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나님. 손님이-"
"또 그분이냐."
"예, 예..."
"돌려보내거라."
"아... 저기..."
"이미 들어왔는데?"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운 미간에 주름이 생기자 어느새 다가온 붉은 남자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의 미간을 문질러주었다. 매몰차게 그의 손을 내친 유우나가 차가운 얼굴로 일갈했다.
"돌아가주세요."
"어이쿠, 차가워라. 추운데 좀 들여보내주시지."
"이미 들어오셨잖아요. 정 그러시면 겉옷을 하나 더 드릴테니 가주세요."
"안아주면 안되나?"
곧바로 돌아보는 경멸어린 시선에 카르마는 오늘도 하하, 능글맞게 웃어넘겼다.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그녀가 폭이 넓은 소매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완전히 등을 돌렸다.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며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그녀를 끈질기게 쫓아가는 카르마에게,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저는 신녀입니다. 함부로 굴지 말아주세요."
"에이. 요즘 시대에 무슨."
"출신 성분도, 신분도, 하물며 이름조차도 모르는 분께 마음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자유로운 생각을 하고 사는건 어때. 모르는 사람과의 불타오르는 밤! 좋잖아?"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물론 저의 주인께선 자비로우신 분이라 기꺼이 수하들에게 자유를 주시겠지요."
"똑똑하네!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인간을 사랑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응?"
생글생글 사람좋은 미소를 내건 채로 그녀의 뒤를 따르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작은 한숨 뒤를 따르는 그녀의 말은,
"당신은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짙어졌다. 이런이런, 너무 사랑해줬나?
"곤란한데..."
"네?"
"내가 너를 너무 아꼈나보다. 그것까지 알아챘어?"
"......"
"뭐, 이대로면 곧 다시 보겠네."
꽁꽁 껴입은 옷을 갈무리하며 그가 가벼운 웃음을 내보였다. 의아함에 돌아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순식간에 신사를 채운 무거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탁한 금빛이 오롯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느낄 때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인간이 아니다. 마치 물컹한 이물질을 삼킨 것처럼 목이 턱턱 막혀왔다.
"...이게, "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무슨..."
"신녀님, 또 보자."
"저는 신녀가 아닙, "
크게 바람이 일고, 눈조차 뜰 수 없이- 아니, 그 자리에 온전히 서있을 수도 없이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그녀는 꼿꼿이 선 채로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는 순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시야가 가려졌다. 아차 하는 사이에 이마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떨어졌다.
"무슨 짓, ...!"
손이 떨어지고 고개를 든 그녀의 앞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뜨거운 느낌이 이마에서 가시지 않았다. 이질적인 기분에 손으로 이마위를 더듬거리는 그녀의 곁으로 무녀복을 갖춰입은 이들이 다가왔다.
"유우나님, 참배 시간이..."
"아, 가지."
"...맙소사..."
"왜 그러느냐?"
돌아선 그녀의 이마 위에는.
"시... 신녀님을 뵙습니다!"
새하얗게 은은한 빛을 발하는 신의 문장이 새겨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