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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빠! 좋은 저녁!”

“Trick or Treat!”

 

문 앞에 옹기종기 모인 어린 아이들이 문이 열리기 무섭게 일제히 바구니를 내미는 장관 앞에서 쿄우코우는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호박 모양, 마법 모자 모양, 해골 모양 등 저마다의 취향을 알기 쉬운 바구니들 안에 잘 포장된 호박 푸딩과 더불어 두 움큼씩 쿠키를 넣어준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음으로서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희들, 군것질한 다음엔 양치질 하는 거 잊지 마라.”

“네~! 고맙습니다!”

“아참. 사이토 씨는 또 출장 중인 것 같더라. 그러니까 옆집 말고 저 너머의 키리시마나 사에키네 집부터 가 봐.”

 

그새 명랑한 웃음소리를 드높이며 세찬 인사와 함께 뛰어나가는 아이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서늘한 밤거리를 밝게 물들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쿄우코우는 그런 순진무구한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했다. 마치 어리고 작은 생명력이 눈부시다는 양.

한차례 폭풍이라도 지나간 양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온 현관에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던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 포장과 쿠키 부스러기 따위들은 치우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본래 마술사의 공방은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신비를 유지해야 한다지만, 어차피 이 공방의 주인은 일체 신경 쓰지 않을 게 자명했다. 그 증거로, 이 공방의 주인이자 마술사인 히라하라는 지금 이 순간 일말의 잔소리도 없이 그저 그녀의 등 뒤에서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던 참이었다.

 

“있잖아, 쿄우코우~. 왜 쟤네만 줘? 나도 과자! 푸딩! 파이!”

“안 돼. 아까 같이 뒹굴고 놀면서 많이도 먹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잖아~?! 응? 안 돼?”

“그렇게 응석부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았냐? 딱 하나 만이다?”

“오! 쿄우코우 최고!”

 

흔히들 말하는 마법사에는 약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마법을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하며 타인의 바람을 이루어 주고자 하는 부류, 또 하나는 마법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며 때로는 타인의 바람마저 가볍게 짓밟는 부류, 그리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심지어 주변마저도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제 흥미에 따라 사용처와 연구가 달라지는 부류.

히라하라는 그 중 어느 쪽이었냐면, 그 어느 쪽도 아닌 셈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히라하라의 마법은 영창이나 마법진은커녕 본인의 뚜렷한 자각조차 없이 이루어지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터무니없는 마술사의 더 터무니없는 마법에 휘말렸던 장본인이 바로 쿄우코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야. 히라하라, 진짜 너 마법사 맞지?”

“전에도 묻지 않았어? 아닌가? 아무튼, 어……, 마법사 맞을걸! 타가미처럼 뭐를 조종하거나 키노시타처럼 다쳐도 빨리 낫는다거나 하진 못하지만, 이것저것 만들고 싶다 생각하면 어느 샌가 만들어져 있던데!”

“근데 왜 넌 마법사면서 물리력이 이렇게 세? 보통 마법사들은 허약하지 않아?”

“나도 잘 몰라. 원래 이랬으니까!”

“육체파 마법사라고? 이게 말이 돼?”

“원래 이런 걸 어쩔 수 없잖아!!”

 

입안의 알사탕을 도로록 굴리기 바쁘면서도 쿄우코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도저히 놔줄 생각을 않는 히라하라의 팔은, 마도서나 지팡이 따위를 들고 휘두르는 타입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단단했다. 그렇다 해서 눈에 띄게 우락부락한 것도 아니었으니 처음 자신이 ‘만들어졌을’ 무렵이나 지금이나 쿄우코우의 머리 위엔 물음표 다섯 개가 옹기종기 모여 떠다닐 뿐이다.

 

“나 참, 됐으니까 이제 슬슬 우리도 외출하자.”

