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야!"
다소 짜증스러운 음성이 복도에 울렸다. 다 떨어져 가는 썩은 나무틀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주제에 튼튼했고, 창문은 쌓인 먼지와 거미줄 탓인지, 밖의 눈보라가 심해서인지 바깥을 보기 어려웠다. 분명 이 복도를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가 해가 막 동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였건만, 밖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둑해졌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소년의 이름은 히메미야 토리.
히메미야 가(家)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온갖 호사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가 어느 정도 컸을 때, 그는 자신에게 호의보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사 가문에서, 마법을 쓸 수 없는 후계자, 히메미야 토리. 히메미야는 전통 마법사 가문이 아니었다. 오직 부친과 모친의 뛰어난 마법 실력으로 새로이 마법사의 작위를 받은 가문이었기에, 그 후계가 아무 능력이 없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런 토리가 처음으로 받은, 중요한 일이 바로 '마법사 파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매계절에 한 번 열리는 이 파티에서는, 세계 각지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이는 자리었다. 문제점이 있다면, 몇백 년을 그들끼리만 소통하고 살았던 마법사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히메미야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마법사 파티'에서 히메미야 가문의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히메미야의 주인은 늘 그렇듯 이 시기면 오는 초대장 하나를 내려봤다. 갈 이유도 없었지만, 가지 않을 이유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있을 마법 약품 관련 산업은 이쪽 인맥이 있어야만 더 완성도 높은 기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는 고민하다 제 아들을 불렀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인맥을 구축하고, 후계자의 능력도 시험해 봐야 할 좋은 기회로서 이 파티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젠 후계의 실력을 볼 때였다.
항상 마법 관련 일이 아닌, 소소한 사업에만 참여하고 있던 히메미야 토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후계자로서의 자부심도 많았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혹자는 그의 겉 행동을 보고, 그를 무능한 데다 권력욕에 눈먼 사람이라 하기도 했으나 그건 그를 잘 모르는 이의 말이었다. 토리는 분명 권력욕이 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아랫사람을 모자람 없이 챙겼다.
그래서 그는 더럽고, 불쾌한 이 장소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를 탐탁지 않아하는 대부분의 마법사들로 인해 파티 장소를 알 수 없어 소문에 의지해 찾긴 했지만 토리는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알 수 없는 확신을 느꼈다.
"하아아......"
그리고 지금, 그 확신이 거의 무너진 참이었다.
사실 확신은 한참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걸은 것이 아까워 의심을 지워 내리던 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너 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았다. 파티 시작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파티 시작 시간은 맞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다리 아파..."
그 나이 때의 남자아이답지 않게 작고 여린 몸이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체력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지만 역시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걷는 것은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몇 시간 전, 아무리 힘들어도 저 더러운 바닥에는 절대 안 앉을 거라던 토리는 맥없이 바닥에 앉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토리는 자지 않으려 애쓰며, 굳어버린 것만 같은 머리로 어떻게든 생각해내려 했다. 눈앞이 흐렸다. 이대로라면 분명 잠들고 말 것이었다.
지친다.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허무하게 허공을 노려봤다. 파티에 가야만 하는데,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또각, 또각, 하는 구둣발 소리가 복도의 적막을 깨기 전까지는.
"무슨 소리가 나서 와 봤는데......"
주홍빛 불빛에 비춰 그에 어울리는 주홍빛이 나는 머리카락에 노랑과 분홍, 두 가지 색의 특이한 눈을 가진 소녀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토리는 순간, 주홍빛 머리카락이 정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상황과는 맞지 않는 생각이었다. 멍했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히메미야 가의 첫째?"
당연하지만 토리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도 그 특유의 분홍색 머리카락과 커다란 연두색 눈 덕에 알아봤을 것이다. 그의 진한 색체는 주홍색 불빛 아래에서도 선명했다.
"맞아. 히메미야의 후계인 내가 파티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토리는 아픈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섰다.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내보이지 않기 위함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어떻게 봐도 지쳐 있었다. 잠긴 목소리는 안타갑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넌 마법을 못쓰잖아. 그러면 파티장에 못 들어가. 지금도 문을 못 찾아서 걷고 있던 거 아냐?"
"뭐어?"
황당할 다름이었다. 뒤에서 속닥거리는 사람들은 있어도, 대놓고 이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도, 악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이상할 다름이었다. 소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와줄까? 문 열어줄게."
손을 내치려던 토리가 멈칫했다. 히메미아로서 자존심은 상했지만, 역시 토리는 문을 찾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못내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본 그녀는 맑은 웃음을 지었다.
"이름이 뭐야? 난 하야미네 센."
"...... 히메미야 토리."
토리, 작게 중얼거린 센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자아냈다.
"óstĭum"
기이한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 언어에 의해, 곧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어 그녀가 마나를 주입시키자 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토리의 큰 눈이 더욱 동그랗게 뜨였다. 연둣빛 눈에 은빛 마나가 비추며 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은백색 마나는 흔치 않은 색이었다.
"들어갈까?"
토리가 은빛 마나에 눈일 팔린 사이. 둥근 마법진은 직사각 모양으로 변하며 문을 만들어 냈다. 그가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파티장으로 가는 문이었다. 토리는 어쩐지 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말 분했다. 마법적 재능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할 수밖에 없었다.
센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준 토리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파티장의 빛에 비춰, 은백색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어쩐지 주홍빛이 어울리지 않던 것은, 이 때문이었나. 토리는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파티장 안은 시끄러웠다. 언제 눈보라가 몰아쳤냐는 양 화창한 하늘이 창문 너머로 비치고, 온갖 악기들이 연주자 없이 노래를 흘러 보냈다. 아마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센이 아니었다면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다 왔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토리는 어느새 양 손에 마시멜로우를 가득 들고 있는 센을 보았다.
"너도 먹을래?"
센의 특이한 눈동자가 토리를 담았다. 그 많던 마시멜로우가 벌써 몇 개 남지 않았다. 토리는 그녀가 건넨 마시멜로우를 혀 끝에서 굴리며, 달콤한 맛을 한껏 느꼈다.
뒷맛이 긴 것이,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