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치우라는 종종 악몽을 꾸고는 했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항상 같은 꿈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 꿈을 꿀 때면, 늘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깨어나 자신도 모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최근 빈도가 잦아지자 항상 같은 인물들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꿈 속에 나온 작은 소녀의 얼굴을 분명 보았을 텐데, 깨고 나면 소녀와 그 부모의 존재만이 기억에 남았다.
"…라 군. 츠치우라 군!"
꿈 속 소녀를 생각하는 동안 츠치우라는 옆에서 걷던 소녀를 잊었다. 정신을 차리니,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참 위에 있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때에도 불만을 전혀 담지 않은 게 소녀다웠다. 새삼 안심이 되어, 손을 들어 소녀의 머리를 살짝 누르듯 쓰다듬었다.
"미안."
"헤헤. 아니, 이게 아니라! 츠치우라 군, 어제도 제대로 못 잤어?"
기분좋게 웃던 소녀가 도로 걱정스레 물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츠치우라는 소녀에게 지난 밤에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악몽에 휘둘린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어쩐지 부끄러웠다.
"좀."
짧게 긍정하자, 소녀는 시선을 츠치우라에게서 땅으로 옮겼다.
"왜 그럴까…"
꼭 본인의 것처럼 고민하는 소녀가 우스워 츠치우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네가 고민하냐, 꼬마 미즈키."
그대로 머리를 헝클어놓자 미즈키는 그제야 불만을 표했다.
"또 꼬마 미즈키래! 이래봬도…… 츠치우라 군?"
머리 위에서 멈춘 손에, 미즈키가 의아한 듯 이름을 불렀다.
"미즈키. 너, 옛날에 나랑 만난 적 있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츠치우라는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몇 년이나 봐 온 친구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띠었다.
"설, 마."
사색이 된 미즈키가 중얼거렸다. 두 음절뿐인 말이 츠치우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 순간, 미즈키의 목소리가 꿈에서 본 소녀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기억해낸, 거야? 전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소녀가 말했다. 츠치우라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미즈키?"
"츠치우라 군, 미안. 정말 미안해. 그때 나는, 몰랐어. 네 상처를 낫게 해 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뒷걸음질치는 소녀의 어깨를 붙잡자, 퍼뜩 정신이 든 미즈키가 눈을 크게 떴다.
"내 꿈에 나온 거, 역시 너였어?"
"꿈이라니?"
"잘은 모르지만, 매번 네가 나왔어. 어린 너랑 너희 부모님. 잠깐, 너 혼났지? 너는, 나한테…"
아직 흐릿한 부분이 있었다. 소녀는 마찬가지로 어린 츠치우라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고, 크게 혼이 났다. 미즈키는 분명 그의 상처를 낫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파…"
무심코 꽉 쥐다시피 잡은 어깨에, 미즈키가 얼굴을 찡그렸다.
"미, 미안."
혹여나 소녀가 사라질까, 츠치우라는 미즈키의 몸을 다 놓지 못했다. 애매하게 떨어진 손 사이에서, 미즈키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나는, 츠치우라 군의 곁으로 돌아와서는 안 됐는지도 몰라."
"네가 돌아와서 내 기억이 되살아났다는 뜻이야?"
"아마도. 다들 돌아오지 말자고 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어. 츠치우라 군이 보고 싶었어. 옆에, 있고 싶었어."
기어이 눈시울을 붉힌 소녀의 얼굴이, 말이 애틋했다. 츠치우라는 머뭇거리다 물었다.
"그건, 뭐였어? 상처를, 그러니까…"
차마 마법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자, 미즈키가 대신 그 단어를 꺼냈다.
"응, 마법이야.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었어. 결국 츠치우라 군의 기억을 지우고, 여길 떠나는 걸로 끝이 났지만…"
10여년이 지나, 중학생이 된 츠치우라의 앞에 나타난 미즈키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인사했다. 기억을 잃은 츠치우라에게 소녀는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영 사라졌을 터인 기억은, 어째서인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꿈이라는 형태로 고개를 내밀었다.
"또 츠치우라 군 옆에 못 있겠네. 이번엔 정말 작별일지도 몰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입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원래는 나도 큰 벌을 받아야 한댔어.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교육을 받는 걸로 마무리됐고."
여전히 어리다고 해도,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적어도 규칙을 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아는 나이였다.
"언제까지 넘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 기억을 지우러 와도, 몇 년을 바로 다 지워버리진 못할 거야. 그러니까…"
"평소처럼, 지내면 되는 거지?"
"……응."
미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멋대로 기억을 지우게 둘 생각은 없었다. 이 소녀가 마법사라는 사실도 이제 와서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미즈키는, 츠치우라의 가장 편한 친구였다. 또한 쭉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좋아, 갑자기 사라지기 없기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꼬마 미즈키라고 부르겠어?"
"꼬마라고 하지 마아! 머, 머리 못 쓰다듬게 한다?"
"손해보는 건 너 아냐?"
"으, 그건 그렇지만."
그야말로 평소와 같았다. 츠치우라는 자신만이 부르는, 꼬마라는 별명을 더욱 많이 부르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볼 수 있는 미즈키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