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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를 위해서 비파의 성격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 인외합작1의 글과 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의뢰는 수도 외곽에 세워둔 저택에 사는 대부호로부터 왔다. 서신을 전달한 무사는 안색이 새파랬고 볼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갔다. 아이는 서신을 손 위에 올리고 주문을 외었다. 삽시간에 피어오른 불꽃은 서신을 재로 만들었다. 무사의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보며 비파는 속으로 비웃었다. 무사가 음양료를 나서서 주작대로로 사라지는 모습을 빤히 내다보다가 말했다.
  "이런 의뢰, 정말 받아들일 거야?"
  "어쩔 수 없잖아. 박사의 부탁인데."
  "아이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잖아."
비파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이의 어깨 위에 양팔을 올리고 턱을 정수리 위에 올렸다. 아이가 무겁다고 말했고 비파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아이가 턱을 들어서 비파와 눈을 마주했다. 비파는 코를 찡그렸다.
  "이 나를 보지도 못하는 멍청한 인간들 따위 상대 안 하면 좋을 텐데."
  "음양료의 일이잖아. 음양사로서 수행은 해야지.“
  “그 인간들은 감히 너를 시기하고 무시하잖아. 아이, 네가 누구와 식신의 계약을 했는데 같잖고 어린 것들 주제에.”

 “일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해.”
  아이는 걸음을 옮겼다. 비파는 매달리지 않고 뒤에 남아서 그를 보았다. 인간은 일을 하며 자신과 충돌하는 존재이자 경쟁자이며, 원령은 실적과 실력을 더 높이는 수단이고, 식신은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존재라고 했다. 비파는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식신 계약을 했다. 아이의 눈은 속임 없이 올바르게 비파를 보았다. 제대로 본모습을 보지도 못할 정도로 떨어지는 음양술을 가지고 속여가면서 나섰던 인간들과는 달랐다. 흥미로웠다는 것이 더 바른 말이었다. 100년도 살지 않는 허무한 인간의 삶에 관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비파는 아이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계약을 원하던 그의 이유가 떠올랐다. ‘사오토메’와 ‘박사’를 제외하고 이제까지 봐온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일말의 속임수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당당함이었다. 분명 그것이 비파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지금은 작은 심장이 떨렸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얗고 검은 배색의 옷자락이 흩날렸다.
  “비파, 뭐 해?”

  “잠깐 생각했어.”
  “무슨 일 있어?”
  “아니.”

  “흐응. 정말로?”
  “얼른 가자. 시간이 없어. 오늘 내로 완료하지 않으면 밤을 새야할 거야. 인간의 연약한 몸은 그런 것조차 버티지 못하잖아?”  하얀 날개를 퍼덕여 그의 어깨에 앉았다. 비파가 아이의 시야를 날개로 가렸다. 아이에게서 한숨이 나왔지만 웃었다. 부리로 왼쪽 날개를 다듬고 어깨 위에 몸을 편히 맡겼다.

