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어느 깊은 숲속, 악마가 자주 나타난다 하여 '고스트타운' 이라는 별명이 붙은 크지 않은 한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자그마한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교회가 있었고, 숲에는 어디엔가, 여신이 성수연못가에 모습을 숨기고 살고있다고 교회에선 전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나 교회 수녀와 목사들, 악마와 천사들도 그 연못가를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였고, 오직 여신의 직속 수하인 대천사만이 알고 있는 신성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 마을의 교회에선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마을은 여신의 신화 덕분에 마을은 여신의 보호가 있다고 믿었다. 그 이야기에 겁먹은 악마들의 침입도 발길이 드물어졌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 큰 일이 났다며 시끄러워졌다. 악마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진 대악마가 마을에 찾아온 것이다. 교회에서 여러 수녀들을 보냈지만 대악마답게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인 그들을 비웃으며 그들을 금세 제압해버렸다. 다른 큰 수녀들과 목사들은 다른 곳에 가있었기에 더욱 큰 일이었다. 그러나 그 악마는 다른 곳에 볼일이 있었다. 주변을 살피더니 악마는 날개를 접고는 어리고 미숙한 한 수녀에게 물었다.

 

 

"성수가 있는 연못이 어디냐?"

 

"ㄴ, 네...?"

 

"여신 얼굴이나 구경 좀 해보게."

 

"그건, 저, 저도.. 모릅니다.. 이 교회의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쳇, 쓸모도 없는 풋내기 수녀계집이로군."

 

 

대악마는 여신의 연못을 찾고있었다. 악마는 질렸다는 듯이 날개를 다시 폈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 금방 돌아온 한 대머리 목사가 악마를 목격했다. 그는 교회에선 알아주지 못하지만 최고의 실력자였다. 대악마는 그를 우습게 보고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퇴마실력에 기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악마는 마을 밖으로 날아갔지만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기력에 오래가지 못하고 날다가 숲의 어딘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운이 좋게도 튼튼한 나뭇가지에 걸렸지만, 대악마는 몸의 상처를 치료하긴 커녕 그의 기력은 남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할 만한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반 쯤 포기하고 눈을 스르르, 감으려던 순간이었다. 눈 앞에서 희미한 분홍빛이 보이더니, 아픔이 사라지며 약해진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쏟아져오는 졸음에 악마는 눈을 감았다. 어느 무엇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분홍빛이었다. 그가 얼마나 잤을까, 눈을 번쩍 뜨고는 날개를 피고는 꼬리를 살짝 세웠다. 그의 눈앞엔 어느 꽃보다도 아름다운 분홍빛의 머리카락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안개가 낀 연못 한 가운데에서 자신을 보고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떨어진 숲에는 안개가 낀 곳이 없었다. 그리고 악마를 돕다니, 무슨 생각인지 경계중이던 때였다.

 

 

"벌써 정신이 들었나 보네요. 역시 정신력이 강한 대악마로군요."

 

"네, 네놈은 누구..."

 

"당신이 찾아다녔지 않나요. 나를."

 

"그럼, 네가 그 여신...? 어떻게...?"

 

"여신이란 이름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구요. 바보같은 악마씨."

 

 

대악마는 식은땀을 조금 흘리더니 그 여신에게 다가갔다. 그 포근하고 따뜻한 분홍빛이었다. 하지만 눈은 바다처럼 차가웠다. 그는 자신이 입은 상처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상처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깨끗했다. 그는 여신에게 다가갔지만 여신은 연못에 가까이 오는 악마를 보니 몸을 흠칫, 떨고는 밀쳐냈다. 여신이 있는 연못은 그냥 물이 아닌 성수로 이뤄진 연못이었기 때문에 대악마라도 녹아버릴 수 있었다. 악마는 발밑을 보고는 살짝 주춤하고는 날개를 펴고 공중에서 여신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구해준 여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신은 악마들에게도 유명한 존재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심지어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여 대악마인 자신이 반 진심 반 호기심에 나선것이었는데, 사실 내심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나게 되니 정작 뭐라 해야할지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애초에 공격했다면 모를까, 자신을 구해주었으니까.

 

 

"여신, 너에게도 이름이 있나?"

 

"아카이, 소라에요. 그러는 악마에게도 이름이 있나요?"

 

"음속의 소닉. 그냥 악마가 아니라 대악마다. 계집."

 

"..계집이라니, 이름을 가르쳐준 의미가 없네요."

 

 

무미건조하게 연못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시선에 살짝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얼굴을 가까이하며 여신에게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왜 이 몸을 구해준거지? 분명 옆에서 알랑이는 대천사녀석이 질색했을 터인데"

 

"..알 거, 없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이 가까운 게 불편한 지, 그에게 연못의 물을 아주 조금 뿌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픔을 느끼고는 물러났다. 아주 조금이라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따끔한 아픔만 느껴졌다. 그 것에 오기가 생겼는지 자꾸 여신의 주변에서 맴돌며 여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여신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제 돌아가라고 했으나, 악마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공중에서 눕기도 하고, 가끔 빤히 쳐다보기도 해서 여신을 자극하는 듯 했다.

 

 

"이봐, 계집.

 

계집, 나좀 봐봐라.

 

어이, 여신? 삐진거냐?"

