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여 낙원의 문은 열린 것인가.
왕국을 쫓겨 난 마법사, 사이토가 숲에서 주워온 것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였다. ‘어쩌다 그런 어린 애가 숲속에’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사이토는 아니었다. 그는 이 아이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버려졌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 이유에는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계집애였다. 흰색에 가까운 하늘색 눈동자. 새하얀 피부를 한 여자아이.
자식도 제자도 없던 그는 제 후계로 이 아이를 골랐다. 이 아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 아이가 싫다고 해도 시킬 생각이었다. 그는 아이에게 에노키라는 이름을 주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명부를 지켜야 할 아이에게 주는, 첫 선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에노키는 금방 자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새빨간 망토, 새하얀 원피스. 맨발로 숲을 돌아다니며 명부의 문을 지키는 그녀는 자신을 길러준 사이토 외엔 만나 본 인간이 없었지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왜 인간은 인간을 만나지 않으면 불행한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기도 했고, 그녀에겐 숲의 모든 동물들이 친구였으니 외로울 틈이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겐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사이토가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제가 남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산다는 자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에노키, 잊으면 안 돼”
사이토는 언제나 그녀에게 단 하나만을 당부했다. ‘너는 명계와 현세의 경계를 지키는 최후의 문지기. 라프렌체니까. 순결의 결계를 지켜야 한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가 잊어버리지 않게 반복해서 말했다.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만큼. 습관처럼.
그녀는 사이토밖에 모르는, 요컨대 그의 아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낳아준 부모는 아니었어도 제게 모든 걸 가르쳐준 소중한 사람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보다도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이토의 그 당부는, 그녀에게 영원히 유효할 것 같았다.
소녀가 여자가 되고, 사이토가 결국 죽고, 에노키가 혼자 남게 되는 동안은 말이다.
혼자가 된 그녀는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배웠다.
외로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언제나 명부 저 너머에서 울부짖는 망자들의 목소리 뿐. 네 이년, 네 이년. 라프렌체 네 이년. 분해, 분해. 원망이 담긴 목소리는 소녀에게는 너무 가혹할 정도로 서늘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그저 가시 돋친 말과 원망을 받아내며 살던 그녀는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사이토 씨가 있었다면. 이 원망의 말을 잊게 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번 외로움을 알게 된 그녀는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고 들려오는 저주의 말들에 귀를 닫은 소녀는 제게 따뜻한 말을 해줄 사람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바람이 거세었다. 뒤에서는 망자들의 탄식이, 멀리에서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쌀쌀한 아침. 입을 다물고 지냈던 세월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도 못하는 에노키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아우성치는, 비통한 하모니를 등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힘든 일이었지만, 그녀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길러진 탓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무사히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때로는 기도문을 읊고, 때로는 레퀴엠을 노래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숲의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청명함이 있었다. 저기 저승에 처박힌 외로운 영혼까지도 달랠 수 있도록 바람을 타고 널리 퍼지는 레퀴엠은 아름다웠지만, 아우성은 그칠 줄을 모른다.
네 이년, 네 이년. 증오스러운 라프렌체.
세상에 이런 악몽이 어디 있을까. 에노키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라프렌체로 살게 되기 전부터 사이토에게 각오를 해두라고 들은 이야기였지만, 외로움이란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도 쉽게 녹슬게 했다. 왜 저리도 자신을 미워하는 걸까. 자신은 그저 지키려는 경계를 지키고 있는 것뿐인데, 죽은 자들에게는 이 생자들의 세상이 낙원으로 보이는 걸까. 기이한 일이었다. 정작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 그 너머에서 낙원을 찾는데…
레퀴엠을 부르는 그녀의 뺨에, 얼마만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은 자들을 딱하게 여겨 흐르는 눈물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서, 스스로를 동정하는 의미로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조금 외로웠을 뿐. 이 넓은 숲에서 제 편이 없는 것이, 조금 외로웠을 뿐이었다.
“…?”
노래 소리가 멈춘 것은 울음 때문이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하프소리, 이제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연주. 놀라움과 궁금증에 우는 것을 멈추고 눈을 뜬 그녀가 본 것은 처음 보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슬픈 눈을 한 남자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연주하던 하프를 멈추고 그녀에게 손을 뻗는 남자는 자신을 사에키라고 소개했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 숲에 왔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그는 저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알려줘도 괜찮을까. 아니, 그것보다 낮선 사람과 이야기해도 괜찮은 걸까. 사이토의 가르침과 외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닫아두었던 입을 열었다.
“라프렌체라고 해요”
“아니, 그거 말고. 당신 진짜 이름이요”
아, 이 남자는 제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단 말인가.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지만, 그 감정은 아주 찰나에 사라졌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제가 겪은 외로움, 공포, 답할 수 없는 아우성에 대한 것들을…
“에노키라고 해요, 사에키 씨”
그녀가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이, 후에 어떤 일을 불러올 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것을 모른 척 했다. 자신이 꿈꾸는 낙원을 위해. 망자도, 생자도, 사에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