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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는 자신이 들어선 골목을 둘러보았다. 즐비한 빌딩들 사이 어스레한 뒷골목이었다. 희한하게도 가로등 불빛이 옅음에도 골목이 미묘하게 밝은 것 같았다.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곳에 들어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어두웠다.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 발목을 잡는 등 뒤의 어둠을 떨치듯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친구 클로에와 만나기로 한 가게는 그녀의 기억으론 골목으로 들어오면 바로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여기였는데.”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점점 모르는 길이 나타났다. 되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며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FLOWER ASATO>가 있는 모퉁이를 돌면 되는 걸로 아는데 왜 안 보이지?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몇 발 더 내딛어서 오른쪽 골목을 들여다보았을 때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된 건물양식을 여러 나라에서 가져와서 꾸민 듯한 외관은 상당히 기묘했다. 마구잡이로 섞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이 건물 지은 사람의 센스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리는 건물을 훑다가 간판을 보았다. <서양골동 다락방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양골동, 이면 서양 골동품 파는 가게인가?”

클로에와의 약속 때문에 이 주변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이런 가게는 오늘 처음 보았다. 서양 골동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는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리는 천천히 다가가서 가게 문을 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계단이 그녀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계단 옆으로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가게라고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그 건물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끝이 보였다. 본격적인 가게 문이라고 생각되는 것의 황동색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 것은 검은 치파오를 입은 남자였다. 잘 매만진 은색 짧은 머리와 오른쪽 붉은 눈과 왼쪽 은색 눈이 묘한 매치를 이루고 있었다. 옷의 앞섶은 단추를 3개 정도 풀었고, 소매는 위로 걷어 올렸다. 온갖 골동품이 가득한 가게와 남자는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 기이했다. 그의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가 작게 울었다.

“어, 왔냐.”

“네?”

“잘 왔다. 어, 그 뭐냐. 서양골동 다락방당이다.”

“네?”

“아니, 잠깐, 스톱-! 란란! 손님을 그렇게 맞이하면 어떡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아보니 그곳에는 비슷한 검은 치파오를 입고 검은 베레모를 쓴 남자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있었다. 그는 갈색 짧은 단발을 살짝 매만져서 스타일 좋게 꾸며놓았다. 검은 치파오는 앞섶을 풀지 않고 소매만 약간 걷어 올렸을 뿐이었다. 그 남자를 보자마자 ‘란란’이라고 불린 남자가 인상을 구겼다.

“그게 그거잖아.”

“전혀 다르다구! 제대로 소개를 해줘야 마이걸이 당황하지 않을 것 아냐?”

“마이걸?”

“레이지 네 녀석 때문에 이 녀석이 황당해 하잖아.”

“아니다, 뭐! 그렇지 않다, 뭐! 그렇지, 마이걸?”

아이리는 이 두 사람이 갑자기 벌이는 말다툼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일단 ‘레이지’는 말투와 행동은 요란했지만 묘하게 침착했으며, ‘란란’은 사나운 말투로 으르렁거리듯 말하기도 했다. 말다툼이 분명했는데 상황은 그렇게 흥분되지 않아서 아이리는 더욱 당황했다. 두 사람을 계속 번갈아보면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레이지’가 말했다.

“자, 그럼 다시 소개할게, 마이걸.”

“아, 예.”

“여긴 어디에도 있으며 또한 어디에도 없는 가게야.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만 지금은 없지. 시간과 공간, 지평의 틈새이기도 해.”

“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지평선을 헤매어 들어온 멍청한 계집인가.”

“뮤쨩!”

도저히 아이리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레이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뜬금없이 레이지의 뒤에서 모습을 보인 금발의 남자는 검은 치파오 단추를 소매부터 목까지 빈틈없이 채운 채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도자기로 빚어놓은 것 같은 섬세한 얼굴이 비웃으며 욕에 가까운 말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서양골동 다락방당에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방금 굉장히 안 좋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귀는 밝은 계집이로군.”

“뮤쨩, 오랜만에 온 손님한테 그러면 안 되지!”

“흥, 시끄럽다, 코토부키. 나는 지금 매우 화가 나있단 말이다.”

“설마 카뮤 네 녀석…….”

“레이지, 란마루, 또 설탕 떨어졌어. 카뮤가 설탕 얘기를 할 거…라고 말하려고 나왔는데 이미 카뮤가 말했나 보네.”

왼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조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 가게 유니폼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치파오를 입은 그는 물빛 머리카락을 왼쪽만 깔끔하게 틀어 올렸다. 수려한 얼굴에 물빛 눈동자와 마주치자 아무런 감정 없던 얼굴에 흥미가 담겼다.

