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완벽히 저주잖아요. 몇 번째일지 모를 아이의 손을 넘겨받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혼잣말이라기엔 컸고, 토도 진파치 자신을 향한 것이라기엔 원망이 없었으나, 괜스레 제 발을 저린 토도는 아이에게서 옮겨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시선을 슬슬 피했다. 매번 안타깝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녀석은 네가 아니면 안 되는 걸.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연인은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 병에 걸렸다. 끔찍한 병인가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토도는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앞서 그녀가 말했듯 이것은, 아마 일종의 저주였다. 영생을 살아야 할 마법사가 한낱 시한부인 인간처럼 불투명한 생을 반복하는 병에 걸렸으니 솔직히 다름없는 것이었다. 원인은 불명, 치료법도 불명. 근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일정 횟수를 채우고 나면 본래의 기억을 가지고 마법사로 돌아온다고도 하지만, 뚜렷한 완치 사례가 적힌 문헌은 없었다. 애초에, 환생하는 시기조차 일정하지 않았다. 그저 나이 불문 기억을 잃고 마법사의 숲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가, 8년이 되는 달 전야에 꿈결처럼 사라진다는 것밖엔 달리 알아낸 것조차 없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까지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 용하다고 해야 하는 거겠지. 팔짱을 낀 채 홀로 앓음 하던 토도가 제 눈앞에서 또다시 서로를 익히고 있는 둘의 모습을 물끄럼 바라보았다.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아, 먀리라고 해.”
먀리… 먀리. 아이는 처음 들은 이름이 익숙지 않은지 몇 번을 발음해보고서야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근데 누나. 응? 내 이름은 안 물어봐요? 아이와 먀리의 눈이 마주쳤다. 맑은 날의 산 정상을 채우는 짙은 푸름과 같은 눈동자가 먀리를 순진하게 채근했다.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름이건만. 저리 어린 얼굴로 물어오면 모르는 척, 꾹 삼켜내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으응, 이름이 뭐야?
“마나미 산가쿠예요.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이름은 기억나요.”
실은 거의 엎드려 절받기인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마나미는 비로소 만족한 듯 낯에 웃음을 머금었다. 어린 이목구비에서도 온전히 보이는 사랑하던 얼굴에 먀리 또한 따라서 잔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이번에도 사라질 것이 분명하니, 너무 정을 붙이지 않으리라. 남몰래 생각했던 것이 첫 단추 꿰기부터 실패해 떨어져 나가버린 순간이었다.
* * *
“마나미, 오늘도 다른 거 다 제쳐두고 바람 타는 연습만 했지?”
“에-. 그렇게 티 나요?”
“가을 동풍에 관한 건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지금 발 디딘 자세가 너무 자연스럽잖아.”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빗자루에 사뿐히 걸터앉아 마나미의 옆으로 떠오른 먀리가 능청스런 얼굴을 한 옆구리를 콕 찔렀다. 별 느낌도 없으면서 자신의 장난에 맞장구치듯 눈썹을 꿈틀거리는 마나미의 모습이 보기에 퍽 귀여웠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황금빛으로 져가는 노을을 보며 먀리는 툭 말을 내뱉었다. 그러네요. 8년이니까, 평소의 뜬구름 같음과 달리 바로 핵심을 파악한 마나미가 손가락을 차례대로 접어보다 대뜸 먀리의 손을 쥐었다. 자기를 이만큼이나 가르친 건 다 선배의 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됐어요, 됐어. 립서비스는 얼굴로도 충분하거든.
이번 생이 처음인 지금의 마나미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먀리에게 8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와 같았다. 한두 번 해본 보육도 아니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수백 수천 번 돌보고 가르쳐왔으니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나미 산가쿠라는 사람은 지겹도록 한결같았다. 빗자루 타는 법을 알려주면 남들과 빠름을 다투고 싶어 하고, 바람 위에 앉는 법을 알려주면 누구보다 더 높이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니 그것들만 충족시켜주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 외에도 많았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넉살 좋게 선배라고 부르는 것과 자연의 호의를 담뿍 받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환생 정도가 아니라 도플갱어라고 해도 될 지경이었다. 아니. 정말로. 이러니 포기를 못 하는 거 아니겠어……. 무슨 포기요? 뭐 어렵게 찾는 거라도 있어요? 아, 응? 그게. 자연스레 말을 자른 먀리가 손을 내젓고는 화제를 돌렸다.
“맞다. 마나미, 오랜만에 하늘이나 걸을래? 내가 잡아줄게.”
“정말요? 좋아요!”
먀리는 자신이 내민 두 손을 살포시 잡으며 웬일이냐고 묻는 들뜬 마나미의 눈빛에 차마, 내일부터는 못 만날 테니까, 라고 말할 수가 없어 소리 없이 눈을 접었다. 등 뒤로 실려 오는 실바람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 * *
……게 돌아오는 날이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잠결에 들은 어렴풋한 문장을 곱씹으며 먀리는 눈을 떴다. 우수수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빛과 함께 어제의 기억도 스며들었다. 의식적으로 팔을 뻗어 주변을 더듬거렸다. 손에 닿는 침구는 여전히 포근했으나,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아니었던 거다. 몇 번이나 겪어온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아야, 하는데. 생각할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 먀리가 손등으로 눈가를 짓눌렀다. 정말 싫다.
“그거 알아요? 할로윈에는 죽은 사람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이 돌아온대요.”
“…….”
“그럼 먀리 선배가 잃어버린 건, 역시 저겠죠?”
먀리가 듣고 있는 건 어제의 앳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정된, 그리운 울림에 한쪽 팔의 솜털들이 쭈뼛 섰다. 아니에요? 어서 자신을 보라는 듯, 말꼬리가 부러 밉살궃게 늘어졌다. 먀리는 잘게 떨리는 손을 내리고, 뻣뻣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익숙하다 못해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있던 모습에 눈물을 한 움큼 더 쏟아냈다. 아. 이러려던 건 아니었어요. 선배, 그만 울어요. 네? 점점 커지는 울음을 달래주려 마나미가 먀리의 볼에 손을 뻗었다. 먀리는 그 손을 중간에 가로채어 소중히 부여잡았다. 다시는, 다시는 혼자서 저주에 걸리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