적인 온도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점이 산옥을 더욱 팔계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말을 들은 팔계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짧게 입맞추었다. 간지럽다며 깔깔 웃는 산옥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노파가 신전을 다시 찾은 건 몇 달 뒤였다. 노파의 옆에는 잃어버렸던 막내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노파의 곁에 서 있다가 급하게 절을 올렸다. 노파 역시 부들부들 떨며 절을 했다.

 

“신이시여, 모든 것은 부족한 이 어미의 잘못입니다. 제게 벌을 주시고 제 아들의 괴로움을 씻어주십시오!”

 

노파의 간절한 애원에, 구름 위에 앉아 있던 산옥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옆에는 큰 호랑이가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산옥은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아들 때문에 그대가 고생이 많구려.

“시, 신이시여.”

-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소? 내 정원을 손질할 이가 부족하거든. 그대의 아들이 이 곳에서 일하는 거요. 물론 그대가 있는 집에는 일이 없을 때마다 보내줄 것이오.

“정말이십니까?”

- 신은 거짓을 말할 수 없지. 인간보다 더욱 막중한 책임을 지기 때문이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답할 수 없던 막내아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가 입을 열자, 그동안 할 수 없던 온갖 말들이 터져 나왔다. 아들은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실하게 내 정원을 돌봐 줄 수 있겠소?

“예. 약속하겠습니다!”

-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하오. 아, 오늘부터 정원을 그대에게 맡겨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노파와 그녀의 아들이 얼싸안고 울다 산옥의 말에 떨어졌다. 자주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들의 벌이 감해진 것에 안도하며 노파는 신전을 빠져나갔다. 팔계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데려갔다. 붉은 빛의 꽃들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일손이 적어 조금 난감하던 차였거든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제님!”

 

허리를 굽히기 바쁜 그를 만류한 팔계는 정원을 손질할 때 지켜야 할 유의사항을 몇 가지 짚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정원을 잘 부탁한다고 한 뒤, 신전 뒤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발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산옥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팔계는 손을 내밀었다. 산옥은 그의 손을 붙잡았고, 둘은 그의 거처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서 팔계는 산옥의 이마에 짧게 입맞추었다.

 

“당신의 분신을 잃었는데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요.”

“그러면 팔계가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자, 팔계는 다시 산옥의 고개를 들게 하고 두 뺨에도 정성스레 입맞추었다.

 

“내가 당신을 미워할 리가 없잖아요.”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후후, 이럴 때 보면 꼭 인간이나 다름없는데.”

“하긴 인간이나 신이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당신과 내가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거죠.”

“당신의 말이 맞아요, 산옥.”

 

맞장구를 친 팔계가 산옥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산옥은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고, 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입술이 떼어지자, 산옥이 그의 품에 안겨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쭉 팔계와 함께 있고 싶어요.”

“저 역시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러면 오늘은, 돌아가지 말까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장난스러운 그녀의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팔계가 산옥을 품에 안았다. 자신이 행여나 다칠까봐 그녀는 온몸의 열기를 조절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던 둘은 조심스럽게 팔계의 침대 위에 앉았다. 둘의 머리 위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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