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신에게 가까워지려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원칙이나 다름없었다. 그 누구도 이유를 따지지 않고, 거스르지도 않고, 똑같은 방향을 따라 흘러갔다. 엄격한 사제도, 장난스러운 꼬마아이도, 상냥한 선생님도 당연스럽게 알고있는 것이었다. 누가 감히 신의 화를 사고 싶겠는가? 누가 감히 절대자에게 벌을 받고 싶겠는가?
늘 그렇듯, 계중에는 오만한 자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손으로 이상적인 신을 만들겠다며, 감히 신의 권위에 침범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비윤리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고 반드시 신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 옛날의 이야기는, 한 청년을 지목한채로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청년은 바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청년의 의사같은 것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도 보지도 않았다. '마을의 평화' 같은 것을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청년이 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 마냥, 그것이 그저 숨쉬는 것만큼 당연한 것처럼, 의견도, 방해도, 의사도, 발악도, 묵살당한채로 일은 진행되었다. 일방적인 통보로 시작된 일은 당연스럽게도, 시작부터가 비윤리적이며 아비규환적이었다.
세뇌와 인체실험이 이루어진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달라졌다면, 그 이전의 인격에 부여된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사람인가? 그 인격에 다른 이름을 준다면, 그 이전의 인격은 죽은 것일까?
그 다음에 청년이 눈을 떴을 때에는, 엉망진창으로 훼손된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몸은 피투성이였으나 어느 한군데도 쓰라리거나 아픈 곳이 없었다. 손에는 예리하게 빛나는 작은 칼 하나가 들려있었다.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답이 나올 수준의 단서에, 청년이 기가막힌다는듯이, 그 특유의 낮은 소리로 웃었다.
인간이 인간을 신으로 만드려다 도리어 괴물을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는 그 수준인 것이었다. 바라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누구나 알고있을 법한 흐름을 올바르게 나아간 지루한 낡은 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심하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소문정도가 어울릴뿐인 이상한 것. 청년은 그것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그리 정의 내렸다.
제 손에 죽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괴물을 신으로 숭배하고 제물을 바칠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전부 죽인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었다. 코를 찌르는 썩은내에서 청년은 천천히 멀어져갔다.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마을에서 만들려고 했던 신의 실패작이라는 사실도. 그 이전의 추억과 기억과 사랑과 우정도 모조리 그 자리에서 도살당해 비참히 죽었다. 그렇게 끝나야 좋을듯한 이야기였다.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청년이 눈을 떴다. 사람의 인적이라곤 저 한참 너머의 마을밖에 없는 곳에 방문객이 있을리가 없다. 그것이 당연한 소리였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비웃듯이 일정한 박자로 똑똑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신님, 오늘도 제물을 받고 소원을 들어주세요..….
속삭이는 듯한 작은 소리에, 청년은 익숙하다는 듯이, 혹은 짜증난다는 듯이 문을 열었다.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건 나름의 배려랍시고 하던것도 같았다. 그러면서 자기 목이나 몸은 배려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날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3시간동안 있었다는 말을 하는 아이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무시하면 무시하는대로 문 앞에서 계속 웃으면서 서 있는 아이는 도통 지치거나 질려하지도 않았다.
햇빛이 강하게 들어와 눈을 찡그리는 동시에, 아이코,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서 무언가가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청년보다 한참이나 작은 꼬마는 아프지도 않은지, 이내 베시시 웃었다. 이마에 빨갛게 자국이 생겼다.
"와아. 저 오늘도 왔어요.“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진짜 영험한 신을 봤다는듯이 가져온 것들을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엉터리 기도문도 중얼거리지 않고 진중해 보이는 표정으로 소원을 빌었다. 늘 이런식이었다.
방해하기엔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할 쯔음에, 아이가 기도를 마치고 '제물'을 준다. 그 제물이 무어냐면, 인간도, 동물도 아니고, 꿀을 잔뜩 넣은 것 같은 부드러운 빵 한개였다. 아이가 가져오는 빵은 그때 그때마다 종류가 달랐다. 아침은 항상 아이가 가져온 것을 함께 먹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이의 차림새는 깔끔한 편이었다. 좋은 천으로 만든, 검정색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새하얀 옷이 펄럭이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분명 귀한 집 아이라고 생각하겠지, 그 귀한 집 아이가 이름도 없는 괴물을 신이라고 받든다는 사실을 안다면 분명 놀라 쓰러질게 뻔했다.
청년이 힐끔 쳐다봤다. 어느샌가부터 아이가 가져오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달그락 거리는 예쁜 찻잔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 말에도 웃는 얼굴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가 눈치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그것을 저지하려 했던 손이 갈 길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곧 이어서, 은은한 향기가 집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찻잔에 옅은 분홍빛의 차가 채워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이가 대답을 했다.
"아무도 옆에 없으면 외롭지 않아요?“
외롭지 않아. 청년이 단호한 투로 말했다. 아이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내일 또 올게요.“
찻잔을 깜빡 잊은건지, 아니면 필요없던건지, 탁자 위에는 조금씩 식어가는 차가 담긴 찻잔이 하나,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싸늘한 찻잔이 하나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이는 찻잔은 쳐다보지도 않고 청년에게 손을 흔들더니 집을 나섰다. 찻잔을 손가락으로 살짝 쳤다. 아직도 따뜻했다.
