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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로 둘러싸인 성 외곽에 있는 감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신발은 밑창이 헤진 지 오래였고 둘러쓴 하얀 로브는 까맣게 물들어버렸다. 몸 이곳저곳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으며 주린 배는 계속 울고 있었다. 눈물마저 예전에 말라버렸다. 여정의 시작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연인을 찾기 위해 마을을 나선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어디에? 실마리 하나 없어. 고독한 여정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던 시는 머나먼 하늘로 사라졌어.‘

험한 숲을 지나 가파른 산을 넘어서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을 전전했다.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묻고 또 물으며 다녔다. 그러나 연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걱정과 눈물만이 비가 되어 흘러내릴 뿐이었다. 발밑을 적시는 빗물은 발목에 차고 무릎에 닿아 목에 잠겼다. 그의 노래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마침내 연인의 소식이 들려온 곳은 붉은 장미의 여왕이 산다는 성이 있는 마을에서였다. 연인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빨래주걱으로 계속 빨래를 내리치면서 말했다.

“시인이라고 하면 딱 한 명밖에 생각 안 나는데.”

“그 시인은 어떤 사람이죠?”

“음, 내가 마차를 타고 가는 걸 봤는데, 강물? 바닷물? 하여튼 물 색깔이 떠오르는 푸른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어. 그 마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목소리여서 아직도 기억이 나.”

“맞아요! 그 사람이에요!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성이야.”

“성이요? 설마.”

“그래, 그 여왕이 사는 성 말이야. 잘 알 거 아냐.”

여인은 빨래를 강물에 한 번 씻어내고 다시 빨래 주걱을 잡았다. 그는 여인에게 물었다.

“왜 성으로 갔는지는 모르시나요?”

“아, 그거 아마 노래 때문일 거야.”

“노래요?”

“응. 그 여왕 말이야, 자기 칭송해주는 거 되게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주변에 다 그런 인간들뿐이래. 옆에서 계속 아부 떨면서 여왕이 계속 폭정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던데?”

“그래서 그 사람이 거기로 불려간 건가요?”

“그럴 거야. 그 주변에 있는 쓰레기 귀족 중 하나가 불렀겠지. 그 시인이라는 사람, 굉장히 유명하다면서? 그런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칭송해주면 여왕이 엄청 좋아하겠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여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성에 찾아가려고?”

“왜요, 성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그 꼴로 가면 쫓겨날 텐데.”

“알아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래?”

여인은 금방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퍽퍽 울리는 빨래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부터는 연인을 성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시간을 버텼다. 처음으로 연인과 함께 있었던 마을을 떠나 성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연인이 가르쳐준 노래를 읊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처음 성을 찾아갔을 때, 경비병들에게 쫓겨났다. 마을에 갔을 때 여왕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성을 찾아갔을 때 귀족의 눈에 띄어 더러운 몸으로 감히 어디에 발을 들이냐며 몰매를 맞았다. 마을로 돌아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했다. 성 가까이에 갔을 때 죽임을 당할 뻔했다. 다친 몸을 이끌고 마을에 도착했을 때 꼬마아이가 성에 불려간 시인이 여왕의 손에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절망을 안고 성으로 갔을 때가 되어서야 경비병들이 연인이 사형 당한 장소를 알려줬다. 감옥 앞에서 연인에 대해 물었다. 간수들은 연인의 이름을 대자마자 무언가 아는 듯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아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어떤 것이든 좋아요. 전 그 사람을 찾아야해요."

"그게......"

"제발,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잠시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연인이 죽기 직전까지 갇혀있었다는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만나게 해주었다. 간수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연인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연인은 폭군인 여왕의 앞에 불려가서 여왕을 칭송하는 노래가 아닌 비판하는 노래를 했다가 사형을 당했다고 했다. 연인이 사형을 당하기 전 수일 동안 부른 노래를 간수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는 간수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 들었다. 몸에 완전히 배일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연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를 가슴에 품고 그는 허리를 숙였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마침내 모든 힘을 다하고 말았다. 시야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사이로 별빛이 보였다. 별빛은 무엇보다 밝으면서 또 너무나 아득해서 눈물이 났다.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빛을 잃어버렸다.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연인이 마지막에 남긴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꺾일 듯한 나를 지탱해준 것은

당신이 마지막에 남겨준 이름 없는 노래(시)였어.

연인을 찾고 그에게 남은 것은 유언 대신 남은 노래와 사라져버린 빛의 세계였다. 수년간 지속된 폭정으로 인해 매말라버린 사람들의 신음과 전쟁의 고통 속에 들려오는 비명만이 남은 세계에서 그는 계속 노래했다.

"운명이여, 설사 네가 눈동자에서 빛을 뺏어간다고 해도, 이 '입술'로부터 '노래'는 뺏어갈 수 없어."

소중한 것에 닿기 위한 노래를 안고 그는 습관처럼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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