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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png

드림 마법사 합작
러브앤프로듀서
주기락 x 류단

  * AU이기 때문에 원작 설정에서 바꾼 부분이 있습니다.
  * 메인스토리 스포일러 있습니다.

 


  숲 건너에 있는 마법사는 종종 빗자루를 타고 건너오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마법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가 건네주는 초콜릿을 보고 나는 페레로라고 불렀다.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금 발을 빼자 싫은 건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에야 그는 자신이 숲 건너에서 왔음을 말해주었다. 빗자루는 천년 된 고목나무에서 두꺼운 가지를 빌려서 만들었고, 모자는 모자가게에서 새 디자인이 나와서 바꿨단다. 그 청바지와 흰 와이셔츠, 연갈색 트랜치 코트와 스니커즈는 어디서 얻었느냐 묻자, 이 정도야 요즘 마법사에겐 당연한 게 아니냐 말했다. 나는 그 트랜치 코트가 반개월 전에 내가 광고를 찍었던 옷임을 떠올렸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노란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모자부터 구두까지 모두 진노랑이라 눈이 부셨다. 마법사 모임이 있었는데 모자를 노란색으로 샀더니 모자가게 주인이 같은 색 드레스를 추천해줬다고 했다. 나는 페레로가 굉장히 개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마법책을 가져왔다. 원래는 빼내오면 안 되지만 내게 보여주려고 가져왔다고 말했다. 들키면 어떻게 돼요? 그는 눈을 깜박이더니, 고목나무 지하에 연옥이 있는데 거기서 300년 마법 수련을 해야겠지. 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듣기만 해도 까마득한 날짜가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듯 다음 장을 넘겼다. 그렇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지 않느냐 했더니, 시간은 인간이 정한 관념일 뿐이라고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찔렀다.
  나는 연모시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숲을 보았다. 택시 안에서 건너보는 숲은 여느 때보다도 더 커보였다. 보는 것만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숲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호기심을 가졌지만 바쁜 스케줄로 다가갈 수 없었다. 게다가 숲은 나타나는 것조차 불규칙적인데 그나마도 보통 인간들에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매니저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확인해본 결과, 이볼버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뉴스에도 실리지 않고 이볼버들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돌 뿐이었다. 검게 물든 숲을 보며 연모시의 이볼버들은 신기해하기도 하고 또 경계하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 중 몇은 실제로 그 근처에 다가가기도 했지만 번번이 다치기만 한 채로 돌아왔다.
  페레로는 내가 숲 조사단에 투입되었을 때 만났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서 잠깐 일행에서 떨어졌을 때였다. 그는 때마침 연모시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나는 그 마법이 풀리는 순간을 마주하고 말았다. 페레로는 숲 근처에서 숲의 공격을 받지 않은 인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환영을 받는 듯 숲이 내는 맑은 빛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내 능력을 떠올렸다. 그 능력이 이세계의 생물에게도 통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구태여 쓰지는 않았다. 페레로는 내 이름을 물었고, 자신의 이름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불공평하다고 말하자, 자신을 만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뿐이었다. 나는 숲으로 넘어가는 다리 앞쪽에서 내렸다. 이 다리는 본래 다른 도시로 넘어가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지만 숲이 나타난 이후로는 자꾸 사람이 실종되어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숲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새 울음, 바람에 흔들려서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선명해져갔다. 나는 숲 입구에 서서 가운데 있는 나무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촬영이 조금 밀렸거든요.”
  “내 첫 인간 친구, 반가워.”
  “페레로씨, 오래만이에요. 3개월만이죠?”
  페레로는 숲의 장막 너머에서 사뿐하게 점프했다. 그가 어깨에 걸친 노란색 망토가 펄럭이더니 곧 주홍색 스니커즈 근처에 머물렀다. 이번이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고 말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페레로는 오늘 피크닉 바구니를 하나 가져왔다. 소풍이라도 가느냐고 묻자, 그는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숲 안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었기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빠르게 닫혀가는 숲의 입구 안으로 잽싸게 들어가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기락씨라면 괜찮아.”

  “내가 조사단이랑 같이 있었던 거 알잖아요? 도시에 가서 말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넌 그런 사람이 아니야.”

  단호한 말투였다. 그 안에 담긴 신뢰가 무척 단단해서 가슴께가 뭉클해졌다.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한 번 돌아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런 걸로 관심을 사야할 만큼 굶주리지도 않잖아?”