“흐응, 새로운 손님이네. 10년 2개월 12일 15분 21초 만에 찾아왔어.”

“10년?”

“지금 아이아이가 제일 황당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아이아이’와 ‘레이지’가 말하는 옆에서 ‘란란’과 ‘카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싸움이 붙었다. 원래부터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지간이라도 되는 것 마냥 서로를 향해 숨 쉬듯 으르렁거렸다.

“카뮤 네 녀석, 또 그 놈의 설탕이냐. 아주 설탕에 절어서 죽어버려.”

“흥, 쿠로사키 네 놈이야말로 한 번만 더 내 디저트에 손을 대고자 했다간 동사시켜버릴 줄 알아라.”

“디저트에 내 것 네 것이 어딨어, 이 자식아.”

“둘 다 그만! 아이아이, 좀 말려줘!”

“난 지금 이 손님 연구해야 해서 바빠. 레이지가 알아서 해.”

“아이아이, 너무해!”

“어, 저, 실례지만 전 가게 좀 둘러보고 있어도 돼죠? 싸움 끝나고 나면 불러줘요.”

“응, 마음껏 둘러봐.”

세 사람이 한 데 얽혀서 아웅다웅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이리가 ‘아이아이’에게 말했다. 이대로는 가게를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다. ‘아이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았다. 가게 안에는 벽이며 바닥이며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기묘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불쾌함을 심어줄 수 있는 물건, 사자를 닮은 조각상, 검은 색으로 칠해져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 화려한 문양이 가득한 꽃병 등. 물건은 종류를 가릴 것 없이 다양했다. 신기한 광경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으려니 옆을 따라오던 ‘아이아이’가 말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사양 말고 만져 봐도 돼. 직접 들여다 봐도 되고.”

“그래요?”

“단, 손앞에 있는 서랍 선반 안은 예외야.”

“왜요?”

“떨어진 공간인 지평을 초월해서 ‘기적’이 모이는 장소가 바로 이 가게, <서양골동 다락방당>이거든.”

‘아이아이’는 아이리를 데리고 가게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면서 최근에 들어왔다는 신상품을 소개해주었다. ‘성전의 영웅이 몸에 둘렀다고 하는, 피로 칠갑되어 땅에 흐트러지는 백은의 갑주’, ‘어둠에 뛰어오르듯 춤추는 인형, 입 맞추면 썩어가는 소녀의 꼭두각시’, ‘어떤 소원이라도 세 개까지 정말로 이루어주는 마인이 들어있는 황금 램프’, ‘수단을 고르지 않는 진정한 돈의 망자이자 순애의 비극과 인생의 희극을 가진 금 간 가면’, ‘피로 물든 목을 베어 내는 궤적이자 세기위 기적이며, 정규의 기적인 심홍의 보석’, ‘살리는 자 모조리 죽어가는 것이 전부인 영혼을 도륙하는 애통한 운명의 사신의 낫’, ‘현녀 중 하나였던 마녀가 쏜 저주가 씌인 공주에게 박힌 꿈을 꾀는 들장미의 물레’, ‘눈이 쏟아 내리듯 떨어지는 깃털과 눈물이 가득한 하얀 제복’, ‘어떤 음악이든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서있는 마이크’, ‘망가진 노래를 담아 사람을 유혹하는 머나먼 미래의 기억을 가진 메모리칩’ 그 많은 물건들을 보는 와중에 아이리는 메모리칩에 눈이 갔다. 메모리칩은 금색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금색 목걸이 줄이 달려 있었다. 아이리가 보는 메모리칩을 한 번 보았다가 아이리를 다시 본 ‘아이아이’가 말했다.

“이 메모리칩이 마음에 들어?”

“아니, 이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마음에 든다고 하기 보단 그게…….”

“그 애는 같이 있을 상대를 스스로 고르는 ‘애’야. 그 애가 허락한다면 값은 괜찮아.”

“정말요? 그렇지만.”

“그건 돈이 아닌 것으로 언젠가 내게 되어 있어.”

“돈이 아닌 것으로요?”

아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하는 와중에 겨우 싸움이 끝났는지 ‘레이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와, 마이걸, 굉장해. 잘 골랐는데? 이 아이도 마이걸을 꽤 맘에 들어하는 모양이야.”

“그런가요?”

“응, 지금 잡고 있잖아? 그 애는 우리도 못 건드려.”

‘아이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아이리는 자신이 메모리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라서 손을 폈지만 메모리칩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마치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정해졌네.”

“그렇지, 란란?”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네?”

메모리칩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네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가게 자체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FLOWER ASATO>의 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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