  대부호의 저택은 이미 거의 반은 무너진 상태였다. 그 앞에서 땅을 치며 우는 대부호를 대신하여 하인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텐구삼나무의 가지를 훼손한 걸 가지고 집을 무너뜨렸다며 한바탕 하소연을 하더니 습격하였다던 텐구는 일을 마치고 북산으로 향했다고 했다. 한껏 억울하다고 외치는 그 앞에서 아이는 아무리 북산의 텐구삼나무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함부로 남의 집을 망가뜨렸으니 당연한 보복을 받은 거라며 차갑게 돌아섰다.
  북산은 언제 와도 영기로 가득 차있었다. 박사의 저택에서 비파의 일족이 살게 되기 전에 그들은 북산에 살았다고 부모로부터 들었다. 까마귀들과 달리 하얀 깃털을 가진 탓에 흉조의 징조로 여겨졌기에 인간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즉시 사살해야하는 존재였다. 그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살 수 있었던 형태는 강한 힘을 가진 인간들의 식신이 되거나 인간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비파의 일족은 대다수 인간이 되었고 비파와 부모는 박사의 저택 안 호수에 자리 잡았다. 가진 힘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시간이 지나며 음양사들 사이에서 점점 가지고 싶은 식신이 되어갔다. 강력한 힘을 저택 안에 둔 박사는 조금씩 지탄을 받게 되었다. 주상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번지르르한 말로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고자 했다. 박사의 밑에 아이가 제자로 들어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북산에서 수행하는 일이 많았던 아이는 그곳의 영기를 잔뜩 묻히고 돌아오곤 했다. 비파는 어릴 때 느꼈던 그리운 기운에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북산의 영기는 겨울처럼 차갑고 고요했지만 천둥을 만나면 거세게 흔들렸다. 텐구들은 북산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그들의 지식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강력한 힘과 방대한 지식을 가진 아이는 당연히 텐구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비파와 계약하고 나서 처음 북산을 갔을 때도 텐구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텐구들 중 어느 누구도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삼나무 위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천둥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공기는 텐구들의 분노를 보여주었다. 300년이 넘도록 지켜온 그들의 삼나무를 건드린 인간을 대변하여 왔다는 것을 그들도 알 터였다. 비파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텐구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얘기를 하고 싶어.”
  “필요 없다.”
  “그 인간의 집을 무너뜨린 짓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그런 말로 우리를 속이려는 짓은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짓이지.”
  “나는 요괴를 식신으로 두고 있어.”
  “안다. 그 어깨에 있는 하얀 새의 일족.”
  비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비파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텐구의 우두머리는 여전히 날카로운 말투였다. 아이의 손이 비파의 하얀 가슴깃털에 닿았다. 몸을 떨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아이를 만나기 전엔 식신은 이용할 수단이고, 요괴는 그 수단을 가지기 위해 적합한 존재에 불과했어.”  “하지만 그 아이는 틀렸나보군.”
  “어때? 다들 나를 연구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면 흥미를 가질 만하지 않아?”
  삼나무 가지 뒤에 숨어있던 텐구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개중 반은 삿갓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지만 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았다.
  “확실히 흥미로운 일이군. 음양술과 음양사로서의 일 외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이, 네가 생각을 바꿀 정도의 존재라니.”
  “비파는 내게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야.”
  우두머리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것을 들어주면 알려주겠느냐 물었다. 아이는 이 복수 이후로 대부호의 집을 찾아가지 않을 것과 인간을 습격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삼나무를 훼손당한 텐구가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우두머리가 막아섰다. 우두머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제안을 받아들이지. 자, 얼른 알려줘.”

  “비파가 있었기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을 알았어.”
  “그럼 그 일족은, 네 식신은 네게 어떤 존재지?”

  “소중해.”
  비파는 심장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텐구들 앞으로 다가섰다.
  “이제 나는 너희들이 3년 전에 내게 물었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
  “좋아. 만족스러운 대답을 기대하지.”
  “내게 ‘행복’은 ‘비파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야.”
  “정답이야.”
  삼나무에 앉아있던 텐구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북산의 영기마저 찢어버릴 만큼 강렬한 바람이 두 사람에게 들이닥쳤다. 그 사이에서 우두머리가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북산을 나서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
  “응.”
  “대답해.”
  “질문해.”
  “아까 그건 뭐야? 텐구의 질문? 그 전에 행복?”

  “말 그대로야. 내가 너를 만난 3년 동안 깨달은 것을 답으로 내놓았을 뿐이야.”
  “텐구들과 계약을 한 거야?”

  “아니, 연구 대상이 되어줬을 뿐이야. 보답은 그들 멋대로 하겠지. 텐구란 그런 존재니까.”
  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날개를 힘차게 퍼덕여서 그의 어깨 위로 날아가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팔을 내려놓은 그 자리에선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머리 위로 내려다보는 볼은 조금 붉게 물들어있었다. 비파는 눈을 깜박이며 아이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식신은 이용수단이라며?”

  “사람에게 있어 어떤 존재의 가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법이야.”
  목소리와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비파는 평소보다 뜨거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그런 거로구나.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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