청년에 관한 소문은 신에 관련된 것은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 멀리에 위험한 사람이 있으니 가지 말라,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사람이 살고있다는 투의 소문이 전부였다. 아이가 자신을 신님이라고 부르며 소원을 빌러 찾아올만한 계기가 없다, 아이가 괴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부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년은 내치지 못했다. 앞으로도 내치지 못할 것이다.
차를 한모금 마셨다. 이상한 향과 약간 따뜻한게 긴장을 풀리게 해주었나. 청년은 아까 제대로 답하지 않은 질문에 답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
*****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청년에게 있어서 벌써 자명종 같은 것이 되버린 것인지, 아니면 어제 입은 부상이 심했던 것이었는지, 시계는 야속하게도 6시간이나 더 흘러 있었다. 문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 찾아오던 소녀가 오지 않은듯 했다. 자신의 몸에 붕대가 감겨있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리 생각했을 터였다.
문을 열었다. 구름이 잔뜩 낀 것이 곧장 비가 내릴듯 했다.
소녀는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청년이 자신을 본 것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소녀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우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것이 도리어 애처로운 느낌이었다. 그 행위는 거절당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한시간 정도가 더 흘러서야,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
"팔 주세요.“
소녀가 삐딱한 표정을 짓고는 손을 내밀었다. 다친거에 대해 화가 난건지, 아까전부터 쭉 저 상태였다. 덕분에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무어라 말을 하면 도리어 화를 날까 얌전히 있어야할듯 했다. 청년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소녀는 팔을 냉큼 잡아버리더니 쭉 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필요없어. 어차피 이정도론 죽지도 않을테니까."
"신인거 하고 고통하고는 별개거든요?“
무적이라는 이미지라면 다치지 마셨어야죠, 소녀가 말을 덧붙였다. 충혈된 눈이 두어번 깜빡였다. 능숙하게 붕대를 감는 손길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누워요.“
청년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소녀는 더 말하지도 않고 침대에 앉았다. 침묵 속에서 말하는대로 하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맴돌았다.
"이 수준으로 강압적일줄은 몰랐는데."
"환자 주제에 잘도 숨쉬고 계시네요.“
이제 밤이에요, 좀 자요. 청년이 마지못해 눕자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건 뭐지?"
"깜짝 이벤트요. 보아하니 이런거 한번도 당해본적 없죠?"
"그걸 '당한다'고 표현하는 너부터가 신기할 따름이군.“
청년이 그러면서도 웃자, 소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사이로 아쉽다는 감정이 나뒹굴었다.
"신님. 자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은 눈을 감은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잘자요.“
소녀는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책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따뜻한 공기가 가득한 것이 기분 좋은 날이다. 숲은 그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 바람에 잎사귀가 흩날리는 소리에 경계심을 만들게 하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고 길 조차 있지않은 곳으로 소녀는 똑바로 걸어갔다. 가시덩쿨이 다리를 지나가도 쓰라리지도 않은지, 소녀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몇년동안 봐왔던 문을 똑같은 박자로 두드리자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사람 또한 몇년동안 봐왔지만, 소녀는 처음 본 것 마냥 인사하듯이 상냥하게 웃음 지었다.
"저는 이제 안올거에요.“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흩날리면서 엉켜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청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와야할 것이 이제서야 왔을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게요.“
소녀는 살풋이 웃으며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예의 그 엉터리 기도문도 없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기도는, 단 한번의 방해도 받지 않고 끝났다. 청년은 소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손을 뻗으니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눈가를 쓰다듬고, 그 다음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것이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한 것은 거절되지 않았다.
"네가 항상 빌던건 뭐였던거지?“
순전한 호기심, 두려움, 외로움, 의문감. 누구에게 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어쩌면 혼잣말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소녀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들어주시게요?"
"…마지막이니까."
소녀가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바람이 불고있지 않아도 으슬으슬한게 추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소원은 그거였죠.“
당신이 행복해지길. 작은 소리를 내뱉어 만들어낸 언어는, 그런 것이었다. 뒤돌아본 그 순간에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잭.“
또다시 물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이름이란 것을 알고있었다. 이름조차 묻지않은 사이가 이별을 해도 아프다.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두려움을 담고 있어도 이름을 말해주었다.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니샤. 당신한테 바치는 이름이에요.“
잭은 니샤에게 가지 않았다. 그녀의 숨이 사그라드는 순간에도, 그녀가 눈을 감은 이후에도 가지 않았다.
단 한번도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아 후회하지도 않았다. 니샤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름이 너무나도 고귀하게 느껴져 단 한번 그 상대의 목소리로 들었다는 것에 대해 만족했다.
애정이 담긴 그 행위를 잊지 않아.
사제가 사라진 신은 곧장 자취를 감추었다. 믿는 이가 사라진 신은 존재할리가 없었다. 잭은 이틀동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