 

쿄우코우는 포유류의, 정확히는 제 눈색과 비슷한 분홍빛의 여우 귀와 꼬리를 드러냄과 동시에 손끝부터 시작해 덩치가 본래의 종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여우로 변화해갔다. 아마도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쿄우코우란 사역마가 주인인 히라하라의 마력을 대가로 하여 되찾는 본래의 모습이리라. 그제야 히라하라는 상황을 파악하고 점점 부풀어가는 그녀를 바닥에 조심조심 내려주었다. 들고 있는 것 자체에는 하등 문제가 없겠지만, 아마도 변신이 끝난 상태에서의 그녀를 안고 있으면 그녀의 기분이 묘하게 상한다는 걸 무의식이 간신히 기억하고 있었던 덕분이리라.

 

“우리도 이제 막, 과자도 받고 신나게 놀러 가는 거야?”

“우리가 애야? 수백 살이나 먹었으면 슬슬 본인이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란 자각 좀 가져.”

“엑. 받는 쪽이 더 신나는데.”

“언제는 안 신난 적이 있었다는 듯이 말하네.”

 

말은 그리 하면서도 거대해진 몸집을 바닥 가까이 낮추며 그르릉, 하고 울리는 쿄우코우의 낮은 울음에는 어쩐지 자그마한 만족스러움과 상대를 향한 옅은 애교가 담겨져 있는 듯했다.

마법사 혹은 마녀는 주로 빗자루를 타거나, 검은 고양이를 반려묘로 데리고 다니거나, 꼬깔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선입견이 세간에 없잖아 있다. 그런 점에서 따지더라도 역시 히라하라는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이단적이다. 그야, 그는 빗자루 대신 여우를 타고 다니며, 반려동물 또한 여우이며, 꼬깔 모자 대신 군복과도 닮은 유니폼과 함께 고유 디자인의 모자를 꾸욱 눌러쓰고 다니니까 말이다.

 

“할로윈에는 꼭 사고를 치는 저승 망자들, 괴물들, 마법사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감시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아! 맞다, 그런 게 있었지!!”

“이제야 생각났냐? 또 타니자키한테 혼나려고. 아마 아까 온 아이들이 네 마력에 이끌려 놀러 온 마지막 요괴들일 테니까 슬슬 멋진 면모도 보이러 가야지, 마법사 님?”

 

히라하라를 태운 채 집 앞의 마당으로 나온 (도중에 현관의 천장에 머리를 박은 히라하라가 애꿎은 천장을 지팡이……가 아닌 삽으로 충동적으로 쳐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더 지체된 건 별개의 사건이다.) 쿄우코우는 앞발로 땅을 두어 번 긁어대더니 중력 따위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밤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하늘 아래에 놓인 옥도, 밝은 불빛, 사람들과 요괴들. 언제 봐도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혹여나 바람에 날아가기라도 할까, 한 손엔 삽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모자를 누르며 환하게 웃던 히라하라가 문득 상체를 푹 숙여 쿄우코우의 털에 얼굴을 한가득 묻고 부비적거렸더랬다.

 

“나, 역시 마법사여서 다행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법사여서 싫던 일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쿄우코우를 만든 후부터 많이 놀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일할 때도 신날 수 있잖아?”

 

그렇지? 그렇게 되묻는 말은 확인사살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을 어찌 부정할 수가 있었을까. 여태껏 그래왔듯, 향후 몇백 년이 흐르더라도 쿄우코우는 그의 이 순수한 마음에게만큼은 결코 장난으로라도 부정할 수가 없을 테다.

 

“……하긴, 네가 없었으면 난 그냥 평범한 여우였겠지. 이런 즐거움도 알지 못했을 거고.”

 

정말이지, 간지러운 말이 오고가기가 무섭게 누가 먼저라 따져볼 것도 없이 웃음이 함께 터져나왔다. 하늘 높이 유성을 빼닮은 마력의 궤적을 노랗게 그리며 허공을 밟아 오르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 건 비단 기분 탓만이 아닌 모양이다.

한 마리와 한 사람. 근거리형 사역마와 육체파 마술사. 짐승과 주인. 그리고 친구, 동료, 연인. 온갖 수식어가 달라붙는 둘은 어느 새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망자의 머리를 짓밟고, 그와 동시에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빼닮은, 호전적인 미소를 짓고야 마는 건 그들의 천성이었다.

 

“이제 마법사는 마법사답게, 우리만의 할로윈을 즐겨볼까? 히라하라.”

“어!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맞다, Trick or 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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