  “그럴 필요도 없죠.”
  “거 봐.”
  바람 소리가 나도록 돌아선 페레로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망토는 무게가 상당히 가벼운지 그의 움직임에 따라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뭇가지를 스쳤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았다. 안에서 보는 숲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밝았다. 햇빛이 잘 들었고 중간 중간 나무에 걸린 등불이 길을 더 빛내고 있었다. 새들은 그가 들어왔을 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재잘거렸다. 페레로는 날 듯이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다가 피크닉 바구니를 달라고 말했지만 페레로는 요리조리 피했다. 아직 보여줄 수 없다는 말에 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넘겨주지 않았다.
  “그럼 그거 주지 않는 대신 이름을 가르쳐줘요.”
  “좋아. 내 이름은 말이야.”
  “이렇게 간단하게?”
  “마법사야!”
  “그럴 줄 알았어요.”
  베시시 웃는 얼굴을 보며 나는 어깨를 조금 늘어트렸다. 그는 매번 이름을 묻는 내게 장난을 쳤다. 가르쳐주기 싫으냐고 물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서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 조금 고민하던 와중에 그가 연모시에서 가져온 쇼핑 목록 중에 인간들의 음악 앨범이 있던 걸 떠올렸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도 모두 음악을 주고 얻었다. 먼저 알게 된 건, 그가 숲에서 불을 다룬다는 사실이었다. 숲 안에서 가끔 보이곤 하던 등불을 떠올렸고 정답이라고 답해줬다. 마법사 마을에서 등불가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숲으로 연결된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같은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많았지만, 각자 다른 영역을 만들어 그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마을에서 불을 다루는 다른 마법사는 유리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페레로는 그 유리가게에서 유리를 공급 받아서 등불을 만든다고 했다. 100년 주기로 등불 안의 마법이 수명을 다하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더 오래 가게 할 순 없느냐고 불평이 많다고 했다. 내 장사를 망칠 수는 없잖아? 페레로는 이를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근데 사실은 우리집 등불은 내가 죽지 않는 한 평생 가는 거야. 또 마법사 세계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색이 있는데 페레로는 진노랑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망토가 그 색으로 물들었다고도 덧붙였다. 망토는 바꾸지 않나요? 망토는 생산이 많이 되지 않아서 보통 헤지면 바꾸는데 500년에 한 번 정도야. 만들기 어려운 거야? 아니, 망토에 필요한 천을 만드는 마법사가 한 번 잠들면 50년을 자거든. 잠꾸러기네요. 그래서 거북이라고 불러. 내가 아이돌 데뷔했을 무렵의 앨범을 가져갔을 때는 신나서 더 많은 것을 얘기해줬다. 초콜릿을 좋아해서 마법사 세계에서도 자주 먹는다든지, 망토가 걸리적거려서 웬만해선 잘 안 입는다든지, 마법을 배울 때 같이 뛰어놀았던 친구들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듣던 이야기들이 종종 튀어나올 때면 나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페레로를 따라 어느 정도 갔을 때, 거대한 나무가 서있는 광장이 나타났다. 목이 당길 정도로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밖에서 볼 때는 이런 거대한 나무는 없었는데. 그거 숲이 마법으로 가린 거야. 이게 심장부거든. 페레로는 얼른 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그 옆에 피크닉 바구니를 놓고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피크닉 바구니에서 그가 유리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는 노란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안 뜨겁냐고 물었고 그는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가 다시 가져갔다. 짐짓 울상을 지어보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건데, 조건 하나만 들어주면 줄게.”
  “뭔데요?”
  “그 전에 들어준다고 말해.”
  “페레로씨가 원한다면 들어줄 수 있지만, 왠지 장난치려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요?”

  “걱정 마. 장난은 아니야.”
  페레로는 내 손을 잡더니 그 위에 등불을 올려놓았다. 유리를 바로 건드렸는데도 차가웠다. 나는 등불을 보고 다시 그를 보았다. 그는 웃으며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 차분하게 그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는 등불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 손가락을 따라서 노란 빛의 선이 생겨났다. 그 안에 별을 그리고 빈 공간에 생전 본 적 없는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불현 듯 뜻이 읽히기 시작했다. 계약, 불멸하는 세계 속에 깃들어서 이어지리. 
  “계약?”
  “내 이름이 알고 싶다고 했잖아. 마법사의 이름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거든. 단, 계약자를 제외하면.”
  “그래서 계약한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가르쳐주지 않았잖아요.”

  “그거야 완전히 믿을 수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계약하면 좋다고? 내가 쓰는 마법은 배우고 쓸 수 있거든. 수명도 늘어나. 마법사만큼은 아니지만, 인간 기준으로는 한 20년 정도 더?”

  “우와, 그거 굉장하네요. 계약하는 마법사와 더 오래 있게 해주는 특전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이별을 준비하게 해주는 특전이야.”
  페레로의 입에서 이별이 나온 순간,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고 애써 웃었지만 다가올 이별은 페레로에게는 결코 먼 것이 아닐 터였다. 나는 앞으로 그 단어를 계속 듣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등불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유리 등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2분 정도 지났을 무렵, 페레로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가 그린 마법진이 등불 속으로 녹아들더니 곧 내 손에 따스한 감각이 맴돌았다. 등불을 치워보니, 손바닥에 페레로가 그린 마법진이 새겨져있었다. 페레로가 그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치더니,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코가 거의 맞닿을 즈음 멈춘 그가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내 이름은 류단이야.”
  “류단.”
  “잘 기억해둬. 다음에 만날 땐 맛있는 걸 가져올 테니까!”
  류단은 그렇게 말하고 숲 건너로 사라졌다. 펄럭이는 그의 노란색 망토가 별빛과 맞물려서 은하수처럼 흘러갔다. 드디어 이름을 알아냈다는 기쁨과 함께 그가 남긴 등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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