 

 

여신은 그런 악마를 신경쓰지 않으려 눈을 감았으나, 자꾸 옆에서 신경을 건드리는 악마때문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신경질적으로 악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악마와 얼굴이 거의 입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닿지 않을정도로 가까웠다. 악마는 갑자기 훅 들어온 여신의 향기에 눈이 아찔해진듯 휘청이다 연못에 빠질 뻔 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고는 횡설수설하다 끝내 여신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악마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하다가 여신을 살짝 보았다. 여신은 뒤를 돌았다. 그러나 여신의 귀가 빨개져있었다. 악마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완전히 붉어져버렸다. 여신은 악마가 정신을 차릴동안 연못과 함께 모습을 다시 감췄다. 악마는 눈 깜빡할 새 사라진 연못과 여신을 눈치 챘을때엔 그 곳은 그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숲이었을 뿐이었다.

 

 

 

. . . .

 

 

 

대악마는 악마들에게 여신을 보았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악마들은 그에게 계속 여신에 대한 것을 물었으나 그는 그들을 떨쳐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후로 여신이 자꾸 떠올랐다. 아무리 누워도, 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도.. 여신의 뒷모습, 여신의 빛, 여신의 향기, 여신의 눈빛, 여신의 붉게 물들었던 귀까지. 그리고 그때 문득 여신이 한번도 웃지 않은 것까지 떠올렸다. 그리고 여신의 웃는 모습이 보고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악마는 짜증 난다는 듯이 머리를 헝클였지만 진심으로 느낀 묘한 감정에 혼란스러워서 결국 다시 자신이 떨어진 곳으로 날았다. 역시 여신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 보았던 여신의 뒷모습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거의 혼자서 그곳에서만 있고, 사람이든 무엇이든 누구의 눈에도 띄지않은 채 혼자있으니까.

대악마는 그때처럼 날개에 힘을 빼고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혹시나, 여신이 나타날까 하면서. 그치만 여신이 나타나줄까? 그때는 그렇다 쳐도 난 분명 여신을 짜증나게 했었지. 아마도 여신은 날 싫어할지도. 미안하다고 하기엔, 악마는 진심을 전해버리면 안된다는 법이 있었다. 악마는, 진심을 전하면 녹아버리니까.

여러가지 생각들로 그의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갑자기 악마의 몸이 멈췄다. 벌써 떨어졌나, 싶었을때였다.

 

 

"왜 무모한 짓을 하는거죠, 소닉."

 

"여, 여신 계집?"

 

"날 보자고 몸 아낄 줄 모르는건가요? 만약 내가 멈춰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역시나 바보같네요."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와 차가운 푸른 눈이었지만, 그 분홍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악마는 여신에게 있는 따뜻함을 잘 알고있다. 비록 만난지는 거의 안되었지만, 직감이 그렇게 그에게 외쳤다. 그렇기에 온 몸이 부러질 위기에 감수하면서도,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여신을 믿고 땅에 추락한 것이었다. 여신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악마는 여신에게 가까이 오면서 여신의 눈을 응시했다. 여신의 눈은 감정이 없는 푸른 눈이었지만 생기는 다른 인간보다 없었으나 조금 남아 있었다. 순간 악마는 웃음이 푸스스, 나와버렸다. 비웃는 웃음이 아닌, 즐거운 웃음을. 여신은 조금 놀란듯 눈이 커지더니 조금 거리를 두고는 또 다시 그에게 물을 뿌렸다. 악마는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비볐으나 여신이 살짝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그냥 물이에요. 바보 악마씨."

 

 

그 말을 듣고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악마는 짜증을 내려고 여신을 째려봤지만 악마는 화낼 수가 없었다. 여신의 입가에 미소가 잔잔히 물들어있는 것이다. 숨이 순간 턱, 하고 막혔다. 악마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얼굴이 물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서 그저 땅만 바라보았다. 여신은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차가운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비록 손은 차가웠지만 부드러운 손길은 무엇보다도 따스해서 악마조차도 정화될 뻔했다. 악마는 여신의 손을 밀쳐냈다. 두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고요했다. 그의 심장소리가 고요함을 깨고 들려왔다. 흠칫 놀란 악마는 끝내 여신에게 뒤돌아서는 날아가버렸다. 예전의 여신처럼 귀가 빨개진 채로.

 

 

'그런 건, 반칙이다..'

 

 

여신은 날아가는 악마를 막지 않았다. 그런 악마를 보며 오히려 웃음지었다.

여신은 그와 만났던 그 날 이후, 자신도 모르게 그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당황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대천사는 여신에게 악마를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여신은 그런 천사를 타이르며 그는 악마이지만 나름 따스한 마음이 숨어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이미 처음봤을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천사는 그런 그녀를 이해 못했지만, 여신은 그래도 기다렸다. 오지 않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믿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기적처럼, 악마와 다시 만났다.

 

 

"....소닉, 바보같은 악마."

 

"소라, 바보같은 여신 계집."

 

 

'또 다시 찾아오면, 무얼 할까.'

'또 다시 찾아가면, 무얼 할까.'

 

"..아아, 이런,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당신같은 악마를 좋아하게 될 줄은."

 

 

비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 외로운 여신이지만, 더 이상은 외롭지 않을것이다. 외롭지 않다.

악마는 그런 여신에게 매일같이 찾아올 테니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